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미국, 생방송 ‘올빼미 쇼’의 MC 델로이는 할로윈 특집으로 오컬트 현상과 관련된 여러 분야 전문가들을 방송에 초청한다. 어느 정도 각본이 짜여 있고 큐시트대로 흘러가는 그저 흥미로운 할로윈 특집방송으로 마무리해야 할 생방송은 ‘진짜’의 등장으로 돌이킬 수 없는 방송사고로 미국 전역을 충격에 빠트린다. 악마숭배 집단에서 살아남은 소녀 릴리와 초심리학자 준 박사가 악마를 소환해 버린 것이다. 충격에 빠뜨렸던, 그날 밤 생방송 “악마와의 토크쇼” 녹화영상이 최근에 발견됐다. 47년간 숨겨진 절대 생중계돼서는 안 될 최악의 토크쇼가,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비하인드 영상과 함께 마침내 공개됐다. 이런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단지 영화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흥미진진한 대목이 너무 많다. 영화 <악마와의 토크쇼> 리뷰.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 장르
47년간 숨겨졌던 1970년대 토크쇼 ‘올빼미 쇼’ 생중계 화면을 찾아 공개한다는 외형은 파운드 푸티지 장르를 표방한다. 그리고 관객들을 영화 안으로 끌어들인다.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는 직역 그대로 발견된(Found)와 영상(Footage)이다. ‘우연히 발견 회수된 출처 불명의 영상’을 콘셉트로 내세워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혼란스럽게 하는 방식으로 긴장감을 만드는 영화 촬영 및 연출기법이다. 페이크 다큐멘터리나 호러 장르의 공포영화에서 주로 사용된다. 대게 아마추어 방송 또는 캠코더 비디오 영상을 표방하며 CCTV나 블랙박스 영상을 소스로 쓰기도 한다.
이 장르로 대박이 난 작품이 바로 1998년 <블레어 위치 프로젝트>였다. 거의 센세이션을 일으킬 정도로 참신함에 화제가 됐었다. 심지어 실제로 발생한 일인 것처럼 광고해서 극도의 긴장감을 만들어내며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블레어 위치> 이후 저예산이나 다수의 호러 영화가 이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파라노말 액티비티> 시리즈, <클로버필드>, <REC>, <서치> 시리즈 같은 작품이 이에 속하며 우리나라 영화로는 <곤지암>, <스티리머> 같은 작품이 있다.
악마와의 토크쇼 기본 스토리
토크쇼 진행자 델로이는 초기에는 승승장구했지만, 점차 추락하는 시청률로 암으로 투병하던 아내까지 방송에 출연시키며 시청률 경쟁에 뛰어드는 인물이다. 방송 출연 후 아내마저 세상을 떠나고 위기를 겪은 델로이는 떨어진 시청률을 위해 조금 더 자극적인 소재로 토크쇼를 이끌어 간다. 영매와 그의 속임수를 폭로할 마술사가 등장하는가 하면 초자연적인 현상을 둘러싸고 진실 공방을 이어가며 시청자들의 눈길을 잡아둔다.
그러다 한방에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할로윈 특집 토크쇼를 준비한다. 1부에는 기적의 사나이로 불리는 영매와 초자연 현실의 실체를 밝히는 마술사 출신 회의론자를 출연시키며 의심과 불신을 부추긴다. 그리고 이어서 2부 출연자로 악마에 빙의된 소녀와 그 소녀를 연구하며 ‘악마와의 대화’라는 책을 저술한 초심리학자를 출연시켜 현장검증에 나선다.
악마숭배 집단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소녀가 악마에게 빙의됐다는 것이 사실인지, 생방송에서 현장검증하자는 것이다. 초자연적인 현상을 둘러싸고 의심을 보내는 사람과 이에 맞서 진실이라 주장하는 출연자들의 반박이 날카롭게 오간다. 최대한 자극적인 소재로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려는 토크쇼 연출자와 진행자가 무대 뒤편에서 시청률을 위해 위험한 방송을 강행하려고 한다. 너무 위험하다며 출연자는 극구 반대하지만 이를 무시하고 악마를 불러내려고 한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이미 물 건너갔다. 오로지 시청률과 토크쇼의 재계약과 스폰서들의 욕심만이 가득하다. 그렇게 토크쇼의 충격적인 엔딩을 맞이하는데 악마로 빙의한 소녀는 괴력을 발휘해 스튜디오를 공포에 몰아넣고 결코 방영돼서는 안 됐을 파국이 벌어진다.
감독과 주연
연출을 맡은 형제 감독 캐머런 케언즈, 콜린 케언즈는 어린 시절 시청했던 70년대 토크쇼 ‘돈 레인 쇼’에서 영감을 받아 이 영화를 제작했다고 한다. 오컬트 명작 ‘엑소시스트’와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가 연상되는 아주 묘한 오컬트 호러영화로 개성과 아이디어만으로도 이런 독특한 호러 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음을 보여줬다. 독특한 호러를 만들어낸 케언즈 형제 감독의 앞으로의 행보 역시 관심을 갖게 만든다.
영화의 주연이자 비중이 가장 큰 MC 델로이 역을 맡은 배우는 데이빗 다스트말치안으로 헐리웃에서 연기파 배우로 자리 잡은 배우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에 <다크나이트>로 데뷔해서 <프리즈너스>, <브레이드 러너 2049>, <앤트맨> 시리즈로 필모를 계속 쌓고 있고, 제임스건 감독의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도 비중 있는 역을 맡았고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에도 출연했다. 이 영화 <악마와의 토크쇼>에서는 거의 원맨쇼에 가까운 입체적이고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며 아주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이는데 그가 얼마나 재능 있는 배우인지 그리고 원톱으로서 충분히 영화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낼 수 있는 배우임을 입증했다.
