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잠 결말해석

유재선 신인감독의 영화 “잠”을 보고 왔다. 이선균, 정유미 나온다. 러닝타임 1시간 30분 정도 딱 적당하고 이선균, 정유미가 아파트라는 공간에서 80%정도 진행되고 출연 배우도 장모, 무당, 의사, 아랫집 여자와 그녀의 아들이 전부다. 아, 강아지와 아기도 있다. 극을 끌어가는 것도 이선균과 정유미가 전부이고 공간도 거의 한정적인 아파트에서 모든 일이 일어난다. 그럼에도 전혀 지루하지 않고 쫄깃하게 만드는 미친 연출이라고 본다. 

미친 연기의 정유미

그리고 무엇보다 이 영화는 정유미가 다 살렸다고 본다. 지금껏 정유미가 나온 영화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준다. 정유미를 다시 보게 만든 영화다. 그동안 얼굴만 반반하고 연기를 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예쁘기만 하고 “82년생 김지영”,“도가니” 이런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 정도로 생각했고, 윤식당의 정유미가 다였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보여준 연기는 제대로 미쳤다고 생각한다. 후반으로 갈수록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쾡한 정유미의 눈빛과 결국 마지막까지 밀어붙이는 연기는 정유미의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것 같다. 

봉준호 감독의 말 한마디에 이 영화를 보게 됐다. “최근 10년간 본 영화 중 가장 유니크한 공포”라는 극찬에 이끌렸다. 영화 본 결과 “유니크한 곡성과 현실판 부부의 믿음” 정도 되겠다. 이 영화의 핵심은 <둘이 함께라면 극복 못 할 문제는 없다> 여기에서 출발한 부부의 세계 속에서 만들어진 심리적 불안감과 관계에 대한 미스테리 스릴러 오컬트의 탈을 쓴 가족 드라마가 바로 이 영화다. 

이 영화의 갈등은 굉장히 현실적이다. 층간소음과 이로 인해 아랫집과의 불편한 관계, 남편 이선균의 단역 배우 일에 대한 불안감, 아내 정유미의 임신한 상태에서 불안한 심리와 그때 찾아온 남편의 몽유병이 우선 눈에 띄는 갈등인데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이로 인해 현실에서 느끼는 공포는 밤만 되면 침입자가 되는 남편이 자신만의 감옥이 되고 두렵고 불안하기만 하다. 제일 섬찟한 것이 사랑하는 사람이 공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세 개의 장

1장 : 행복하고 이상적인 신혼부부처럼 보이는 이선균과 정유미가 있다. 정유미는 임신 중이다. 어느 날, 옆에서 코를 골면서 자던 남편이 자다가 일어나 침대에 걸터앉아 이상한 말을 중얼거린다. “누가 들어왔어” 그날 이후, 잠들면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변하고 깨어나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정유미는 이런 남편이 걱정되는데 무엇보다 태어날 아이를 생각하면 두렵기만하다. 매일 잠드는 순간 시작되는 공포 때문에 점점 피폐해지고 잠들지 못한다. 치료도 받아보지만 이선균의 수면 중 이상 행동은 점점 더 위험해져간다. 그러다 키우던 반려견이 냉동고 안에서 발견되면 1장이 끝난다. 

2장 : 정유미가 출산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선균의 수면장애에 대한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지만 이 부부는 어떻게든 이 힘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가훈을 바라보며 부부가 힘을 합치면 해결 될 것이라는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몽유병은 더욱 악화되고 태어난 딸도 위험해 질까 점점 더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친정엄마가 무당을 데리고 부부의 집을 방문한다. 무당은 남편을 가리키며 귀신에 씌였다고 말하는데 그 귀신을 끌어들인 건 바로 정유미다. 귀신을 쫓아내려면 이름을 알아야 한다며 정유미에게 이름을 알아내라고 한다. 그러면서 남긴 말이 섬뜩하다.

“개 짖는 소리, 애 우는 소리 없이 너랑 단둘이 살고 싶다”고 이야기를 전한다. 무당이 다녀간 뒤, 그 말이 계속 신경 쓰이는데 문득 아래층에 이사 간 할아버지를 떠올리다. 할아버지의 행방을 묻기 위해 아래층에 방문하는데 그때 할아버지의 사망소식을 접하고 이선균에게 씌인 귀신이 바로 아랫집 할아버지라고 의심을 시작한다. 앞서 무속신앙을 믿지 않았던 정유미지만 의심은 점점 확신으로 바뀌고 신경쇠약에 히스테리는 극을 달하고 정유미는 이선균에게 식칼로 위협하며 목에 상처를 낸다.

