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백호 Story

태어나서 최백호 노래를 처음 들어본 건 1994년 대학 1학년 때 과 동기랑 노래방에 갔을 때다. 그 친구가 부른 노래가 “영일만 친구”였다. 같은 나이에 노래 취향은 한 세대 위인 그 친구는 최백호 노래를 무척 좋아했다. 군입대를 앞둔 친구에게 “입영전야”를 불러주질 않나? 생일 맞은 친구에게는 가람과 뫼의 “생일”을 불러주는 모습에 동갑에게서 세대 차이를 느꼈었다.

아니 도대체 이런 노래들은 어디에서 듣고 부르는 것인지? 삼촌이나 큰 형이 불렀을 법한 노래들이었고 확실히 그 친구의 노래 취향은 나보다 앞서 있었다. 그때 최백호 노래를 처음 들었고 그 강렬한 이름만큼이나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그 뒤에 들었던 노래가 1996년 즈음 “낭만에 대하여”라는 곡이었다. 사실 발표된 것은 1994년이었지만 1년 반이상 별 반응이 없었는데 입소문을 탄 것은 드라마 ‘목욕탕집 남자들’에서 연기자 장용이 극 중에서 부르게 되면서 대박이 났다. 하지만 그 노래의 가사며 분위기가 당시 20대 초반의 정서와는 동떨어진 느낌이었다.

최백호는 1950년 4월 부산 기장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제2대 국회의원을 지낸 최원봉이었고, 초등학교 교사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런데 6.25 전쟁 당시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최백호가 태어난 지 5개월 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할아버지가 아주 부농이었는데 최백호가 태어나자마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애비 잡은 자식이라고 할아버지의 노여움 샀고, 어린 시절부터 친가와 연을 끊고 지냈다고 한다. 그 시절 아버지 없는 집안 형편은 말도 아니었고 최백호 가족들은 생활고에 시달렸다고 한다.

학창시절 최백호는 마라톤 유망주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 당시 몸을 혹사하며 대회에 출전하다 몸이 망가져 선수 생활을 접게 된다. 최백호의 원래 꿈은 마라톤 선수도 가수도 아니었고 미술에 관심이 많았다. 그림을 잘 그렸던 최백호는 미대를 진학하려고 재수를 했지만, 스무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시며 미대 진학은 포기한다. 바로 군대에 입대 하는데 이마저도 군 복무 중에 결핵에 걸려서 의병 제대를 했다. 제대 후 부산 서면에서 친구 매형이 운영하는 라이브 클럽에서 노래할 기회를 얻게 되고 허스키한 목소리와 짙은 음색으로 인기를 서서히 얻게 되고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로 인기를 얻은 가수 하수영과의 인연으로 서울로 상경해 가수로 데뷔한다.

1976년 12월 31일 데뷔곡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를 발표하며 가요계에 이름을 알리게 된다. 이 노래는 어머니를 추모한 곡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세 자녀를 키우기 위해 교사직까지 내려놓고 장사하며 고생하신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그 심정을 가사로 쓴 노래였다. 얼핏 들으면 떠나는 연인을 그리워하는 사랑 노래처럼 들리지만, 어머니가 10월에 돌아가셨고 가을이 아닌 눈이 내리는 겨울에 떠나 달라는 가사는 이런 사실을 알고 들으면 더 애절하고 먹먹해지는 가사다.

최백호는 허스키한 탁성과 쓸쓸함이 묻어나는 가사로 팬들을 사로잡으며 데뷔 1년 만에 톱가수 반열에 오른다. 연이어 “입영전야”,“그쟈”가 수록된 앨범을 잇달아 내며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최백호는 “영일만 친구”라는 곡으로 TBC 방송가요대상 남자가수상을 1983년에는 “고독”이라는 곡으로 MBC 10대 가수상, KBS 가요대상 남자가수상을 받으며 정상에 올랐다.

그런데 8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인기는 하향곡선을 긋기 시작했는데 이후 다수의 앨범을 발표하는데 반응은 생각보다 시들했다. 생활을 위해 하루에도 몇 개씩 유흥업소를 전전하며 노래했지만, 심신은 날로 지쳐만 갔다.

1987년에는 절에 들어가 가수로서의 마지막 승부를 걸고 작곡에 전념했지만 1988년에 발표된 <시인과 촌장>의 성적은 그리 좋지 못했다. 이후 1990년 새로운 꿈을 찾아 미국행을 결심하고 넘어가지만, 그곳에서의 생활도 녹록하지 않았다. 미국에 있는 동안 LA에서 한인방송 DJ로 활동했다. 하지만 몸과 마음이 힘든 건 매한가지였으며 2년 뒤 귀국을 결심하고 돌아온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곡을 하나 만드는데 최백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곡이 탄생한다. 그 곡이 바로 “낭만에 대하여”였다. 이 노래가 발표된 것은 1994년이었다. 발표 후 하루에 평균 한 장도 채 팔리지 않던 실패작이었는데 1996년 어느 날, 갑자기 대량 주문이 몰려 35만장의 판매 기록을 세우며 최백호에게 제2의 전성기를 안겨준 노래가 됐다.

