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벨벳(Blue Velvet) OST

그런 영화들이 있지 않나? 영화를 보고 극장 밖을 나서면 영화 속에 나왔던 특정 노래가 계속 귓가에 맴도는 경험을 하게 된다. 대부분 히트한 영화 OST들이 영화 속 장면과 어울리는 최고의 음악을 선곡해서 이뤄낸 결과로 로맨틱 코미디, 음악영화, 댄스영화에 쓰인 노래들이 이런 경우가 많다. 물론 영화장르 상관없이 영상과 음악은 어쩌면 떼려야 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 둘의 시너지는 영화 속 장면을 더욱 빛나게 만들기도 음악을 들으면 자연스레 영화가 생각나게 한다. 그만큼 그 어떤 설명보다 노래 한 곡이 영화의 상황과 분위기를 대변하기도 한다. 그만큼 영화감독들은 음악에 신경을 쓴다. Blue Velvet OST Story.

데이빗 린치의 블루벨벳

그런데 뜻밖에 공포영화나 미스테리 스릴러 영화에 나온 음악이 귓가를 맴도는 경우도 있다. 영화 속에 나왔던 노래 로이 오비슨(Roy Orbison)의 “In Dreams”라는 곡은 영화가 끝나고도 계속 귓가에 맴도는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극중에서도 아주 충격적인 장면에 이곡이 쓰이는데 그래서 그런지 더 뇌리에 남아있다. 데이빗 린치 감독의 블루벨벳이란 영화는 여러모로 이상하고 기괴한 미스테리 스릴러 영화다. 묘하게 중독적이고 난해한 영화였다.

많은 평론가들은 블루벨벳(Blue Velvet)은 데이빗 린치 감독의 최고의 작품이며 대표작이라고 말한다. 1986년에 미국에서 개봉한 이 영화는 80년대 스크린에 등장한 가장 파괴적이며 매혹적인 작품이라고 평가한다. 일부 장면은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냉철하게 바라보게 만든다. 국내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1992년에서야 뒤늦게 개봉했다. 당시 컬트영화 붐이 일기도 했고 이 영화는 포스터도 유명한 편이었다.

데이빗 린치 감독이 일관되게 영화에서 되풀이하는 주제가 있다. 너무나 완벽해 보이는 아름다운 마을, 겉으로 완벽해 보이는 사람이든 세상이든 이런 완벽함은 뿌리 깊은 부패를 숨기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일관되게 하고 있다. 결국 세상과 인간의 이중성에 대해 탐구하는 감독이 데이빗 린치다. 블루벨벳에서 간을 보고 이 주제를 잘 활용한 미스테리 TV 시리즈물이 바로 [트윈픽스]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 엉겨 놓고 비꼰 것이 [로스트 하이웨이], [멀홀랜드 드라이브]라는 작품으로 계속 이어진다.

예를 들면 이런 장면들이다. 영화 블루벨벳의 첫 장면에서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거대한 복선같은 것이다. 영화 제목과 똑같은 바비 빈튼(Bobby Vinton)의 “Blue Velvet”이 흐르고 미국 교외의 한 아름답고 평범한 시골의 작은 마을 풍경을 쨍한 느낌으로 카메라에 담아낸다. 흰색 말뚝 울타리와 완벽하게 손질된 마당이 보이고 예쁜 꽃들이 등장하며 한 남자가 잔디밭에서 평화롭게 물을 주다가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진다. 그런데 카메라는 그가 쓰러진 옆을 따라 땅바닥으로 파고들어 풀잎을 가로지르며 떼 지어 다니는 벌레 떼를 클로즈업해서 보여준다. 뭔가 갉아먹고 있는 어둡고 음습하며 부패한 이미지를 그려낸다.

시작할 때 아름다운 평화롭던 시골 마을의 모습과 정확하게 대비되는 그 밑에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는 벌레들이 무엇인가를 파먹고 있으며 썩고 부패한 이면이 있다는 것을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장면 하나로 드러낸 의미는 너무나 완벽한 사회와 인물들의 이면에 우리는 보지 못하는 부패와 악하고 사악한 음모와 속내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장면 하나로 보여줬다.

