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카노(Mecano) Story

투우와 플라멩고의 나라 스페인에 대해 지금은 많은 음악들이 알려져 있지만, 과거 80년대에 알려진 가수로는 훌리오 이글레시아(Julio Iglesias)가 가장 대표적이었다. 그 이전에 “Eres Tu”를 부른 모세다데스(Mocedades)정도만 기억난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1992년 바로셀로나 올림픽을 기점으로 스페인 음악들이 국내음반시장에 라이센스 음반으로 또는 수입음반으로 발매된 적이 있었다. 당시 이국적인 느낌의 음악들과 영미권의 팝시장과는 다른 뉘앙스의 신선함을 전해줬었다. 이때 접했던 팀 중에 하나가 메카노(Mecano)라는 팀이었다. 당시 가수 윤상이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Dalai Lama”라는 곡을 처음 듣고 구입한 음반이었다. 

메카노(Mecano)는 1980년에 결성해 1992년까지 12년의 음악활동을 통해 7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스페인 최고의 팝 밴드로 가장 성공한 팀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2천만장이 넘는 음반을 판매하며 여전히 가장 많이 팔린 스페인 밴드였다. 

밴드의 라인업은 여성보컬 아나 토라야(Ana Torroja)와 나초 카노(Nacho Cano), 호세 마리아 카노(Jose Maria Cano)형제로 구성된 트리오 구성이었다. 팀은 활동시기 동안에 팀 색깔이 크게 두 차례 변했는데 첫 번째는 결성부터 1985년까지 본질적으로 신스팝 밴드였고, 1985년 레이블을 이적 하며 두 번째는 발라드, 댄스, 플라멩고, 보사노바, 탱고, 살사, 룸바, 볼레로, 파소 도블레, 레게음악까지 다양한 월드뮤직 요소를 포함한 좀 더 어쿠스틱한 팝 록 성향의 음악을 선보였다. 한마디로 정말 세계 각국의 다양한 장르의 음악적 특색을 메카노(Mecano)라는 팀에 다 모아서 녹여냈다.  

1980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결성하고 CBS레코드와 계약을 맺으려 첫 앨범 <Mecano>를 발표한다. 당시 영국 뉴웨이브 밴드 스팬다우 발레(Spandau Ballet)의 영향을 받아 신스팝 앙상블로 시작했다. 앨범은 발표되자마자 젊은 층으로부터 인기가 특히 높았는데 그럴만한 이유가 청소년들이 공감할 만한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가사로 써서 노래했다. 첫 번째 앨범은 발매 3개월 만에 100장을 팔아 스페인의 모든 판매 기록을 경신했다.

지금도 1980년대 스페인 팝 음악을 대표하는 클래식 컬렉션으로 남았다. 특히 여성 보컬 아나 토라야(Ana Torraja)는 음역대가 굉장히 넓은 가수였고 당시 영국 여가수 케이트 부쉬(Kate Bush)같다는 평을 많이 들었다. 

프로듀싱은 나초 카노(Nacho Cano)가 담당을 했는데 이 형제들이 주로 곡을 만들었다. 네 번째 라이브 앨범까지 발표했을 때는 이미 스페인 내에서 슈퍼밴드 대열에 들었고 플랑멩고 기타 선율과 신스팝을 곁들인 사운드로 젊은 층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어냈다.

1986년에는 CBS에서 BMG로 음반사를 옮기면서 음악적인 분위기도 바뀌게 된다. 이전은 신스팝 밴드였다면 이후 발표되는 앨범들은 스페니쉬 리듬과 민속적인 스타일의 음악으로 변화를 시도한다. 신스팝과 테크노보다 팝 그중에서도 어쿠스티 팝을 더 강조하는 쪽으로 밴드의 성향을 변화시켰다. 이런 선택은 라틴 아메리카로의 인기를 확장해 갈 수 있는 계기가 됐고 실제로 스페인은 물론 라틴아메리카, 유럽 내에서도 판매량이 급증하게 된다. 

