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 1집 – 눈 내리던 겨울밤, 그대와 나

음반 중 만족도가 높은 음반들이 있다. 한때 나에게는 이화 1집이 그랬다. 한동안 맷돌 돌리듯 턴테이블을 돌리다 흠칫 놀라는 경우가 바로 이 앨범이었다. 1980년대 초반 당시 사운드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쓸데없이 고퀄의 반주에 적지 않아 놀랐었다. 특히 베이스라인이 제일 인상 깊다.

통통 튀면서 넘실넘실 너무 기분 좋은 연주를 들려준다. 사실 너무나 갖고 싶었던 앨범이었지만 좀처럼 인연이 없었다. 그래서 오아시스 레코드 유튜브에 올라온 음원으로만 감상하곤 했었다. 물론 그 유튜브도 들어줄 만하다. 앨범 전체를 통으로 올려서 서비스하고 있다. (오아시스는 참 대중가요사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는 확실하다.) 이화 1집을 몇 년을 찾아 헤맸지만, 레이다에 포착도 안 되고 구할 길이 없었는데 LP 카페를 통해 알게 된 지인을 통해 이 음반을 구하게 됐다.

이 앨범의 존재를 알게 된 건 전혀 뜻밖의 인물 최병걸로 시작됐다. 뽕필 충만한 <난 정말 몰랐었네>의 그 최병걸이 맞다. 최병걸의 음악들을 듣다 보면 지금 들어도 시대를 앞선 멋진 편곡들이 있다. <그 사람>, <미소>, <그 마음 하나뿐> 등등 아니 70년대 말에 이런 사운드와 편곡이 우리나라에 있었다고 감탄했었다. 그런데 이런 편곡이 가능했던 인물이 따로 있었으니, 그의 이름이 바로 정성조다. KBS 관현악단 단장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1호 실용음악과 교수님이다. 최병걸에서 정성조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뒤이어 김도향이 등장한다.

투코리안스의 김도향, 국내 CM송의 대부이자 아직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는 인물이다. 김도향은 1970년대 중후반부터 서울 오디오 프로덕션을 설립해 수많은 CM송들을 공장에서 찍어내듯 만들어댔다. 그가 만든 CM송만 3000곡 가까이 된다고 한다. 스크류바, 맛동산, 아카시아껌, 줄줄이 사탕, 삼립호빵 외에 수많은 작업을 했다. 심지어 만화영화 <둘리>의 총 음악감독이기도 했다.

김도향과 정성조의 접점은 영화 ‘밤의 찬가’였다. ‘밤의 찬가’에는 김도향과 마음과 마음의 노래가 수록돼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마음과 마음은 <그대 먼 곳에>를 부른 마음과 마음이 아니다. 이름만 같은 전혀 다른 팀이다. 바로 여기에 <밤의 찬가 2>, <그게 나예요>라는 곡이 있고 이 마음과 마음의 목소리가 바로 여가수 이화다. 가녀린 목소리 한국의 Claudine Longet 같은 이미지다. 예쁘고 손발 오글오글한 창법으로 노래를 불러 호불호가 확실하게 갈릴만한 목소리다.

이화는 김도향이 제작한 CM송에도 분명 수없이 등장한 목소리로 예상된다. 노래를 듣자마자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목소리가 확실하다.

이화 1집에는 뜻밖의 선곡이 들어있는데 김현식의 <눈 내리던 겨울밤>, <그대와 나>, <첫사랑> 세 곡이 수록되어 있다. 김현식 3집에 들어있던 <눈 내리던 겨울밤>은 이화가 제일 먼저 불렀다. 그리고 허스키한 목소리로만 기억되던 김현식의 미성을 들을 수 있는 <그대와 나>는 김현식 1집에 수록되어 있었지만, 히트는커녕 묻혀버린 앨범이기도 한데, 이 곡을 다시 이화에게 주면서 이화 버전의 <그대와 나>가 들어있다.

그리고 김현식 작사 작곡의 <첫사랑>까지 김현식이 누군가에게 자신의 곡을 3곡이나 줬다는 걸 보면 평소 이화와 친분이 두터웠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앞서 소개한 영화 ‘밤의 찬가’에 수록되어 있던 노래들 <그게 나예요>, <밤의 찬가 2>가 들어있고, 이장희의 히트곡 <휘파람을 부세요>,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이장희 동생 이승희가 만들고 이승희 독집 앨범에도 있던 노래 <난 알았네>도 이화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다.

앨범 마지막 곡 건전가요 금과 은의 <즐거운 주말> 빼고 전곡이 물 흐르듯 다 듣게 되는 묘한 앨범이다. 편곡의 힘을 느끼게 되는 앨범들이 있다. 당시에는 철저히 대중들의 외면을 받았지만 40년이 흐른 지금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앨범이라니 이 맛에 예전 음악을 듣게 되고, 그 LP를 찾고, 예전 앨범들에서 보석을 찾아 헤매는 것은 아닐는지? 그리고 이화 1집의 재발매가 꼭 이뤄지기 길 희망한다.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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