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마이클볼튼(Michael Bolton), 폴영(Paul Young)앨범을 구입해서 해설지를 읽다가 처음 발견한 단어가 있었다. 블루아이드 소울(Blue Eyed Soul)이라는 단어였다. 파란 눈의 소울이라고 불리는 블루 아이드 소울은 백인들이 구사하는 소울 음악을 통칭해서 그렇게 불렀다. 물론 현재는 피부색과 장르의 경계가 모호해졌지만 7~80년대만 해도 소울 음악을 내세운 백인 가수의 등장은 매우 획기적이었다. 대표적으로 홀앤오츠(Hall & Oates), 조 카커(Joe Cocker), 마이클 볼튼(Michael Bolton), 마이클 맥도날드(Michael McDonald), 스티브 윈우드(Steve Winwood)등이 이 블루아이드 소울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들이다. 그리고 이 인물 역시 빼놓을 수 없는데,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또 한 명의 전설 바비 콜드웰(Bobby Caldwell)이 있었다. 바비 콜드웰(Bobby Caldwell) Story.
바비 콜드웰(Bobby Caldwell) 초기 경력
바비 콜드웰(Bobby Caldwell)은 미국 맨하탄에서 태어났지만, 자라기는 마이애미에서 자랐다. 그의 어머니는 능력 있는 공인중개사였고, 고객 중에 레게음악의 전설 밥 말리(Bob Marley)도 있었다.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바비 콜드웰(Bobby Caldwell)은 자연스럽게 친구가 됐고, 마이애미에서 자라면서 라틴음악, 레게, R&B와 같은 다양한 음악을 접했다. 아마도 마이애미의 분위기가 그가 했던 음악의 밑바탕이 됐을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 엘라 핏제랄드(Ella Fitzerald)음악을 들으며 자랐고 12살부터 피아노와 기타 연주를 시작했고 로큰롤, 재즈, 리듬앤블루스 등 다양한 음악들에 매료됐었다. 학창시절에는 주로 스탠다드 팝음악들을 연주하며 곡을 썼고 17살에 라스베거스를 거쳐 LA를 기반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1970년대 초 로큰롤의 전설 리틀 리차드(Little Richard)의 리듬 기타리스트로 첫 경력을 시작한다. 그리고 중간에 다양한 바에서 연주하며 음반 계약을 위해 열심히 뛰었는데 1978년 결국 마이애미에서 TK Records와 계약을 맺게 된다. 그런데 재밌게도 TK Records는 미국 흑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던 R&B 레이블이었다.
바비 콜드웰(Bobby Caldwell) 앨범활동
첫 번째 앨범에는 그의 시그니처송 “What You Won’t Do For Love”가 수록되어 있었는데 이곡은 단박에 빌보드 Hot 100 차트 9위, R&B 차트 6위를 기록하며 순식간에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 TK 레코드측에서는 인종을 넘어선 다양한 팬층을 확보하기 위해 바비 콜드웰이 백인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싶어 앨범 표지에 콜드웰의 얼굴을 아예 가려버리고 실루엣만을 담아냈다. 그의 목소리를 들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연히 바비 콜드웰(Bobby Caldwell)은 흑인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만큼 흑인의 소울 음악을 완벽하게 소화했던 인물이었다.
실제로 앨범홍보를 위해 나탈리 콜(Natalie Cole)과 함께 투어를 돌았는데 대부분의 청중은 흑인이었고 약 7000명 흑인 관객 앞에서 공연을 하게 된 것이고 무대에 선 바비 콜드웰(Bobby Caldwell)이 백인이라는 사실에 엄청 놀랐다고 한다. 자신들이 정말 사랑했던 형제의 목소리가 사실은 백인이었다는 사실에 흑인 관중들은 충격을 받았지만 별개로 그의 멋진 음악에는 비방하는 이가 거의 없었다.
바비 콜드웰(Bobby Caldwell)의 “What You Won’t Do For Love”는 꽤 여러 번 커버되고, 리메이크, 샘플링된다. 고웨스트(Go West), 로이 에이더(Roy Ayers), 마이클 볼튼(Michael Bolton), 보이즈투멘(Boyz 2 Men)이 리메이크해서 부르기도 했고, 투팍(2Pac)이 이 노래를 샘플링해서 “Do For Love”를 발표해 인기를 끌기도 했었다. 심지어 2003년에 발표된 국내 브라운 아이드 소울(Brown Eyed Soul) “Candy”에서도 이 곡을 샘플링 했었다. 또, 콜드웰의 “My Flame”은 노터리어스 비아이지(Notorious BIG)의 “Sky’s The Limit”에서 샘플링했다.
1980년 <Cat In The Hat>, 1982년 <Carry On> 후속 앨범으로 이어졌다. 특히 <Carry On>앨범의 경우 콜드웰이 모든 악기를 연주하고 프로듀싱, 편곡, 믹싱까지 다 해냈다.
그런데 이후 TK Records가 파산하면서 콜드웰은 다른 음악가들을 위해 노래를 쓰기시작한다. 이 조언을 해준 인물은 보즈 스캑스(Boz Scaggs)였다.
이 당시 바비 콜드웰(Bobby Caldwell)은 보즈 스캑스(Boz Scaggs), 로이 에이어(Roy Ayers), 시카고(Chicago), 나탈리콜(Natalie Cole), 닐 다이아몬드(Neil Diamond), 로버타 플랙(Roberta Flack), 알 자루(Al Jarreau) 같은 가수들에게 작곡을 해줬고, 에이미 그랜트(Amy Grant)와 피터 세추라(Peter Cetera)의 듀엣 히트곡 “The Next Time I Fall”역시 바비 콜드웰의 노래였다.
평가는?
인종 간 두꺼운 장르의 벽을 허물었다는 평가와 뛰어난 사운드구성으로 일종의 교본을 남겼다는 평가가 뒤따랐고 무엇보다 후대 힙합 뮤지션들의 음악에서도 바비 콜드웰의 노래를 찾아볼 수 있었다. 투팍(2Pac)부터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노토리우스 비아지(Notorious BIG) A7 라키 등 최고의 래퍼들이 바비콜드웰의 음악을 샘플링하는 등 세대를 넘나드는 음악성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나 그의 시그니처송 “What’s You Won’t Do For Love”는 현재까지 대략 9개 이상의 트랙에서 샘플링 됐다.
푸른 눈을 가진 백인이 하는 흑인 소울 음악 블루아이드소울(Blue Eyed Soul)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들 중 서른에 가까운 늦은 나이에 데뷔한 바비 콜드웰(Bobby Caldwell)은 백인 가수였음에도 단 한곡의 노래로 흑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여러 DJ들과 레코드숍에서 앨범을 구입한 흑인 청취자들은 바비 콜드웰의 피부색을 알 길이 없었고 어느 누구도 흑인처럼 노래하는 그를 백인이라 의심하지 않았다. 콜드웰은 진정한 R&B와 재즈 시그니처를 가진 인물이고, 때로는 씁쓸하면서도 버터 같은 보컬톤은 부드러운 버전의 쳇 베이커(Chet Baker)의 이미지가 연상된다. AOR, 요트록(Yacht Rock) 그의 모든 앨범들은 시대를 앞선 세련됨과 로맨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