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음악은 팝음악의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고 상당부분의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도 소울, 알앤비, 펑크, 디스코, 힙합까지 흑인음악을 선보인 가수와 그룹들은 굉장히 많다. 19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며 랩을 선보이는 순간 가요계는 판도가 바뀌기 시작한다. 뒤이어 등장한 ‘듀스’는 본격적인 랩을 선보이며 한국 힙합씬의 초석을 다진 그룹으로 기억된다. 사실 이때 선보인 음악은 뉴잭스윙이란 흑인음악으로 1980년대 중후반 테디 라일리의 주도로 만들어진 흑인음악의 하위 장르다. 뉴잭스윙은 대중적이고 세련된 힙합으로 블랙뮤직의 대중화를 이끌었고 국내에서는 듀스를 시작으로 정통 흑인음악을 내세운 솔리드를 비롯한 흑인 힙합음악들이 속속 선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단연 이 그룹을 빼면 많이 섭섭할 것 같은데 바로 ‘업타운’이다. 업타운의 프로듀서이자 업타운을 만든 정연준을 빼고 90년대 힙합 알앤비를 얘기하기 어렵다. 정연준 스토리.
정연준 누구?
중고등학교 동창인 노이즈의 천성일과 1990년 “모래시계”를 결성해서 데뷔한다. 모래시계는 보사노바 장르를 지향한 듀오였는데 메인보컬이 정연준이었다. 천성일은 학창시절 정연준에게 기타를 배우면서 친해졌다고 한다.
모래시계의 작사-작곡은 천성일이 담당했고 보컬은 정연준이 맡았다. 앨범은 보사노바 리듬위주의 노래가 주를 이뤘고 “혼자 걷는 거리”,“회색바람”이 그나마 알려졌고 앨범 완성도는 나쁘지 않았지만 듀오활동은 짧게 끝났고 천성일은 라인음향에 합류하며 “노이즈”를 결성한다.
정연준은 1993년 국내 최초의 항공 드라마 파일럿 OST의 주제곡 을 부르며 인지도를 넓혀 나간다. 동시에 듀스 1,2집과 “여름안에서”의 보컬 디렉터와 코러스로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흑인 음악에 깊숙이 발을 담그게 된다.
정연준의 초기 성향은 흑인 알앤비(R&B) 성향의 슬로우 잼(Slow Jam) 음악을 주로 선보였다. 슬로우 잼(Slow Jam)은 리듬앤블루스와 소울의 영향을 받은 현대적인 알앤비(R&B) 발라드 음악을 총칭하는 용어다. 그리고 바로 자신의 솔로앨범 1집을 발표하는데 이 앨범 타이틀곡은 “하루 하루 지나가면”이 수록되어 있다. 당시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지만 정연준 1집 앨범은 드라마 <파일럿>의 후광으로 인기를 얻지만 앨범완성도에 비해 음반판매량은 저조했다.
정연준의 “하루하루 지나가면”은 후에 본인이 직접 프로듀싱한 타샤니의 ‘하루하루’로 리메이크해서 히트하게 된다. 타샤니는 윤미래가 참여한 여성듀오였다. 정연준은 1집 앨범이후 활동을 접고 흑인음악을 제대로 공부하기 시작한다. 2년 정도 흑인음악만 파고 드디어 1995년 흑인 음악의 토착화를 표방하며 최정예 멤버들을 모으고 녹음 작업을 이어간다. 그리하여 한국 초기 힙합씬의 대표그룹 “업타운”을 결성하기 이른다.
업타운 데뷔와 활동
1997년 첫 번째 앨범이 발표될 때 멤버는 래퍼 카를로스, 스티브 그리고 메인보컬과 랩을 담당한 윤미래의 3명이었다. 당시 윤미래는 만 13살의 나이에 업타운에 픽업됐고 1997년에는 만 15살의 나이로 업타운으로 데뷔한다. 활동당시에는 이례적으로 미성년자로 방송활동에 제한이 있던 시절이라 나이를 속이고 19살로 활동을 하기도 했다. 업타운 1집은 멤버가 4명인데 정연준은 프로듀서로만 활동할 계획이었지만, 적당한 남성 서브보컬을 찾지 못해 본인이 직접 참여했다고 전해진다. 정연준이 이를 갈고 만든 첫 번째 업타운 앨범은 “다시 만나줘”로 국내에는 생소한 흑인음악 장르를 선보이며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이 노래가 워낙 인기가 많다보니 첫 번째 앨범에서는 후속곡 활동을 생략하고 공백을 최소화시켜 두 번째 앨범작업을 서둘러 발표한다. 1집이 발표된 것이 1997년 1월이었는데 2집은 같은 해 1997년 10월에 발표된 걸 보면 얼마나 서둘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2집 앨범의 타이틀곡은 “다시 만나줘” 스타일이 아닌 “내 안의 그대”라는 알앤비(R&B) 발라드 곡이었다. 데뷔곡처럼 리듬감 있는 곡을 기대했던 팬들에게는 예상을 깬 반전이었다. 특히 슬로우잼 스타일의 “내안의 그대”에서는 윤미래의 보컬파트가 특히 임팩트가 강한 곡으로 업타운의 가능성을 한단계 높여 놓는 곡이기도 했다.
