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업걸(Pin-up Girl)이라고 있다. 예전 영화를 보다 보면 비키니를 입고 성적인 매력을 어필하고 있는 여성의 사진이나 그림을 막사나 관물대에 붙여 놓은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20세기 초반의 유명 여배우들은 거의 대부분 자신의 성적 매력을 어필하는 사진과 그림들을 다수 만들어냈는데, 2차 세계 대전 당시 전쟁에 동원된 미군 병사들의 막사의 벽이나 기둥에 이런 여배우들의 사진이나 그림을 붙여 놓았다. 천으로 된 막사 벽과 나무로 된 막사 기둥에 붙여 놓을 때 흔히 보급된 핀을 사용했기 때문에 핀업(Pin-up)이라고 부르것에서 유래했다. 대표적인 유명배우로는 줄리 런던(Julie London),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 베티 그레이블(Betty Grable)이 있다.
이중에서도 줄리 런던(Julie London)은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걸쳐 재즈 앨범을 발매하는 동시에 성공적인 연기 경력을 유지한 미국 재즈 싱어였다.
줄리 런던(Julie London)은 누구?
줄리 런던(Julie London)의 어머니가 전문적으로 노래를 하던 싱어였고 빌리 헐리데이(Billie Holiday)를 가장 존경했다고 한다. 부모가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불과 3살 때 첫 공개 공연을 했었다. 그녀가 14살 때 캘리포니아 헐리우드로 이주하면서 지역 나이트클럽에서 재즈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아쉽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10대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나이트클럽에서는 더 이상 노래를 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시절부터는 고급 의류 매장에서 ‘엘리베이터 걸’로 일을 하다가 탤런트 에이전트의 눈에 띄어 계약까지 체결하게 된다. 이 때 에이전트는 전형적인 미국풍 글래머 소녀로 타고난 금발에 크고 파란 눈과 놀라운 몸매를 가지고 있어서 군중 속에서도 눈에 확 띄었다고 한다. 마치 30년대 최고의 여배우였던 베티 데이비스(Betty Davis)의 젊은 시절을 보는 것 같았다고 한다.
또, 이 당시 에스콰이어 잡지의 사진작가 헨리 왁스먼을 만났고 1943년 잡지에 실린 그녀의 사진을 촬영했는데, 이 사진으로 제2차 세계대전 중 핀업걸(Pin-Up Girl)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1944년 <Nabonga>라는 영화에서 줄리 런던(Julie London)이라는 이름으로 처음으로 영화데뷔하게 된다. 1950년까지 5편정도의 영화에 출연했는데 돌연 배우 잭 웹(Jack Webb)과 결혼을 하며 결혼생활에 집중하며 영화촬영은 중단한다. 이때 두 딸을 출산했는데 잽 웹(Jack Webb)과는 1954년 이혼한다.
이혼과 함께 1955년 영화에 출연하면서 경력을 다시 시작한다. 그리고 미래의 남편이 될 바비 트로프(Bobby Troup)를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음악적 커리어를 쌓아가게 된다. 바비 트로프(Bobby Troup)는 재즈 스탠다드 넘버 “Route 66”를 작곡한 재즈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다. 개인 파티에서 비공식적으로 줄리 런던이 부른 노래를 듣고 그녀가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다고 확신하고 음반업계 인사를 초대해 쇼케이스를 준비했다. 사실 줄리 런던(Julie London)은 심각한 무대 공포증이 있었지만 리버티 레코즈(Liberty Records) 사장의 눈에 띄어 계약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줄리 런던(Julie London)은 여성 목소리 중 가장 낮은 음을 내는 여성 가수 콘트랄토(Contralto) 음역대의 보이스였다. 남성의 테너파트와 거의 겹치는 음역대를 지닌 목소리였고 이것이 먹혔다고 봐야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 낮은 여성 음역의 목소리를 섹시하게 받아들였고, 친밀하게 느꼈다. 실제로 줄리 런던의 목소리에 대한 언급으로 “일부 가수는 군중에게 연설하는 것처럼 노래하고, 일부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바에 있는 것처럼 노래한다. 하지만 줄리 런던은 당신과 함께 한 방에 있는 것처럼 노래한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의 외모에서도 엄청난 마케팅 잠재력을 봤다.
줄리 런던(Julie London)노래들 중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곡중에 “Love Letters”를 좋아했다. 이 스탠다드 재즈 넘버는 수많은 가수들이 재해석해서 불러줬지만 줄리 런던(Julie London)의 분위기만큼은 최고다.
줄리 런던(Julie London) 앨범들
1955년 <Julie Is Her Name>을 리버티 레코즈(Liberty Records)에서 발표한다. 줄리 런던의 관능적인 글래머와 핀업걸의 매력을 한껏 살려 당시로는 도발적인 앨범커버로 발표됐다. 오프 숄더 드레스를 입은 그녀의 앨범커버 사진은 그녀의 가슴으로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게 절묘하게 편집했다. 너무 꽉 조여서 언뜻 보기에 그녀는 상반신을 벌거벗은 것처럼 보였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1956년에는 아예 대놓고 <Calendar Girl>이란 앨범커버를 내놓았는데 당시로는 파격의 연속이었다. 심지어 앨범을 노래하고 편집하고 음악 자체를 만드는 것보다 사진을 찍고 앨범커버 만드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할 정도였다.