김수현 작가의 KBS 드라마 <목욕탕집 사람들>에 출연한 연기자 장용이 극 중에 “낭만에 대하여”를 부른 것이 열풍의 시작이었다. 지금도 최백호는 김수현 작가를 은인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이 노래는 미국에서 돌아온지 얼마 안 됐을 때 집에서 기타를 튕기다 유리에 비친 주방에서 음식하고 설거지하는 아내의 모습과 예전 짝사랑 하던 그녀도 지금은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영감이 떠올라 만든 노래였다. 시처럼 서정적인 가사와 탱고 리듬의 조화가 매력적인 노래로 가사와 곡을 만드는데 2시간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데뷔와 함께 찾아온 전성기를 지나자 힘든 역경의 시기가 찾아왔고 계속되는 앨범 실패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래를 만들고 불렀기에 가능한 재기의 시간이었다. 당시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던 이 노래의 진가는 20대에서는 절대로 알 수 없었다.

나이가 들고 30대 중반이 되어 이 노래를 우연히 다시 듣게 되는데 20대에는 미처 느껴보지 못했던 감성과 가사가 그제서야 들리는 곡이었다. ‘아니 이 노래가 원래 이렇게 좋았나?’ 세월이 지나니 노래의 맛이 달리 느껴지고 김치가 익어가듯 노래도 익어간다는 것을 알게 해준 노래였다. 30대가 되어서야 드디어 최백호의 팬이 될 수 있었다.

2011년 기타리스트 박주원 2집 앨범 <슬픔의 피에스타> 수록곡 “방랑자”이 피처링으로 참가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음악적 성격을 기존의 트로트 풍에서 라틴 재즈, 보사노바풍으로 바꾸는 시도를 한다. 이때 후배들과의 작업에서 큰 영감을 얻어서 2012년 10월 복귀 앨범 <다시 길 위에서> 12년 만에 발표하는데 팝재즈, 누에보 탱고, 집시 스윙 등 지금껏 선보이지 않았던 음악들을 적극 수용한 앨범이 탄생한다.

최백호 음악 인생의 또 다른 터닝포인트가 된 계기다. 최백호는 본인이 만든 곡이 아니면 잘 부르지 않기로 알려져 있는데, 이 앨범에서는 이례적으로 실력 있는 후배 작사-작곡가들이 앨범에 참여했다. 아름다운 멜로디와 함축적 노랫말, 고급스러운 편곡이 어우러져 가요의 품격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기타리스트 박주원, 재즈 보컬 말로, 하모니카 연주자 전제덕 등 젊은 뮤지션들의 보탠 멜로디도 근사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건 최백호 보컬의 힘이다.

이후 젊은 음악인들과의 교류는 더욱 활발해지는데 2013년 10월에는 작곡가 겸 프로듀서 에코브릿지가 만들고 최백호가 부른 “부산에 가면”을 발표한다. 2014년 아이유와의 듀엣곡 “아이야 나랑 걷자”로 이어졌다. 이 시기 발표된 거의 모든 앨범을 좋아했다. 특히 “부산에 가면”과 “바다 끝”은 한동안 차에서 얼마나 들었는지 모른다.

데뷔 40년을 기념하기 위해 발표한 <불혹>은 정말 근사한 앨범이다. 과거의 히트곡들과 새 노래를 더해 발표한 웰메이드 앨범이며 “낭만에 대하여”,“내 마음 갈 곳을 잃어” 등 예전 노래를 재해석했고, 새로 발표한 “바다 끝”도 수록되어 있다.

이 앨범은 이미 2013년에 발표한 “부산에 가면” 작업을 함께 했던 에코브릿지가 프로듀싱을 맡았다. 당시 에코브릿지가 만든 곡을 최백호에게 피처링으로 참여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이뤄진 만남이었다. 실제로 최백호는 에코브릿지와 음악 궁합이 잘 맞았고 이 친구 음악적으로 뛰어났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2020년에는 김현철이 최백호에게 손을 내밀었다. 김현철은 존경하던 선배들 최백호, 정미조, 주현미와 함께 만든 <Brush> EP앨범이다. 싱어송라이터 정밀아의 곡 “우리들의 이별”을 최백호가 불렀다.

일흔을 기념하는 정규앨범을 2019년에 발표한다. 노래 대부분은 최백호가 직접 작사-작곡하여 동시대를 살아온 아날로그 세대의 삶이 앨범에는 곳곳에 녹아있다. 역시 젊은 뮤지션의 협업도 이뤘고 편곡의 세련된 질감을 만들어냈다. 앨범 발매와 때맞춰 투어 콘서트도 가졌는데 나이 일흔에 발표한 앨범과 투어라니 이런 힘은 어디서 나올까? 거기에 더해 이것이 끝이 아니라 팔순, 아흔에도 꾸준히 앨범을 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어쩌면 이런 행보는 스탠다드 재즈보컬 토니베넷(Tony Bennett)이 연상된다.

토니 베넷의 행보가 겹치는 이유는 2023년 1월에 발표한 앨범 <찰나>에서 명확해 졌다. 96세에 사망하기 전까지 토니베넷도 수많은 후배들과의 장르불문 협업과 콜라보앨범을 발표하며 공연을 하지 않았던가?

<찰나>에서는 정미조, 타이거JK, 콜드, 죠지, 지코, 정승환 등 젊은 뮤지션들과 함께하는 새로운 장르에 대한 도전이었다. 나이가 들면 사람은 늘 익숙하고 잘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최백호는 이런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 노래도 장르가 달라지면 호흡부터 발성 모든 창법도 달라져야 하는데 이런 변화가 눈에 띈다. 어떤 곡에서는 파워풀하고 신나는 리듬이 붙으니 그루브를 타며 설레임이 더해진다. 특히 죠지와 함께한 “개화”는 EDM색조의 화려한 사운드에 최백호의 목소리가 이렇게 잘 녹아 든 것에 조금은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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