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건너온 키보디스트가 세계적인 프로듀서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정말 영화 한 편을 보는것 같다. 데이빗 포스터(David Foster)의 두번째 이야기. 그가 거쳐간 밴드 이야기다. 캐나다에서 결성했던 스카이락(Skylark) 시절과 로스앤젤레스에서 결성했던 에어플레이(Airplay) 시절의 이야기를 알아보자.
David Foster : Skylark 시절
데이빗 포스터(David Foster)는 4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는데 이때 신동 소리를 들을 정도로 절대음감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스카이락(Skylark)는 1971년 당시 캐나다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렸던 로니 호킨스(Ronnie Hawkins)의 백업 그룹으로 출발한다. 참고로 로니 호킨스(Ronnie Hawkins)의 초기 기타리스트는 블루스 기타리스트의 거장 로이 부캐넌(Roy Buchanan)이 거쳐갔고 그룹 더 밴드(The Band) 기타리스트 로비 로버트슨(Robbie Robertson)이 멤버로 있기도 했었다. 로이 부캐넌과 로비 로버트슨이 탈퇴하고 나간 자리에 스카이락(Skylark)이 로니 호킨스(Ronnie Hawkisn)의 백밴드로 결성된 것인데 데이빗 포스터(David Foster)가 동창들과 결성한 것이다.
캐피톨 레코드(Capitol Records)와 계약을 맺고 1972년에 3개의 싱글을 먼저 발표하며 첫 번째 앨범을 발표한다. 가장 큰 히트 싱글은 단연 “Wildflower” 였고 빌보드 핫100 에서 9위까지 기록하며 백만 장 이상 팔려나갔다.
기타리스트 더그 에드워즈(Doug Edwards)와 데이브 리차드슨(Dave Richardson)이 작곡했고 앨범 전체 편곡은 데이빗 포스터(David Foster)가 담당했다. 그런데 1973년 두 번째 앨범의 미지근한 반응 이후 해체한다.
최고의 히트싱글이 “Wildflower”로 가장 큰 사랑을 받았지만, 또 한 곡의 숨은 명곡이 있었다. 바로 데이빗 포스터가 작곡한 “Suits For My Lady”와 작곡은 다른 멤버가 했지만 자연스럽게 한 곡처럼 이어지는 “I’ll Have To Go Away(Saying Goodbye Is Not Easy)”가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Suits For My Lady”는 “I’ll Have To Go Way”의 전주같은 접속곡이었다. 이 두 곡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접속곡이었다. 강력 추천하는 곡이다.
스튜디오 세션뮤지션에서 프로듀서로의 전환
1973년 스카이락(Skylark)은 해체하고 데이빗 포스터(David Foster)는 스튜디오 세션 뮤지션으로 일하기 위해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한다. 죠지 해리슨(George Harrison), 로드 스튜어트(Rod Stewart), 링고 스타(Ringo Starr) 및 바브라 스트레이샌드(Barbra Streisand)와 같은 아티스트 앨범에 키보디스트로 참여하며 함께 연주했다. 특히 어스, 윈드 & 파이어(Earth, Wind & Fire)의 모리스 화이트(Maurice White)는 데이빗 포스터의 능력을 인정하고 어스, 윈드 & 파이어가 재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 프로듀서로 그를 천재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을 정도였다.
사실 처음부터 프로듀서로 능력을 보인 것은 아니었다. 데이빗 포스터(David Foster)는 스튜디오 세션 뮤지션에서 일련의 단계와 기회를 통해 키보디스트에서 작곡가와 프로듀서로 전환하기에 이른다. 키보디스트로서의 남다른 테크닉은 LA의 최고 프로듀서들로부터 부름을 자주 받는 편이었는데 프로듀싱 작업을 면밀하게 관찰했던 그는 스튜디오 유리를 통해 프로듀서들을 보면서 그들이 하는 일을 자신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굳히며 프로듀서의 역량을 키워갔다. 노래와 편곡에 대한 의견을 자주 내며 기회를 엿보다 실제 의견이 반영되고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과정과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1979년 Earth, Wind & Fire의 “After the Love Has Gone”과 같은 주요 히트작에 대한 그의 제작 작업과 1982년 드림걸스(Dreamgirls)의 캐스트 앨범은 그에게 그래미상을 안겨주었고 더욱 수요가 많은 프로듀서로 자리매김했다. 이후는 알려진 대로 시카고(Chicago) “Hard To Say I’m Sorry”로 대변되는 시카고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라이오넬리치(Lionel Richie)와 John Parr “St. Elmo’s Fire”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히트곡들을 쏟아냈다.
결국, 키보디스트로서의 탁월한 기술을 활용하여 스튜디오에 들어가 프로듀서들로부터 배우고 점차적으로 자신이 그 시대의 가장 성공적인 프로듀서 중 한 사람으로 완전히 전환할 수 있을 때까지 더 많은 제작 책임을 맡아서 세계 최고의 프로듀서가 된 것이다.
David Foster : Airplay 시절
에어플레이(Airplay)는 1979년 즈음 결성해서 앨범은 1980년에 발표됐다. 기타와 보컬의 제이 그레이던(Jay Graydon), 키보드의 데이빗 포스터 (David Foster), 보컬의 토미 펀더버크(Tommy Funderburk) 3명으로 결성된 유닛이었다. 엄밀하게 따지면 포스터와 그레이던이 핵심 주축이었고 보컬이 필요한 상황에서 펀더버크를 영입한 상황이었다.
