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홍진, 장재현 감독의 뒤를 이을만한 공포-스릴러-미스테리-오컬트를 버무린 야심찬 한동석 감독의 영화 한 편이 개봉했다. 영화 <씬> 처음에는 큰 기대를 갖지 않고 봤는데 마지막에 지리는 반전과 반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아무 의미 없이 보였던 초반부 장면 하나하나가 퍼즐조각처럼 흩뿌려져 있다가 마지막에 퍼즐이 완성될 때 느껴지는 짜릿함과 반전은 영화적 재미를 주기에 충분했고 마지막 쿠키영상에 후속편을 예고하는 일종의 프랜차이즈화나 세계관 확대를 보여준 패기는 이 감독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무엇보다 장재현 감독의 <파묘>보다 전작인 <사바하>를 좋아하는데 <사바하>보다 더 촘촘하게 구성한 부분과 중간에 갑작스런 장르전환은 근래에 본 최고의 공포복합장르의 끝판왕처럼 느껴진다. 영화 씬 초중반 강렬하게 시선을 끌고 후반에 몰아치는 속도감이 엄청나다.
공포영화 씬, 줄거리
이 영화의 시나리오 측면에서 볼 때도 굉장히 잘 짜여있고 흥미롭다. 다양한 장르를 오가는 표현과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는 꽤나 인상적이다.
실험적 요소로 내로라하는 해외 유수 영화제에서 이름을 알린 유명 감독 ‘휘욱’의 영화에 무명배우 시영은 캐스팅된다. 감독이름 하나만 보고 시영은 영화에 응하고 촬영장으로 향하는데 시작부터 불길한 느낌이 계속 엄습해 온다. 촬영 장소는 지방의 폐교된 대학이고 시영을 데려온 택시기사부터 불편하게 만들고 도착하자마자 스텝의 실수로 시체소품이 시영 앞에 떨어지며 싸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촬영장 분위기는 여타 영화촬영장과 달리 분위기가 좋지 않다. 저예산으로 일을 밀어 붙이고 더군다나 감독은 배우에게 별다른 티렉팅 없이 기괴하게 보이는 춤을 추라고만 한다. 주연으로 캐스팅된 시영은 찜찜하기만 한데 거기에 예상에 없던 상대배우가 있었고, 자신과 복장까지 비슷한 상대배우는 이미 알고 있던 후배였고 시영은 계속 거슬린다.
춤을 소재로 한 영화의 촬영이 폐교 옥상에서 시작되고 파격적이고 거친 동작의 춤사위가 이어지는데, 반대편 건물 옥상의 의문의 사람들이 얼굴에 두건을 쓰고 옥상 바닥에 의문의 문양을 그리고 있고 때마침 막내 스텝 하나가 환풍기 문제로 지하실 배전함에 내려갔는데 거기에는 피로 그려진 부족 같은 마방진이 벽에 새겨져 있다. 이 문양은 반대편 옥상에 새겨진 것이랑 똑같은 문양이다. 이때까지만 보면 저주를 중심으로 한 무슨 오컬트 장르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느낌으로 종교단체가 연상된다.
그런데 갑자기 지하에 내려갔던 막내 스텝이 식은 땀을 흘리며 올라오고 사람들을 공격하고는 피범벅이 되어 옥상에서 떨어져 죽는다. 그런데 옥상에서 떨어진 이 스텝이 갑자기 좀비가 되어 사람들을 공격하면서 흔하게 봐온 좀비물의 양상을 띤다. 그런데 시영을 캐스팅한 영화감독 ‘휘욱’은 우왕좌왕하는 스텝들이 혼비백산 도망을 가는데 갑자기 카메라를 들이대며 무엇인가를 찍기 시작한다. 강령술을 이용해 좀비를 만들어내는 사이비 무리들이 등장하며 영화 촬영 현장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되어 버리고, 그걸 지켜보는 무리가 등장하는가 싶은데 난데없이 이곳을 마약 은거지로 사용하던 비리경찰들이 나타나 대립하면서 미스테리 호러로 장르가 변한다.
