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걸 Vinyl

노래 한 곡으로 그 사람의 음악인생을 평가하기 애매한 경우가 있다. 대중적인 히트곡과는 달리 그의 수많은 작품들과 곡들은 시대를 역행해 지금 들어도 굉장히 세련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를 세상에 알린 노래는 트로트곡 “진정 난 몰랐었네”였다. 사람들은 이 노래만 기억한다. 38살이라는 짧은 삶을 살다간 최병걸에 대한 이야기다. 이 노래는 그가 발표한 노래 중에 가장 이질감이 느껴지는 곡이고 가장 최병걸답지 않은 노래였다. 오랜 무명기간과 반짝 스포트라이트이후 사람들에게 잊혀진 가수가 바로 최병걸이고 반드시 재평가 받아야 될 가수다. 최병걸 Vinyl.

원로 기타연주자인 아버지 최용익의 영향을 받아 어릴 때부터 음악에 소질이 있었다고 한다. 처음 가수로 무대에 서기 시작한 것은 그의 나이 21살 때인 1971년 혼성듀엣 ‘찹스틱’으로 활동을 시작하면서다. 1972년 명동 코스모스 살롱에서 통기타를 치며 노래하다. 같은 건물에 있던 클럽 마스터에 눈에 띄면서 한 밴드에 합류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정성조와 메신저스>였다. 그룹 “메신저스”를 이끌던 정성조에게 픽업되어 그룹보컬로 노래를 불렀다. 당시 조승우의 아버지인 조경수도 메신저스에서 베이스와 보컬로 같이 있었다. 정성조는 우리나라 최고의 악단장이자 최초의 실용음악과 교수님이기도 하다. 굉장히 고급지고 팝적인 편곡으로 유명하다. 

1970년대 중반 정성조는 “메신저스”를 조경수에게 인계하고 전문적인 작곡가와 편곡자의 길을 걷기로 했고 최병걸도 이때 “최병걸과 매직스”를 결성하고 독립한다. 하지만 이 시기에도 주로 고고클럽에서 활동한 탓에 무명가수나 다름없었다. 안타깝게도 최병걸과 매직스는 대마초와 관련해 팀은 와해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최병걸은 솔로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1975년 대한민국을 뒤흔든 영화 한 편이 있었다. <영자의 전성시대>였는데 큰 성공을 거두자 당시 비슷한 영화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고, 주제가들도 누군가는 불렀어야 했는데, 이때 최병걸은 영화 주제가들을 도맡아 부르기도 했었다.

<어제 내린 비>,<초연>,<춘자의 전성시대>등이 있었고 이 시기 이유섭 감독이 만든 <춘자의 전성시대> 주제가인 “찬비”를 불렀다. 아쉽게도 이 영화는 흥행에 참패했다. 1975년 최인호 작가와 이장호 감독의 <어제 내린 비>에서는 정성조가 영화음악을 윤형주, 박인희, 조경수, 최병걸의 이름을 앨범에서 만날 수 있다. 사실 영화보다는 이 영화 OST는 현재까지도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모든 음악 장르가 그렇지만 트로트에도 하위 장르가 존재한다. 전통 트로트부터 엘레지, 블루스, 국악, 댄스, 세미, 포크 트로트 등등이 존재하고 심지어 뽕짝과 품바, 각설이까지 하위장르에 넣는 경우도 있다. 트로트 고고라는 장르가 70년대 중반에 유행한 적이 있다. 말 그대로 고고장들이 전국을 강타할 당시 트로트와 고고풍의 음악이 결합한 장르라고 보면 되는데 한국적인 고고음악을 트로트고고라고 불렀고 전 세계 유일한 장르라고 봐도 된다.

뽕필 충만한 록 트로트정도 되겠다. 대표적인 노래가 1976년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최헌의 “오동잎”등이 트로트풍과 고고음악이 혼합된 형태로 트로트고고다. 1978년 즈음에는 함중아, 조경수, 최헌, 윤수일, 최병걸까지 이런 트로트고고에 합류하며 한국적인 트로트록의 전성기가 열린다. 

