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언 부테(Lillian Boutté) Story

재즈의 탄생지는 미국 남부의 항구 도시 뉴올리언즈(New Orleans)다. 어쩌면 재즈를 아끼는 이들이나 재즈를 연주하는 이들에게 이 도시는 영원한 마음의 고향일수도 있다. 그런데 재즈를 듣다보면 모던재즈 이후의 재즈에만 관심을 갖고 뉴올리언즈의 초기 재즈는 박물관에서나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역사적 의미만 부여해 왔고 실제로 남아있는 음원이나 작품들이 많지 않다. 심지어 남은 자료들은 음질 또한 열악하기 그지없다. 녹음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예전음반들을 듣다보면 집중할 수 없는 이유는 우리의 귀는 이미 또렷하고 정확한 음질에 길들여져 있어 예전 음반에서 오는 괴리감이 컸던 이유도 있었다. 2010년 우리나라 가수 최은진이 <풍각쟁이>라는 앨범을 한 장 발표한 적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가수 박향림이 1938년에 발표한 노래를 옛스러움을 그대로 간직한 채 최은진이 다시 불러 녹음한 적이 있다. 이 앨범을 접하는 순간 릴리언 부테(Lillian Boutté)가 가장 먼저 생각났다. 

릴리언 부테(Lillian Boutté)는 1949년생으로 뉴올리언즈에서 태어났다. 재즈 가수 존 부테(John Boutté)의 언니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부터 교회 가스펠을 통해 음악을 접하게 되는데 11세에 합창단에서 활동하며 각종 노래 대회에서 우승을 하기도 했었다. 대학은 루이지애나 자비에서 음악치료 학사를 취득했다. 1970년대부터 여러 재즈 음악인과 팝 뮤지션들과 협연하기도 했고, 기본적으로 블루스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이때 세션 뮤지션으로 활동하며 알렌 투쌍(Allen Toussaint), 패티 라벨(Patti LaBelle), 포인터 시스터즈(Pointer Sisters), 네빌 브라더스(Neville Brothers) 코러스와 백업 가수로 활동했다. 그녀가 추구한 음악은 비교적 블루스를 기반으로 한 재즈 보컬 스타일로 가까운 전통의 범주 안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것으로 이어졌다. 

1979년부터 1983년까지 그녀는 뮤지컬 [One Mo’Time]으로 해외 투어에 들어간다. 뉴올리언즈에서의 높은 명성이 유럽 순회공연으로 이어졌고 특히 프랑스와 영국에서의 공연은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 시기 1982년 가스펠 음반을 하나 발표하는데 올림피아 브라스 밴드(Olympis Brass Band)와 협연으로 첫 재즈 앨범을 녹음한다. 그리고 유럽투어 동안 노르웨이와 덴마크 그룹과 녹음을 하기도 했는데 이 과정에서 독일 출신의 색소폰 클라리넷 연주자인 토마스 레티엔(Thomas L’Etienne)을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된다. 

결혼과 동시에 ‘릴리안 부테와 그녀의 음악친구들(Lillian Boutté And Her Music Friends)라는 밴드를 결성해 유럽에서 활동을 이어갔다. 레코딩중에 가장 유명한 앨범은 1985년에 발표된 <Music Is My Life>앨범이었는데 그녀의 존재를 널리 알린 가장 대표적인 앨범으로 평가받고 있다. 

앨범은 초기 뉴올리언즈의 재즈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채워 넣었다. 마치 앨범을 듣다보면 1985년에서 70년 전으로 타임슬립해 1910년대와 20년대 뉴올리언즈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으로 만들어졌다. 릴리언 부테(Lillian Boutté)의 고향이기도 한 재즈의 발상지에서 나고 자라면서 듣고 느꼈던 음악을 유럽대륙으로 옮겨와 재즈의 원형을 퍼트린 것 같은 앨범이었다. 뉴올리언즈에서 자란 이들에게 이런 초기 재즈의 모습은 떨쳐 버릴 수 없는 혈통과 이미 DNA에 녹아있는 것일 수도 있다. 뉴올리언즈 재즈의 향기가 살아 숨쉬고 있으며 재즈의 탄생에 큰 기여를 했던 블루스 음악이 온전히 녹아들어 있다. 1920년대에 들려졌던 음악스타일이 복원만 한 것이 아닌 현대의 레코딩기술을 만나 신선한 느낌을 선사하고 있으며 짙은 매력을 뿜어내고 있다. 

이 앨범에서 가장 유명한 노래는 단연 “Am I Blue”다. 기억하기에 이 곡은 광고음악으로도 사용되면서 국내에서는 잘 알려진 재즈곡이기도 하다.

재즈를 잘 몰라도 이 노래를 들으면 재즈보컬의 정형화된 분위기가 바로 느껴진다. 그 이유는 뉴올리언즈 재즈의 2박자 리듬을 기본으로 편곡되어 있는 스탠다드 발라드곡이기 때문이다. 이 곡과 비슷한 분위기의 “Music Is My Life”,“He Touched Me”,“For All We Know”도 역시 듣기 편안한 초기 뉴올리언즈 재즈 보컬곡이기도 하다. 당연히 블루스 음악에 기반으로 한 스타일이다. “Am I Blue”와 함께 자주 들었던 노래는 “He Touched Me”다.

재즈에서 자주 연주되는 스탠다드 고전 “All Of Me”외 대부분의 곡들이 뉴올리언즈 스타일을 잘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1924년 루이 암스트롱과 시드니 베쉐가 연주한 고전중의 고전인 “Cakewalking Babies From Home”은 대놓고 ‘뉴올리언즈 스타일은 이런 것이지’라는 것을 표방한 곡이기도 하다.

그리고 초기 재즈의 대다수가 블루스 형식에 의해 만들어졌고 블루스의 세부장르인 부기우기(Boogie Woogie)역시 1930년대 재즈사에 필연적으로 거론되는 장르이고 재즈발전에 지분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데 “Hey Bartender”, “Georgia Grind”가 딱 부기우기 스타일이다. 

뉴올리언즈 스타일과 부기우기 스타일의 편곡이 상당 부분 중복되어 있고 이 두 가지 음악의 공존이 결국 1985년에서 1920년대 뉴올리언즈의 어느 재즈바로 우리를 데려다 준다.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아주 예전음악이지만 오히려 듣다보면 복잡하지 않은 마냥 편안함을 느낀다. 어느 순간 재즈는 발전의 발전을 거듭하며 박자와 리듬이 어려워지고 점점 복잡해지며 난해한 음악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단순하기만한 릴리언 부테(Lillian Boutté) 음악이 가끔 아무 근심걱정 없이 들리고 전혀 진부하게 들리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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