이런 다재다능한 변화의 정점을 찍은 곡은 누가 뭐라고 해도 “Hijo De La Luna”였다. 이 노래는 메카노(Mecano)의 시그니쳐송이 됐고 지금도 라디오에서 종종 들려지는 곡이 됐다. 달밤이 연상되는 영롱한 피아노와 그 뒤를 받혀주는 키보드의 아름다운 멜로디와 여성보컬 아나 토라야(Ana Torroja)의 청아한 목소리가 곡을 이끈다. 당시 발표된 6집 앨범 <Descanso Dominical>은 팀의 최전성기 앨범이었다.

여배우 페넬로페 크루즈가 비디오 클립으로 데뷔한 “La Fuerza Del Dstino”가 큰 사랑을 받았고 페넬로페 크루즈(Penelope Cruz)와 나초 카노(Nacho Cano)는 이곡으로 연인 관계로 발전했고 현재는 좋은 친구 관계로 남았다고 한다. 

속삭이는 재즈 스타일의 곡 “No Hay Marcha En Nueva York”이란 곡은 귀엽고 손가락으로 박자를 내는 소리와 브러쉬 드럼과 색소폰연주가 인상적이다. 

6집 앨범은 200만장이 팔리면서 전례 없는 성공은 스페인을 포함한 같은 에스파냐어를 쓰는 남미 쪽까지 크게 영향을 미쳤다. 심지어는 프랑스어, 이탈리어어 등 비스페인어권 언어로도 음반을 발표하면서 유럽에서 큰 사랑을 받게 되는데 이때 글로벌 히트싱글곡이 하나 더 발표된다. “Mujer Contra Mujer”를 프랑스어로 발표된 “Une Femme Avec Une Femme”가 영어, 이탈리아어로 녹음되어 메카노(Mecano)에게 첫 번째 글로벌 히트를 선사했다. 1989년 남미 쪽에서도 싱글로 1위 히트작이 됐고, 유럽 내에서 메카노(Mecano) 최고의 히트곡이 됐다. 

1991년 발매된 7집 앨범 <Aidalai> 역시 대성공을 이룬다. 이 앨범은 창의적이며 컨셉트앨범의 형식을 띄면서도 가장 기술적으로 성숙해진 앨범이란 평을 받게 된다. 특히 이 앨범에서 좋아했던 노래는 티벳 불교의 정신적 지주 달라이 라마 “Dalai Lama”를 노래한 곡이었다. 펑키리듬의 베이스가 특히 감각적인인 곡으로 귀에 쏙 들어온다. 그리고 이 앨범에서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한 곡은 “El 7 De Septiembre”이었다.

1992년 여름 바로셀로나 올림픽과 세비야 엑스포를 계기로 메카노(Mecano)는 스페인뿐만 아니라 유럽 내 다양한 나라에서 유럽투어를 돌며 최고의 한해를 보내게 된다. 이 앨범은 사실 이들의 마지막 투어였고 멤버들은 긴 휴식을 원하며 1993년 일시적인 활동 중단을 발표하는데 여성 보컬 아나 토라야(Ana Torroja)의 후두염으로 목소리에 이상이 있었고 휴식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1998년에 밴드는 최고의 히트곡과 신곡을 믹스한 앨범 <Ana, Jose, Nacho>를 발표하는데 사실상 마지막 베스트앨범 형태로 팀은 해체수순에 이르게 된다. 이후 세 멤버 모두 각자 솔로 활동을 계속했지만 여성 보컬 아나 토라야(Ana Torraja)만이 가수로서 성공을 거뒀다.

2005년에 키보디스트 나초 카노(Nacho Cano)는 32곡의 메카노(Mecano)노래를 바탕으로 뮤지컬 <Hoy No Me Puedo Levantar>로 만들게 된다. 이 뮤지컬은 스페인과 멕시코에서 개봉해 150만 명이상의 관객이 관람했고, 역대 스페인어 원작 작품 중 가장 성공적인 작품이 됐다. 

메카노는 1992년 마지막 콘서트 이후 스페인 팝음악 역사상 하나의 이정표로 여겨졌다. 여러 세대를 뛰어 넘은 그룹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재결합에 대한 희망을 불러일으켰지만 1998년 공식 해체이후 재결합은 이뤄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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