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치의 노래, 정태춘 : 영화후기

작년 코로나 19 시기에 극장을 찾았다. 당시 ‘아치의 노래, 정태춘’ 개봉소식은 접했지만 코로나로 과연 개봉하고 볼 수 있을까 싶었는데, 다행히도 강릉에 있는 독립예술영화관 ‘신영’에서 개봉을 했고, GV 씨네토크까지 진행했다. 임진모 음악평론가의 진행으로 영화를 본 후 관객과의 시간을 가졌고 다큐멘터리 주인공 정태춘-박은옥 부부가 방문해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임진모 선생은 말이 많아도 너무 많다. 재미는 있지만, 말씀이 참 많다. 정작 감독과 주인공의 얘기를 많이 듣지 못했고, 관객과의 질문시간도 짧아서 아쉬웠다.

영화 ‘아치의 노래, 정태춘’

영화를 보고 난 뒤 드는 생각은 가수 정태춘의 생각의 변화와 음악의 변화가 대단하다는 것이다. 영화는 가수 정태춘의 행보와 그의 음악을 집중 조명했다. 70년대 데뷔부터 2,3집 앨범이 시장에서 외면 받았던 이야기와 그 즈음 가요계의 변화와 사회적 행보로 이어지는 과정을 자료화면과 인터뷰로 묵묵히 따라간다. 한발 더 나아가 90년대 가요사전심의 거부와 [아, 대한민국…]불법앨범 발표와 [92년 장마, 종로에서] 발표와 검열제 위헌 판결로 가요 사전검열제 철폐에 따른 투쟁의 이야기도 다뤘는데 정태춘의 깊은 생각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각 시기의 변곡점을 관통하는 이야기들은 얼핏 들어서 알고 있던 얘기들의 퍼즐을 맞춰가는 느낌이었다. 정태춘의 혼자 외로운 싸움을 6년이나 걸린 정태춘의 이야기, 그리고 한 동안 음악을 하지 않았던 시기의 이야기까지 엿볼 수 있었다.

나이 70에 다시 음악을 시작하려고 하는 현재의 음악에 대한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들어볼 수 있었다. 단편적인 히트곡과 이야기를 영상과 함께 보면서 인간 정태춘의 인생사를 한방에 정리해 버렸다. 

정태춘은 누구?

한국적인 멋이 들어간 노래와 가사가 일품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인의 마을” 가사를 살펴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제목처럼 노랫말이 한편의 시다. 

‘창문을 열고 내다봐요 저 높은 곳에 우뚝 걸린 깃발 펄럭이며 당신의 텅빈 가슴으로 불어오는 더운 열기의 세찬바람 누가 내게 탈춤에 장단을 쳐주리오 그 장단에 춤추게 하리오~ 나는 고독의 친구 방황의 친구 상념끊기지 않는 번민의 시인이라도 좋겠소, 나는 일몰의 고갯길을 넘어가는 고행의 방랑자처럼~

가수이자 사회운동가,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이며 그를 얘기할 때 절대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사전심의 폐지운동을 주도해 승리를 이끌어낸 인물이라는 점이다. 정태춘이 음악계에 발을 딛기 시작할 때는 대중문화 전체가 포크음악이 영향력이 클 때였다. 당대의 포크송들은 서구의 음악들을 가사만 바꿔 불렀던 번안곡도 많은 편이었는데, 정태춘의 등장은 특이했다. 한국적인 포크음악의 등장이었다. 가사나 곡의 분위기가 한국적인 요소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고, 한편의 시 같은 가사는 미학적인 기준으로 봐도 상당히 높은 편이었고 이런 점이 대중들의 공감까지 사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2집과 3집에서는 본인이 하고 싶은 음악에 대한 열망이 더 해 한국적인 정서를 조금 더 밀어붙이고 심지어 3집에서는 반주 자체도 국악기 사용을 늘려버린다. 한마디로 실험적인 음반이 탄생했고 이는 대중적인 실패로 이어졌다. 음악적 수준이나 가치가 퇴색 되지는 않지만, 대중음악의 핵심인 대중의 외면은 경제적 곤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4집부터는 아내 박은옥과 함께 [정태춘-박은옥] 부부 듀엣의 이름으로 앨범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떠나가는 배”,“북한강에서” 나름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지만 음반판매 뿐이었고, TV에서 잘 보이지도 않았다. 방송 활동은 하지 않았고 이들을 불러주는 공연이나 무대뿐이었다고 한다. 이마저도 콘서트 형태는 아니었고 전국 방방곡곡 소극장 내지 강당수준에서 벌어지는 소규모의 공연장뿐이었다. 

