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 죽음의 바다”는 김한민 감독 이순신 3부작의 마지막 작품으로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 해전과 충무공 이순신의 죽음을 다룬 영화다. “노량 : 죽음의 바다” 이 부제 자체가 이 영화의 성격을 잘 나타내고 ‘역사가 스포다’라는 말이 있듯이 이미 이순신 장군의 죽음을 알고 있지만, 그 대미를 어떻게 마무리를 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
노량 죽음의 바다 총평
전체적으로 재밌게 봤다. 보통 영화를 보기 전에 어떤 기대치라는 것이 있는데 노량은 기대 이상이었다. 앞선 두 작품과 비교해 보면 노량은 연출력이 더 돋보였다. 김윤석, 백윤식, 정재영, 허준호, 박명훈 외 모든 연기자 크게 거슬리지도 않고 전반적으로 훌륭한 편이었고 CG도 티 안 나게 극에 잘 스며있었다. 3부작의 이순신 역을 비교해 보면 최민식-박해일-김윤석 각각의 이순신 모두 각자의 작품에서 잘 녹아있었고 납득이 되는 연기를 보여줬다. 노량에서는 김윤석과 백윤식, 정재영 3국의 장수들을 비교해서 보는 재미도 있었고 백윤식의 존재감은 확실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영화는 배우들보다 감독이 훨씬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 마무리였다.
그럼에도 아쉬운 대목은 있다. 러닝타임 153분, 2시간 30분이 넘는 시간은 인간적으로 조금 긴 편이다. 앞부분 1시간은 당시 돌아가는 정치적 상황설정에 할애했고, 나머지 1시간 30분은 해전에 할당했는데 전체적으로 조금씩만 줄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앞의 1시간 임진왜란 마지막 전시상황과 각국의 입장에 대한 빌드업이 필요는 하지만 1시간은 길다. 그리고 후반 해전씬은 감정적으로 늘어지는 부분이 꽤 있었고 의도적으로 이런 장면을 쓴 감독의 연출도 이해는 가지만 긴 해상씬에서 감정적 소비가 계속되다보니 조금 지친다.
개중에 갑판에서 인상적으로 찍었던 백병전 롱테이크 씬은 훌륭하고 전쟁의 잔혹함을 잘 그린반면 백병전 중에 헛것을 보는 것 같은 환상씬은 반으로 줄였어도 충분했을 것 같다. 마지막 북치는 장면 역시 호불호가 확실히 갈릴 대목이다. 의미가 있는 장면이지만 과유불급 전체적으로 20-30분만 줄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전작들과의 비교
그동안 이순신이란 성웅을 다루면서 느껴야 했던 압박감과 대작의 부피감이 감독을 계속 짓눌렀을 것 같은데 어느 정도 잘 마무리된 것 같다. 앞에 두 전작들과 비교를 하자면 명량은 흥행 면에서는 가장 좋았지만 조금 국뽕이 차오르게 만드는 대목에서 식상한 부분이 있었다. 한산은 세편 중에 가장 젊은 이순신 장군이 나오는데 전쟁 영화로서의 짜릿한 느낌을 제대로 주는 작품이었고 반면에 한산의 약점은 극의 드라마가 조금 약했다는 느낌이다. 곁가지처럼 느껴지는 드라마를 확 도려 내다보니 명량의 극적인 구성부분이 살짝 아쉽게 느껴진다. 아마 1편 이후 많은 이야기를 듣고 느낀 것과 2편에서는 1편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조금은 담백하게 가지 않았을까?
노량에서는 해전에 집중한 느낌이 있는데 해전 장면만 한 시간이 넘는다. 거의 100분정도가 해전이고 전쟁 드라마로 해전에 집중해서 잘 묘사했다. 너무 당연한 것이 우리 모두 결말은 알고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진짜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과연 어떻게 결말을 낼 것인가?
감정적인 부분에서 이순신 장군이 아들에 대한 사랑이 극진했던 부분과 마지막 순간이 되면 떠오르는 장면들 앞서 세상을 떠난 전우들이 생각나지 않았을까? 실제로 영화 속에서는 전사자 명부를 읽어보면서 그걸 불태운다. 영화 클라이막스에 감동적인 부분이 나오는데 이때 죽은 아들과 전우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는 대목에서 신파가 아니라 설득력 있는 서사로 느껴진다.
어찌 보면 슈퍼히어로의 퇴장하는 모습을 어떻게 그려낼지가 관건이었다. 성웅 이순신 장군을 퇴장시키는데 그냥 찍을 수는 없지 않은가?
노량 죽음의 바다 진짜 얘기하고 싶은 것은?
<서울의 봄>과 <노량>은 굉장히 비슷한 점이 많다. 일단 하룻밤 사이의 군사적인 상황으로 세상이 바뀌는 이야기인데 그 속에서 군인은 어떤 행동을 해야 되는 것인지를 볼 수 있고, 애국심이라는 것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다른 점은 서울의 봄의 무능한 인물들을 보면서 혈압이 올랐다면 노량에서는 참 군인들의 모습에서 후련함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로서의 노량은 이순신 장군의 전투라고 해서 무조건 일방적으로 승리하는 것으로 그리지 않았다. 전세가 왔다 갔다 하기도 하고 조류나 바람처럼 자연의 변화 속에서 전술을 어떻게 짤 것인가 잘 묘사해서 극의 긴장감을 녹여냈다. 무엇보다도 노량에서 잘 묘사하고 있는 것은 복잡한 해전 속에서 서로 다른 동상이몽을 잘 표현했다.
