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설 연휴를 겨냥해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살인자 ㅇ난감>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으로 최근에 본 OTT 드라마나 영화 중에서 제일 완성도와 몰입도가 높았다. 비슷한 소재의 다크히어로물처럼 느껴지는 <비질란테>와는 소재 면에서 비슷하지만, 확실히 결이 다르다. 만듦새가 예사롭지 않다. 대사, 연기, 연출, 촘촘한 화면구성과 전환, 사운드와 음악까지 오랜만에 잘 만든 웰메이드 드라마를 만났다.
살인자 ㅇ난감 시놉시스
우발적인 첫 살인 후 연이어 사람을 죽이게 된 평범한 대학생 이탕(최우식)과 자신을 끈질기게 추적하는 장난감(손석구) 형사와 끝없이 쫓고 쫓기는 범죄 스릴러가 기본 뼈대다.
처음은 이탕(최우식)이 우발적으로 사람을 죽이게 되는데 죽은 사람이 연쇄살인범임이 밝혀지고 또한 사건 현장에 그 어떤 범죄 흔적도 남지 않는 아주 특별한 운까지 따라 주면서 영어 제목처럼 “A Killer Paradox” 살인자의 패러독스 또는 딜레마에 놓이게 된다. 그런데 두 번째, 세 번째 살인이 이어질수록 악랄한 범죄자들만 걸려든다. 이 정도면 드라마 포스터 카피처럼 “신이 내린 영웅인가?” 싶은데 여기에 남다른 예리한 감각을 가진 장난감(손석구)형사는 이 살인사건들이 이탕과 관련성이 있을지 모른다는 촉으로 사건을 계속 추적해온다. 여기에 이탕을 도와주는 조력자 사이드킥 노빈(김요한)이 등장하고 장남감 형사가 끈질기게 잡고 싶은 개인적인 원한의 송촌(이희준)까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끝을 향해 달려간다.
연출과 편집
2010년부터 2011년까지 연재된 <살인자 ㅇ난감> 웹툰을 드라마에 맞게 각색하고 연출했는데 감독은 <타인은 지옥이다.>를 만든 이창희 감독이다.
스타일리쉬하고 특색있는 연출이 눈에 들어온다. 살인장면이 자칫 선정적이거나 잔인할 수 있는데 이를 교묘하게 편집의 묘를 살렸다. 잔인하게 묘사될 법한 장면들은 교차편집 해가며 연출하거나 슬로우모션의 활용이나 카메라에 잡히는 대상을 먼 곳에서 촬영하여 수위조절을 한 면이 있고 잔인한 장면은 짧고 담백하게 연출해 임팩트가 강했다. 그리고 촘촘한 화면구성과 장면과 장면의 화면전환(트랜지션)이나 컷 전환이 예술이다. 근래에 봤던 영화나 드라마 중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이전장면에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데 전혀 이질감 없이 장면전환 되는 걸 보고 감탄했다.
이런 식이다. 현실에서 뺨을 때리는 손이 회상 씬으로 이어지면서 역시 뺨을 때리고 있는 그림이 붙는다던가, 길거리에서 맞으며 쓰러지는데 자연스럽게 침대에 쓰러지는 장면으로 이어진다거나, 손석구가 풍선껌을 부는 씬이 자주 등장하는데 다른 장소에서 똑같이 풍선껌을 부는 씬으로 장면전환 된다던가, CCTV를 보다 똑같은 각도와 프레임이 화면이 아닌 현장으로 자연스럽게 장면이 전환된다. 치밀하게 장면전환을 계산한 연출은 정말 볼만하다. 드라마 끝날 때까지 질리지 않게 순간순간 절묘하게 장면전환 또는 컷이 바뀌는 미친 편집력을 보여줬다.
특히 화면전환과 중간중간 등장하는 심리 묘사로 짜임새 있게 보여주는 장면이나 절묘한 편집 점과 극적 리듬을 만드는 슬로우모션 효과는 드라마의 극의 완성도를 높였다. 또한, 미장센은 이렇게 디테일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마치 실생활을 보는 듯한 리얼리티와 아주 잘 짜여진 미장센이 주는 몰입감이 상당하다. 감독의 과거 수상 내역을 보니 2011년 미장센 단편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던 감독이다. 자신의 장기를 마음껏 발휘했다.
사운드와 음악
사운드가 쓸데없이 고퀄이다. 헤드폰으로도 들어봤는데 넷플릭스 시리즈에서 필요 이상으로 사운드가 좋아 놀랐다. 배경음과 현장음의 절묘한 배합은 장면과 장면을 이어준다던가, 심지어 주변 배경 소음과 현장음이 리듬이 되어 음악과 붙어버리는 신선한 경험까지 안겨준다.
