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현 Story

음악에는 직인처럼 인식되는 소리가 있다. 가수의 목소리, 기타 톤이 있듯이 작곡가들도 본인만의 스타일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좋아하는 화성과 코드를 비롯해 곡의 흐름과 멜로디라인을 들으면 이 곡은 이 사람의 작곡이겠구나 하는 노래들이 있다. 80년대 후반에 등장해 뛰어난 작곡 실력과 독특한 개성으로 명곡들을 쏟아냈지만 두 차례의 대마초사건으로 대중들로부터 멀어진 싱어송라이터가 바로 박광현이다. 박광현 스토리.

박광현은 1965년생으로 초등학교 때 누나의 기타로 음악을 처음 접하게 됐고, 학창시절 동네 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할 정도로 음악에 끼를 보였다. 당시 신대철과 함께 “블랙 다이아몬드”라는 시나위의 전신이 된 밴드의 보컬로 활동했었다. 그리고 서울대학교 국악과로 입학 작곡을 복수전공 한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세가 기울자 아르바이트로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며 계속 뮤지션의 꿈을 키워간다. 1988년 제9회 MBC강변가요제 “추억을 잊으면”이란 곡으로 본선에 진출하지만 조명을 받지 못한다. 이때 대상은 이상은 “담다디”였고, 금상은 이상우 “슬픈 그림같은 사랑”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가수보다 작곡가로 먼저 명성을 얻기 시작한다.

1988년 발매한 이승철의 1집 앨범 타이틀곡 “안녕이라고 말하지마”는 박광현이 고등학교 시절 작곡했던 노래였는데 대박이 터진다. 부활에서 솔로로 독립한 이승철에게 날개를 달아준 노래가 됐다. 그리고 앨범에 함께 수록된 “잠도 오지 않는 밤에”,“사랑하고 싶어” 역시 모두 박광현의 작품이었다. “잠도 오지 않는 밤에”는 후에 김건모의 “잠못드는 밤 비는 내리고”로 재탄생하기도 하고, 김건모와 “함께”라는 듀엣곡을 발표하기도 한다. 이승철 노래 중에는 “그대가 나에게”,“풍경화 속의 거리”, 신승훈 “우연히”, 정인호 “해요”등 수많은 곡을 작곡했다. 

1989년 박광현은 총 9곡을 수록한 1집 앨범을 발표한다. 이 앨범을 제작한 사람이 바로 이승철 1집을 기획-제작한 신현빈이었다. 신현빈은 이수만, 김수희 매니저로 일하다 음반 제작자로 전향해 1988년 이승철 1집 제작을 하고, 다음해 박광현 1집도 함께 제작하게 된다.

박광현 1집에서 가장 사랑받은 곡은 “한 송이 저 들국화처럼”과 후에 이승철도 불렀던 “풍경화 속의 거리”였다.

세션 역시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이 기타를 전태관이 드럼, 베이스에는 송홍섭이 참여했다. 김종진은 편곡까지 담당하게 되는데 당시 국내에 퓨전재즈 붐을 타고 미국의 GRP 사운드와 일본의 J퓨전이 각광을 받던 시기에 발표된 고급진 어덜트 컨템포러리 앨범이 탄생한 것이다. 

1집의 성공에 힘입어 1990년 2집을 발표하는데 데뷔앨범에서 선보인 세련된 퓨전 재즈를 기본으로 한 분위기는 2집에서도 그대로 이어간다. 당시 유행한 가요와는 확실히 달리 앞선 감각을 선보이며 10곡을 수록해 발표한다. 1집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세션으로 참여했던 김종진, 전태관, 송홍섭 대신 고등학교시절 같이 밴드 했던 기타리스트 신대철이 참여했고, 기타 손무현, 베이스 이태윤, 건반 김효국, 드럼 김희연, 재즈 피아니스트 이영경과 베이스 장응규가 참여한다. 그리고 편곡은 박광현이 직접 담당하게 된다.

박광현이 작곡한 노래에 가사는 늘 호흡을 맞춰왔던 도윤경 작사가가 2집에서는 “너에게”,“사진”만 도윤경이 작사를 했고, 나머지 모든 곡은 박광현이 작사-작곡-편곡까지 본인의 역량을 극대화 편이었다. 세련된 느낌의 발라드 “비의 이별”이 타이틀곡이었고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곡이다. 이곡은 간주부에 재즈풍의 연주를 넣으면서 당시 가요와는 확실히 차별성을 둔 곡이었다. 