또 하나 잘린 귀를 발견했을때 역시 그 귀에는 개미 떼가 득실득실한데 역시 벌레가 등장한다. 어쩌면 벌레 먹은 세상에 대한 이야기, 부패한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메시지는 분명하다. 완벽함은 뿌리 깊은 부패를 숨기는 경우가 많다. 꿈은 쉽게 악몽으로 변할 수 있고, 부패는 어디에나 있으며, 심지어 부패에 면역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심리적 공포물이며 네오 느와르, 미스터리 스릴러를 혼합하고 있다. 거기에 뒤틀린 멜로드라마와 로맨스도 추가되어 있다. 개봉 당시 성폭력 묘사로 인해 논란이 많았던 영화였으며 관객을 관음증 환자로 만드는 묘한 영화이기도 하다.

블루벨벳 줄거리

대학생인 제프리 보몬트는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단 소식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문병을 마치고 병원에서 돌아오던 중 허름한 창고 앞에서 사람의 잘린 귀를 발견하고 이를 주워 형사에게 가져간다. 형사와 검사관들이 일대를 수색했지만 딱히 증거는 발견하지 못하고 사건은 미궁에 빠지는 듯 했다. 호기심 많은 주인공은 인기 밤무대 여가수 도로시가 이 사건에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도로시의 아파트에 몰래 숨어들어가지만 곧 들키고 만다. 그때, 갑자기 정체불명의 남자 프랭크가 들이닥쳐 옷장에 숨게 되고 이내 그곳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엿보게 된다.

사운드트랙에 쓰인 올드팝

영화 사운드 트랙은 올드 팝과 클래식한 스코어가 적절하게 섞여 있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지만 영화의 느낌을 규정하는 곡이 바로 1963년에 발표된 바비 빈튼(Bobby Vinton)의 “Blue Velvet”이다. 원래는 1951년에 토니 베넷(Tony Bennett)이 부른 버전이 원곡인데 이 곡은 쓰지 않고 바비 빈튼의 버전을 사용했다.

데이빗 린치 감독은 노래의 두왑 셔플 스타일의 반주와 점점 비참해지는 가사 사이에 묘한 어긋남이 이 영화의 첫 장면과 더없이 잘 어울려서 처음부터 염두 해 둔 곡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판권문제로 OST에는 바비 빈튼의 곡을 수록할 수 없었다. 대신 여주인공 도로시역의 이사벨라 로셀리니(Isabella Rossellini)가 극중에 부른 버전이 짧게 사운드트랙에 수록되어 있다. 영화 제목이자 이 영화의 모든 주제를 관통하는 곡이기도 하다.

또 하나 영화가 끝나도 귓가에 맴도는 노래, 제일 강한 인상을 심어준 곡은 1963년에 발표된 로이 오비슨(Roy Orbison)의 “In Dreams”다. 이 노래가 나올 때 굉장히 기괴한 장면에 등장한다. 악역 프랭크는 남자주인공 제프리를 납치해 온다. 그곳에서 로이 오비슨의 “In Dreams”를 틀어놓고 립싱크하며 따라 부른다.

이 노래가 나올 때 악역은 감정이 서서히 폭발하며 분노하며 주인공을 구타하기 시작하는데 립스틱을 얼굴에 바르고 주인공에게 반복적으로 키스를 합니다. 악역 프랭크의 성적 욕망과 동성애적 성취향의 모습까지 드러내는 장면이다. 마치 악역은 이 노래에 집착하는 캐릭터처럼 비춰진다. 굉장히 기괴하고 특이한 장면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남게 된다.

가사에 맞춰 남자주인공을 마구 구타하는 악역은 마치 노래 속 주인공이 된듯하다. 가사와 딱 맞아떨어지는 편집도 이 장면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사람들은 나를 샌드맨이라 부르는 사탕 색깔의 광대~ 매일 밤 내 방에서 살금살금 별가루를 뿌리고 속삭인다~” 특히 후렴구 “In Dreams, I Walk With You 꿈속에서 나는 너에게 걸어 갈거야~”라는 대목에선 소름이 끼친다.

