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영화 황야 후기

TV광고를 보고 넷플릭스 영화 “황야”를 봤다. 예고편을 잘 만든 것인지? 제대로 낚시질 당했다. 뚜껑을 열었는데 추천하지 않는다. 진짜 별로였고 근래에 봤던 영화 중에 실망감이 크다. 몇 몇 평가를 보니 아무 기대감 없이 본다면 킬링타임 용으로는 그냥 저냥 10점 만점에 5점이란다. 그런데 킬링타임이란 말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킬링타임이라니 바쁜 시대 할 일도 많고 볼 콘텐츠도 많고 많은 상황에서 시간을 죽일 일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싶고 아무리 시간이 남아 돌아도 아까운 시간을 허비한 느낌이다. 1/3 지점까지 보다 시청을 멈추고 싶었지만 앞선 시청시간이 아까워 꾸역꾸역 참으며 도대체 마무리를 어떻게 하는지 보자라는 심정으로 엔딩까지 봤다. 

넷플릭스 영화 “황야”는 단 하나의 아파트만 남기고 멸망해 버린 세계 “콘코르트 유토피아”의 차기작 세계관을 공유하는 영화로 넷플릭스에서 단독 공개됐다. 2023년 400만 관객으로 흥행했던 엄태화 감독의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세상이 멸망하는 장면과 유일한 유토피아로 묘사되는 아파트가 다시 한 번 등장했고, 제작비마저 비슷하고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후속작이라고 홍보를 하며 기대감을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세계관만 공유할 뿐, 아예 다른 영화다. 영화의 기획 또한 마동석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영화 홍보를 위해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숟가락을 얹은 작품 되겠다. 마동석 제작, 기획, 허명행 감독과 함께 연출했다. 범죄 도시를 포함한 수많은 영화들의 무술 감독 출신 허명행이 통쾌한 펀치로 범죄도시로 국민배우 대열에 오른 마동석의 경험과 새로운 도전의 욕구가 만들어낸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다. 그런데 홍보와는 달리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후속작이라 볼 수 없으며 감독도 아니라고 수차례 인터뷰를 했지만 그 설정 자체가 기대감을 높여 놓은 건 사실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제작사, 배급사 세계관까지 같은 만큼 세트장과 CG 데이터를 그대로 사용해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측면이 있으며 흥행했던 영화를 마케팅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전략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그리고 극장개봉까지 가지 않고 안전하게 넷플릭스 선택한 것이 아닌지 의심이 되기도 한다.  

영화의 분위기와 색감과 연출은 여러 영화들이 겹친다. 설정은 ‘콘크리트 유토피아’, ‘매드 맥스’, ‘나는 전설이다.’, ‘28일후’가 우선 떠오르고 액션은 마동석의 프랜차이즈 범죄도시의 자기복제 또는 연장선에 있는 것 같고, 아파트라는 공간에서 이뤄지는 액션은 “레이드”가 생각나기도 했고, 칼과 총기 액션은 ‘존윅’이 바로 떠오른다. 심지어 80년대 전설의 외화 “V”를 대놓고 오마쥬한 것인지 생쥐 먹는 장면과 파충류 얼굴 벗겨지는 씬은 헛웃음이 났다. 이 외에도 어디선가 많이 본 설정들이 차고 넘친다. 

범죄도시 마동석 캐릭터의 남성미가 뿜어져 나오다 못해 오글거리는 대사까지도 디스토피아 시대를 맞은 범죄도시 시리즈를 보는 것 같다. 심지어 피식하고 웃음이 나올 정도의 애드립같은 대사까지도 마동석 캐릭터와 겹쳐도 너무 겹친다. 마동석이 곧 장르라는 말이 있을 정도 아닌가? 액션은 묵직한 펀치와 총칼 가리지 않고 적들을 한방에 제압한다. 마동석 영화를 보면 늘 느끼는 것이 마동석의 등장은 오히려 적들이 걱정될 정도로 긴장감이 없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빌런이 불쌍한 느낌을 받게 되는 건 굉장히 이례적인 경험이다. 정말 단 한 번의 위기도 없이 시원하게 쓸어버리는 모습을 “황야”에서도 그대로 보여준다. 칼과 총기 활용 액션 평가는 ‘존윅’과 비교되는 이유다. 애써 포장해서 말하면 육중한 마동석표 존윅 시리즈를 보는 느낌까지 받는다. 

