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니오 모리꼬네 영화 OST 한번 들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묘하면서 중독적인 지점이 있다. 어떤 이들은 엔니오 모리꼬네가 없었다면 21세기 영화 OST 지금과는 아주 다른 양상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전까지의 영화음악은 B급 영화에 관현악을 붙인 정도였다면 이런 음악들을 모아 그 한계를 무너뜨린 것이 바로 엔니오 모리꼬네의 힘이었다. 영화음악가는 교향곡, 유행가, 민속음악 등 모든 장르에 능해야 한다.
엔니오 모리꼬네 Once Upon A Time In America 영화 OST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은 대본 구상을 엔니오와 공유했다. 음악을 의뢰할 때 세르지오는 가장 먼저 영화를 설명했고 그 설명이 어찌나 자세하게 하는지 프레임 단위로 보일 정도였다고 한다.
‘Once Upon A Time In America’ 같은 경우는 독창적인 발상과 독창적인 악기가 영화 내내 가득했다. 세르지오 감독은 크랭크인 전부터 곡을 써 달라는 요청을 했고, 영화 완성 수년 전부터 엔니오가 영화에 쓸 곡을 미리 들려줬었다.
“한참을 끄는 저음으로 곡이 시작돼요. 그리고 아주 천천히 다른 음이 이어지죠. 한 음을 길게 끌어서 이야기를 전하는 건데 상당히 과감해야 가능한 일이에요. 음악을 빼고는 전혀 상상이 안 돼요. 그 음악이 없었다면 영화가 어땠을까요?”
감독은 엔니오의 음악을 촬영 내내 스피커를 여럿 가져와 틀어 놨고 배우들은 음악을 깔고 연기를 한 거였다. 음악을 깔고 미리 완성될 영화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연기하는 끝내주는 환경이었다. 당연히 현장의 스탭과 배우들까지 모두가 영향을 받았다.
스승이나 동료들조차 엔니오 모리꼬네의 재능을 좀처럼 못 알아봤는데 ‘Once Upon A Time In America’이 확실한 전환점이 됐다. 클래식을 수학한 동료들은 하나같이 음악을 깊이 이해해야만 쓸 수 있는 작품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그제서야 엔니오를 이해하기 시작했고 다른 세계에 속해 우월감을 느꼈던 음악 학계 사람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엔니오의 천재성을 인정했다.
영화 OST – 미션과 시네마천국
‘미션’의 음악을 의뢰받았을 당시 영화 OST 작업 은퇴를 결심하고 있어서 처음에는 거절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미리 영상을 보고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바로 전화를 걸어 떠오르는 멜로디를 감독에게 들려줬는데 감독은 머리칼이 쭈뼜설 정도로 음악을 들으니 영상이 펼쳐졌다고 회상한다.
‘미션’ 작업 때는 신기할 정도로 통제가 안될 정도로 무아지경에서 곡을 썼다고 한다. 아무리 엔니오 모리꼬네라도 교향곡은 1년도 걸릴 수 있는 작업인데 ‘미션’의 음악은 두 달 만에 완성했다.
오보에 테마부터 썼는데 영화의 배경이 1750년이라 당시의 기교에 영향을 받아서 겹잔결꾸밈음, 겹돈꾸밈음, 장식음, 전타음 같은 요소를 넣어 선율을 풍부하게 했고 원주민들을 위해서는 원시 음악 요소를 넣어 리듬이 강조된 주제를 추가로 썼다.
엔니오의 음악은 자타공인 최고였지만 그에 걸맞은 대접을 받지는 못했다. 이해받지 못한 거였다. 양식 있는 음악도 꾸준히 작곡했는데 예술적, 미학적으로 아주 뛰어난 수준 높은 작품들을 썼다.
시네마 천국’을 의뢰하자 엔니오는 처음에는 거절했었다. 하지만 대본을 다시 보고는 수락을 했다. 이 다큐멘터리 감독이기도 한 쥬세페 토르나토레는 엔니오 모리꼬네와의 작업을 굉장히 즐거워했다. 이미 350편의 작품을 한 엔니오 모리꼬네는 당시 신인감독인 자신을 동등하게 대해줬다고 한다.