3장 : 시간이 흘러 이선균은 수면클리닉에서 완치판정을 받고 정유미는 정신병원에서 치료중이다. 퇴원을 앞두고 정유미를 찾아가지만 이미 퇴원하고 연락이 되질 않는다. 혹시 하는 마음에 집에 도착했는데 집안은 온통 부적들이 덕지덕지 붙어있고 그곳에 정유미가 있다.

그리고 준비한 프레젠텐이션을 보여주며 귀신에 씌였다는 증거들을 하나하나 들이밀며 오늘까지 귀신을 반드시 천도시켜 떼어내야 한다고 강요한다. 더 황당한 것은 냉장고에는 아랫집 강아지가 죽어있고, 욕조에는 결박당한 아랫집 할아버지의 딸이 있다. 이선균은 충격에 빠지고 정유미는 드릴로 아랫집 여자를 겨누며 제발 이선균의 몸에서 나가달라고 위협을 가하고 관자놀이에 상처를 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선균은 마치 할아버지가 된 듯한 말투로 몸에서 나가겠다고 선언하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다. 정유미의 눈에는 할아버지가 빠져나가는 장면처럼 보이며 그제야 안심한 듯 쓰러지며 코를 골며 영화가 끝난다. 

결말해석

영화의 엔딩에 대한 해석이 모호하다. 눈에 보이는 엔딩자체는 이선균에게 씌였던 할아버지 귀신이 정체를 드러내면서 떨어져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영화에서 이선균의 직업이 배우였다는 점과 할아버지 성대모사를 하며 흉내를 냈던 밑밥을 생각하면 빙의 당한 척 연기를 한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딱 “무속의 믿음 VS 현실의 이성”의 충돌이다. 할아버지귀신이 정말 이선균에 씌였던 것인지? 직업이 배우인 이선균이 정유미의 공황상태를 끝내기 위해 그럴듯하게 연기를 한 것 인지? 감독이 여러 가지 의도로 모호하게 연출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선균이 연기한 것이 맞다고 7:3정도로 생각이 들지만, 옥의 티처럼 빙의한 이선균이 아랫집 여자 아들이름을 얘기하는 대목에서는 할아버지가 맞나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이선균이 어찌 아랫집 손자의 이름까지 알고 있을 리가 만무해 보인다. 

하지만, 이 결말해석은 무의미하다. 결국 이 영화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건 믿음에 대한 문제다. 부부가 결혼생활 중에 이런 믿음에 대한 난관에 봉착하는 게 얼마나 많은지 우리는 잘 안다. 사람은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정유미는 처음에는 무속을 믿지 않지만, 그럼에도 서서히 무속을 믿기 시작한다. 이 영화에서는 단지 무속이지만, 종교의 믿음일수도 사이비에 대한 믿음일수도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일수도 그 무엇에 대한 믿음일수도 있다. 그리고 그 믿음에 대한 이면에는 정유미의 가정사도 있다고 본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아버지의 존재는 장모의 모습이 투영된다. 어쩌면 이런 믿음은 장모로부터 온 것 일수도 있고 가정을 어떻게든 유지하고 싶은 정유미의 마음은 <둘이 함께라면 극복 못 할 문제는 없다> 이 가훈이 가정을 지키고 사랑을 지키는 믿음이자 집착일수 있다. 

이선균은 지극히 자상하고 자신의 몽유병에 대한 미안함과 같이 이 난관을 이겨내려 하지만 점점 미쳐가는 정유미를 견뎌내기 힘들다. 이 대목에서 대부분의 남편들의 모습이 보인다. 보통 그 자리를 피하고 싶고 외면하고 못 본 척하거나 갈등이 생기며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정유미에 믿음에 부응하려 애쓴다.

결국 부부의 믿음이다. 그것이 부부의 사랑일수도 있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이 다르지만, 위기를 함께 극복해나가는 과정이다. 어떤 것을 믿든 그 믿음을 주면서 영화는 마무리된다. 솔직히 이 믿음에 대해서 “유니크한 곡성”이 연상됐다. 

사람은 누구나 잠을 잔다. 가장 편안해야 할 잠, 편안해야할 집이라는 공간, 사랑하는 남편이라는 존재가 공포가 된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뭘 믿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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