1958년 <Julie Is Her Name, Volumn 2>에서는 검은색 하이넥 스웨터와 같이 수수한 옷을 입었을 때에도 딱 맞는 핏과 조명 및 사진 자르기와 보정으로 상상의 여지가 남게 가슴으로 시선이 쏠리게 만든 앨범커버로 제작됐다. 음반을 발표할 때마다 섹스 심볼 이미지로 만으로 묘사됐다.
사실 음악적으로 평가를 받아야 정상이지만 우선 많이 팔리는 것이 우선인 시대였다. 실제로 줄리 런던(Julie London)은 헌신적인 아내이자 대가족의 어머니로서 가정에 굉장히 헌신적인 인물이었다. 연기와 노래하는 이미지와는 가정에 대한 사랑은 상충되는 인물이었다. 1959년 자신의 음악적 후원자인 바비 트루프(Bobby Troup)와 결혼한다.
사실 음악적으로도 줄리 런던(Julie London)은 무대공포증이 생각보다 심각했다. 전체적으로 자신감 부족은 청중 앞에서 노래하는 것보다 녹음실에서 자신을 표현하며 노래하는 것을 더 선호했다. 지금말로 노래반 소리반의 중저음의 여성보컬스타일이다.
줄리런던(Julie London)은 활동 경력 기간 32장의 앨범을 녹음했다. 그녀의 가장 확실한 전성기는 1955년, 56년, 57년에 3년 동안 가장 인기 있는 여성 보컬리스트로 빌보드지에서 선정했다. 1955년 Liberty Records가 설립될 때 줄리 런던(Julie London)은 이 레이블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레코즈 설립에 큰 역할을 했기 때문에 리버티 걸(Liberty Girl)이라는 별명도 붙어있을 정도였다.
줄리 런던(Julie London)을 탄생시킨 시그니처 송은 단연 “Cry Me A River”다. 원래는 엘라 핏제랄드(Ella Fitzgerald)가 영화 <Pete Kelly’s Blues>에 수록곡으로 부를 예정이었지만 영화에서 빠지면서 줄리 런던이 데뷔앨범에서 부르게 된 곡이다. 이 곡을 작곡한 아서 해밀턴(Arthur Hamilton)은 줄리 런던의 고등학교 동창이기도 했다.
줄리 런던(Julie London) 평가
수줍음이 많고 내성적인 가수였는데 자신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없는 편이었다. “저는 좋은 가수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 목소리는 아주 작은 목소리일 뿐 마이크를 가까이에서 사용해야 합니다.”라고 묘사한 적도 있다. 그래서 듣기에 더욱 친숙하게 들리고 무엇보다도 이 노래는 기타와 베이스만으로 세련된 반주를 선보이며 고요한 밤에 듣기에 가장 매혹적인 노래 중 하나로 남았다.
줄리 런던의 목소리에는 빌리 헐리데이(Billie Holiday)와 페기 리(Peggy Lee)를 모두 포용하는 전통적이고 스탠다드 재즈에 어울리는 목소리다. 줄리런던의 목소리가 옥타브 측면에서 제한되어 있었지만 사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때로는 거의 입을 여지 않고 절제되고 가식 없이 전달되는 목소리는 대중에게 진실 되게 울려 퍼졌다. 전정성과 절제된 열정을 동시에 풍겼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마치 슬로모션으로 노래하는 것 같았다.
스탠다드 넘버들을 수없이 리메이크 했지만 단번에 반한 곡중에 한 곡이 바로 토니 베넷(Tony Bennett)이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o”다. 고혹적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목소리다.
줄리 런던의 라이브로 연주하는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었다. TV에 출연했을 때도 밴드 앞 의자에 앉아 거의 정적으로 노래할 뿐이었다. 그녀의 만들어진 이미지와 실제는 굉장히 언발라스하고 쇼비즈니스 측면에서 봤을 때는 정반대의 이미지를 동시에 지녔다. 핀업걸로 시작된 경력과 영화 속 이미지는 섹스 심볼로 여겨졌고 재즈 싱어로 발표된 앨범 커버 또한 그렇게 소비됐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노래들은 굉장히 스탠다드하고 깊이 있고 심금을 울리는 목소리를 지녔다. 레코드로 만나보면 전혀 질리지 않고 언제 들어도 아름답고 탁월한 재즈 보컬임을 느끼게 된다. 20세기 초 가장 영향력 있는 스타일리스트 중 한 명이었다.
줄리 런던의 녹음 경력은 1969년에 끝났고, 이후에는 연기를 다시 시작했고 미국 TV병원 드라마 시리즈 <Emergency>에 출연 수석 간호사 딕시 맥콜(Dixie McCall)역으로 출연했다. 줄리 런던은 16살부터 헤비스모커였다. 한때는 하루에 세 갑이 넘는 담배를 피운 적도 있었다. 1995년 뇌졸중을 겪었고 이후 건강이 좋지 않았다. 1999년 말 폐암 진단을 받았지만 체력이 약해 치료를 포기했고 2000년 사망한다.
쳇 베이커(Chet Baker)의 “My Funny Valentine”을 줄리 런던(Julie London)이 재해석 했는데 이 버전도 굉장히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