무술감독이 연출한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존윅을 벤치마킹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액션씬은 확실히 공을 들인 모습이다. 특히 총기 액션과 카메라 워킹까지 비슷하다. 하지만 디테일은 정말 많이 떨어진다. ‘존윅’ 액션은 적을 제압하기 위해 동작 하나하나 정확하게 보여주기 위해 짜임새 있는 액션을 완성했다면 황야는 한마디로 공들인 만큼 다듬어지지 못한 액션으로 아쉬움만 남긴다. 

긴박감을 주기 위해 카메라를 흔들거나 회전하고 타격이 있어야 할 부분에 컷 전환이 갑자기 훅하고 바뀐다거나 하는 장면에서는 못내 아쉬움이 크다. 실제 타격이 아닌 카메라 움직임과 바이브 속도는 “테이큰”시리즈에서 썼던 페이크 임팩트로 씬을 만들어 낸 것 같은 장면을 만들어냈다. 액션에 있어서 제이슨 본 시리즈와 존윅으로 높아진 관객들의 눈높이가 “황야”를 보는 순간 몰입도가 뚝 떨어지는 경험을 할 것이다. 마치 합을 짜고 액션을 하고 있다고 대 놓고 보여주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한마디로 액션은 합을 맞춰 짜고 하는 게 뻔히 보이는데 이걸 숨기려고 카메라를 돌려대는 어지러움 만 남는다. 범죄도시처럼 주먹으로 때려잡는 액션은 그냥저냥 이해하면서 볼 만하지만 CG로 공들인 피칠갑 사지절단 총칼액션은 산만하고 B급 고어영화를 보는 것 같다. 

“황야”는 캐릭터의 설정이나 서사도 전혀 몰입이 안 된다. 단적으로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차갑고 묵직한 아포칼립스 세계관 속 인간 군상을 밀도감 있게 그려냈고, 세심하게 심리묘사를 통해 무거운 주제 의식을 드러냈는데 “황야”는 아포칼립스 설정이 별 의미가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식량이나 물이 부족해 보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절박해 보일법도 한데 그런 모습은 볼 수 없다. 매드맥스의 도적들처럼 보이는 캐릭터가 나오지만 매드맥스에 비하면 동네 양아치수준인데다 마동석 앞에서는 귀엽기까지 하다. 최종 빌런인 미친 의사 양기수의 존재도 메인 빌런이라고 얘기하기도 애매하고 설정도 어설프다. 이런 아포칼립스 설정의 무시무시한 빌런들을 많이 봐 왔던 역대 영화들에 비하면 위협적인 설정도 아닌 연민 가득한 그냥 미친 의사, 과학자정도 밖에 안 된다. 그러니 위협적으로 느껴지지도 않고 설정 자체가 엉망진창이다. 

주연조연 가릴 것 없이 나름 좋은 연기를 보여주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연기력이 무색해질 정도로 설정된 캐릭터 때문에 헛웃음이 나거나 연기가 억지스럽고 과한 느낌을 받게 된다. 연기와 발성은 별로인데 이은호 상사로 나오는 안지혜의 날렵한 액션은 눈에 들어오긴 하지만 무술인지 무용인지 훨훨 날아만 다닌다. 예전 홍콩영화 예스마담을 보는 것 같았다.

이런 빌런의 서사나 설정이 약하다 보니 이에 맞서는 마동석과 조력자들의 싸움도 뭘 하려는 것인지? 신념과 의지가 약해보이고 극적인 긴장감은 아예 기대조차 힘들다. 오로지 마동석을 위한 마동석 액션을 쏟아 붓는 느낌이고 서사가 약하니 영화의 마무리는 맥이 빠질 수밖에 없다.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이 1차원적이고 단순하기만하다. 그냥 범죄도시 프랜차이즈가 확장을 거듭하다 아포칼립스 상황까지 가면 “범죄도시-아포칼립스”가 바로 “황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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