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수 더 그레이 후기, 결말, 시즌2

<기생수 : 더 그레이> 4월 5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공개됐다. 기존에 알던 기생수는 아니다. 이미 알려진 원작 스토리가 아닌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외전으로 스핀오프에 가깝다. 상상력이 대단하다. 확실한 몰입감으로 6부작을 멈추지 않고 몰아서 정주행했다. 기생수 더 그레이 강력추천한다.

<기생수>는 원래부터 워낙 좋아하는 콘텐츠였다. 일본 만화가 원작으로, 어렸을 때 만화책으로 정말 열심히 챙겨봤던 작품이고 얼마 전 일본에서 만든 실사 영화 두 편도 모두 다 챙겨봤다.

일본 실사 영화는 원작의 내용을 충실히 거의 그대로 옮겨와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안 봐도 될 만큼 구현해 냈다. 물론 영상 연출이나 CG가 살짝 아쉬웠지만 그럼에도 나름 만족스러웠다. 그런 상황에서 기생수를 연상호 감독이 우리나라에서 실사 시리즈로 만든다고 했을 때 솔직히 기대보다 우려가 컸다. 연상호 감독이 최근 다작을 하면서 호불호가 갈리는 부분과 아쉬운 대목이 있어서 솔직히 괴작으로 만들면 어쩌지 하는 우려가 앞섰다.

그런데 6편을 한방에 정주행했다. 정말 각 잡고 몰아봤는데 몰입감도 좋고 확장된 스토리가 전체적으로 너무 좋았다. 우려가 기우였고 이번에는 제대로 잘 만들었다.

<기생수 더 그레이>는 한마디로 내가 알던 그 <기생수>와는 거리감이 있지만, 연상호 감독표 기생수 외전이다. 기생수의 설정과 세계관을 공유하지만, 일본 원작 기생수 만화와 영화와는 완전히 결을 달리한다. 일본 원작은 주인공과 기생생물 간의 공생에서 오는 유머러스하고 티키타카가 주는 잔재미를 중심축으로 인간의 존재 이유와 사회와 조직의 본질에 대해 무겁고 깊은 성찰을 다루는 작품이었다.

인간이 지구를 병들게 한다는 전제에서 시작된 환경에 대한 깊은 주제도 같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기생생물들의 대결과 액션을 화려하게 펼치는 것이 원작 기생수 콘텐츠의 핵심이었다.

“지구에 사는 누군가는 문득 생각했다. 인간이 100분의 1로 준다면, 쏟아내는 독도 100분의 1이 될까? 인간의 수가 절반으로 준다면, 얼마나 많은 숲이 살아남을까? 지구에 사는 누군가는 문득 생각했다. 모든 생물의 미래를 지켜야 한다.”

원작에도 이런 이야기로 시작한다. 기생수에는 기억에 남는 철학적인 대사들이 많이 등장한다.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같은 굉장히 원초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하지만, 연상호표 기생수는 주인공과 기생수 간의 재미는 거의 모두 걷어냈고 조금은 어둡고 진지하게 바뀌었다. 원작에서 ‘기생수’라는 제목이 주인공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기생생물이 주인공의 한쪽 팔에 기생해서 살기 때문인데, <기생수 더 그레이>는 주인공의 얼굴 반쪽을 차지하게 된다는 설정이고, 주인공과 기생생물이 실시간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연상호 감독이 선택한 쪽은 무겁고 깊이 있는 주제는 주요 스토리 진행 동력으로 녹여냈지만, 캐릭터 간의 갈등구조를 보다 직접적이고 첨예하게 다루면서 화려한 액션과 긴장감 넘치는 스릴에 더욱 치중한다. 그리고 연상호 감독이 그동안 작품에서 일관되게 말해왔던 주제를 이 드라마에서도 연상호표 주제의식이 녹아있다. 조금은 염세적이고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와 인간의 추악한 모습들과 인간관계에 대한 고찰들이 잘 녹아있다. 무엇보다 사람과 기생생물과의 관계를 통해 인간관계와 인간과 사회의 본질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연상호는 한국영화감독 중 장르 문법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 중에 하나다. 마니아 장르였던 좀비물을 <부산행>을 통해 상업적으로 균형을 맞춰 대성공했던 인물이다. 기본적으로 어떻게 하면 대중성을 획득할 수 있는지 잘 아는 감독이다. 이번에도 그동안 마니아 만화에 가까웠던 기생수를 상업적으로 잘 다듬어서 보다 많은 대중이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기생수 더 그레이>는 SF 액션스릴러에 더 가깝게 재탄생됐다. 일본 실사 영화에서는 대사가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고 살짝 지루한 감이 있었고 액션 분량은 강렬하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적은 분량으로 아쉬웠는데 그 아쉬움을 연상호 감독은 확실히 채워줬다. 확실한 몰입감과 넷플릭스의 최고의 미덕은 멈출 수 없게 만드는 그 미덕으로 밤새게 만드는 매력이다. 거기에 액션 시퀀스와 CG는 꽤 좋은 편이다.