핵심적인 두 곡 “Blue Velvet”,“In Dreams”는 모두 영화에서 데이빗 린치가 전하고 싶은 의미를 관통하는 이중성에 대한 영화의 주제를 대변하는 곡이다. 이 두 곡 모두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감과 그리움에 대한 노래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고, 그럼에도 이 영화 자체를 더욱 각인시키고 풍성하게 만드는 주제곡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나 인상적인 곡은 케티 레스터(Ketty Lester)가 부른 스탠다드 고전 “Love Letter”라는 곡이다. 원래 줄리 런던(Julie London)이 발표한 곡이지만 수많은 가수들이 불렀던 고전 중에 고전이다. 이 곡이 블루벨벳에서는 케티 레스터 버전이 쓰였다. 악역 프랭크가 남자 주인공에게 경고를 하는 장면에 이 곡이 쓰이는데 이 장면 또한 인상적이다. 프랭크의 집착과 호기심 많은 주인공의 잘못된 상황을 이 노래에 빗대어 표현했다.

음악감독 안젤로 바달라멘티(Angelo Badalamneti)

블루벨벳은 음악감독 안젤로 바달라멘티(Angelo Badalamenti)와 데이빗 린치가 처음 함께한 첫 작품이었고, 이후 데이빗 린치의 모든 영화는 안젤로 바달라멘티와 콜라보를 이어갔다. 실제로 이 둘의 케미는 TV시리즈 트윈픽스에서 폭발했다. 데이빗 린치는 각본을 쓰는 동안 듣고 있었던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5번을 염두에 두고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안젤로 바달라멘티에게 레퍼런스로 제시했다고 한다.

짧지만 화려하게 구성된 “메인타이틀”은 적절하게 멜로드라마적이고 신비로우며 영화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악역 프랭크의 테마곡 “Frank”는 영화 사이코의 주제를 교묘하게 참조한 느낌의 주제를 섞어서 불길하고 불안한 테마를 완성해 냈다. 남자주인공 제프리의 테마곡 “Jeffrey’s Dark Side”는 어둡고 초현실적인 반면 “Akron Meets The Blues”는 가벼운 재즈풍의 곡이다. 그리고 사운드트랙의 최고의 트랙은 줄리 크루즈(Julee Cruise)가 부른 아름답고 몽환적이며 잊을 수 없는 “Mysteries of Love”라는 곡이다.

이 주제는 총 3번 등장한다. 마지막 엔딩 크레딧에 줄리 크루즈가 부른 버전이 나오고 영화 중간에 프렌치 호른 솔로와 연주곡 버전이 각각 등장하는데 매력적이고 선율이 떠나지 않는다. 안젤로 바달라멘티와 줄리 크루즈의 조합은 이후에도 트윈픽스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영화평가외 이야기

데이빗 린치 감독의 수식어중에는 컬트라는 단어가 꼭 포함된다. 독립 영화 [이레이저헤드]로 가능성을 인정받고 뒤늦게 장기 상영되며 입소문을 타고 흥행에 성공한 특이한 이력을 가진 감독이자 이런 이유로 컬트의 귀재로 불렸다. 블루벨벳은 린치 감독 세계관의 초석이자 정수로 불리는 작품이다. 이후 트윈픽스 시리즈로 더욱 이름을 알리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악역 프랭크역을 맡은 데니스 호퍼는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감독을 찾아가 무조건 자기가 이역을 해야겠다며 배역을 따냈다. 데니스 호퍼의 연기 인생 최고의 캐릭터이자 중요한 변곡점이 됐다. 그리고 여주인공 이사벨 롯셀리니는 랑콤화장품 광고모델과 잉그리드 버그만의 딸 말로만 알려졌었는데 이 작품을 통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다. 그리고 감독 데이빗 린치와 이 작품을 인연으로 짧은 결혼생활까지 한다.

블루벨벳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본 적 없는 독특한 범죄 영화다. 기괴한 스토리와 반전, 기묘한 캐릭터들이 뒤엉켜 있다. 노골적인 폭력, 과도한 노출, 성적 욕망, 욕설이 난무하는데 폭력이 언제나 가능한 공간이 결코 멀지 않고 우리 주변에 늘 도사리고 있다고 알려주는 것 같다. 초현실적이지만 이면에는 부패하고 뒤틀린 욕망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그리고 로이 오비슨(Roy Orbison)의 “In Dreams”만 들으면 다른 그 어떤 것도 생각나지 않고 오로지 이 영화만 떠올리게 만드는 마력의 영화임에는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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