예를 들면 이탕이 일하는 편의점으로 장난감 형사가 찾아와 탐문 수사를 할 때 팽팽한 긴장감과 장면과 전환과 함께 절묘한 타이밍에 흐르는 스코어(Score) 비트와 껌 씹는 소리가 리듬이 되고 핸드폰 진동 소리가 중간에 끼어들며 비트가 더해지면서 숨소리와 대사가 마치 음악처럼 들리는 신기한 경험을 안겨준다. 이런 사운드와 스코어들이 중간에 여러 번 더 나오는 데 하나같이 계산하고 공을 많이 들였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또한,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효과음 역시 타격감과 극의 분위기를 전환 시키는 역할을 한다. ‘현장음, 효과음, 스코어, 사운드 완전 미쳤네’를 외쳤다.
그리고 드라마 중간에 나오는 삽입곡 선곡 또한 예술이다. 무엇보다 1편 엔딩크레딧에 흐르던 노래에 심쿵하게 마음이 녹아내렸다. 예전부터 너무 좋아했던 루시드폴의 “평범한 사람”이 엔딩크레딧에 흘러나오는데 이 드라마를 안 볼 도리가 없었다. 스코어나 사운드트랙도 좋았지만, 1편 엔딩에 쓰인 선곡 때문에 드라마에 빠졌다. “평범한 사람”의 가사에는 “나는 너무나 평범한, 평범하게 죽어간 사람,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란 대목은 이 드라마 속 선한 일반 피해자들의 이야기처럼 들리는 중의적인 의미까지 내포되어 있다.
역시 1편에는 여러 곡의 삽입곡이 나오는데 이탕(최우식)에게 당한 첫 번째 피해자이자 연쇄살인범이 휴대용 스피커를 배낭에 넣고 음악을 들으며 다니는데 처음 시비가 붙기 전에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 흐르던 노래가 바로 산울림의 ‘슬픈 장난감’이란 곡이다. 손석구가 맡은 형사 이름이 ‘장난감’인 점과 제목을 ‘살인 장난감’으로 읽을 수도 있다는 점을 봤을 때는 기가 막힌 선곡이다. 가사 또한 “잠 들어라~ 모든 슬픔의 장난감들아 잠들어라~ 별은 너희를 위해 뜨고 지나니 모든 슬픔은 하루 저녁이 별빛~해가 지면 사라지고~ 잠들어라” 역시 감탄하면서 들었다.
그리고 첫 번째 살인이 일어나 쓰러진 아저씨가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장면과 죽었을 때 가방에서 흐르던 노래는 정수라 “환희”였다. “이젠 나이 기쁨이 되어주오, 이젠 나이 슬픔이 되어주오, 우리 서로 아픔을 같이하면 다시 태어날 수 있는걸” 이 노래의 의미도 절묘하다.
그래서 찾아봤다. “도대체 음악 감독이 누구야?” 그런데 그 유명한 “달파란”이었다. ‘와우! 이 아저씨라니 100% 이해가 된다.’ 밴드 시나위를 거쳐 삐삐밴드 출신의 영화계에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음악 감독이다. 베이시스트답게 그의 스코어에서는 리듬이 미쳤다. <거짓말>,<달콤한 인생>,<도둑들>,<암살>,<곡성>,<독전> 같은 영화음악 감독으로 60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지금까지 이런 멋진 감각과 에너지라니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캐스팅과 연기는?
<살인자 ㅇ난감> 최우식, 손석구, 이희준 연기도 흠잡을 데 없이 좋다. 직전에 공개된 <황야>와 비교해도 이희준의 연기는 최고였다. 이 드라마의 후반부를 이끌고 가는 건 이희준이 연기한 송촌이다. 손석구는 <DP>때 처음 봤는데 그때도 존재감이 확실했는데 이 드라마에서도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준다. 껌을 입에 달고 다니며 예리한 형사의 모습을 보이지만 선과 악의 중간지점을 방황하는 인물로 잘 그려냈다. 최우식 역시 캐릭터와 잘 어울리는 캐스팅이었는데 최우식의 뭔가 어설프고 불안한 청년의 모습을 잘 보여줬다.
이외에도 조연과 단역 배우들까지도 구멍 없는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줬다. 특히 이 드라마에서 신스틸러는 노빈역의 김요한이다. 초반 시각장애인 여성으로 나온 정이서에서 후반에 나온 찌질한 동창생 역의 노재원까지 조연들이 연기도 매우 입체적이고 인상적이다.