이정현 연기에 대한 평이 극단적으로 나뉠 소지가 분명 있다. 분명 소화하기 힘든 캐릭터이다 보니 초반에는 연기 톤이 너무 오버하는 느낌이었지만 중반 이후 전체적으로 긴장감을 잘 유지하며 극의 흐름 축을 잘 잡아줬다.

조연을 맡은 권해효, 김인권은 자칫 유치해 보일 수 있는 영화적 설정에 현실감을 더하는 연기를 보여줬다.

전소니는 이번에 처음 봤지만, 1인 2역에 가까운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서 몰입감을 더한 면이 있다. 연상호는 배우 고르는 눈이 남다른 것 같다고 예전부터 느꼈는데 이번에도 여자주인공 전소니의 선택은 탁월했다. 캐릭터를 잘 소화해서 몰입감을 더해줬고 감정선 완급조절도 훌륭한 편이었다.

남자주인공 구교환은 <반도>,<괴이>에 이어 이번에 세 번째로 연상호 감독과 함께 했는데 감독의 신임을 확실히 받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번에도 약간 오버스러운 면이 있지만, 심각한 장면에서도 말도 안 되는 개그 코드로 극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매력이 넘친다.

가장 지적이 많이 나올 부분이자 개인적으로 거슬렸던 부분은 기생 생물들에게 숙주가 된 인간들이 대사할 때 그 어색함과 국어책 읽는 느낌이 마치 로버트가 대사하는 것 같다. 물론 기생생물들이 인간의 언어를 익히지 못해서 설정 자체가 그럴 수밖에 없는 건 알겠는데, 실제 연기하는 연기자들조차 자괴감이나 현타가 오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그냥 많이 어색하다. 특히 동족들끼리 대사할 때는 마치 어린이 만화에서 악당 목소리 연기하는 느낌까지 든다. 연기 잘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이렇게 만드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은 대사톤이었다.

또 하나 지적하자면 기생생물들의 액션씬이 처음에는 몰입해서 봤는데 같은 액션씬이 반복되다 보니 마치 상모돌리기하는 장면이 연상되는 아쉬움이 있다.

요즘 OTT들의 오리지널 시리즈들이 습관적으로 시즌1을 공개하면 이야기를 제대로 마무리 짓지 않고 시즌2를 염두에 두고 뭔가 쌩뚱맞게 끝내는 경향이 높다. 그런데 기생수 더 그레이는 깔끔하게 이야기를 제대로 마무리 지어줬고, 마치 드라마 시리즈물이 아닌 5시간짜리 영화처럼 느껴지게 몰임감과 긴장감을 유지해줘서 더욱 좋았다. 영화로 1, 2편으로 나눠서 개봉했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마지막에 일본판 기생수와도 연결고리를 만드는 캐릭터의 등장에 박수를 보낸다. 일본 기생수 주인공의 등장에 환호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 같다. 이는 기생수 세계관을 한국, 일본, 전세계가 공유하고 있다는 설정이 되는 것이고 추후 기생수 세계관 확장을 염두해 둔 포석처럼 느껴졌다.

시즌1 사건이 마무리되고 시즌2는 시즌1에서 이어지지만, 캐릭터들의 변화가 예상되는데 훨씬 더 강력한 액션을 보여줄 듯하다. 어서 시즌2 제작을 확정 짓고 빨리 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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