상복이 없었던 엔니오 모리꼬네, 헤이트풀8
수많은 명작들의 영화 OST 작곡했던 엔니오 모리꼬네였지만 유독 상복은 없었다. 아카데미 주제가상에 6번 노미네이트됐지만 마지막 타란티노 감독의 “헤이프풀8”에서 주제가 상을 받았다. 물론 앞선 5번의 노미네이트가 불발되면서 엔니오 본인조차도 아예 기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오스카 공로상을 수상했다. 어쩌면 할리우드의 사과라는 느낌까지 들었다. 그 긴 시간 공로상을 수상하면서 아카데미가 마침내 엔니오의 음악 인생에 걸맞은 답을 줬다고 봐야겠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광팬이라 초기 마카로니 웨스턴 느낌의 음악을 기대하며 엔니오에게 음악을 부탁했다. 그런데 엔니오 모리꼬네는 이미 갔던 길을 피하고 싶어했고 정통 교향곡을 만들어줬다. 자신의 영역으로 감독을 끌어들인 셈이다. 서부극에 대한 한풀이로 생각하고 과거를 청산할 각오로 곡을 썼을 것이다.
엔니오 모리꼬네는 후보 지명만 여섯 번째 수상은 첫 번째였다. 2006년 공로상 수상으로 영화음악계에 대한 폭넓은 공헌을 인정받은 바 있지만, 마침내 큰 상을 받음으로써 창작 활동의 정점에서 세계적인 거장으로 당당히 인정받았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공로상을 수상하고 은퇴할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엔니오 모리꼬네는 계속 음악을 한다. 거기에 전세계 순회공연을 이어간다. 유럽은 물론이고 남미, 아시아, 어디를 가든 열렬히 환영받는 음악가였고 팝 스타 못지않은 환호를 받았다.
영화 OST , 현대음악 그 자체다.
박찬욱 감독은 엔니오 모리꼬네를 현대 문명의 요한 세바스찬 바흐라고 칭송했다. 엔니오 모리꼬네가 영화 OST 작업을 시작한 게 1961년인데 1970년까지만 한다고 아내에게 말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1970년이 됐을 때는 1980년까지만 이랬고 1980년이 됐을 때는 1990년까지랬다가 다음에는 2000년이 됐고, 그는 더 이상 그런 말 안 했다. 엔니오의 음악은 영원히 역사에 남을 거다. 우리 인생의 사운드트랙이고 일하고 사랑하고 웃고 모든 삶이 녹아 있다.
많은이들은 엔니오 모리꼬네를 천재라고 한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이렇게 회고한다.
“생각이 바로 곡이 되지는 않아요. 그게 문제죠. 작곡을 시작할 때면 늘 그 점 때문에 괴로워요. 눈앞의 빈 종이 위에 작곡가는 어떤 곡을 써야 할까요? 그 빈 종이에 무엇을 적을까요? 생각은 이미 있지만, 더 다듬어야 하고 더 나아가야 하고 찾아내야 해요 뭘 찾느냐고요? 그건 알 수 없죠.”
1960년대 그가 편곡한 칸초네 음악은 500곡이 넘는다. 그리고 평생 작곡한 영화도 500여 편이 넘는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작품들을 다 모은다는 건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본인조차도 무엇을 만들었는지 전부 기억하지 못한다고 얘기했다. 500곡도 아니고 500편이라니 정말로 기억하는 것조차도 불가능한 일이다.
또 다양한 종류의 음악들이 존재하고 다양한 컴필레이션 앨범들이 지금도 수없이 발매되고 들려지고 모아지고 있다. 스파게티 웨스턴, 라운지 뮤직 시리즈, 익히 알려진 유명한 인기 테마 모음집까지 그 수도 헤아리기 힘들다. 어쩌면 영원히 들려지고 연주될 노래들이다.
가끔 왜 위대하고 대단하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경우가 있는데 엔니오 모리꼬네가 바로 그런 존재다. 마지막으로 지금껏 들었던 가장 쇼킹한 엔니오 모리꼬네의 영화음악 한 곡을 준비했다. 유로댄스같은 곡까지 작곡한 그의 그 방대한 음악적 스펙트럼에 감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