2집은 전반적으로 재즈적인 색채가 강한 편이었다. “추억을 잊으면”과 “회상”역시 재즈 발라드를 표방한 곡이었다. 이승철 앨범에 수록해 히트했던 “그녀는 새침떼기”를 퓨전재즈 스타일로 편곡해 자신의 2집에 수록했고, “비오는 날의 추억”도 전형적인 퓨전재즈 사운드를 들려준다.

이미 이승철이 불러 히트하고 김건모도 불렀던 “잠도 오지 않는 밤에”도 자기만의 색깔로 편곡해 다시 수록하는데 재즈풍의 피아노 반주에 보사노바 리듬을 가미했다. 그리고 간주에 이정식의 색소폰 연주를 넣었다. 이정식 색소폰은 “추억을 잊으면”에도 멋진 연주를 들려준다. 확실히 2집 앨범은 퓨전재즈, 어덜트 컨텐포러리, 스무스 재즈에 빠져있던 박광현의 모습이 엿보인다. 

박광현은 원래 방송 활동을 거의 하지 않은 가수였다. 1990년 이승철과 함께 대마초 사건에 연루돼 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승철은 이 시기 TV에서 완전히 사라진 반면 박광현은 어차피 방송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작곡활동은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이시기에 나오 노래가 신승훈 2집 “우연히”였다. 

대마초 사건으로 다른 가수들 곡 작업만 진행했던 박광현은 신승훈과 김건모의 노래를 히트시키면서 라인음향과 인연을 맺으며 3집 앨범을 제작한다. 라인음향의 김창환 사단의 참여로 1,2집과는 사뭇 다른 변화를 맞이한다. 3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곡은 김건모와의 듀엣곡 “함께”였다. 김건모는 이 노래에서 직접 건반을 치며 편곡까지 참여한다.

그럼에도 2집에 참여했던 세션팀은 그대로 이어간다. 기타 신대철, 베이스 이태윤, 건반 김효국, 드럼 김희연과 같은 록 세션들로 2집에 이어 3집에서도 같은 세션팀과 작업한다. 1,2집은 한국적 어덜트 컨텐포러리에 가까운 앨범이었다면 3집은 좀 더 색다른 곡들로 채우고 싶어 했다. 블루지한 록발라드 “재회”, 본인 앨범의 전곡은 자신이 작곡한 앞선 앨범과 달리 김창환 작곡의 노래 “난 그림을 그리려 했어”, 신대철이 작곡한 레게리듬의 “사랑이야 그런거야”는 김건모가 코러스로 참여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앞선 1,2집보다 3집에서 박광현의 창법은 변화가 확연하게 느껴지는데 조금은 끈적이는 블루지한 창법으로 변했다. 

특이하게도 3집은 Part.1과 Part.2로 나눠진다. 3집이 1992년에 발매됐고 바로 이듬해 1993년 Part.2가 발매됐다. 이 음반에서는 3집의 블루지한 느낌에 1,2집의 어덜트 컨템포러리의 장점만을 밀어붙인 결과물이 탄생했다. 세션은 3집 Part.1 과 동일하게 신대철, 이태윤, 김효군, 김희연, 손무현이 참여했고 좀 더 재즈적인 가요앨범이 탄생했고, 밴드 아침의 멤버이자 앞서 2집 세션으로 참여했던 이영경의 참여가 좀 더 두드러진다. 박광현의 보컬은 좀 더 완숙해졌고 고급스러워졌다. 재즈 사운드에 좀 더 가까워진 가요앨범으로 완성됐다. 1,2집에서 흥얼거리듯 흘리며 노래하던 스타일에서 좀 더 간결해졌고 대신 연주파트에 공을 정말 많이 들인 티가 팍팍 난다.

확실히 90년대 초중반 가요계는 폭발적인 성장을 이뤘지만 댄스와 발라드로 양분된 상황과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은 전체적으로 10대 20대 음반으로 판도가 바뀌는 상황에서 어른들이 들을만한 음악이 없었던 상황이었다. 극명하게 10대음악과 트로트로 양분된 상황 속에서 박광현의 3집 앨범은 성인취향의 록음악 AOR 또는 어덜트 컨템포러리에 가장 근접한 앨범이었다. 높은 퀄리티의 사운드와 좋은 음악들이 차고 넘쳤지만 시대분위기는 이 앨범을 외면했다. “아주 오랫동안”은 영화 [가슴달린 남자] 주제곡으로 쓰였고, 유독 애착을 가진 노래인 “안녕이라고 말하지마”를 다시 편곡해 수록했다. 

