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버트 험퍼딩크(Engelbert Humperdinck)

나이 들었다는 것을 언제 느끼나? 관절이 삐거덕거리고 노안이 왔을 때? 세상사에 무덤덤해졌을 때?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음악을 듣다가 불현듯 나이 들었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예전에는 쳐다보지도 않던 음악에 감흥을 느끼고 ‘이게 이렇게 좋았나?’ 새삼 놀랄 때가 있다.

스탠다드 팝이 갑자기 좋아지기 시작했다?

모름지기 젊음의 음악이 있고, 중장년층이 좋아하는 노래들이 있다. 세대 간 듣는 음악은 예전부터 조금씩 달랐다. 20-30대에는 록과 댄스음악들 골고루 다 듣는 축에 속해 있었고 새 앨범들이 나오면 가리지 않고 열심히 찾아 들었는데, 언제부턴가 시들해지고 예전에 듣던 노래들만 듣게 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예전에는 고리타분하고 촌스럽고 식상하게 느낀 음악들이 갑자기 훅하고 들어오는 순간에 “와 이 노래가 원래 좋았나? 아니면 내가 나이가 들었나?” 헷갈릴 때가 있다. 일례로 스탠다드팝이라고 불리는 음악들이 있다. 내 나이보다 한 세대 이상 앞에서 유행했던 음악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유행하고 들려지던 스탠다드 팝들인데 예를 들면 미국 쪽에선 냇킹콜(Nat King Cole),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 페리 코모(Perry Como) 류의 올드팝으로 분류되는 스탠다드 팝들을 하던 이런 양반들이 있었고, 영국 쪽에는 탐 존스(Tom Jones), 잉글버트 험퍼딩크(Engelbert Humperdinck)같은 가수들 음악 말이다.

잉글버트 험퍼딩크(Engelbert Humperdinck)는 누구?

잉글버트 험퍼딩크(Engelbert Humperdinck) 솔직히 이름이 너무 웃겼다. 아니 이름이 왜 이래? 험퍼딩크라니? 나중에 안 사실은 당연히 본명이 아니고 매니저겸 프로듀서인 고든 밀스(Gordon Mills)가 멋져 보이는 예명을 찾아서 지은 이름이 바로 이 이름이었다. 실제로 영미권에선 60-70년대에선 멋스러운 이름이었단다. 이름 바꾸고 성공한 케이스 정도 되겠다. 그런데 이 이름은 19세기와 20세기 초에 독일 작곡가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다. 그러니 독일식이름이고 엥겔베르트 험퍼딩크라고 읽어야 하지만 영어식으로 잉글버트 험퍼딩크다.

본명은 아놀드 죠지 도시(Arnold George Dorsey)다. 그의 가장 유명한 노래는 1967년 발표한 “Release Me”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이 노래가 제일 많이 유명한 곡이었다. 솔직히 어릴 때 이 노래만 듣고는 그저 그런 올드팝 가수로 느꼈고 웃긴 이름도 한 몫 하면서 일절 관심 밖의 가수였다.

활동경력은?

1950년대 초 제리 도시(Jerry Dorsey)라는 이름을 썼다. 색소폰연주자로 나이트클럽에서 경력을 쌓았는데 이때 까지만 해도 적어도 노래에 관심이 있지는 않았다. 1959년 즈음 장기자랑 대회에서 우승하면서부터 노래에 관심을 갖고 레코딩까지 하게 되지만,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그런데 1965년 톰 존스(Tom Jones)의 매니저 고든 밀스(Gordon Mills)를 만나면서부터 인생역전을 경험한다.

실제로 톰 존스와는 친구 사이이면서 영국 대표 스탠다드팝 음악의 쌍벽을 이루며 라이벌 관계처럼 지내기도 했다. 우선 이름부터 바꾸고 영국, 벨기에 등 유럽 전역을 돌면서 노래 경연 대회에 출전하면서 이름을 서서히 알리더니 1967년 인생 곡을 만난다. 바로 그 노래가 “Release Me” 로 영국 차트 1위, 미국 빌보드 4위까지 오른다.

