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 푸른 눈의 사무라이 (Blue Eye Samurai)

넷플릭스 <푸른 눈의 사무라이>라는 8편짜리 애니메이션이 올라와 있다. SNS에서 누군가 강력 추천한다는 말에 얇은 귀는 솔깃해 정주행을 완료했다. 일본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혼혈 푸른 눈의 사무라이가 복수를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내용이다. 얼핏 퀸엔틴 타란티노의 <킬빌1>이 생각나는 대목인데 생각보다 매회 긴장감 넘치는 연출과 이야기는 복잡하지 않고 굉장히 재밌게 몰입해 봤다.

일본이 배경인데 일본에서 만든 작품이 아니다. 넷플릭스 시리즈 미국작품으로 영화 <X-Man> 시리즈의 마지막 편 <로건>의 각본가 마이클 그린(Michael Green)과 앰버 노이즈미가(Amber Noizumi)가 연출한 작품이다. 앰버 노이즈미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계 캐나다인으로 마이클 그린의 아내다. 미국작품이니 당연히 언어는 영어다. 처음에는 일본배경 애니메이션에서 영어를 쓰는 일본인들이 무척 어색하고 그 이질감에 적응이 안 되고 몰입도 힘들었지만, 에피소드 한 편 정도 보고 나면 어차피 일본어나 영어나 자막으로 보는 입장이라 큰 상관없다.

무엇보다 작화 끝내준다. 이야기 또한 밀도감 있게 차곡차곡 쌓아 올려서 연출했다. 사무라이 애니메이션에서 기대할 수 있는 액션은 다 보여준다. 그리고 생각보다 수위가 꽤 높은 편인데 야한 장면이라던가 신체 절단은 기본이고 피가 낭자한 잔인한 장면이 많다. 마치 <킬빌1>의 마지막 1:100 액션씬이 연상된다. 오히려 실사 영화로는 보여주기 힘든 애니메이션만이 보여줄 수 있는 액션씬은 우아하기까지 하다.

사실 일본 역사를 알고 보면 더 재밌겠지만, 딱히 몰라도 상관은 없다. 일본 에도시대는 현재의 도쿄로 1603~1867년 일본 역사에서 가장 평화로운 시대였다고 한다. 애니메이션의 배경은 에도시대 초기, 개방에서 쇄국으로 넘어가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이 시기 일본에 있었던 4명의 백인 남자 중 한 명이 아버지로 추정되는 혼혈 사무라이 미즈가 있다.

제목이 푸른 눈의 사무라이는 주인공이 혼혈이기 때문이다. 그 당시 혼혈에 대한 혐오가 얼마나 심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외국인을 악마 또는 개로 여기며 괴물 취급을 당하고 인간 이하의 대접을 태어나면서부터 받게 된다. 태생 자체가 혐오의 대상이 됐고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고 그래서 늘 숨어야 하고 도망 다녀야 했다. 자신의 눈 색깔을 가리기 위해 색안경을 끼고 다닌다.

그런데 여기에 처음에는 남자인 줄 알았던 주인공 미즈가 사실은 여자였다는 사실이 극 중반에 공개된다. 혼혈에 여성이라니 삶 자체가 얼마나 처참했으면 주인공은 이런 자신을 이방인으로 만든 백인 남자 4명에 대한 강한 복수심만 품게 되고 오직 복수를 위한 삶의 이유를 선택한다. 이들을 처단하기 위해 앞으로 향하지만 매 순간순간 난관에 부딪히고 쉽지 않다.

이 애니메이션이 주목하는 대목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 사회적 약자인 혼혈이자 여성, 장애인에 대한 모습들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여성과 하층 계급은 인간 취급을 받지 못했던 시대의 모습을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다.

특히 여성들의 삶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딸을 유곽에 팔아넘기는 부모와 여성을 오로지 남자들의 부속물처럼 취급되는 대목들이 많이 등장한다. 유곽이 됐던 귀족 가문의 여자가 됐건 여성의 선택권은 없다. 이런 처참한 환경에서 집창촌의 여자나 귀족의 딸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여성들은 힘과 권력의 성적 노리개로만 취급받던 시대에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여성이 살아남기 위한 여정이 큰 축이다.