“살인자 ㅇ난감” 제목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난감
원작 웹툰 제목은 ‘살인자O난감’으로 가운데 알파벳 ‘O’를 썼지만, 네이버 웹툰엔 한글 자음만 단독으로 넣을 수 없어 한글 ‘ㅇ’ 이응을 대신 썼다. 드라마 제목 역시도 한글 ‘ㅇ’ 이응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알파벳‘O’든 한글‘ㅇ’이든 상관은 없다. 중의적으로 쓰인 것만은 확실하다. 크게 4가지로 읽힌다. 첫 번째 ‘살인자 난감’으로 읽는 사람이 많다. 제목의 ‘O’는 기호나 피를 연상시키는 그림 또는 기호 동그라미로 인식해서 ‘살인자 난감’으로 읽는다.
두 번째는 ‘살인자 영~ 난감’으로 영으로 읽힌다. 현재 살인자가 영 난감한 상황을 은유적으로 표현했고, 세 번째는 ‘살인자 오~난감’으로 읽힌다. 드라마 내용상 형사가 범인을 잡으려고 해도 영 실마리나 증거를 찾지 못한 난감한 상황을 가운데 글자로 표현한 것이다.
네 번째는 ‘ㅇ’ 이응이 앞의 ‘자’와 붙으면 ‘살인 장난감’이라고 읽을 수도 있다. 이탕과 노빈의 정의구현과 무차별적인 행동을 보는 시각이라면 ‘살인 장난감’처럼 보일 수도 있다. 송촌의 관점에서 보면 ‘살인자의 난감’이라고 읽히기도 한다. 아무튼 제목은 여러 가지 중의적으로 쓰이고 감독이나 출연자들도 제각각 읽고 싶은 대로 읽는다. 작품을 보는 시각에 따라 다양하게 읽어도 된다고 원작자의 인터뷰가 있었다. 읽고 싶은 대로 읽어라.
결말과 시즌2는? (스포있음)
서로를 쫓고 쫓던 이탕, 장난감, 송촌, 노빈 서로 얽혀있는 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데 이 네 사람은 결국 폐공장 한자리에 모인다. 장난감과 송촌의 과거 관계와 진실이 밝혀지고, 서로 얽혀서 혈투가 벌어지는 과정에서 노빈이 사망하고 이탕을 공격하려던 송촌도 장난감형사의 총에 맞아 죽는다. 이탕은 더 이상 도망다니지 않겠다며 장난감의 총으로 자신을 쏘지만 총알은 없다. 장난감은 이탕에게 자수하거나 도망치거나 알아서 하라고 한다.
이후 이들이 있던 폐공장은 불타 모든 증거가 사라지고 이탕의 혐의를 입증할 유일한 증거는 장난감형사의 증언뿐이다. 그렇지만 그는 증언하지 않는다. 마무리는 지금까지의 모든 사건은 송촌과 노빈이 공범인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를 모르고 필리핀에 밀항해 불법체류하던 이탕은 현지 경찰에 잡힌 후에야 자신이 수배중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한국으로 돌아온 이탕이 예전과 비슷한 살인사건 뉴스가 나오면서 마무리된다. 그 사건이 이탕이 한 것인지? 그렇지 않을수도 있지만 열린 결말로 시즌2의 떡밥을 던져놓은 것 같다.
시즌2의 여지는 남겨놓았지만, 시즌2가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 우선 깔끔하게 마무리됐다. 이대로 훌륭한 결말인데 굳이 시즌2를 만들 필요는 없어 보인다. 독전2가 억지스러움과 스토리가 산으로 가는 최악의 후속작을 여럿 봐왔기 때문에 이 드라마는 딱 여기까지 종결했으면 한다.
결국,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정의구현과 온당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이런 드라마와 컨텐츠가 쏟아져 나오며 대신 정의구현을 사적 제재를 보여준다. 일종의 대리만족감을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다.
언제부턴가 사적 복수를 넘어 사적인 정의실현추구형 단죄와 범죄가 반복되는 컨텐츠들이 넘쳐난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죽어 마땅한 놈들은 죽여도 되는가?”, “죽어 마땅한 사람을 단죄한다면 그것은 누가 정하나? 또, 단죄하는 자는 그럴 자격이 있는가?” 원작 웹툰의 주제의식이 드라마로 만들면서 변질 퇴색됐다고 하는데 원작을 안 봐서 모르겠지만 적어도 덜어낼 건 덜고 곁가지는 쳐내며 선택과 집중을 했으리라 짐작된다. 이 드라마 추천한다. 특히 3가지가 훌륭하다. 연출, 연기, 음악이 특히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