최병걸은 1978년 2월 5일 독집이 아닌 컴필레이션 앨범을 한 장 발표한다. 이 앨범에는 “난 정말 몰랐었네”와 정소녀와 듀엣으로 부른 “그 사람”도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오랜 무명을 걷어낸 노래가 바로 “난 정말 몰랐었네”였다.

이 곡으로 1978년 MBC 10대 가수에 오르게 된다. 이 곡은 이른바 트로트고고의 가장 대표곡 가운데 한 곡이다. 1976년부터 불던 조용필, 최헌, 김훈의 트로트고고의 트렌드에 편승한 노래였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최병걸은 이 노래를 직접 작곡했다. 작사는 기성 작사가인 김중순이었지만 자신이 작곡을 한 것이다. 이점이 굉장히 이례적인 케이스였다. 당시의 조용필과 최헌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이 곡은 기존의 트로트들과는 묘하게 차이가 있다. 전주에 등장하는 키보드 소리가 홀딱 깨는 촌스러움을 압도하지만 당시 노래들의 반주들이 모두다 그 사운드를 냈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이리라. 곡의 전주나 악곡 형식이나 구조는 트로트였지만, 트로트에서 주로 쓰던 음계나 코드는 기존의 트로트와는 많이 달랐다. 보통 트로트들은 단조의 애조 어린 멜로디를 지니고 있었는데, 이 노래는 장조로 되어 있다. 

“난 정말 몰랐었네” 이 노래는 트로트의 가사와 멜로디, 창법까지 유지하고 있지만 부드러운 최병걸의 목소리와 담백한 목소리는 애달픈 한의 정서와는 거리가 멀다. 트로트 탈을 쓰고 있지만 묘하게 이국적인 정서였다. 그리고 이 노래만 트로트고고이지 나머지 최병걸의 노래들은 가요보다는 팝적인 느낌이다.

무엇보다 시대를 앞선 편곡과 분위기의 곡은 정소녀와의 듀엣곡 “그 사람”이었다. 미국팝시장에서 70년대부터 시작했던 이지리스닝계의 음악이었는데, 노래의 분위기가 마치 미국프로듀서이자 거장 작곡가인 버트 바카락(Burt Bacharach)의 느낌이 물씬 묻어난다. 이 노래는 들으면 들을수록 이 시절에 어떻게 이런 노래가 발표됐을까? 굉장히 세련된 편곡과 창법은 요즘에 발표된 노래라고 해도 믿을만 하다. 정소녀와 최병걸의 듀엣은 편곡도 완벽하지만 둘의 하모니도 최고다. 중간에 플롯이나 관악기 사용은 정성조의 역량이었을 것이다. 

사실 최병걸의 “난 정말 몰랐었네” 이 곡이 그를 가장 대표하는 노래로 기억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아쉬운 대목이 많다. 그의 앨범들을 전체적으로 들어보면 최병걸은 시대를 앞선 감각적인 싱어송라이터였다. “그 마음 하나뿐”,“미소”같은 노래를 들어보면 다시 평가받아야 하는 노래들이다. 

최병걸은 최헌, 윤수일, 김훈, 조경수 등과 함께 70년대 가요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주역중의 한명이었다. 이후 최병걸은 서판석이 설립한 서프로란 프로덕션으로 소속사를 옮겨 80년대 중반까지 활동을 이어가지만 안타깝게도 1988년 11월 간암으로 사망한다. 그의 나이 38살의 젊은 나이였다.  시간이 지나서 최병걸은 훌륭한 싱어송라이터이자 보컬이었다는 의미가 없어보이지만, 적어도 천편일률적인 그 당시 가요계에 이런 세련된 음악을 선보인 싱어송라이터도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고, 그의 짧은 생이 아쉽기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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