마지막 전투인 노량 해전을 통해 임진왜란 막바지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그 양상들을 굉장히 잘 중계를 하고 있다. 노량을 보면 어떤 우연이 끼어들었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런 결말까지 오게 됐는지 다 이해가 된다.
여기에 서로가 서로를 다 못 믿는 상황을 더해 더 긴장감을 만들어 낸다. 당장 조명 연합군조차도 조선은 명나라를 제대로 믿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또, 일본도 서로 다른 이유로 참전했던 다이묘들 사이에 동상이몽도 있다. 같은 전쟁에 참전하지만 각자의 상황이 다 다르다.
서로가 서로를 완전히 믿을 수 없는 것이 복잡하게 펼쳐지니까 전쟁 드라마를 보는 재미가 있고 영화 속에 굉장히 흥미롭게 담겨 있는 영화다. 전쟁의 참혹함을 담은 반전 메시지도 함께 담겨 있다. 영화를 압도하는 감정은 노량에서 임진왜란이 끝났다는 승전의 기쁨이 아니라 전쟁의 참혹함에 대한 탄식과 비장미가 오히려 담겨있다.
김한민 감독의 연출은?
영화의 강점이라면 연출의 의도적인 지연의 활용이다. 사건이 시간 순으로 흘러가다가 그걸 지연시키면 서스펜스가 생기는데 특히 영화 후반부에 이런 장면들을 볼 수 있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당연히 이순신 장군이 돌아가시는 장면일 텐데 피격되는 순간과 이순신 장군이 돌아가셨다는게 확인되는 순간에 사이에 인터벌이 있다. 영화가 어떻게 보여 주느냐는 측면에서 굉장히 흥미로운 측면이 있다.
이미지의 지연뿐만 아니라 사운드의 지연도 이런 연출의 연장선상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후반부 북소리가 장장 10분 넘게 나오는데 이 북소리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갈릴 수 있다고 본다. 귀에 분명 거슬렸을 것이고, 백윤식이 연기한 시마즈 역시 이 북소리에 괴로워하는 장면까지 등장하는데 이 북소리가 결국 이 영화의 주제인 결기이자 의지이고 다짐같이 들린다. 사운드도 선택과 집중 쪽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치열한 장면들에서 발생하는 사운드와 칼과 칼이 부딪히는 소리, 포와 함성 이런 것들이 적절히 쓰였다 빠졌다를 반복하면서 들려주고 싶은 소리만 선택적으로 들려줬다.
이미지의 의도적 지연과 사운드의 선택적 집중은 연출의 힘이고 대작의 마무리를 어떻게 할지를 고민한 흔적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노량 단점은?
이순신 3부작을 보러갈 때 우리는 기대하는 것들이 분명 있었다. 최민식의 명량은 그의 명대사 “소인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의 그 상황을 알고 어떻게 스크린에 펼쳐 놓았을까를 기대하고 보러간다. 그리고 한산의 경우에는 거북선이 막 등장해서 그 용의 머리가 언제 들어가고 빠지는지 혹은 사방에 있는 적을 어떻게 동시에 공격하는지 이런 것이 보여주는 장면이 딱 나오면 전쟁영화 액션 영화로서 제대로 짜릿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노량은 특정한 한두 장면에서 압도적인 전쟁영화의 장면을 봤다라는 느낌이 없다. 그나마 후반부 백병전 롱테이크씬을 꼽고 쉽은데 3국의 수군들이 살기위해 각자의 상황을 돌아가면서 보이는 부분은 전쟁의 잔혹함을 보여주면서 노량해전이 어떤 양상으로 펼쳐졌는지는 잘 묘사했는데 그럼에도 후반부 한 시간 반 동안 지속된다. 조금 지치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계속 업치락 뒤치락하는 상황이 계속 발생하니 보기에 지치고 감정적으로 소모가 많다는 것이다.
1시간은 초반에 그 싸울 때부터 너무 몰입해서 보다 보니까 후반부에 이제 감동을 하긴 했는데 좀 맨 끝으로 갈수록 힘이 약간 빠지면서 차분해지고 집중력이 살짝 흐려질 우려가 있다. 이순신 장군의 최후의 장면을 정말 기대하고 이 영화를 봤는데 실제로 감동도 좀 받았지만 그 묘사의 시간이 좀 길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깔끔한 마무리가 아니고 이것저것 사족이 붙은 느낌이다. 살짝 아쉬운 대목이다. 물론 사람들마다 생각이 다 다르니 이 부분까지도 충분히 만족하고 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앞에 두 편의 영화가 성과가 있는데 그 상황에서 과연 마지막을 극장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고 예측한 것 기대이상으로 성과인 것 같았다. 흥미롭고 재밌었다. 단 긴 러닝타임은 조금 견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