귀족 가문의 딸 이케미를 통해 영주의 딸로 정해진 여성의 길을 가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거부하고 서서히 변화해 가는 모습을 통해 보여준다. 또 다른 방법은 주인공 미즈가 여성이면서 남장을 하고 다녀야 했던 이유에서 알 수 있듯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남장을 할 수밖에 없었던 모습을 통해서다.

두 번째는 돈과 권력에 대한 가진 자들의 탐욕이다. 일본 에도시대 초기에 잠시 활발했던 외국과의 교섭과 통상에서 쇄국으로 넘어가는 시대를 배경으로 일본을 떠나거나 숨어야 했던 백인들과 쇼군과의 은밀하고 내밀한 관계를 필요악이라고 설명한다. 현재 권력인 에도막부든 그에 맞서는 세력이든 추악한 권력욕에 사로잡힌 무리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백인들의 총과 돈으로 쇼군에 오르기 위한 음모와 배신이 깃들어 있고 이 소용돌이에 주인공들이 끼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이 넷플릭스 시리즈 최고의 장점은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 하나하나 굉장히 입체적으로 나온다. 주인공 미즈, 선천적으로 양손이 없는 장애인 린고, 어린 시절 주인공을 괴롭혔던 타이겐, 그리고 타이겐의 약혼녀이자 영주의 딸 이케미, 주인공 미즈를 어린시절 제자로 받아들여 준 눈먼 도공, 미즈의 엄마와 미즈의 남편, 유곽을 운영하는 마담 카지, 그리고 빌런인 파울러와 신도 헤이지까지 캐릭터들은 모두 살아있다.

또한, 뛰어난 작화에서 보여주는 목숨을 건 대결과 싸움들 칼과 칼, 칼과 창, 활과 총 일대일의 대결부터 일대다의 모든 대결장면이 긴장감 넘치며 박진감이 있다. 매회 에피소드가 진행되면서 서서히 드러나는 악의 정체와 악을 제거하기 위해 정면으로 돌파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시원하고 통쾌함을 느끼게 만든다. 매회 에피소드마다 임펙트 있는 결투장면이 등장하고 과거 회상과 현재 결투장면을 교차 편집하거나 인형극형태로 보여주는 대목에서는 연출이 미쳤다는 말이 튀어나올 정도였다.

단점도 있다. 가장 큰 단점은 주인공 미즈가 그렇게 미친 듯이 복수를 위해 살아온 이유가 설득력이 조금 떨어진다. 1편에서 8편까지의 봤을 때는 백인 남성에 대한 강렬한 복수심만 넘쳐나지 왜 백인 남성 4명을 모두 죽여야 하는지 그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 물론 시즌2를 예고하고 있어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가 후에 밝혀질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시즌1의 복수의 원동력은 약하다. 마치 아무 이유 없이 복수 그 자체가 삶의 목표이자 동력처럼 느껴진다. 이 대목은 시즌2를 기대해 볼 만하다.

또 다른 일부 지적들을 보니 역사적 고증의 문제가 옥의 티처럼 있다고 하는데 역사다큐멘터리가 아닌 이상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첫 번째 에피소드 중간 부분에 등장하는 음악 중에 킬빌 OST에 수록되었던 호테이 토모야수(Hotei Tomoyasu)의 “Battle Without Honor Or Humanity”가 쓰이는데 반갑기도 했지만, 국내에서는 너무 자주 소비된 무릎팍도사 액션 BGM이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옥의 티라면 티고 식상하다.

오랜만에 아주 재미있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만났다. 뮬란풍의 작화와 킬빌의 복수 서사가 밀도감있게 엉겨있고, 액션씬은 시원시원 통쾌하다. 성인들을 위한 제대로 된 애니메이션으로 수위 높은 장면과 훌륭한 작화에 더한 액션씬은 그 자체로 우아하고 통쾌하다. 시즌2 제작이 반드시 이뤄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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