바로 후속곡 녹음에 들어가는데 다음 해 1968년 “A Man Without Love”로 영국 싱글 차트 2위까지 오르며 앨범들을 발표한다. 이때 초기 히트곡들 “Release Me”,“The Last Waltz”,“A Man Without Love”가 빠른 속도로 연속 히트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팬클럽 험퍼딩커스(Humperdinckers)라는 팬덤까지 생겨난다. 그리고 이 노래들은 1960년대 영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노래 중 하나가 된다.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영국보다는 북미 쪽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둬들이기 시작한다. “After The Lovein’”과 “This Moment In Time”으로 차트 성적도 순항하면서 다작 콘서트 연주자로 명성을 얻었고 사운드트랙 잡업까지 이어간다. 이 시기에는 바쁜 녹음 일정에 들어섰는데 유명한 음악가와 작곡가가 작곡한 수많은 시그니처 곡들이 쏟아져 나왔다.

다른 가수의 수많은 히크 곡들을 리메이크하기도 하고 수많은 작곡가로부터 받은 곡들을 쏟아낸 시기다. 실제로 1967년 데뷔 후 2023년까지 발표된 정규앨범만 100장이 넘는다. 1990년대에는 이지리스닝 계열의 음악들이 다시금 유행하면서 라운지 음악들이 부활하는데, 유행이 돌고 돌 듯 험퍼딩크는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50년 이상을 성공적인 가수 활동으로 꾸준히 투어를 진행했었고 전 세계적으로 1억 4천 만장 이상의 음반을 판매했다. 현재도 매년 북미를 순회하면서 유럽, 호주 및 다양한 장소와 행사에서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좋아했던 노래들

솔직히 “Release Me” 한 곡 듣고 ‘내 취향 아니네’라고 느끼고 안 듣다가 뒤늦게 “Quando, Qunado, Quando”를 듣고 이 목소리에 반하게 됐다. 워낙 유명한 곡인데 편곡이 예술이다. 적당한 속도감 있는 템포와 화려한 대규모 오케스트라악단의 반주 참여로 다양한 악기를 적절히 들어볼 수 있는 반주에 더해 잉글버트 험퍼딩크(Engelbert Humperdinck)의 목소리는 마치 이 노래는 작심하고 부른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어떤 재즈 보컬보다 멋지고 수많은 버전이 있지만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버전이 험퍼딩크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베스트 앨범에 수록된 노래를 전체적으로 정주행해서 다 듣는데, 20대에 느끼지 못했던 포근함과 중저음의 멋진 보이스가 무척 매력적이고 고급스럽게 느껴졌다. 특히 초기 히트 곡 중에서는 “The Last Waltz”, “A Man Without Love”는 가사며 멜로디며 목소리 톤까지 어느 하나 나무랄 데가 없을 만큼 훌륭했다. 사실 이 곡들을 듣고 좋아하는 내 모습에 조금 당황했고 나이 들었나 싶을 정도였다.

또 한 곡을 더 추천하자면 1972년에 발표된 [In Time] 앨범의 동명의 타이틀곡 “In Time”도 좋다. 델라 리즈 (Della Reese)의 “Serenade”와 비슷한 멜로디를 지니고 있어 항상 같이 듣게 되는 노래다. “In Time”은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서 겪는 어려움을 조금 우울한 목소리로 부르지만, 시간이 아무리 오래 걸리더라도 결국 당신은 내 사람이 된다는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결국, 시간의 문제라고 노래한다.

기승전결이 확실한 파워풀한 보컬의 스탠다드팝의 클래식처럼 느껴진다. 다른 곡도 들어보면 스타일이 확고하다. 이런 노래가 좋아지는 걸 보면 확실히 나이 듦을 느낀다. 하지만 턴테이블에 LP판을 걸고 들어보면 좋은걸 어쩌겠나?

사람은 경험치가 쌓이면 앞서 보지 못했던 것들이 뒤늦게 보이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들리기도 한다. 원래 발표될 때 반짝이던 노래를 모르고 지나치기도 하고 그래서 나중에 빛나는 노래들도 있고 역주행하는 경우도 생기고 듣는 사람의 경험치가 작용해 때로는 뒤늦게 생명력을 갖는 경우도 많다. 되짚어 보건데 많은 노래가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다 뒤늦게 와서 꽂히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겠는가? 음악도 결국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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