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래트럴 – 톰 크루즈의 미친 악역연기

최근 톰 크루즈가 미션임파서블 7번째 영화 데드 레코닝 홍보차 내한했다. 벌써 이 영화에 관한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호평 일색이다. 나이도 잊고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 장인의 모습을 보여줬다는데 우선 기대되고 개봉하면 극장에 달려갈 생각이다. 톰 크루즈가 지금껏 출연한 영화들 대부분을 좋아하고 이름 자체가 믿고 보는 흥행 보증 수표 같은 존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국내에서의 인기 또한 대단하다. 톰 형, 톰 아저씨로 불리는 이유가 있겠다. 그의 미친 악역을 볼 수 있는 콜래트럴 이 영화 추천한다.

이런 톰 크루즈의 수많은 필모그래피 중에 유독 기억에 남는 작품이 두 편 있는데, 그게 바로 <콜래트럴>과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라는 작품이다. 그동안 액션이나 다양한 장르 속에서 인상적인 작품을 너무 많이 남겼던 톰 크루즈이지만 이 두 작품 속의 모습이 특히 기억에 남는 이유는 바로 늘 보여줬던 선한 주인공과 정의를 위한 영웅의 모습이 아닌 악역이었기 때문이다.

<콜래트럴>에서는 아주 냉혈한 킬러로 등장하고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도 주인공이지만 피폐한 뱀파이어로 악한 존재에 더 가깝다. 그리고 이 두 영화 자체가 가진 이야기 구조에 있다. 처음 극장에서 봤을 때는 <콜래트럴>은 흔한 범죄 스릴러 영화로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는 공포 스릴러 장르 정도로 생각하며 영화 스토리만 쫓아 재밌게 봤던 영화였다. 그리고 한 참 시간이 지나 케이블방송을 통해 집에서 다시 보게 됐는데, 그제야 껍데기가 아닌 진짜 이야기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한 영화들이었다.

범죄 스릴러, 공포 스릴러의 이야기 탈을 쓴 깊이 있는 철학 영화들이었다. 물론 20대에 봤던 시각과 나이가 들어 3,40대에 본 영화는 달리 보일 수밖에 없지만, 영화가 그렇다. 여러 번 볼수록 할 이야기도 많아지고 곱씹게 되고 안 보이던 장면과 대사의 의미 감독이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 디테일 하나하나가 그제야 보이는 것이다.

콜레트럴 예고편

그런 의미에서 <콜래트럴>에 대한 이야기를 끄집어내 볼까 한다. 마이클 만 감독이 2004년 내놓은 느와르 범죄 스릴러 영화다. 믿고 보는 감독 중에 한 명이 바로 마이클 만 감독이다. 90년대부터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비주얼리스트이자 스타일리스트 감독인데 현대적이고 차가운 영상미가 일품인 감독으로 자동차 추격신이나 액션에도 능한데 특히 총기 액션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최고다.

철저한 고증과 사운드가 생생한 총기 액션으로 <히트>를 처음 봤을 때는 거의 충격적이었다. 철저할 정도로 총기 사운드까지 신경 써서 실제 총소리를 극장에서 들었던 작품으로 기억되며 이 영화로 정점을 찍었다. 감독의 총기류에 대한 집착으로 까지 보이는데 <히트>, <마이애미 바이스>, <콜래트럴>의 놀랍도록 리얼하고 생동감 있는 총격전을 만들어 냈다.

마이클 만 영화의 총소리는 실제 총기를 발사해 얻은 총격 음으로 그 어떤 영화에도 느낄 수 없는 현장감을 느끼게 만든다. 물론 이런 리얼리티를 담아내기 위해 영화 속 배우들의 고생이 동반되는데, <콜래트럴>을 찍기 위해 톰 크루즈는 4개월 동안 고난이도 전술적 무기 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이는 영화에 매우 잘 드러난다. 톰 크루즈가 보여주는 총기 사격 장면들은 굉장한 카리스마를 자랑한다. 가슴에 두 발, 머리에 한 발을 쏘는데 실제로 모잠비크 드릴이라 불리는 사격술로 이 방식은 후에 형사가 시체들을 확인한 뒤 킬러의 존재를 눈치 채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런 모잠비크 드릴이라 불리는 사격술을 가장 잘 활용한 영화가 바로 키아누 리브스의 <존윅> 시리즈다. 마이클 만 감독의 이런 디테일은 분명 <존윅> 시리즈의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에게도 영향을 줬으리라 본다.

<콜래트럴>은 2004년 당시 디지털 HD 카메라로 촬영된 최초의 할리우드 영화 중 하나로 주목할 만하다. 현재 할리우드에서는 디지털 영화 촬영이 보편화되어 있지만, 이 영화 촬영당시는 최첨단의 기술이었다. 마이클 만은 디지털 촬영의 초기 지지자였고, <콜래트럴>의 모든 액션이 밤에 일어나는 것을 보고 디지털이 LA의 빛을 포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미장센이며 특히 LA 야경을 담아낸 장면들은 차갑고 생생한 모습 그대로다. 실제로 고공 촬영에서 훑어 내려가는 LA의 밤거리 모습은 일품이다.