그리고 작품은 좀비들에게 쫓기고, 의문의 집단들에게 쫓기며 내달리는데, 그 마지막에는 복수 호러가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이마저도 최종 장르전환이 아니고 다시 오컬트적인 요소로 장르가 전환된다.
영화 씬의 결말과 스포일러 포함 (스포일러 싫으면 여기까지)
영화가 어떤 시점에 갑자기 장르의 변환이 이뤄지는데 무언가를 알고 있는 인물이 등장하고 주인공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이 모든 일에는 모종의 계획이 있었다는 호기심을 자극하며 이야기가 흘러간다. 영화를 핑계로 사람을 모아 촬영장에 모아서 의문의 춤을 추고, 좀비가 등장하며 사람들은 좀비가 되어 죽어나가고, 자신들이 숨긴 마약이 들통날까봐 현장에 온 비리경찰들, 이 경찰들은 또 얼굴에 두건을 쓴 사이비 종료로 추정되는 이들에게 당한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사건들에서 도망치던 시영은 결국 붙잡혀 사이비 단체 앞으로 끌려오면서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 모든 것이 하나하나 밝혀진다.
초반은 오컬트와 좀비물인가 싶었는데, 중반에 비리경찰과 사이비 종교단체가 등장하며 여주인공 시영이 결국 이 모든 것에서 탈출하는가 싶었는데 계속해서 주요 인물들은 죽어나가며 마지막 시영까지도 죽으며 영화는 끝나는가 싶었는데 그 뒤에는 어마어마한 반전이 자리잡고 있었다.
스포일러이자 최종 빌런은 사실 여주인공 시영이었다. 이 모든 발단은 결국 시영 때문이었다. 영화초반에 흩뿌려놓은 퍼즐조각들을 보자면, 시영은 정신병이 있는 어머니가 자신을 죽이려고 낸 교통사고에서 살아난 인물처럼 보인다. 그 교통사고로 일시적인 기억상실과 약물을 복용하는 과거의 트라우마에 갇혀 있는 인물이고 순간순간 어머니의 악령에 시달리는 인물로 비춰진다. 내면의 아픔을 지닌 전형적인 공포영화의 여주인공처럼 비춰진다.
시영의 공포는 과거 학창시절부터 시작된다. 자신이 좋아했던 남자아이에게 고백했다가 거절당하자 그 남자아이를 일종의 저주를 걸어서 죽이기 된다. 그런데 이런 저주가 그 남자아이만이 아니었다. 저주로 자신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들지 않는 동급생들을 죽여왔다. 의문의 죽음에 시영이 있는 것 같은데 확실한 증거도 없고 학교에서는 시영을 추궁하지만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시영의 이야기는 동급생들 사이에서 소문처럼 돌았다. 이에 시영의 어머니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딸을 데리고 전학을 계속 보내야 했었고 시영의 어머니는 자신의 딸이 무서운 존재임을 알고 딸을 죽이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결국 정신병원에 갇히게 된 것이다. 이후 정신병원에서 퇴원하자 딸을 찾아와 교통사고로 딸을 죽이려고 했던 것이었는데 이마저도 실패하고 만다.
주인공 시영이 사악한 존재임을 보여주지만, 명확한 증거는 없기에 의심에 머무르는 상황을 계속해서 연출한다. 시영을 죽인 남자아이와 각별한 사이였던 채윤이란 캐릭터가 결국 실마리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데, 채윤은 시영과 같은 영화에 캐스팅된 아는 동생으로 처음 등장하지만 이 모든 판을 짠 것은 무속 쪽에서 일을 하고 시영의 존재에 대해 그동안 계속 조사했던 인물이었다. 자신이 조사한 자료를 윤회장(이상아)를 찾아가 복수심에 불타는 윤회장에게 시영을 처단하게 만든다.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시영이라는 사악한 존재는 인간의 방법으로 죽일 수 없다는 것이다. 시영을 죽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지옥에서 올라온 영혼, 강령술로 만들어낸 좀비뿐이라는 것이다. 결국 시영의 존재를 없애기 위해 좀비를 만들어 냈고, 무명배우인 시영을 영화촬영을 핑계로 외딴 폐교로 불러내 좀비떼로 죽일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이를 위해 죽어도 싼 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촬영 스텝으로 구성하고 세심하게 설계를 했었던 것이다.
