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특이한 이름이 굉장히 많다. 웃긴 이름도 있고 별별 이름들이 다 있지만, 초등학교에때 처음 이름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가요톱10’을 보다가 한 여자가수가 노래를 부르는데 글쎄 이름이 ‘이미키’였다. “아니 무슨 사람이름이 이미키야?” 놀랐던 기억이 있다. 미키마우스가 연상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TV브라운관에서의 모습 또한 미키마우스의 귀가 연상되는 리본을 달고 나와 웃겼던 기억이 난다. 당연히 초등학생이 예명, 필명, 가명 이런걸 알 리가 없었고 순진하게도 그 이름이 본명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에야 연예인들이 활동명, 예명, 필명, 가명 등등 본명보다는 이런 이름으로 활동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그 당시에는 임팩트 강한 이름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가수가 바로 이미키였다. 이미키 Story.
이미키 누구?
1962년생인 이미키의 본명은 이소연이다. 왜 이름이 이미키였는지 궁금했는데 그 이유가 너무 단순하다 못해 1차원적이다. 어려서부터 ‘미키마우스’를 닮았다고 해서 별명이 미키였는데, 이걸 그대로 예명으로 삼았다고 한다. “아니 미키마우스 여자 친구 미니마우스도 있는데 왜 하필 남자이름인 미키라니? 이미니? 뭔가 임팩트도 없고 강렬하지는 않다.” 이미키 적어도 뇌리에 박히는 이름은 확실하니 어느 정도 성공적이다.
1986년 “이상의 날개”로 가요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원래 이 노래는 1985년 삼성물산 위크엔드 운동화 광고 배경음악으로 만든 30초짜리 CM송이었다. 광고모델은 당시 배우 조용원이 남자 배우와 시원한 바다를 뛰어 다니고, 갈매기의 날개를 겹친 것 같은 로고가 운동화에 찍혀 등장했었다. 이 노래가 의외로 좋은 반응을 얻자 완전한 곡으로 다시 만들어 발표한 곡이었다. 이 CM송을 불렀던 이미키도 덕분에 가수로 정식 데뷔까지 하게 된다. “이상의 날개”는 당시에 크게 히트했는데 가사가 지금 기준으로는 건전해도 너무 건전한 건전가요를 연상시키는 꿈과 희망, 미래에 대한 진취적 기상을 뽐내는 가사였고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어할만한 노래였다.
이미키 1집
데뷔 당시 이미키는 이미 결혼한 상태였다. 데뷔 앨범 수록곡의 대부분을 만든 프로듀서 겸 작곡가가 바로 남편 송문상이었다. 건전가요를 제외한 10곡 중 8곡을 남편인 송문상이 작사-작곡 했다. 앨범에 참여한 세션들도 이름이 화려한데 지금은 이미 거장이 되어 있는 건반 연주와 편곡을 맡은 한충완, 김광민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베이스는 어떤날의 조원익, 드럼은 세션 드럼의 최고봉 배수연이 맡았다. 기타는 소리새의 기타리스트 김광석이 참여했다. 참고로 포크싱어 김광석과 동명이인이다. 80-90년대 발표된 가요 앨범 중에 김광석이란 이름을 자주 발견할 수 있는데, 기타에 이름을 올린 경우는 바로 기타리스트 김광석이다. 그룹 히파이브로 데뷔해서 신중현과 뮤직파워, 남사당, 이생강과 활동했고 들국화 객원기타리스트이자 자신의 기타 연주곡집을 여러장 발표한 기타리스트다. (솔개트리오, 소리새의 김광석이 또 있다.)
이 앨범 최고의 히트곡이자 이미키의 가장 대표곡은 당연히 “이상의 날개”였다. 이미키의 곱고 청아한 음색이 빛을 발하며 인기를 모았고, 간주에 등장하는 기타리스트 김광석의 록 스타일의 일렉기타 솔로도 인상적이다. 이 앨범은 당시 50만장이상의 판매고를 올렸고, 각 방송사가 ‘아름다운 노래’로 선정되기도 했었다.
“먼지가 되어” 원곡 수록 이미키 2집
“이상의 날개”가 히트한 이후, 탄력을 받은 이미키는 불과 1년 만에 바로 2집을 발표한다. 2집 역시 1집 때와 같이 건전가요를 포함 총 11곡이 수록되어 있었다. 단연 눈에 띄는 곡은 “먼지가 되어”였다. 물론 당시 발표됐을 때 이 노래는 철저히 묻혀버렸다.
앨범은 거의 모든 곡이 수준급이었고 나쁘지 않았지만 이 앨범에서 가장 주목할 노래는 “먼지가 되어”였다. 이 노래가 대중들에게 알려진 것은 1991년 이윤수가 부르면서 다운타운과 라디오를 통해 알려졌지만, 대중에게 확실하게 어필한 것은 포크가수 김광석이었다. 2000회가 넘는 라이브공연에서 이곡을 즐겨 불렀고 1996년 김광석 사후 발표된 <김광석 노래이야기>에 수록해서 더욱 알려진 노래이기도 했다. 김광석이 불러서 알려지긴 했지만 당연히 이윤수가 원곡가수인줄 알았다. 그런데 한참 뒤늦게 첫 레코딩이 따로 있었으니 이미키 2집에서였다.
