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정 Vinyl

노래는 주인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가수가 노래를 발표하는 순간 그 노래를 부른 가수뿐 아니라 작사-작곡-편곡, 세션부터 프로듀서까지 수많은 손을 거쳐 발표된다. 하지만 그 노래가 사랑을 받으면 그 노래는 더 이상 그 곡을 부른 가수의 노래가 아니고 듣고 그 노래를 사랑하는 청자의 노래가 된다. 그 노래에 얽힌 추억까지 그 노래를 기억하게 만드는 모든 순간이 청자와 팬들의 노래가 되는 것이다. 노래의 주인은 그런 의미에서 가수를 넘어서 그 노래를 듣는 모든 이들의 노래가 된다. 수없이 많은 노래가 발표되는 사랑받고 잊힌다. 어떤 노래를 끊임없이 사랑받고 들려지고 불러지는 호사를 누리지만 어떤 노래는 발표 때 사랑받다 조용히 잊히기도 한다. 때로는 뒤늦게 다른 누군가가 리메이크하면서 알려지게 되는 경우도 많다. 유일한 정규앨범 정인정 Vinyl 이야기.

정인정, 본명은 정명진이다. 1970년생이고 인하대 불어불문학과에 출신으로 예쁜 외모와 168cm의 당시기준으로는 큰 편의 미모의 가수였다. 1991년 15회 MBC 대학가요제에서 출전 은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그리고 딱 한 장의 앨범발표하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인하대 노래동아리 ‘팝뮤직’ 멤버로 활동하다 대학가요제에 출전했는데 본선에서 정명진 본명으로 출전해 “나는 언제나 그대의 나그네”로 은상을 수상하며 관계자에 눈에 띄어 가수 데뷔 기회를 잡은 케이스였다. 미모는 물론 노래실력까지 겸비했었고 2년 동안 데뷔 앨범을 준비했다. 이 과정에서 예명으로 정인정으로 바꾸고 활동했는데, 모 방송에 나와 앞으로 해도 정인정 뒤로해도 정인정 이런걸 멘트라고 날렸었다. 

첫 앨범이자 유일한 정규앨범은 1993년 1월 발표됐는데 총 10곡을 수록했고 LP Side A는 심상원, Side B는 작곡가 신재홍의 곡들로 채워져 있었다. 정인정은 직접 작사에도 4곡에 참여했는데 작사자 이름으로는 본명인 정명진을 사용했다.

앨범은 전반적으로 경쾌한 팝스타일의 전형적인 90년대 스타일의 팝사운드를 지향한 앨범이었다. “우리가 만난건”이 타이틀곡이었고, 후속곡으로 “이젠 늦었어”가 후속곡으로 사랑을 받았었다. 앨범발매하고 바짝 TV와 라디오를 통해 활동을 했는데 맑고 고운 목소리가 매력포인트로 젊은 층의 인기를 끌었고, 당시 기억하는 분들에게는 추억의 이름으로 남아있다.

활동 당시의 시원시원한 외모와 미인상으로 인기를 끌 정도였는데 아쉽게 두 번째 앨범은 더 이상 없었다. 안타깝게 “우리가 만난건” 이곡이 원히트원더로 그치고 말았다.  정인정 Vinyl 1년에 한두번 정도 듣는것 같다. 아쉽게 유일한 정규앨범이지만 누군가가 계속 생각날 때 듣게 되는 앨범은 음악이 생명이 다한것이 아니고 누군가의 추억으로 남아있는 앨범이다.

90년대 여성 파워보컬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3명 정도 있다. 소찬휘, 김현정, 박미경이 생각나는데 이중에 박미경은 김창환 사단에 합류하면서 데뷔곡 “민들레 홀씨되어”와 180도 달리 여성댄스가수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유같지 않은 이유”, “이브의 경고”,“넌 그렇게 살지마”등 댄스곡들로 정점을 찍었다. 그리고 1996년 박미경 3집이 발표되는데 타이틀곡은 “아담의 심리”였다.

그런데 앞선 1,2집과는 달리 이 앨범에서 사랑받은 노래는 따로 있었으니 발라드 곡 “기억속의 먼 그대에게”라는 곡이 오히려 타이틀보다 더 사랑을 받았다. 이 노래는 이제는 박미경의 스테디셀러로 남았고 이후 박효신을 비롯해 여러 후배들이 리메이크한 박미경의 대표곡이 됐다.

이 노래는 작곡가 신재홍의 곡으로 이미 정인정의 정규앨범에 “내게 소중한 그대에게”라는 제목으로 발표했었지만 발표 당시 잘 알려지지 않은 Side B의 첫 번째 트랙정도였고 타이틀도 후속곡도 아니었다. 재미있는 것은 정인정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가사는 정인정 본인이 직접 작사를 했었는데, 박미경이 발표할 당시 가사를 바꾸게 되는데 바뀐 가사는 프로듀서 김창환이 직접 쓴 가사였다. 원작곡가인 신재홍이 정인정 앨범에 들어있던 이 노래가 분명 아쉽고 아까웠을 것이다. 그래서 가사도 바꾸고 편곡도 더욱 공을 들여 새롭게 변화를 시도하며 박미경 앨범에 수록하게 된 것이다. 

정인정과 박미경 노래를 비교해 들어봐도 재미있을것 같다. 작곡가 신재홍의 곡들을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세련된 멜로디와 우수에 찬 묘한 멜로디라인은 거의 한국의 데이빗 포스터같은 느낌이다. 조정현 “슬픈바다”,”그 아픔까지 사랑한거야”,원미연 “이별여행”, 임재범 “이 밤이 지나면”,”사랑보다 깊은 상처”,”너를위해”, 이현우 “슬픔속에 그댈 지워야만해”, 에스더”송애”,핑클”블루데이”, 애즈원”원하고 원망하죠”, 박효신 “좋은 사람”,”그곳에 서서”, 양파 “다알아요” 취향도 취향이지만 신재홍 노래만이 갖는 아이덴티티가 분명있다. 사실 이 외에 수많은 노래들이 있지만 히트를 못한 곡은 또 얼마나 많았겠나?

가요나 팝, 대중음악을 비롯한 세상 모든 노래들은 그 노래를 처음 불렀던 오리지널가수보다 뒤늦게 리메이크하거나 재해석하면서 새롭게 만들어 노래의 생명을 불어넣는 경우는 수없이 많다. 노래의 생명은 그래서 유한하다. 이미 발표한 노래가 언제-누가-어디서-어떻게 다시 불릴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노래는 주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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