1,2집의 성공적인 활동을 이어간 업타운은 1998년 3집 앨범을 발표하는데 리더인 정연준은 이 3집을 기점으로 남성보컬 파트에서 빠지면서 프로듀서로만 남게 된다. 그리고 여성보컬 윤미래의 보컬 파트를 더 늘려 윤미래를 중심으로 재편한다. 그리고 정연준이 빠진 파트를 객원 서브보컬 박탐희가 추가 영입됐다. 3집의 타이틀곡은 “올라올라”였는데 이전 앨범보다 단순하고 경쾌한 음악으로 대중친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한다. 대중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지만 기존의 팬들에서는 반감을 불러오게 된다. 결국 바뀐 장르와 음악색으로 원망을 사게 된다.
1994년에 발표된 4집에서는 윤미래가 빠지게 된다. 정연준의 새프로젝트였던 ‘업타운 걸스’로 새로운 그룹 활동을 이어나갈 계획이었다. 재밌게도 업타운 걸스의 멤버로 핑클의 이효리가 연습생 활동을 하다가 끝내는 업타운걸스 데뷔는 무산되고 윤미래를 중심으로 한 ‘타샤니’가 만들어 지게 된다. 1998년 윤미래와 래퍼 이수아가 결성한 프로젝트로 “하루하루”,“경고”가 인기가 많았다.
윤미래의 빈자리가 너무 컸는지 업타운 4집은 많은 아쉬움만 남기게 된다. 이전 앨범보다 수록곡도 많았지만 3곡을 제외한 모든 곡이 욕설로 방송금지 판정을 받으며 활동은 미미했다. 그리고 4집 활동 마무리 이후 문제가 터진다. 래퍼 카를로스와 스티브 김, 타이거 JK가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구속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검찰 조사를 받았지만 모두 음성 판정을 받고 무혐의로 풀려나는가 싶었는데 문제는 업타운 멤버 카를로스와 스티브가 미국 시민권자였다는 것이 밝혀지며 미국으로 강제추방 되게 된다. 윤미래도 이 사건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강도 높은 검찰조사를 받기도 했다.
업타운 후기
시간이 한참 지난 후, 2006년 정연준은 업타운의 건재함을 증명하기 위해 원년멤버 정연준, 카를로스, 스티브와 윤미래 빈자리를 대신해 새 여성멤버를 발탁해 “My Style”로 6년 만에 재결합 컴백한다. 녹음당시 여성멤버는 Say라는 친구였는데 이 친구는 녹음을 마치고 빠지면서 그 자리에 제시가 참여하게 된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오랜만에 발표한 타이틀곡 “My Style”이 표절 논란이 불거졌다. 바로 후속곡 “Fiesta”로 5집 활동을 마무리했고, 2007년 정연준은 Mo Better Beats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고 프로젝트 앨범 ‘슬로우잼’과 ‘솔타운’등의 활동을 이어가며 본업인 프로듀서로 서인영, 미나 등의 솔로 앨범 제작에 참여한다. 이때 발표됐던 활동 중에 솔리드+업타운 프로젝트 ‘솔타운’의 “My Lady”를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Soul Town은 업타운의 정연준과 스티브, 솔리드의 멤버 이준과 정재윤의 프로젝트 그룹이었다. 2007년 3월에 발표한 “My Lady”는 나름 괜찮은 알앤비(R&B) 발라드 곡이었다.
2008년에는 6명의 멤버들이 재편되어 컴백했지만 오랫동안 활동 중단 상태였으며, 사실상 해체한 것으로 보였지만 2023년 새 멤버들과 함께 컴백했다. 25주년 베스트 앨범형태였으며 걸그룹 스피카의 멤버였던 김보형과 솔로 가수 베이빌론이 보컬로 합류한다. 앨범 소개에서 업타운의 1대 여성보컬을 윤미래, 2대 보컬 제시를 잇는 3대 여성 보컬로 김보형을 소개하기도 했다. 업타운과 정연준은 같은 이름이나 다름없다. 프로듀싱하는 힙합 그룹의 브랜드와도 같은 업타운은 윤미래, 스티브, 카를로스, 제시, 스윙스, 챈이 거쳐 간 한국 힙합씬의 1세대 그룹이기도 하다.
정연준의 음악활동은 90년대 가요계 호황의 시기 흑인음악과 힙합을 개척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표절과 관련한 이슈가 있었지만 장르적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걸 구현해 낸 인물로 프로듀싱과 작곡에서 두각을 드러낸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