결국 붙잡힌 시영은 좀비떼에 물어 뜯겨 죽고 목이 잘려나가며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처럼 영화는 결말에 이른다. 복수를 끝낸 윤회장(이상아)도 가족을 따라 자살하며 영화는 끝나는가 싶다. 모든 복수의 판을 짠 채영이 집으로 돌아온 모습을 계속해서 비춰주는데 여기에 마지막 반전이 숨어있었다. 채윤이 시영을 붙잡았을 때, 시영은 본색을 드러냈던 것이다. 포박을 푼 시영은 채윤을 제압하고 자신과 채윤의 몸을 바꿔버린 것이다. 결국 판을 짰던 채윤이 시영의 얼굴을 하고 죽었던 것이고 시영은 얼굴을 바꿔 채윤의 몸으로 살아있었던 것이다. 결국 이 영화 최종빌런인 시영은 살아남고 승리하면서 마지막을 장식한다.
영화 씬 쿠키영상 속의 후속편 예고와 평가
그런데, 쿠키영상이 등장하면서 무속인이었던 채윤의 스승이 등장하면서 후속편을 예고하고 있다. 영상에서는 무당과 천주교 퇴마신부까지 모습을 들어내며 사악한 존재에 대해 본격적으로 손을 쓴다는 내용을 암시하고 있어 기대감까지 높여놓았다.
나홍진의 <곡성>에도 좀비가 등장한다. 샤머니즘과 무당적 요소에 일본무당이 만들어 낸 좀비가 등장한다. <씬> 역시도 한국 무당 샤머니즘적인 강령술에 좀비까지 등장하고 공포영화의 단골 장소인 폐교까지 등장한다. 거기에 장재현 감독의 오컬트 영화 최고의 장점인 촘촘한 미스테리적인 요소까지 <씬>에는 녹아있다. 또, 점프스퀘어로 불리는 공포영화의 깜놀 장면들까지 있어 사람을 소스라치게 놀라게 만든다.
원죄를 뜻하는 단어 씬(Sin)과 영화의 장면을 뜻하는 씬(Scene)의 중의적인 의미를 갖는다. 좀비물과 오컬트, 미스테리와 스릴러가 혼합된 아주 독특한 혼합장르 영화다. 출연배우들은 이상아를 제외하고 솔직히 처음 보는 배우들이 대부분이었지만 하나같이 구멍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연기가 훌륭하다. 주-조연 심지어 단역들조차 극의 흐름을 방해하는 요소는 단 한순간도 없었고 심지어 저예산 독립영화같지 않은 고퀄리티의 촬영과 음악, 음향이 영화의 무게감과 주제를 확실히 밀어붙이고 연출이 상당히 놀랍다. 이 감독의 다음 작품을 기대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처음에는 단순한 좀비물처럼 보였지만 중반부터 오컬트와 귀신 영화인가 싶다가 미스테리 스릴러가 됐다 다시 오컬트가 되는 장르가 계속 바뀌는 묘한 영화다. 그리고 이런 장르전환이 어색하지 않고 절묘하게 어우러지더니 지리는 몰입감과 함께 이 모든 상황에 개연성을 부여한다. 반전을 예상했다고 느끼는 순간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느낌이다. 반전의 반전을 주며 절대 그 누구도 영화가 끝날 때까지 반전을 예상할 수 없게 만들고 이 반전의 포인트마다 충격을 주는 구성은 한마디로 최고다. 그리고 무엇보다 촘촘하게 짜놓은 퍼즐 같은 구성은 이 영화를 한 번 더 보게 만든다. 초반부 별 의미 없어 보였던 장면들조차도 다 의미가 있었다. 좀비-공포-오컬트-스릴러-미스테리-호러-오컬트로 이어지고 어우러진 복합장르의 끝판왕이다. 오컬트나 공포영화에 한계는 분명 있다. 이런걸 못 보는 사람도 많고 싫어할 여지는 많지만 재기발랄한 감독의 촘촘한 패기를 확인할 수 있는 공포미스테리 좀비오컬트 영화는 <씬>은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꼭 보라고 추천한다. 이왕이면 밤에 볼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