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말리(Bob Marley) Story

레게음악을 얘기할 때 밥 말리(Bob Marley)를 뺄 수 있을까? 제3세계 음악인 레게 장르를 전 세계적으로 저변 확대시킨 거장이자 역대 최고의 레게 스타다. 레게 현대 음악의 아이콘같은 존재로 지난날의 레게 혁명가이자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 아티스트다. 삶의 철학을 음악으로 전하는 전설이다.

밥 말리 (Bob Marley) 레게음악의 대중화와 통일

자메이카 트렌치타운의 가난한 농가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 빈곤과 각종 범죄로 가득 찬 동네 킹스턴의 빈민가에서 컸다. 제대로 된 학업을 이어가기 힘들어 밥 말리는 15살 학교를 그만두고 용접공으로 취직한다. 음악은 16살부터 밴드를 결성했는데 버니 웨일러, 피터 토시와 함께 웨일러스(Wailers)를 팀명으로 채택하고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은 노래들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당시 자메이카에 서서히 퍼지기 시작한 스카 음악을 베이스로 한 음악들을 선보였다. 이후 스카의 발전형태인 록스테디(Rock Steady)로 곡들을 갈고 다듬어 메이저 음반사 데뷔까지 이뤄낸다. 그 결과 [Catch A Fire]를 발표 전 세계인들에게 처음으로 레게를 소개하게 된다.

라스타파리교와 레게음악

레게음악의 선구자로 스카, 록스테디의 요소를 융합한 것과 독특한 보컬 및 작곡스타일로 레게음악을 전 세계에 알린 인물이기도하다. 밥말리는 라스타파리(Rastafari)교의 아이콘과 같은 인물로 1930년대 자메이카에서 발생한 종교로 에티오피아의 마지막 황제 하일레 살라시에를 신성시하며 하느님의 시험으로 흑인들이 백인의 압제를 받는 고난에 처하게 되었다는 교리를 가지고 있고 범아프리카주의를 옹호하고 있다. 또한 마리화나 흡연을 신성시하고 교리는 레게음악을 통해 전파됐다. 그래서 밥 말리의 레게음악에는 영적인 느낌을 많이 불러 넣었다고 봐야한다.

레게음악의 클래식들을 발표, 문화의 상징

“No Woman, No Cry”,“I Shot The Sheriff”,“Buffalo Soldiers”,“Exodos”,“Jamming”, “Is This Love” 등 세계적인 히트 트랙들이 쏟아져 나온다. 저항과 평등, 사랑, 평화 그리고 혁명을 전하는 아티스트로 발전한다. 그리고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은 1974년 노래 “I Shot The Sheriff”를 리메이크해서 팝 싱글 차트 1위에 올리며 다시금 레게 음악을 전세계에 알리는 계기를 마련한다. 음악뿐 아니라 사상과 철학을 담아내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다.

밥 말리는 저항정신, 인권, 평등 등을 가사에 담아 노래를 불렀는데 이런 행보가 달갑지 않았던 세력이 있었는지 여러 차례 위협을 받기도 하고, 실제로 공연 전 괴한의 난입으로 가족과 매니저가 총상을 입기도 한다. 하지만 붕대를 맨 체 공연을 강행하기도 했었다.

“One Love, One Heart”: 평화와 사랑의 메시지

밥 말리 음악 활동 후반에 노래를 통해 정치적인 메시지를 많이 담았고, 그를 자메이카의 영웅으로 만든 유명한 사건이 있다. 1978년 4월 당시 자메이카는 정치적으로 굉장히 어수선했는데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정치깡패들이 총을 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고 거의 국내 내전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이때 자메이카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One Love Peace Concert>가 열린다. 에디오피아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 1세의 자메이카 방문 12주년 기념 콘서트의 일환이었는데 그 무대 마지막에 오른 사람이 바로 밥 말리였다. 당시 자메이카 총리였던 마이클 맨리와 숙적 노동당 에드워드 시가를 무대에 오르게 해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난 철천지원수를 무대에 오르게 하고 서로 악수를 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밥 말리는 자메이카가 전쟁보다는 평화가 오길 희망했던 노랫말처럼 공연에 그대로 그 모습을 보여줬다. 표면상으로는 음악의 힘으로 평화의 모습을 보여준 사례였다. 밥 말리(Bob Marley)는 “One Love”라는 노래를 통해 세계에 평화와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의 음악은 단순한 노래 이상으로, 인간 본성의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밥 말리의 죽음과 유산

1977년 축구를 좋아하던 밥 말리는 부상을 당하고 병원에서 치료중 악성 흑색종이라는 암을 진단받는다. 밥 말리는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발가락을 절단하지 않고 방치하게 된다. 그럼에도 그는 투어를 계속했고 1980년 앨범까지 발매하고 유럽 투어와 미국 투어를 돌다가 뉴욕에서 조깅중에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는데, 암이 뇌, 폐, 간에 이미 전이된 상태였다. 1981년 5월 11일 36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망 직후 자메이카에서 국가가 지정한 공로 훈장을 받아 사후 영예를 얻었고 국장으로 장례가 치러졌다.

이후 1984년에 발표된 밥 말리의 베스트 앨범 [Legend]는 역대 가장 많이 팔린 레게앨범이 됐다. 밥 말리 음반은 전 세계적으로 7,500만장 이상의 음반을 판매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앨범은 밥 말리의 거의 모든 히트곡들이 총망라된 말그대로 베스트앨범이다. 그런데 LP와 CD에 수록된 노래들이 살짝 다른 버전이 수록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밥 말리의 가장 대표곡 “No Woman No Cry”를 CD버전을 추천한다. 7분대의 라이브 실황을 제대로 실었지만 LP는 짧게 편집된 버전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Buffalo Soldier”는 LP는 댄스홀버전이 들어가 있지만 CD에는 오리지널 버전 그대로 실려있다. 이 레전드 앨범은 CD로 들을 것을 추천한다. LP는 시간의 제약이라는 부분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Marley라는 성을 가진 뮤지션들이 굉장히 많다. 실제로 밥 말리의 아들들도 레게음악을 하고 있고 활동을 하고 있는데, 밥 말리의 자식은 총 15명인데 실제 사랑을 몸소 실천한 면이 있다. 물론 엄마는 조금씩 다르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기억될 불멸의 레게음악과 메시지

밥 말리(Bob Marley)의 음악은 그가 살아 있는 동안뿐만 아니라 그의 뒤를 이어 오는 세대에게도 영감을 주고 있다. 그의 메시지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더 중요해지고, 레게음악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음악 장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의 음악은 오랫동안 우리의 마음속에서 계속해서 울려 퍼질 것이다.

“밥말리의 영웅은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과 무하마드 알리(Muhammad Ali)였고, 그의 신은 라스타파리였고 그의 성찬은 마리화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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