영화의 구성과 주목할 점
이 영화는 단순히 미드나이트 토크쇼에 어떤 해프닝을 담은게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는 듯이 독특한 화면 비율을 보여준다. 배경이 1977년인 만큼 컬러 방송 송출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의 HD 방송이 아니라 선명하지 않은 노이즈와 고르지 못한 화면과 마치 그날에 녹화된 토크쇼 녹화본 VHS 화면을 보는 듯한 시점으로 진행된다.
이런 화면 구성을 통해 초현실적인 세계로 접근하며 화면 속의 4:3 화면과 흑백화면을 넘나든다. 실제 방송화면은 4:3 비율로 광고가 나가는 시간에 무대 뒤 이야기는 흑백화면을 보여주며 관객을 끌고 간다.
16:9 화면이 아닌 4:3의 예전 화면 방식을 보여주며 이날의 실제 방송은 이렇게 진행됐다고 대놓고 믿어달라는 듯한 화면 비율을 보여준다. 그렇게 47년 만에 세상에 드러난 생중계 화면이라 말하는 영화 속 진실이 진실인지 가짜인지 의심하는 사이 토크쇼의 마지막을 오컬트 장르에 걸맞는 충격적인 엔딩을 보여준다.
영화에 제일 백미라고 하면 엔딩 부분에서 나오는 엄청난 놀라운 장면들이다. 영화의 초중반까지 지금 보는 것이 뭐지 이런 생각을 했던 관객도 엔딩의 장면을 보고 나면 아마 평생 기억하게 될 호로영화로 남을 것이다. 흔하게 공포영화에서 사용하는 깜짝 놀라게 만드는 점프스퀘어 등 전통적인 공포영화의 장치도 등장하지 않고, 서서히 긴장과 의심을 쌓아 올린 후에 마지막 엔딩으로 충격을 안기는 방식을 선택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충격의 엔딩 이후에도 그 엔딩이 어떻게 벌어진 것인지에 관해 델로이의 회상씬과 환상같은 장면을 추가해 넣으며 계속해서 의심하게 만든다. 무엇이 진실인지? 이게 실제 벌어진 일은 맞는 것 같은데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자세한 설명 대신 몽환적인 장면을 넣어 놓았다.
“악마와의 토크쇼” 무엇을 말하는 걸까?
이 영화의 배경이 70년대인데 영화 초반 70년대를 불신과 폭력의 시대라고 정의하며 시대 상황을 비추며 시작한다. 당시의 영상을 보여주는데 베트남전, 워터게이트 사건 등을 보여준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 전쟁의 패배로 인한 좌절과 미국 역사상 최대의 정치스캔들 워터게이트 사건과 닉슨의 모습을 보여주며 베트남전쟁은 폭력, 워터게이트 사건은 불신의 아이콘으로 사용한다. 이런 폭력과 불신의 시대 국가적인 무기력감으로 가득 차 있었던 불안한 사회를 달랬던 것은 바로 심야 토크쇼라고 영화는 이야기한다.
이런 폭력과 불신의 코드와 내용은 토크쇼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미디어가 시대를 비춘다는 점을 생각해 봐도 미디어도 과연 믿을 수 있을까? 실제로 출연한 출연자가 악마인지? 미디어가 악마일 수 있고 악마 자체일 수도 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영화 시작과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나온 노래가 한 곡 있다. 1970년대 활동했던 Flo And Eddie의 “Keep It Warm”이란 곡으로 특이하게 영화 앞부분 70년대를 설명할 때 한 번쓰이고, 영화 엔딩크레딧이 올라 갈 때 한 번 더 쓰인다. 노래 가사가 재밌게도 “돈을 위해 노래를 써봐, 웃기지 않은 누구나 부를 수 있는 노래, 은행에 있는 돈이 우리 따뜻하게 해 줄 거야…”이런 가사를 지닌 곡으로 자본에 의해 움직이는 미국 사회를 애둘러 표현한 곡을 쓰고 있다. 그리고 백안관에 또 다른 바보를 선택하라는 대목이나, 또 다른 전쟁을 벌인다는 가사도 등장한다.
델로이의 토크쇼는 자극적인 콘텐츠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시청률 만능주의가 만들어낸 폐해다.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아슬한 경계를 넘나드는 콘텐츠는 불신과 폭력의 시대 사람들의 불안을 달래기보다 오히려 불안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진행자와 연출자, 방송사는 TV라는 매체가 어떻게 사회를 반영하는지 시청률을 위해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보여준다. 악마를 소환해 시청률을 올리려는 진행자와 결국 스스로 악마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며 미디어의 어두운 면을 비춘다. 엔딩 장면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자신의 재기와 높은 시청률을 노리며 악마를 불러내고 이를 만류했던 이들의 말을 듣지 않고 강행해 불러낸 악마에 의해 가해자가 동시에 제물이 된다.
그리고 영화의 배경인 1970년대 당시 시대를 완벽하게 재현해냈다. 출연자들의 옷차림과 헤어스타일, 스튜디오의 세트, 미술과 소품은 물론이고 화면의 색감까지 신경쓰며 1970년대를 정확하게 짚어냈다. 악마와의 토크쇼는 저예산 장르에서 아주 주목할 만한 평가를 받을 만한 수작이다. 오컬트나 호러영화를 좋아한다면 무조건 봐야 할 영화다. 충격적인 엔딩을 맞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