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이즈, 천성일

1990년대는 한국 가요 시장이 비약적인 성장을 이룩한 시기였다. 가요 음반이 해외 팝 음반의 판매량을 압도하기 시작하면서 100만장 이상 음반 판매고 밀리언셀링 시대를 열었던 시기다. 그 중심에는 서태지와 아이들은 물론이고 김건모, 신승훈, 노이즈, 박미경, 클론 등 당대 최고의 스타 가수들을 배출했던 라인음향 김창환 사단이 있었다. 이외에도 신해철, 정석원, 윤종신, 김동률 등 자체 프로듀싱이 가능한 뮤지션 집단인 대영AV가 있었다. 넥스트, 015B, 전람회 음반은 발라드쪽에 한 축을 담당했었고 댄스음악계에서는 솔리드, R.ef, 룰라, 쿨, 터보, 업타운, 박진영, 엄정화 등등 수많은 스타들이 쏟아져 나온 시기였다. 그 당시 노래들은 지금까지도 라디오에 꾸준히 흘러나온다. 이중에서 라인음향의 한 축을 담당했던 노이즈의 천성일 노래들을 들여다봤다.

어느 날 딸이 노래 하나를 흥얼거리는데 글쎄 신승훈의 “어긋한 오해”라는 곡을 흥얼거리고 있다. 사비부분 “어느 날 너의 슬픔 목소리 너무 힘들다는 한마디~ 이제는 나를 보내준다며 너는 울고 있었지~” 이 부분을 부르고 있었다. 궁금해서 물어봤다. 이 노래가 좋아 엄마 차에서 나오는 노래를 들었는데 너무 좋단다. 요즘 최신곡을 몇 곡 들려줬지만 다 별로란다. 감성이 예전 노래 감성이었다.

피식 웃음이 나왔지만 나 역시도 신승훈의 잊고 있던 옛 노래들이 생각났다. “어긋난 오해”랑 비슷한 분위기의 노래 “처음 그 느낌처럼”도 들려줬더니 이 노래도 마음에 들어 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두 곡의 공통점은 바로 작곡가가 천성일이었다. 우리 딸이 좋아하는 멜로디 라인을 만든 작곡가 천성일, 갑자기 궁금해졌다. 요즘 뭐하고 있을까?

90년대 인기 댄스 그룹 노이즈의 멤버이자 작곡가로 유명한 노이즈의 실질적인 브레인이었다. 그룹 내 최연장자였으며 작곡과 프로듀싱을 전담했었고 서브보컬이었다. 1968년생으로 홍대 조소과에 입학했지만 음악활동으로 중퇴했다. 천성일은 이미 고등학교 시절부터 작곡을 시작했고 그 때 만든 곡들이 박미경 1집 <화요일에 비가 내리면>에 수록되어 있고 김건모, 신승훈, 박미경이 소속되어 있던 라인음향에 합류시킨 것 또한 박미경이 라인음향의 김창환에게 소개를 해주면서였다고 한다. 김창환은 DJ시절부터 알고 지낸 강변가요제 출신 가수 박미경에게서 천성일을 소개받고, 그의 음악이 마음에 들어 함께 작업하자고 제안했고 노이즈 1집에서 “너에게 원한 건”이 크게 히트하자 김창환은 2집 수록곡 전부를 천성일에게 일임했다.

들리는 얘기에 의하면 노이즈는 서태지와 아이들과 같은 시기에 활동했는데 서태지가 노이즈의 천성일의 작곡실력을 경계하면서도 인정했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노이즈 1집 데뷔곡 “너에게 원한 건”의 성공으로 작곡가로 유명해진 천성일은 2집에서 전곡을 작곡했는데 2집에서는 “내가 널 닮아갈 때”가 인기를 얻었다. 이색적인 트랙으로 당시 라인음향의 소속가수들 김건모, 박미경, 신승훈과 노이즈가 함게 부른 “우리가 빛이 될 수 있다면”이란 곡도 인기를 얻었다. 

천성일은 노이즈 데뷔이전인 1990년 중-고등학교 동창이며 동네친구 정연준에게 기타를 배웠다. 홍대 미대에 진학하며 정연준과 함께 듀엣 ‘모래시계’로 데뷔했었다. 수록곡 9곡 중에 7곡을 천성일이 작사-작곡했고 메인 보컬은 정연준이 맡았다.

앨범은 전체적으로 보사노바 리듬의 곡들이 주를 이뤘고 타이틀곡 “혼자 걷는 거리”,“회색바람”,“혼자서”,“노란 편지”가 보사노바 리듬이 선명한 곡으로 1990년대 김현철, 박학기, 장필순 등 동아기획 소속 뮤지션을 중심으로 보사노바 리듬을 도입한 가요들이 대거 등장했는데 아예 대 놓고 앨범 전체를 보사노바로 채운 앨범은 이 앨범이 처음이었다. 나름 완성도를 갖춘 앨범이었고 “혼자 걷는 거리”가 대중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을 받았었다. 

