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니오 : 더 마에스트로 – 1

학창시절 시네마 천국 OST는 잠들기 전 자장가였다. CD로 구입했을 때 내 라이브러리 보물 1호 CD는 늘 시네마천국이었다. 엔니오 모리꼬네는 위로와 즐거움, 아름다운 선율을 선물해줬고 다른 수많은 영화 OST에서 그의 이름을 발견하는 기쁨을 줬다. 내 인생 최고의 사운드트랙은 늘 엔니오 모리꼬네였다. 혁신적인 음악가 마에스트로 엔니오 모리꼬네 그때도 새로웠고 지금 들어도 늘 새롭다.

얼마전 그의 전기영화 <엔니오 : 마에스트로>를 봤다. 살짝 긴 러닝타임에도 전혀 지루하지 않게 그 아름다운 선율과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본인과 주변 지인들의 인터뷰로 가득 채워졌다. 정말 긴 여운이 남는 작품으로 강력추천하는 작품이다. 리뷰가 너무 길어서 1,2 둘로 나눠서 포스팅했다.

엔니오 : 더 마에스트로 유년시절

의사가 되고 싶었는데 아버지가 트럼펫을 배워야 한다면서 음악원에 보냈고 결국 음악가라는 미래를 정한 건 아버지였다. 트럼펫은 열한 살 때 시작해서 열여섯에 졸업장을 받았고 아버지가 병이 나면 어린 엔니오가 대신 일했다. 나이트클럽을 돌며 악단에서 일해서 먹고살 돈을 벌자고 트럼펫을 연주하는 건 굴욕적인 일이라 생각했고 결국 트럼펫까지 싫어졌다고 한다. 아버지를 대신해 새벽까지 연주하고도 일찍 일어나 음악원에 가야 했고 숙제도 해야 해서 입술이 다 튼 채로 실기 시험을 봤었다.

음악원에 들어가 20세기의 위대한 음악가인 고프레도 페트라시로부터 사사했다. 페트라시와의 10년 동안 엔니오가 매달린 것이 팔레스트리나와 몬테베르디의 음악이라 세상 그 누구보다 대위법을 잘 아는 작곡가가 됐고 페트라시는 자신이 받은 스트라빈스키의 영향을 엔니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줬다.

졸업후 사회에 나왔을 때 엔니오 모리꼬네는 일을 구할 수가 없었다. 말이 작곡가지 마땅히 할 것이 없었다. 은근슬쩍 편곡 일을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이탈리아 RCA에서 편곡일을 했는데 노래에 색채를 가미해 새로운 곡을 내놓기 시작했다. 반주가 전부였던 시절 편곡은 반주에 불과했고 화음에 맞춰서 연주하면 그뿐이던 배경 음악에 엔니오 모리꼬네는 개성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대중음악씬에서 편곡을 재정의 한 것이었다.

1965년에 발표된 지미 폰타나(Jimmy Fontana)의 일 몬도(Il Mondo)라는 곡인데 우리에겐 영화 <About Time>에도 쓰인 곡으로 이 노래편곡을 엔니오 모리꼬네가 맡았었다.

피아노를 치는 게 아니라 그냥 그 앞에 서서 건반을 보고 바로 악보를 썼고, 머리로 음악을 뽑아내서 건반도 안 치고 머릿속에 있는 것 마냥 그냥 악보를 적어나갈 정도였다. 그가 편곡한 많은 곡이 전주부터 귀를 사로잡았다.

엔니오 모리꼬네 영화음악의 시작

‘텍사스 결투’와 ‘총은 말이 없다’가 엔니오의 첫 서부극인데 둘 다 1963년 작품이다, 처음에는 예명을 써서 서부극을 한 걸 아무도 몰랐다. 예명은 사비오라는 아내 친구의 이름을 빌려썼다. 서부극 음악을 하는 걸 페트라시나 동료들에게 숨기려 했다. 말 타는 장면에서는 특이하게도 기타를 썼는데 세르지오 레오네가 그 두 편의 서부극을 보고 집에 찾아와서는 영화음악을 부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어린 시절 같은 반 친구였고 세르지오와 엔니오는 두 꼬마가 일로 다시 만나 절친이 됐다. 기존 서부극에 넣기에는 생소한 편곡들이 등장했다. 휘파람도 나오고 아주 장엄한 곡까지 등장하는데 전계가 없었고 그때가 전환점이었다. 전자기타와 채찍 소리, 피리도 썼다. 당연히 그 당시로서는 아주 큰 문화 충격이었다.

그런데 그의 스승인 페트라시와 그의 동료들은 엔니오의 음악을 인정 안 했고, 영화음악을 무시했다. 음악적 순수성을 포기하고 영화 같은 상업 매체에 음악을 써 주는 행위를 천박한 짓이라고 했다. 엔니오 모리꼬네는 처음에는 수치심을 느꼈지만 서서히 의욕에 타올랐고 그 상황을 음악으로 설욕하고 싶어 했다.

음악적 실험을 이어가다

음악을 하면서 처음으로 세 음을 쓰는 실험을 했는데 4분의 4박자에 세 음을 주로 넣었다. 같은 음을 사용하면 불협감이 없다는 건 조성음악 역사에서 중대한 발견이었다. 같은 음이 반복되면 기억에 잘 남는다. 변화도 있지만 중심인 세 음이 강도를 달리할 뿐 반복도 식상하지 않게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 스스로도 음을 절제한 건 평생 남는 경험이었고 이후 영화음악에도 자주 쓰는 계기가 됐다.

음악적 실험 정신을 영화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Once Upon A Time In The West’에서는 구체 음악을 썼다. 때에 따라서는 소음도 음악이 된다고 엔니오 모리꼬네는 믿었다. 이 영화의 메인테마곡은 너무나 매혹적인 음악이다. 아련하며 우리 마음을 사로잡고 우리를 감싸 안아 주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 멜로디와 분위기가 한참을 머릿속에 남아 평생을 두고 계속 들을 그런 음악이다.

존 바에즈는 1971년 당시 미국 청춘의 대명사 같은 가수였다. 엔니오와 존 바에즈는 사코와 반젠티라는 영화에서 같이 작업을 한다. 1920년대 미국 메사추세츠에서 벌어진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실제로 사법살인을 당한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였다. 사형에 처해진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이 무정부주의자였다는 점이다. 이 영화의 영화음악을 엔니오가 맡았고 노래를 존 바에즈가 불렀다.

주제곡 Here’s To You 는 굉장히 날것의 상태로 녹음됐다. 기본 반주에 노래 먼저 부르고 악기는 나중에 입혔고, 거기에 다시 존 바에즈의 목소리에 오케스트라를 더했다. 이 곡은 얼마 되지 않아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이 노래는 우리나라에선 한 동안 금지곡으로 묶여 있었다. 이탈리아와 미국에서는 단순한 인기곡이 아니라 찬송가처럼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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