김현식 1집 : 봄여름가을겨울, 당신의 모습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우리곁을 떠난 이들이 남긴 작품에는 그리움과 아쉬움이 늘 공존한다. 딱 한 장의 앨범을 내고 사라진 유재하, 통기타와 하모니카를 메고 노래하던 가객 김광석, 그리고 “노래는 이렇게 하는거야!”라고 알려준 언더그라운드의 전설 김현식이 대표적이다. 위에 3명 모두 대한민국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들이다. 대중음악 전성기의 첫머리인 1980년대를 빛낸 가수이자 언더그라운드 음악을 발전시키고 수면 위에 올린 인물들이지만 너무 일찍 떠났다.

김현식의 매력은?

김현식의 음악은 곱씹으면 씹을수록 늘 달리 들리는 묘한 매력이 있다. 칡과 오징어는 씹을수록 우러나오는 묘한 맛이 있듯이 김현식의 음악은 들을 때마다 안 들리던 소리가 들리고, 그의 목소리는 상황에 따라 깊은 울림을 전한다.

똑같은 노래를 몇 번을 들어도 다 다르게 들리는 김현식이다. 음악은 한번 꽂히면 질릴 때까지 듣고, 너무 많이 오래 자주 들으면 물리기 마련이다. 음식과 비슷하다. 멋모를 때, 처음 필이 꽂히면 테이프가 늘어날 때까지 듣고, 무한 반복 재생을 시연했다. 그리고 술이라도 한잔 걸치면 앉은 자리에서 몇십 번을 돌려 듣고 또 듣고 아주 LP판이 마르고 닳도록 돌려댔다. 그러면 아무리 좋은 노래라도 쉬이 질리고 물리게 마련이다.

이런 청취습관으로 인해 한동안 질린 노래들이 상당수 있었다. 그런데 어떤 선배의 비법을 하나 전수 받았는데 나름 설득력 있다.

“아무리 좋은 노래도 질리니까, 더 좋게 듣는 방법을 하나 알려줄까? 그건 바로 듣고 싶을 때 꾹 참는거야~! 그러다 몇 번을 참고 들어봐!! 노래가 더 애착이 생기고 더 좋게 들려~~!! 그리고 대충 듣는 법 없이 집중해서 들을 수밖에 없지~~ 그럼 안 들리던 소리가 들리고 더 깊은 울림으로 음악이 들어온다.”

실제로 그렇게 했더니 음악이 더 깊이 있게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그 이후, 듣고 싶은 음악은 조금씩 참아가면 듣는 버릇이 생겼다. 김현식의 음악은 그렇게 참으며 듣는, 오래도록 탐닉하게 되는 음악이다. 늘 듣던 김현식의 음악이지만, 어떨 때는 새로운 신곡을 처음 듣는 느낌으로까지 다가온다. 애착이 가서 한장 한장 모았던 앨범들인데, 빠진 음반이 있을 법도 하다.

김현식 1집이 나오기까지

모든 앨범이 다 좋지만, 설익은 김현식 1집 앨범은 유독 애착이 간다. 고등학교 자퇴 후 밤무대에서 노래하던 김현식이 첫 번째 앨범을 낼 수 있었던 계기는 가수 이장희의 도움이었다. 이장희는 당시 대마초 파동에 연루돼 가수 활동을 접고 표면상 옷가게를 운영했다고 한다. 하지만 따로 연습실을 차리고 자신의 이름으로는 음반을 발표하지 못하지만, 제작자가 되어 가수들의 음반 취입을 도왔는데 그런 이장희의 눈에 띈 것이 바로 김현식이다.

1976년부터 1978년부터 앨범을 준비, 녹음하던 중 이장희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갑자기 미국으로 떠났고, 김현식도 대마초 흡연 혐의로 몇 달간의 옥살이 하면서 데뷔앨범은 미뤄지게 됐다. 이 첫 번째 데뷔앨범이 세상에 나온건 1981년 서라벌레코드를 통해서 발매됐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을 내건 데뷔앨범은 완전한 실패로 끝났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끝마친 녹음과 대마초 사건에 연루돼 활동중단과 5년 뒤에 해금 조치 후 어렵게 앨범이 나왔지만, 철저히 대중들의 외면을 받았던 1집이었다.

이런 실패로 방황은 계속됐고 그 사이 음악을 접고 결혼과 피자가게를 오픈했지만, 이마저도 사업실패로 다시 밤무대에 설 수밖에 없었다. 불행 중 다행은 이즈음 동아기획의 김영 사장을 만나며 1984년 2집 [사랑했어요]를 발표한다. 이때부터 좋은 반응을 얻기 시작했고 오늘날 우리가 알던 김현식의 앨범들이 죽기 전까지 쏟아져 나왔다.

김현식 데뷔 앨범 / 봄여름가을겨울, 당신의 모습

1집 앨범은 앨범의 완성도 면에서 아쉬움이 조금 있는 앨범이다. 1집에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짬뽕 돼 있는데 소울풍의 록과 트로트풍의 음악, 포크 스타일의 곡까지 이것저것 다양한 시도로 10곡이 담겨있어 앨범 전체의 통일성은 조금 찾기 힘들다. 다만 우리가 알고 있는 김현식의 목소리는 없고, 맑고 깨끗한 미성의 김현식을 만날 수 있다.

A면과 B면의 결이 많이 다른데 Side A는 밴드세션으로 불려졌다면 Side B는 당시 통기타 하나로 밤무대에서 노래했던 질감으로 포크 스타일로 채워졌다. 특히 이 앨범에서 두 곡을 좋아한다. Side B의 ‘당신의 모습’과 ‘그대와 나’ 이 두 곡이다. 김현식이 불렀던 모든 노래 중에 가장 김현식스럽지 않은 곡이기도 하고, 김현식의 미성과 가성이 너무 풋풋하고 이색적이라 좋아한다.

‘당신의 모습’은 김현식에게 실연의 상처를 안겨준 첫사랑을 떠올리며 쓴 곡인데 이 곡을 아꼈는지 2집 앨범에 다시 수록하면서 반응을 얻은 곡이기도 하다.

‘그대와 나’는 여자가수 이화 1집에도 수록된 곡이기도 하다. 자신의 앨범에서 미리 녹음을 마쳤지만, 앨범이 언제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이화에게 곡을 줬고 이화 1집에는 김현식의 곡이 3곡이나 수록되어 있다. 재미있는 것은 김현식 1집과 이화 1집은 같은 날 1981년 5월 10일 같은 날 발매됐다.

1991년 6집 유작 앨범부터 거꾸로 듣게 된 케이스가 김현식 노래들이다. 6집-3집-4집-2집 순으로 앨범을 접했고 마지막에 발견한 앨범이 1집인데 처음 들었을때는 너무 충격적이었다. 시중에서 이 앨범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을뿐더러 담겨있는 노래들이 내가 알던 김현식이 아니었음에 충격이었고, 그 내용물은 설익은 하지만 젊은 열정이 똘똘 뭉쳐 있는 김현식의 시작점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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