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노 바넬리(Gino Vannelli) Story

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2천 만장 이상의 앨범을 판매한 캐나다 출신 가수 지노 바넬리(Gino Vannelli)는 그 이름에 비해 국내에서는 그리 유명한 가수는 아니다. 팝, 록, 어덜트 컨템포러리, 알앤비, 소울, 펑크, 재즈, 퓨전재즈, 클래식까지 다양한 음악적 변화를 추구한 뮤지션이기도 하다. 처음 그의 음악을 들었던 것은 1993년 성음에서 발매한 <All My Loving Vol.3> 컴필레이션 앨범에서였다. 유독 좋은 노래들이 많았고 그중에 지노 바넬리(Gino Vannelli)의 “I Just Wanna Stop”이 수록되어 있었다. 백인이지만 소울풀한 목소리와 깔끔한 편곡과 부드러운 사운드까지 귀에 쏙 들어오는 팝송이었다. Gino Vannelli Story.

성에서 알 수 있듯이 집안이 이탈리아계로 캐나다 퀘벡주 몬트리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트럼펫 연주자였다. 지노 바넬리(Gino Vannelli) 어린 시절부터 버디 리치(Buddy Rich)를 좋아했고 그와 같은 드러머가 꿈이었고 고등학교 시절 스쿨밴드에서 드럼을 연주했었다. 이미 17살의 어린 나이에 캐나다 RCA레코드와 계약을 체결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고 대학에 진학하며 음악을 전공하며 음악 이론에 대해서도 실력을 쌓아나갔다.

1972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사한다. 당시 아무것도 없이 미국으로 온 지노 바넬리(Gino Vannelli)는 생각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았고 레코드사와 계약은커녕 얼마 지나지 않아 파산까지 한다. 어떻게든 레코드회사와 계약을 따내는 방법밖에 없었고, 실제로 트럼펫터 허브 알퍼트(Herb Alpert)가 사장으로 있던 A&M 레코드에 찾아가 몇 시간 동안 허브 알퍼트가 나타나기만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리다 허브 알퍼트가 나타나자 경비원들에게 쫓기는 가운데 그에게 달려가 데모 테이프를 건넸고 그렇게 A&M 레코드와 계약을 따내게 된다.

1973년 여름에 데뷔 앨범 <Crazy Life>를 발표하는데 백인이지만 흑인음악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당신 흑인음악인들만 출연했던 TV 댄스 프로그램 [Soul Train]에 출연한 최초의 백인 중 한 명이 된다. 1974년에는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와 함께 투어를 돌 정도로 인지도가 높아졌다.

그리고 두 번째 앨범 <Powerful People>을 발매하고 첫 번째 메이저 히트곡인 “People Gotta Move”가 좋은 반응을 얻기 시작한다. 이때까지 백인이지만 그의 음악적 뿌리가 흑인음악에 있음을 드러냈고 흑인백인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곡은 처음 발표된 버전보다 뒤늦게 라이브 실황에서 선보인 버전이다. 사실 이 <Powerful People>앨범에서 개인적으로 좋아한 곡은 “Jojo”라는 곡으로 약간은 재지한 느낌의 발라드곡으로 세련된 편곡과 편안한 목소리가 매력적이다.

1976년 A&M 레코드를 통해 앨범 <The Gist Of The Gemini>를 발표했고, 1978년 가장 성공적인 앨범 <Brother To Brother> 발표하면서 “I Just Wanna Stop”가 빌보드 4위, 캐나다 1위, 그래미 후보까지 오른다.

이 앨범으로 캐나다 그래미로 불리는 주노 시상식에서 최우수 남성 보컬상을 수상했고, 앨범은 최우수 프로덕션 부문을 받기도 했다. 1978년 8월의 싱글로 지금가지 그의 가장 큰 히트 싱글로 남아있다. 이 당시 지노 바넬리의 음악은 재즈팝에 기반한 음악 스타일이었다. 어쩌면 AOR에 조금 더 가까운 스타일이었다.

1974년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가 그의 최전성기임은 확실했다. 80년대 내내 몇 장의 앨범을 더 발표하면서 “Living Inside Myself”, “Hurts To Be In Love”, “Wild Horses” 같은 히트곡들도 꾸준히 나오는 성공에도 불구하고 라이브 무대에만 가끔 오를 뿐 별다른 활동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1990년대를 맞이하면서 그의 음악적 뿌리가 재즈 팝에서 출발했음을 보여주는 어쿠스틱 재즈 음반 <Yonder Tree>,<Slow Love> 두 장의 앨범을 더 발표하면 음악적 변신을 시도한다.

이후에는 고인이 된 아버지에게 헌정한 노래 “Parole Per Mio Padre”를 슈베르트의 전통 클래식 스타일로 작곡해서 발표하는데, 이 노래를 로마 바티칸에서조차 관심을 보이며 그에게 현대 클래식 음반으로 녹음해 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한다. 특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개인적인 요청으로 바티칸에서 공연까지 하게 된다. 지노 바넬리 음악 활동 중에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이기도 하다.

은퇴 전까지 지노 바넬리는 미국 오리건주에 살면서 음악 교사를 했고 2024년에도 북미 전역에서 공연 일정이 잡혀있다.

어떤 가수나 그룹의 음악적 변화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우선 뮤지션의 나이가 들면서 생각과 사고의 변화도 있겠고, 시대의 변화도 있을 것이고 주변 환경의 변화 등 다양한 이유로 음악이 변화한다. 생각의 변화와 그걸 표현 방식의 변화처럼 굉장히 자연스러운 변화다. 한 인물의 일생을 들여다봤을 때 변하지 않는 것 또한 높이 평가하기도 하지만 결국 더 나은 쪽으로 변화하기도 제자리걸음을 하는 경우도 분명 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듯이 이런 변화와 음악적 변신은 당연한 결과다.

흑인음악에 뿌리를 둔 캐나다 백인 가수에서 재즈팝으로 다시 현대 클래식 음악까지 다양한 음악을 표현한 지노 바넬리(Gino Vannelli)다. 당연한 얘기지만 모든 음악인은 “오늘부터 난 이런 음악 할 거야.” 칼로 두부 썰 듯이 음악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실제로 장르에 구애받지도 않는다. 그걸 나누는 것은 편의상 듣는 대중과 평론가뿐이다. 그래야 이해하고 카테고리로 묶기 쉽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노 바넬리(Gino Vannelli)는 하나의 카테고리에 묶이지 않는 다양한 음악을 선보였던 인물이고 좋은 곡들은 남긴 음악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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