모래시계의 데뷔 앨범은 포크성향의 보사노바 앨범이었는데 이 음반만 발표 후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 동창 둘이 의욕적으로 의기투합해서 앨범까지 발매했지만 생각보다 반응이 없자 듀오로서의 활동은 짧게 끝냈다. 이후 천성일과 정연준은 한국 대중음악계에 큰 족적을 남기게 되는데 천성일은 1993년 남성 댄스 그룹 노이즈 멤버로 큰 인기를 얻었고 작사-작곡가로 라인음향과 김창환나 사단의 대표 작곡가로 맹활약한다.

반면 정연준은 1993년 드라마 <파일럿>의 OST를 담당하기도 했고 그 주제곡을 불러 스타덤에 오른 후, 1996년 윤미래를 영입하며 그룹 업타운을 결성한다. 업타운은 당시 미국의 흑인음악을 본격적으로 한국에 소개한 결정적 역할을 한 팀으로 남아있다. 천성일이 노이즈, 정연준이 업타운의 멤버로 유명해지자, 이들의 음악 출발점인 “모래시계”의 존재가 훗날 재조명되기도 했다. 

1993년에 발표된 노이즈 1집은 하우스뮤직을 중심으로 테크노, 힙합 등을 결합한 경쾌한 댄스곡으로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1집이 하우스뮤직을 중심으로 다양한 실험을 했다면 2집에서는 펑키, 뉴웨이브, 알앤비(R&B)등으로 음악적 영역을 확장했다. 흥겨운 멜로디와 리듬 덕분에 1990년대 유행했던 나이트클럽과 록카페등에서 누구나 쉽게 춤출 수 있는 곡들로 사랑을 받았었다.

2집에서 히트한 “내가 널 닮아갈 때”가 1집에 이어 히트를 기록한다. 이곡은 분명 재즈와 힙합을 접목했지만 기존의 미국식 힙합처럼 거칠고 복잡한 리듬을 사용하지 않고 유럽풍의 간결하고 멜로디가 귀에 속속 박히는 아름다운 멜로디 라인을 지녔고 동시에 가사는 감성적인 느낌을 잘 살려냈다.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에 버금가는 큰 인기를 얻었고, 이후 등장한 남성 댄스 그룹이 강세를 보였던 시기에는 솔리드, R.ef, DJ DOC와 히트곡들을 쏟아냈던 시기였다. 

노이즈 3집은 오리지널 멤버 김학규가 입대하면서 한상일로 멤버를 교체하고 1995년에 발표했다. 1집때처럼 김창환과 천성일이 만든 곡들로 구성했는데 2집에서 천성일에게 모든 곡을 맡겼던 것과는 달리 3집에서는 김창환이 앨범의 반을 작사작곡했다. 이 앨범에서는 레게풍의 “상상속의 너”와 디스코풍의 “어제와 다른 오늘”이 동시에 히트했다. 위에 사진속 LP는 DJ용 홍보음반으로 쟈켓이 특이한데 이건 톰페티 앨범 쟈켓에 노이즈3집 수록곡 스티커만 붙여서 만든 임시쟈켓이라 요상한 형태로 되어 있다.

천성일 관련 LP(Vinyl)사진을 모아서 찍어봤다.

천성일은 당시 라인음향 소속 가수들의 인기곡들도 다수 작곡한 재능있는 작곡가였다. 대표곡으로 신승훈의 “처음 그 느낌처럼”,“어긋난 오해”, 김건모의 “혼자만의 사랑”,“너에게”,“언제나 기다리고 있어” 박미경의 “이유 같지 않은 이유”,“이브의 경고”,“넌 그렇게 살지마”, 클론의 “도시탈출”,“빙빙빙”, 콜라의 “모기야”등이 천성일의 작품이었다. 이밖에도 라인음향외의 가수들 강수지 “돌아와줘 내게”, 김현정 “ 누군가 했더니”, 젝스키스 “Summer In Love” 같은 곡들도 작곡했다. 천성일이 작곡했던 곡들은 분명 시대를 앞서갔던 세련된 멜로디와 음악이었다는 호평이 많았고 재평가해야 한다는 의견들도 있다. 우죽하면 어린 딸도 천성일이 작곡한 노래들을 좋아하는 걸 보면서 쉬운 멜로디와 깔끔한 편곡스타일이 남녀노소 골고루 사랑받았던 비결이 아닐까 싶다. 

노이즈 1,2집은 확실히 천성일의 색깔이 많이 묻어났지만 3집부터는 김창환의 곡 비중이 늘어나면서 노이즈의 음악 컬러가 많이 바뀐 면도 분명 있다. 천성일은 1998년을 마지막으로 가수는 은퇴했고 이후에는 작곡가와 프로듀서로 김태영 2집, 신승훈 7집, 신예원 1집, 조정현 4집 앨범에 작곡가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현재는 웹디자인 쪽에 관심이 있어 현재 IT업계에서 근무 중으로 알려졌다.  

가요시장의 황금기에 그 중심에 있었던 라인음향의 김창환과 핵심 작곡가 였던 천성일의 음악은 레트로 열풍과 함께 언제들어도 좋아할 만한 요소가 많은 노래들이었다. 천성일의 멜로디는 세대를 뛰어 넘어 어린 딸이 무척 좋아하는 노래로 남아있는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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