이미 세션 활동과 작사-작곡, 어레인지 프로듀서의 멀티 재능을 발휘하고 있던 그레이던과 포스터가 의기투합해서 더 발전적인 상황에서 제대로 된 앨범을 발표하자는 포부로 앨범까지 발표한 것이다. 그런데 이 둘은 전문 보컬리스트가 아닌 상황에서 강력한 하이톤 보이스로 노래하는 토미 펀더버크(Tommy Funderburk)를 맞이했던 것이다.
토미 펀더버크(Tommy Funderburk)는 에어플레이(Airplay)의 프론트맨이자 주인공이었다. 80년대 수많은 록 앨범에서 백보컬세션으로 참여한 인물이다. 보스톤(Boston), 머틀리크루(Motley Crue), 예스(YES), 화이트스네이크(Whitesnake) 스타쉽(Starship)등등 그가 참여한 앨범이 엄청날 정도로 많고 희귀록밴드나 AOR 계열의 그룹들에서조차 그의 이름은 자주 발견된다.
에어플레이(Airplay) 유일한 이 앨범은 스탤리 댄(Steely Dan)과 토토(Toto)처럼 스튜디오 세션맨들에 의해 만들어진 멋진 AOR 앨범이다. 프로듀스와 어레인지를 그레이던(Graydon)과 포스터(Foster)가 담당하고, 모든 곡을 둘이 나누어 쓰고 가사는 당시 유명 작사가들 스티브 키프너(Steve Kipner), 톰 켈리(Tom Kelly), 빌 챔플린(Bill Champlin), 알리 윌리스(Allee Willis) 등 우수한 작사가들이 힘을 실어준 앨범이다. 앨범 쟈켓의 비행기는 할리우드 버뱅크 공항에서 촬영했으며, 투어에 사용된 어스, 윈드 & 파이어(Earth, Wind & Fire)의 Bicam 비행기를 사용했다. 아쉽게도 리드보컬 펀더버크(Funderburk)는 사진에 빠져있다.
리드 보컬은 펀더버크(Funderburk)와 그레이던(Graydon)이 각각 나눠서 불렀는데 그레이던(Graydon)의 가성은 마일드하고 상쾌하고, 노래도 능숙하지만, 키가 높은 곡에 대해서는 펀더버크(Funderburk)가 노래하고 방식으로 작업했다.
싱글에는 “Should We Carry On”, “Nothin’ You Can Do About It”로 발매됐고 일본 쪽에서는 “She Waits For Me”가 인기가 있었다. 예리한 브라스 혼 섹션이 인상적인 “Nothin’ You Can Do About It”은 그레이던(Graydon)이 아끼던 곡이었는데 후에 맨하탄 트랜스(Manhattan Transfer)의 앨범과 1982년 레슬리 스미스(Leslie Smith)가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기타리스트 답게 그레이던(Graydon)의 기타 솔로가 귀에 쏙 들어온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스, 윈드 앤 파이어(Earth, Wind & Fire)의 감미로운 발라드의 “After The Love Is Gone”을 자신들이 앨범에 셀프 커버했다. 곡의 전반부에서는 펀더버크(Funderburk)가, 사비 부분에서는 빌 챔플린(Bill Champlin)이 리드 보컬을 담당하고 있다. 그레이던(Graydon)의 기타연주도 화려하게 울려주며 EW&F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불러줬다.
정말 지금봐도 세션뮤지션들의 이름이 압권이다. 토토(Toto)의 제프 포카로(Jeff Porcaro), 마이크 포카로(Mike Porcaro), 스티브 루카서(Steve Lukather)를 비롯해, 레이 파커 주니어(Ray Parker Jr.)의 이름도 발견할 수 있다. 백 보컬도 빌 챔플린(Bill Champlin), 톰 켈리(Tom Kelly), 막스 그론넨달(Max Gronenthal)이라는 실력파가 맡고 있다.
에어플레이(Airplay) 이 앨범 발매가 이뤄진 것은 우연한 계기는 절대 아니었다. 세션 뮤지션으로 이뤄진 그룹 토토(Toto)가 결성되는 과정을 보면서 자극을 받았다. 본인처럼 세션 뮤지션들로 이뤄진 토토(Toto)가 1977년에 의기투합하는 현장에 있었고, 그레이던(Graydon)과 포스터(Foster)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샘도 났고 부럽기도 했고 질투도 났다고 후에 밝혔다. 그래서 토토(Toto)가 했던 것처럼 똑같이 스튜디오 세션맨인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에어플레이(Airplay)를 결성했다. 그리고 실제 토토(Toto) 멤버들이 이 앨범에 많은 곡에서 도와주고 세션에 참여해 기여하기도 했다. 문제는 토토(Toto)는 꾸준히 지속됐지만, 에어플레이(Airplay)는 딱 이 앨범 한 장을 발표하고 더이상 앨범은 없었다. 후에 스스로 평가하길 토토(Toto)는 대중적인 곡들을 더 많이 가지고 있었지만, 에어플레이(Airplay)는 너무 음악적이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무엇보다 데이빗 포스터(David Foster)는 프로듀서로 너무 바빠지고 여기저기 오라는 곳이 한 두 곳도 아니니 그룹 활동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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