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고양이들(Wild Cats) : 임종임 Story

내 인생 처음 들었던 기억속의 첫 노래는 동요도 만화영화주제곡도 아니고 그때 대중가요 “마음약해서”이다. 물론 갓난쟁이때 엄마나 할머니가 불러준 자장가를 듣고 자랐겠지만, 기억은 거의 없다.  

내 인생 처음 들었던 노래

태어나서 처음 들었던 대중가요는 확실히 들고양이들의 “마음약해서”,“십오야”였다. 이걸 어떻게 기억하냐면 강원도 두메산골 왕산골에 있었던 우리집에는 방위를 하던 친척 아저씨 한 분이 기거하고 있었고 그 삼촌은 매일 음악을 틀어댔는데 이 곡에 맞춰 춤을 그렇게 췄다.

TV도 없던 시절, 어느날 아버지는 송아지 3마리를 팔아서 엄청나게 큰 금성사 전축을 사왔다고 한다. 내가 태어나기 전이나 그즈음 이야기였으니 난 기억나지 않지만, 어릴 때 그 전축은 늘 한자리에 있었고, 내 장난감이었다. 그 전축이 얼마나 빵빵했냐면 이 노래가 골짜기 가득 울려 펴졌고, 인근에 집들이 아주 드문드문 있었던 산골이니 음악 청취에는 최고의 조건을 갖췄다고 봐야겠다. 그 전축에 방위 삼촌은 “마음약해서”,“십오야”를 주구장창 틀었고, 난 거기에 맞춰 재롱을 부렸다고 한다. 

5살이 되던 해 그 산골에서 나와 현재 본가가 있는 송림으로 이사를 했으니, 4살 정도의 기억이다. 이렇듯 또렷한 기억과 그 멜로디는 잊히지 않는다. 사실 그 산골에서 최고의 현대문물이었는데 그 전축판, LP판이 바로 들고양이들 음반이었다.

재밌는 것은 그때 들었던 노래가 기억 속에 콕 박혀있다는 것이다. 어린아이의 눈에 신기했었던 기억인지 충격인지는 알 수 없지만 유년시절의 기억 한편에 자리 잡은 노래가 됐다. 그도 그럴 것이 유치원도 안 다녔고 7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해 들었던 노래가 “학교종이 땡땡땡”이다. 적어도 나에게 5살에 들었던 “마음약해서”와 “학교종이 땡땡땡”사이에는 그 어떤 노래도 없었다. 실제로 5살짜리 꼬마가 “마음약해서 마음약해서 잡지 못했네 돌아서던 그 사람 짜라자짜짜짜, 십오야 밝은 둥근달이 둥실둥실 떠올라~ 하모니카 소리 룰루랄라~” 흥얼거리고 다녔다. 

와일드캣츠(들고양이들)은 월남공연을 목표로 만들어진 그룹

인천출신 최시라와 임종임을 비롯한 멤버들이 의기투합해서 만든팀이 와일드캣츠다. 모든 밴드가 음악을 하고 음반도 내고 싶어했지만, 어떻게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모른다는게 신생밴드들의 문제였다. 이때 짠하고 등장한 인물이 유럽에 이미 진출해 있던 아리랑싱어즈의 리더 김영일이었다.

김영일은 이 여성그룹을 눈여겨보고 제대로 해보자고 제안한다. 이때 가장 먼저 오른 무대가 월남 미8군 위문공연 무대였다. 이때 도와준 아리랑싱어즈가 바로 88올림픽 공식주제가 “손에 손잡고”를 불렀던 ‘코리아나’였다. 유럽에서 아리랑싱어즈로 활동하다 이름을 ‘코리아나’로 바꾼 것이다. 동남아에서 나름 인기를 얻으면서 음악활동을 했는데, 코리아나가 사정이 생겨 더 이상 이들을 도와줄 수 없게 된다. 그러면서 한국시장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귀국한 뒤, 귀국 1집을 발표하는데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에 이어 “마음약해서”가 수록된 앨범은 30만장이 넘는 판매 기록을 세웠다. 특히 80년 “마음약해서”는 국민가요로까지 자리 잡았다. 인기 비결은 당시 국내에 드물었던 디스코펑키리듬과 무그 신디사이저를 적극 활용한 절묘한 인트로, 보코더를 사용한 진보적인 플레이가 돋보였기 때문이다. 펑키디스코와 트로트 , 신민요, 다양한 번안곡까지 안 되는 장르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장르불문 활동영역을 넓혀나갔다. 1980년 두 번째 앨범에서는 “정든 부두”,“어화둥둥 내 사랑”을 연속 히트시키며 인기를 이어갔다.  

임종임 별세

지난 8월 28일 향년 74세 별세했다. 새벽 SNS를 통해 별세소식을 접했는데 순간 예전부터 임종임과 들고양이들과 관련된 추억을 글로 남기고 싶었는데, 이런 식으로 글을 남길 줄은 몰랐다. 

임종임은 1969년 주한 미8군쇼 무대에서 노래를 시작해 1971년 와일드캣츠를 결성했다. 예전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무대MC가 밴드나 가수를 소개할 때 빠지지 않고 했던 멘트가 있다. 바로 “동남아 순회공연을 성황리에 마치고 귀국한 누구누구의 무댑니다” 바로 그 동남아 순회공연의 가장 대표적인 밴드가 바로 와일드캣츠(들고양이들)이다. 활동무대를 1974년부터 1978년까지 홍콩으로 옮겨 활동했었다. 홍콩에서의 인기도 상당했다고 한다. 출중한 연주 실력과 노래실력으로 여러 장의 앨범이 있는데 판매량도 높았다. 

그러던 중 1979년 국내로 귀국한 뒤에 앨범 [더와일드캣츠(들고양이들)]을 발표했다. 바로 여기에 “마음약해서”,“오동동 타령”,“난 정말 몰랐었네”,“십오야”가 수록되어있다. 어릴 때 주구장창 들었던 바로 이 앨범이었다. “마음 약해서”는 다음해 똑같은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질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지금 들어도 뽕짝뽕짝한 “십오야”도 연이어 히트를 기록한다. 당시 인기가수의 척도가 된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1980년에 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1980년 리드싱어 임종임은 솔로로 독립한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거의 모든 그룹의 전형적인 코스가 밴드에서 인기를 얻었던 밴드의 얼굴 보컬들이 솔로독립은 무슨 공식과 같다. 임종임은 해외 무대에서 갈고 닦은 무대 매너와 시원시원한 보컬과 파워풀한 목소리는 어떤 곡을 불러도 착달라붙었다. 1981년에 보니엠(Boney M)의 “Bahama Mama”를 “말하나 마나”라는 제목으로 번언해서 불렀는데 이 곡까지도 히트한다. 무한도전을 통해서 이 곡은 ‘하나마나송’으로 패러디돼서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솔로 활동 당시 이름에 관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음반사마다 표기를 달리했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임종님’으로 표기했는데 어떤 음반에서는 ‘임종임’으로 쓰여 있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두 개의 이름을 병행해서 사용했다. 

무대를 떠난 뒤 임종임은 결혼도 하지 않고 홀로 지냈다고 한다. 그리고 강남에 ‘와일드캣츠’라는 주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안타깝게 지난해 암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내가 태어나 처음 들었던 노래, 그 목소리 주인의 별세소식에 마음이 아프다. Rest In Peace 임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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