1994년 박광현은 밴드를 구성한다. 보컬 박광현, 피아노에는 이영경. 드럼에 임민수, 베이스는 제이씨 클라크(JC Clark) 4인 구성으로 프로젝트 퓨전재즈 밴드 데이지(Daisy)를 구성한다. 서울대 동문이자 기악과를 졸업한 재즈피아니스트 이영경은 그동안 박광현 앨범에서 세션으로 참여하며 박광현과 음악적 지향점이 비슷함을 확인하고 프로젝트 팀 데이지에 참여했다. 클래식을 전공하고 재즈에 입문했던 재즈피아니스트 이영경은 대학동창 바이올린 연주자 유정현과 함께 밴드 아침으로 활동했던 이력이 있었다. 여기에 드러머 임민수, 국내에서 활동했던 베이시스트 제이씨 클라크(JC Clark)이 참여해 재즈와 국악을 접목하는 음악 실험을 위해 밴드를 결성해서 뭉쳤다. 대중음악 작곡가이자 가수로 나름 성공을 거둔 박광현의 음악적 실험과 지향점이 재즈에 있음을 알린 앨범이었다. 

이 앨범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곡은 “나의 작은새”였고, 이 곡 역시 박광현이 작곡한 노래였다. 이외에 현인의 옛노래 “신라의 달밤”을 재즈로 편곡한 버전은 당시로는 센세이션한 편곡이었다. 대금 연주로 국악의 향기를 더한 “여울목”도 이색적인 트랙이었고, “이해할 수 없는 얘기”,“사랑은 안녕”같은 곡에서는 박광현의 보컬이 빛나는 트랙들이다. 재즈적인 느낌의 “휴가”도 추천한다. 

데이지의 이 앨범은 우수한 음악적 콘텐츠에 비해 대중에게는 외면 받은 앨범이었다. 평단에서는 호평을 받았고 인기 작곡가와 가수 박광현의 이런 놀라운 시도와 실험 자체를 높이평가하고 싶다. 재즈와 가요가 공존하고 여기에 국악을 접목하려는 시도자체가 시대를 분명 앞선 느낌이었다. 보컬은 맡은 박광현의 노래는 자신의 솔로앨범에서 쌓아올린 노하우가 빛을 발할만큼 완숙해져 있었다. 

그런데, 팀은 좌초하고 만다. 1990년 대마초 흡연으로 구속된 박광현이 데이지 앨범 발표후 1995년 다시금 대마초 흡연으로 구속되면서 데이지는 해체할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된 공연과 홍보활동도 할 수 없었다. 데이지는 정규 앨범 1장으로 활동을 중단하며 아쉬움만 남기게 된다. 

TV방송활동과 상관없는 박광현은 대마초흡연과 사회적 논란이 됐지만, 이와는 무관하게 1995년 4집 앨범을 발표한다. 사실 이 앨범은 박광현 개인적으로 완성도나 성숙한 앨범이었음에도 철저히 묻혀버린 앨범이 됐다. 이 앨범은 AOR, 성인취향의 록 음악을 바탕으로 다양한 재즈적인 요소와 블루스를 섞은 앨범이었다.

록 성향은 그동안 학창시절부터 친분이 있던 신대철이 2집부터 세션으로 함께 호흡을 맞춰왔는데 4집앨범에서는 신대철의 동샌 신윤철을 전면에 내세워 세션에 참여시켰다. 기타의 신윤철, 베이스 이태윤, 키보드 김효국, 드럼 김희연, 피아노는 데이지활동을 함께 했던 이영경이 계속해서 참여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랜시간 박광현작곡과 호흡을 맞춰온 도윤경이 작사를 맡았다. 박광현의 작곡은 조금만 들어도 그의 곡인걸 알 수 있는 멜로디라인과 좋아하는 코드들이 등장한다. 4집의 이색적인 트랙으로는 록발라드 스타일의 “숙명”과 앞서 선보이던 재즈의 탈을 쓴 가요 “이제는 기억 속에”가 포진해 있다.

박광현은 굉장히 곡을 잘 쓰는 작곡가다. 인기가수들에게 작곡해 준 음악들은 대놓고 상업적인 성공에 신경을 쓴 반면, 자신의 음반을 위해 작곡한 노래들은 시인이 시집을 내는 것과 같은 느낌으로 곡을 작업했다. 어덜트 컨텐포러리, 스무드재즈의 세련된 형식 속에 특유의 서정성과 감수성을 잘 반영한 뛰어난 작곡가이자 보컬리스트가 바로 박광현이다. 한동안 건강악화로 활동을 못하다가 2010년 [악마를 보았다] OST에 참여하면서 다시 활동을 재개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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