사실 줄거리는 아주 간단하다. 택시 운전사 제이미 폭스가 승객 톰 크루즈를 자신의 택시에 태우게 되고, 하룻밤동안 다섯 군데를 들러 볼일을 보고 새벽 6시까지 공항에 가야 한다며 택시를 전세 내자고 제안하면서 하룻밤 동안 톰 크루즈의 여정에 동행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문제는 승객 톰 크루즈가 살인청부업자자고 제이미 폭스는 그 상황에서 어떻게든 벗어나려 하지만 더 깊숙하게 개입되는 이야기다.

영화 껍데기는 이런 청부살인이 일어나는 하룻밤의 이야기지만 그 안에는 도덕, 운명, 우연 같은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녹아있는데, 예기치 않은 사건 속에서 인물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관찰하는 영화다.

우선, 이 영화는 우연한 만남과 결정이 개인과 그들의 삶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캐릭터는 자신의 선택과 그에 따른 결과에 맞서야 하는 예기치 않은 상황에 직면한다. 그리고 도덕적 모호성의 개념과 옳고 그름 사이의 회색영역을 톰 크루즈를 통해 보여준다. 뒤틀린 논리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살인청부업자가 관객들에게 도덕적 판단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이러한 숨겨놓은 의미와 주제는 단순한 느와르 범죄 스릴러 이상의 작품으로 끌어 올리고 긴장감 넘치는 내러티브에 몰입하게 만든다.

극중 대사에 잘 드러나는데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거울을 들여다 봐, 언젠가는 꿈이 이뤄질 거라고? 어느 날 밤 깨보면 착각이었다는 걸 깨닫겠지? 절대 실현될 리가 없을 거야. 어느새 늙어버렸을걸, 이제껏 실현 안 됐고 앞으로도 그렇겠지. 어차피 할 생각도 없었잖아? 그냥 추억에 묻어두고 소파에 멍하니 앉아서 남은 평생 TV 연속극이나 보면서 살겠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10년 후에도 똑같은 직장, 집에 똑같은 일상일거야, 반복된 삶에 안전감을 느끼면서 10년 후에도. 그런데 넌 10분 후에도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안 그래?”

“상황이 바꿨으니. 계획을 바꾼다. 너도 바뀐 상황에 적응해!”

“이 드넓은 우주에 많은 별들이 있는데, 단지 한 곳만 오염되어있지. 바로 우리들이야.”

톰 크루즈가 극 중 제이미 폭스에서 던진 얘기다. 그리고 이런 대사는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들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마이클 만의 작품답게 하드보일드한 분위기가 영화 전체를 지배하며, 대비되는 두 주인공의 대립에 초점을 맞춘다. 제이미 폭스가 맡은 택시 운전사는 정이 많지만 우유부단하고 소심해 주어진 틀을 깨지 못하는 인물이다. 리무진 회사를 차리겠다는 꿈은 있지만 꿈만 꿀 뿐 12년째 실천을 못한다. 12년간 해온 택시 기사 일을 임시직이고 자신은 회사를 만들기 위해 준비하는 거라며 최면을 건다.

반면 톰 크루즈가 맡은 청부살인업자는 직업답게 냉철하고 사람의 목숨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하지만 톰 크루즈가 던지는 철학적인 질문과 재즈와 환경에 대한 담론은 흥미롭다. 철저하고 프로페셔널하게 루틴대로 일을 진행할 것 같은 톰 크루즈지만 즉흥성의 음악 재즈를 좋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굉장한 아이러니를 느껴진다.

틀을 깨지 못하는 인물과 그 틀을 뒤흔들고 조여 오는 인물의 대비가 흥미롭다.

또한 영화의 핵심인 톰 크루즈의 캐릭터는 타인에 대해 무관심하고 건조한 LA라는 도시와 많이 닮아있다. 그런데 이런 이유 때문에 LA를 싫어한다고 얘기한다. 극중 택시를 타고 밤거리를 지나다닐 때 도시의 밤거리에서 늑대와 눈이 마주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LA라는 공간에서 현대인들이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을 의미하는 모습처럼 느껴진다.

LA 야경 속에 등장한 늑대라니 이 또한 아이러니다. LA라는 도시를 대표삼아 현대인들에 대한 냉소와 은유를 가득 담은 염세적인 이야기이다.

이 늑대 한 마리는 마음의 문을 닫은 채 철저하게 감정을 숨기는 냉혈한 톰 크루즈를 상징하는 듯하지만, 그 늑대는 오히려 톰 크루즈를 응시하고 있다. 실제로 현대도시의 밤이 어쩌면 늑대의 시선으로 비춰졌는지도 모르겠다. 톰 크루즈가 타인의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의 목적을 이뤄가다 제이미 폭스를 만나서 일이 꼬여가고 예정됐던 5번의 살인이 진행될수록 두 사람의 입장이 점차 뒤바뀌는 것이 이 영화의 묘미다.

앞서 던졌던 수많은 대화들이 의미 없이 한 말들이 아닌 치밀한 복선이 됐고 결말부에서 이 모든 것들이 연결되어 있다. 한마디로 기승전결의 깔끔함을 갖춘 웰메이드 느와르 영화다. 그리고 톰 형이 세상을 이제 그만 구하고, 더 다채로운 악역을 자주 해주길 바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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