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다인종 다양성의 나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른 나라는 단연 프랑스다. 프랑스가 식민지를 개척한 19세기 이후부터 다양한 식민지에서 온 이민자들과 유럽 대륙에 잔혹한 전쟁 속에서 유입된 난민들까지 프랑스에 정착하면서 프랑스는 겉으로는 다인종이 모여 차별이 없고 다양성이 존중된다는 ‘똘레랑스’라는 관용의 정신이 있다. 물론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서의 차별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이민자들이 정착하고 성장하며 다양성으로 어우러져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뿌리에 대한 정체성과 문화는 많은 예술작품들을 남겼고, 음악 역시 다인종 다문화가 섞여서 탄생한 다양한 월드뮤직으로 표출됐다. 자연스럽게 프랑스는 월드뮤직의 강국이며 전 세계 다양한 음악들이 모이는 곳이 바로 프랑스다. 이런 이민 1세대 가수 중에 아르메니아계 가수 한 명이 있다. 정통 샹송의 관점에서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개인적으로 분위기나 느낌이 너무 좋아 한때 즐겨듣던 가수가 바로 아람 세데피앙(Aram Sédéfian)이다. 아람 세데피앙(Aram Sédéfian) 이야기.
아람 세데피앙(Aram Sédéfian) 누구?
아람 세데피앙(Aram Sédéfian)은 20세기 초 아르메니아 대학살에서 생존해 동부 유럽과 서아시아를 방랑하다 프랑스 땅에 정착한 아르메니아계 이민 1세대의 아들로 1944년 프랑스 리용에서 태어났다. 아람 세데피앙은 실제로 프랑스에서 살면서 이민족에 대한 무관심 과 냉대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그때를 회고하기도 했다.
아람 세데피앙(Aram Sédéfian)의 음악세계는 1975년 피에르 바루(Pierre Barouh)와의 첫 만남에서 비롯됐다. 피에르 바루(Pierre Barouh)는 프랑스 가수이자 작곡가로 우리에게는 1966년 프랑스 영화 [남과 여]로 알려진 배우이기도 하다. 그의 음반레이블 사라바(Saravah)에서 아람 세데피앙(Aram Sédéfian)의 첫 레코딩이 1976년에 이뤄진다. 첫 앨범 <A La Terrase Du Cafe>에서 “Seherazade”가 프랑스 FM 음악채널 RTL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이때 처음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하지만 본격적인 음악활동은 야닉 벨롱(Yannick Bellon)감독의 1978년 영화 <L’Amour Viole>의 영화음악을 맡으면서부터였다. 이 영화의 성공에 힘입어 아람 세데피앙(Aram Sédéfian)은 1978년 “Souriez”싱글을 발표하면서 히트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2번째 앨범 <Nonchanlant>를 발표하면서 “Moi Je Ne Danse Pas”가 대중적인 사랑을 받으면서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
1979년에는 프랑스의 인기가수 알랭 슈숑(Alan Souchon)의 앨범에 참여하면서 음악적 깊이를 더하기 시작한다. 1980년대 초 프랑스 대중매체에서 많이 흘러나온 에어프랑스의 광고 CM송이 한 곡 있는데 이 곡을 만든 것이 바로 아람 세데피앙(Aram Sédéfian)이었다. 이 상업적 광고로 프랑스의 유명 영화감독 나딘 트랭띠냥(Nadine Tranignant)의 작품 <Premier Voyage>의 음악을 맡게 된다. 그리고 같은 해인 1980년 감독의 후원으로 3번째 앨범 <Paroles & Musique>를 RCA레코드사를 통해 발표하면서 히트하게 된다.
Ces Momnets La 앨범
19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까지 발표했던 석장의 음반이후 긴 공백이 있다. 1997년 피에르 바루(Pierre Barouh)의 사라바(Saravah)레이블에서 새 앨범을 발표한다. <Ces Moments La>는 ‘그때는’이란 뜻의 앨범으로 발표하자마자 프랑스 언론에서는 앞선 앨범만큼이나 아주 서정적이면서 감정이 절제된 멋진 음반이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람 세데피앙을 따라 다니는 수식어로 ‘샹송계의 인상파 작가’라는 칭호가 있다. 부드러운 기타 선율로 자신의 뿌리인 아르메니아를 노래하고 그의 가사들은 깊은 내면의 자기 성찰과 민족의 긍지를 표현했고, 철학적이며 아름다운 가사들로 절제된 감정을 노래 속에 담아냈기 때문이다.
이 앨범에서 단연 돋보이는 곡은 타이특곡인 “Ce Moment La”였다. 우리가 샹송에서 기대하는 분위기를 중후한 목소리로 감성적으로 잘 표현했다. 듣자마자 단번에 반한 곡이었다. 해석된 가사를 보면 한편의 시처럼 느껴질 정도고 모든 분위기와 멜로디는 그의 음악세계를 엿볼 수 있게 만드는 매력이 넘치는 곡이다.
그리고 또 한 곡은 바로 “Il Ne S’est Rien Passe”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어’라는 곡이다. 유일하게 이 앨범에서 적당히 템포가 있는 곡으로 젊은 날에 대한 회상과 뜨거웠던 열정이 식어가지만 원래의 나 자신의 모습을 되찾고 의미를 다지자는 내용의 노래다.
앨범 마지막 곡은 “Debussy”라는 곡이다. 19세기 후반 프랑스 클래식 음악계에 불어 닥친 인상주의와 민족주의 작곡가 중에 한명이다. 드뷔시는 당시 인상주의 시인들의 시를 가사로 음악을 만들었고, 각 나라의 전통음악을 듣고 신선한 영감을 얻었고 그의 음악에 영향을 줬다. 드뷔시의 음악에서 동양 음악과 인상주의의 영향이 느껴지는 것은 이런 민족주의 작곡에 기인한다. 아람 세데피앙도 이런 드뷔시를 사랑했고, 표면적으로는 프랑스인이면서도 전형적인 프랑스식이라고 이름 붙일 수 없는 민속적인 주제와 리듬을 표현했던 드뷔시만의 방식에 대한 애착을 자신의 앨범에 솔직히 표현 하고 있다.
아람 세데피앙(Aram Sédéfian)은 프랑스 땅에서 아르메니아 혈통을 지니고 보이지 않는 이민족에 대한 차별과 설움을 어린 시절부터 느끼며 성장했지만 그의 음악에서만큼은 미움과 증오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달관의 경지에서 인상주의 기법을 사용한 점이 눈에 띈다. 가슴 아픈 역사를 지닌 동유럽의 노래와 동양의 신비를 간직한 샹송가수가 바로 아람 세데피앙(Aram Sédéfian)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