사전검열제 철폐투쟁

공연윤리심의위원회의 심의결과 및 가사 수정지시를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제작되어 배포한 앨범이 바로 [아, 대한민국]이다. 한마디로 불법음반이다. 당시의 법체계를 거부한 음반이었으니까 공식적인 유통 경로를 거쳐 판매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때가 중고교 시절이었는데 즐겨가던 음악사에서 사장님 추천으로 이 테이프를 구매 했었다. 음악사에서 파는 모든 음반이 정식음반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이 테이프가 나중에서야 불법 음반이란 걸 알았다. 처음 들었을 때 기존에 듣던 대중 가요와는 확실히 결이 달랐고 가사가 충격적이기는 했다. 가요에 ‘농약’,‘매춘 창녀’,‘공순이’,‘닭장차’,‘백골단’이 나오는 노래는 확실히 처음이었다.

이 시기 1991년 1월부터 사전검열 제도와의 전면전에 들어갔다. [아, 대한민국] 이 음반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음악에 대한 서전검열이란 제도에 대해 공식적으로 저항을 시작한 최초의 음반이었다. 당시 대학가를 중심으로 나온 ‘운동권 가요’ 민중가요를 제작하고 배포하는 것에 새로운 문을 열어준 계기가 됐고, 담긴 메시지나 저항적 수준을 몇 단계 끌어올린 앨범이 됐다. 

그리고 1993년 발표된 [92년 장마, 종로에서] 역시 불법 음반이었다. 당연히 이 앨범에 대해 정태춘은 기소 됐고 재판에 회부했다. 가요 검열제에 대한 위헌 제청을 법원에 신청하고 6년이 걸린 힘겹고 외로운 싸움을 시작했다. 씨네토크에서 정태춘-박은옥은 이시기 운동에 함께 해준 후배 강산에 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도 했었다. 

1990년부터 1996년까지 정태춘의 사전 검열제 투쟁 중인 1995년 서태지와 아이들 4집 ‘시대유감’이 사전 심의에서 불가 판정을 받았다. 가사를 수정하라는 공윤의 결정에 반발 가사수정 대신 연주곡으로 앨범에 실어버린다. 심지어 방송에서는 일부 가사를 삐처리해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었다. 이게 공론화 됐고 사전심의 철폐 운동에 동참하며 관련 법률의 개정과 공윤의 폐지를 이끌어내는데 기여했다. 1996년 6월,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과 함께 가요에 대한 정부의 사전 검열 제도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정태춘의 작은 싸움이 결실을 맺게 된 계기가 됐고 창작자들은 자유를 얻게 됐다. 

영화 후기와 정태춘의 사인

솔직히 대중들은 90년대 이전까지의 아름다운 시와 같은 음악들을 더 좋아한다. 나도 그랬고, 90년대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 냈을 때는 너무 직설적이라 분노가 그대로 느껴져 선호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때는 안 들었지만, 스크린에서 만난 이 시기의 음악은 또 다른 울림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노년의 가수가 현재진행형으로 음악작업을 하며, 갖는 고민이 고스란히 와 닿았다.

GV 씨네토크 끝나고 사인을 받기 위해 긴 줄을 서서 기다렸다. 사인을 받는 의미와 사인을 해주는 그 분들의 행위를 솔직하게 말해 지금까지 삐딱하게 바라봤다. 종이 한 장 내밀고 형식적인 사인을 받는 별 의미 없는 행위로 생각했었다. 심지어는 별별 이상한데에 사인을 해 달라는 요구도 하고 실제로 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이해가 안 갔었고, 마치 형식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사인을 받는 행위를 기이하다고 늘 느끼곤 했었는데 이것 또한 내 편견이었다는 것임을 느꼈다. 음반을 들고 사인을 받기위해 기다리는 동안, 앞에 계신 분들의 표정을 살펴보니 너무 행복해 보이는 얼굴이었고, 팬의 입장에서 사인을 받는 행위는 이 짧은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았다. 

집에서 싸들고 들어온 음반들이 많은 관계로 맨 마지막에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섰다. 그리고 사인을 받기 전에 관계자에게 귀뜸으로 이야기를 하나 들었다. 흔히 제일 많이 팔린 베스트앨범이나 발췌곡집은 정태춘-박은옥의 허락으로 발표된 것이 아니라 그리 좋아하는 앨범이 아니란다. 단지 음반사가 돈벌이를 위해 발표된 앨범이었고, 정태춘 박은옥 두 분에게는 어떤 금전적인 이익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발췌곡은 모두 빼고 사인을 받았다. 단 한 장 빨간색 베스트 앨범은 좋아한단다. [92년 장마, 종로에서] 이 앨범이 LP로 있었다면 멋진 세트가 완성 됐겠지만, 아쉬움은 CD로 대신했다.

그리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나온 음악 <정동진3>은 포크가수 정태춘의 변신을 더욱 기대하게 만들었다. 블루지하고 거장의 면모까지 느꼈다.

정태춘은 스스로 장르가 된 뮤지션이다. 포크가수가 사회에 맞서고 거리에서 사람을 직접 만나고 희망도 노래하고 절망도 노래가 됐다. 단편적으로만 알았던 인간 정태춘의 삶과 음악을 마주했다. 음악다큐멘터리답게 정태춘-박은옥의 음악이 끊임없이 나오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다. 그리고, 꼭 기회가 된다면 보시길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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