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리스트들 앨범을 좋아한다.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제프 벡(Jeff Beck), 타미 볼린(Tommy Bolin), 산타나(Santana), 웨스 몽고메리(Wes Montgomery), 죠지 벤슨(George Benson), 얼 크루(Earl Klugh) 등등 그중에 에릭클랩튼(Eric Clapton) 싫어할 이유를 찾기 힘들 정도로 갑오브갑이다. 확실히 처음 들었던 노래는 “Wonderful Tonight”이었다. 길거리 리어커에산 올드팝 테이프에 이 노래가 있었다. Eric Clapton Story!!
Eric Clapton – Tears In Heaven & Change The World
그리고 두 번째 들은 노래는 “Tears In Heaven”이 확실하다. 수입CD로 “Tears In Heaven”이 들어있던 Rush OST 당시 거금을 들여 샀는데, 들을만한 곡은 “Tears In Heaven” 밖에 없었다. 당시 기준으로 나에겐 가성비 왕창 떨어지는 앨범이었고, 영화는 폭망을 넘어 이건 뭐, 도대체 뭘 말하려는 것인지? 여주인공만 예뻤던 기억뿐이다. 본인이 마약에 빠져 지낸 시절이 와 닿아서 선뜻 OST에 참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영화는 볼 기회가 되더라고 꼭 걸러야한다. 간간히 분위기 황량해 지는 연주곡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Tears In Heaven” 한 곡만 들었던 앨범이다.
이후 존트라볼타 나왔던 영화 페노미넌 주제곡 “Change The World”까지 접했다. 어찌보면 당시 히트곡부터 만나고 과거의 음악을 찾아듣게 된 케이스다. 파면 팔수록, 들으면 들을수록 대단하다는 말부터 떠오르는 왜 기타의 신이라 불리는지를 새삼 뒤 늦게 확인하게 되는 기타리스트다.
앨범은 틈틈이 꾸준히 모아왔고, 거의 초반위주로 찾아서 채워놓고 있다. 그런데 앨범이 많아도 너무 많다. 한도 끝도 없다. 그룹시절부터 각종 콜라보 앨범들까지 방대함의 끝을 보여준다.
기타의 신, Mr. Slowhand Eric Clapton
최고의 음악적 성취를 거둔 기타리스트를 꼽을 때 항상 거론된다. 에릭옹을 빼면 정말 많이 섭섭하겠다. 1960년대 말 이후 록 음악의 발전에 큰 공헌을 한 록 음악 역대 최고의 아티스트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일례로 크림시절 미국공연은 충격 자체였고 후에 많은 밴드들에게 영감을 줬다는 인터뷰는 자자하다.
그래미를 18번 수상했고,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세 번 입성한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야드버즈(Yardbirds), 크림(Cream), 솔로아티스트 자격으로 오른다.
에릭 클랩튼의 유산이라면 정통 블루스를 현대의 록 음악과 결합한 블루스 록을 개척했다는 점이 있다. 물론 에릭 클랩튼 혼자 이뤄낸 성과도 아니지만 누가 봐도 가장 돋보이는 행보로 널리널리 퍼트린 건 에릭 클랩튼이었다. 크림 시절에는 사이키데릭 록과 재즈, 블루스 록 장르와 융합해 하드록과 헤비메탈의 원형을 제시한 기타리스트로 알려져 있다.
평론가들은 입을 모아 에릭옹이 없었다면 헤비메탈 기타 주법도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사생활은 논란
“Layla” 이 곡의 탄생비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곡이 너무 멋져서 세기의 사랑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세기의 불륜막장 드라마 한편이었다. 비틀즈의 멤버이자 자기 절치인 조지 해리슨의 아내 패티 보이드를 대놓고 들이대다 끝내 곡까지 만들고 불륜을 저질러 절친의 아내를 뺐었다.
물론 패티 보이드가 조지 해리슨에 대한 애정을 잃어가자 에릭 클랩튼에게 먼저 추파를 던지긴 했지만 이 과정에서 진짜 불륜을 저지를 마음은 없었다고 한다. 단지 조지 해리슨의 관심을 끌기 위한 행동이었는데 오히려 신경은커녕 더 대놓고 불륜을 저지르고 다녔던 조지 해리슨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아서 에릭 클랩튼에게 갔다. 이후 노래를 한 곡 더 발표하는데 “Wonderful Tonight”이다. 이 노래는 패티보이드에 바치는 사랑노래라 하겠다. 어찌보면 “Layla”는 사랑의 갈구였다면 “Wonderful Tonight”은 쟁취한 사랑의 찬가 정도되겠다.
하지만 막상 결혼까지 하고나니 에릭 클랩튼은 더하면 더했지 조지 해리슨보다 못하지 않았다. 술과 마약, 불륜, 폭력행사, 그루피 문제도 심각했고 마약문제가 얼마나 심각했냐면 패티 보이드가 증언하길 조지 해리슨은 비교도 안 될 수준으로 몇 배에 달하는 마약을 에릭 클랩튼은 했고, 손을 안 댄 마약이 없을 정도였다. 본인도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라고 얘기할 정도였다.
결국 패티 보이드와는 1989년 이혼했다. 에릭 클랩튼은 후에 고백하길 조지 해리슨의 커리어가 탐났고 보란 듯이 아내를 뺏어서 결혼까지 한 양심 없는 행동이었다고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기도 했다.
마약중독문제까지는 아니더라도 알코올 중독 이력도 엄청나다. 술을 먹고 진상을 부리다 투옥되기도 하고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스스로 알코올 중독 센터에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1990년대 초반 아들이 아파트에서 떨어져 죽은 사건 이후에야 알코올 중독에서 헤어나올수 있었다. 이때 만들어진 곡이 바로 “Tears In Heaven”이란 곡이다.
2007년 서울 라이브공연
1997년 에릭클랩튼 첫 내한공연 일정이 잡혔고 당시 콘서트티켓은 은행에서 구입했던 시절이라 티켓을 구해놨었지만, 입대영장이 나와 버렸다. 그렇게 첫 내한공연은 못 봤고, 2007년에 갖은 내한공연에서야 에릭옹을 영접했었다. 별다른 말없이 주구장창 블루스만 연주하고 땡큐만 몇 십번 듣고 온 내한공연이었지만, 이때 아니면 언제 또 만날까 싶어서 공연장을 찾았던 기억이 난다.
최근에 발매한 앨범들은 만족감이 대체로 높다. 발코니 앨범 역시 최고다. 당분간 가장 많이 듣게 될 것 같다.
에릭 클랩튼은 자신에게 영향을 준 블루스 기타리스트들 로버트 존슨, 머디 워터스, 프레디 킹, 비비킹, 알버트 킹, 버디 가이, 제이제이케일에 대한 헌사를 아끼지 않았고 실제로 헌정앨범과 함께 앨범도 발표하며 그들의 체취가 내 연주에서 숨쉬고 있다는 말을 남길 만큼 그들의 스타일을 익히며 연주를 다듬어왔다.
“태어나서 처음 들은 음악이 블루스였고 방황하던 사춘기에도 의지할 것은 블루스뿐이었다. 내 언어와도 같은 이 음악의 순수함을 믿어 왔고 언제까지나 그럴 것이다.”
또한, 밥 말리의 “I Shot The Sheriff”를 커버하면서 레게음악을 세계시장에 진출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솔로 활동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2억 8천만 장 이상의 음반을 판매했으며,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음악가중에 한 명이다. 그런데 이 기록은 글로벌 판매량까지 집계한 수치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