“먼지가 되어” 작곡가는 이대헌이었다. 연기자 이하나의 아버지인 이대헌은 이 노래를 1976년에 작곡해 본인의 목소리로 먼저 불렀던 곡이었는데 다운타운에서 오랫동안 불렀고 노래가 나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히트는 하지 못했다. 그래서 공식 음반으로 발표한 것은 이미키 2집에 작사를 남편인 송문상이 손을 봐서 녹음까지 하게 된 것이다. 이미키 버전은 까끌까끌한 전기 기타 솔로와 신디사이저가 주도하는 발라드였다. 이미키 데뷔직전에 송문상과 결혼하면서 이미키 모든 앨범은 송문상이 공동 작업물이었다. 송문상은 코러스로 여러 차례 참여했고, 심지어 “먼지가 되어”에서는 첫 소절을 부르기까지 했다. 처음에 들어보면 남자목소리로 시작하는데 듀엣곡인가 싶었다. 사실 이 노래는 2집 앨범의 타이틀곡은 아니었다. 당연히 이미키 버전역시 히트 근처에도 못 갔고 아주 뒤늦게 알려진 경우였다.
이 노래는 뒤에 정말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하기도 했었는데 2002년에는 원 작곡자인 이대헌이 직접 노래를 발표해 앨범까지 냈다. 또, 2012년에는 슈퍼스타K에서 로이킴이 경영곡으로 불러서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이미키 2집 앨범은 1집 세션의 기타와 드럼 김광석과 배수연이 역시 참여했고, 건반과 편곡에 김명곤이 참여했다. 1집에서 보여준 청아하고 여성스럽고 귀여운 음색 대신 여성 록커의 느낌이 묻어나게 샤우팅에 가까운 애절한 창법을 구사하면서 음악적 변신을 시도했지만 2집은 성공한 앨범이 아이었다.
3집과 4집
1989년 3집 앨범을 발표한다. 2집에 작사-작곡에 참여한 남편 송문상은 프로듀서로 한발 물러나고 이태열, 김형석, 이경석의 노래들로 채워졌다. 2집보다는 3집은 더 멜로딕하게 깔끔하게 바뀌었지만 아쉽게도 3집 역시 히트곡은 나오지 않았다. 2,3집이 전작의 성과에 미치지 못하자 1990년 이미키는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1992년 프랑스에서 샹송 창법을 익히고 돌아온 이미키는 4집 앨범을 발표한다. 1992년 맥심 커피 CF 에서 쓰인 프랑스 걀(France Gall)의 “Ce Sori Je Ne Dor Pas”라는 샹송을 번안해 “이 밤 잠이 안와”를 부르기도 했다. 불어로 부른 버전은 CD에 수록되어 있다. LP와 CD가 동시에 발매됐지만 LP에는 러닝타임 문제로 12곡만 수록되어 있어 불어버전은 빠져있다. CD에는 3곡을 추가한 15곡이 들어가 있었다.
이 앨범 역시 남편 손문상의 손을 거쳐 제작됐는데 프랑스와 브라질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한 이 앨범은 기존 이미키의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다양한 음색과 창법의 변화가 감지된다. 4집 앨범의 타이틀곡은 “유혹하고 싶어”였는데 이 노래는 라디오와 다운타운을 중심으로 서서히 알려졌고, 기존의 청순한 목소리와 조금은 섹시해진 성숙함이 공존해 있는 앨범이었다. 샹송의 부드럽고 추억을 자극하는 멜로디가 전반적으로 훌륭한 편이고 보사노바 리듬과 세련된 프렌치팝에 가까운 곡들로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이미키의 4집은 마지막 정규 앨범이 됐다. 장르음악으로 성공하기 힘든 국내 대중음악계의 현실 탓인지, 음악시장의 변화인지는 모르겠지만 상업적인 성공으로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이미키는 고정된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끊임없이 음악적 변신을 시도했던 의미 있는 도전의 연속이었다.
드라마 주제곡과 이후
이미키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노래는 “이상의 날개”와 바로 김승기와 듀엣곡 “당신이 그리워질 때”였다. 1993년 9월부터 1994년 12월까지 방송된 KBS 동명의 일일드라마였다. 이 드라마는 무려 1년 4개월 313회라는 어마어마한 분량을 자랑한 드라마였다. 이렇게 길어진 이유가 있었는데 엄청난 인기덕분에 1994년 4월에 종영하려던 계획이 9개월 연장됐다.
그런 이유로 이 드라마의 주제곡은 매일매일 TV에서 울려 퍼졌으니 인기는 동반상승했다. 작사는 김승기가 했고, 작곡은 이미키 앨범에 자주 참여했던 이태열이 작곡을 담당했었다.
이후 오랜 공백을 가졌고 2002년 ‘엄마의 바다’ OST, 2005년 ‘해변으로 가요’, 2018년에는 32주년 기념앨범으로 “먼지가 되어”를 전혀 새롭게 편곡해 발표하기도 했었다. 한동안 재즈가수로 변신한 이후 음악카페를 운영했었는데, 2023년 뜻밖에 정치권의 청담동 술자리 논란의 중심에 오르기도 했었다. 이미키가 운영하던 카페가 청담동 술집이라고 지목됐었다.
특이한 이름과 “이상의 날개”, “먼지가 되어”, “당신이 그리워 질 때” 같은 기억에 남는 몇 곡의 노래들을 발표하며 깊은 각인은 남긴 이미키, 특유의 곱고 청아한 목소리는 어쩌면 CM송과도 잘 어울리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좀 더 성숙한 스타일과 록, 샹송, 재즈까지 다양한 음악적 변신을 시도한 여가수로 기억에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