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플레이 : 소년시대 후기

레트로감성 코믹액션활극이었다. 딱 응답하라 시리즈에 학원액션물이 업그레이드 됐는데 배경이 충청도다. 응답하라 1988 + 만화책으로 보던 일본 학원물의 콜라보같은 드라마였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를 코믹하게 버무린 쫄깃하게 찰진 연기와 청춘 활극이 웃기고 재밌고 아련하다. 캐스팅으로 얼굴 알려진 배우는 남녀 주인공 임시완, 이선빈, 둘의 아버지역의 서현철, 김정태 정도가 다였다. 나머지 배우들은 생소한데 연기를 다들 어찌나 능청스럽게 잘하는지 연기구멍은 찾아볼 수도 없고 어디서 이렇게 연기 잘하는 배우들을 모았는지 캐스팅은 대성공이었다. 

배경이 1980년대 고등학생들 이야기이니 그 시절 소품들과 생활 묘사가 디테일하게 잘 살렸다. 찍찍이 아디다스 지갑과 리복 티셔츠, 오락실 스트리트 파이트 게임, 20원 공중전화부터 음악다방, 당시 술과 담배, 지폐, 워크맨 등등등 거의 모든 종류의 생활소품들은 그 시절 그 곳에 있었던 물건들이었다.

또, 80년대 지방 도시에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농고, 상고, 공고, 여상 설정의 묘사가 압권이다. 강릉만 해도 농고와 상고의 축구경기를 두고 비슷한 상황이 있었던 걸 감안해 보면 정말 그 시절로 타임머신 타고 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심지어 당시 학교에는 대부분 야외화장실이 있었는데 일명 푸세식 화장실 모습이 너무 사실적이다. 극 중 푸세식 화장실 씬이 꽤 등장하는데 이때 캐릭터 주변으로 날아다니는 파리들은 이 드라마의 최고의 장면 중에 하나다. 자주 등장하는 화장실 씬 볼 때마다 너무 리얼해서 TV 모니터를 뚫고 냄새가 날 것 같았다.

1989년 충청남도, 평생을 맞고 살던 온양 대표 찌질이 장병태(임시완) 또는 장뵹태, 어느 날, 사고뭉치 아버지 때문에 온 가족이 부여로 야반도주하며 전학 가게 된다. 그런데 전학 가자마자 모두가 병태에게 친절을 베푼다. 알고 보니, 그를 전설의 싸움꾼 ‘아산 백호’로 착각했던 것이다. 찌질이 병태가 완벽한 부여 짱으로 거듭나는 일종의 성장드라마이다. 

장병태 역의 임시완은 코미디 연기에 처음 도전했고, 너무 성공적으로 캐릭터를 소화했다. 그동안 눈여겨본 캐릭터는 임시완의 인생 캐릭터 “미생”의 장그래였다. 그리고 아마도 두 번째 인생 캐릭터는 “소년시대” 장병태가 될 것 같다.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캐릭터들이 생각보다 많은 편인데 “타인은 지옥이다”,“비상선언”,“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등에서 맡았던 역할들이 얼핏 기억에 남는다.

임시완 얼굴에는 선하고 올바른 이미지도 있지만, 쓸쓸함과 고단함도 함께 묻어있다. 반면에 뒤틀린 유약함이 악역과도 잘 맞는 편이다. 마치 선한 모습 이면에 섬뜩함을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동안 커리어를 쌓으며 연기 스펙트럼을 넓힌 측면이 분명히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코믹연기까지 도전해서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줬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를 깨알같이 선보이며 일진 무리를 응징하기 위해 점점 성장해 나가는 액션을 보여준다. 충청도 사투리의 정서는 은유법인데 헛웃음이 날 정도로 잘 소화했다. 

실제 충청도 출신의 이선빈은 부여 흑거미 역을 맡았다. 실제 충청남도 천안에서 태어나 고등학생 때까지 그곳에서 자라 충청도 사투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극에 생동감과 재미를 더했다. 극중 캐릭터는 부여 흑거미로 부모님을 제외한 부여 학생 모두가 알고 있는 여고 짱 지영역이다. 동네 불량배들을 조용히 처단하며 존재를 숨기고 있지만 이미 ‘부여 흑거미’로 이름이 자자하다.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병태와 고등학생이 되어 한지붕 이웃으로 재회한다. 병태가 아산 백호 행세를 하며 온 동네를 헤집고 다니는 모습이 어처구니 없지만 병태의 조력자를 자처하며 병태를 좋아하는 역이다. 능청스러운 충청도 사투리와 찰진 욕이 찰떡이고 임시완과의 케미도 최고다. 액션연기도 훌륭하다. 

주먹 하나로 충청도 일대 학교를 평정한 전설의 싸움꾼 경태, 부여농고로 전학을 앞두고 사고를 당한 그는 기억을 잃은 채 병태와 같은 반이 된다. 천진난만한 미소 너머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서늘한 병태는 경태가 바로 진짜 아산 백호라는 사실을 깨닫고, 기억이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는 병태의 소망과 달리 그의 상태는 빠른 속도로 호전된다. 정경태역의 이시우 배우는 처음 보는 얼굴이다.

실제로 큰 키와 카리스마 있는 모습과 액션 씬을 잘 소화했고, 기억상실에 빠져있던 경태의 모습과 짱의 모습을 한 아산백호의 모습은 확연히 다른 캐릭터를 잘 연기했다. 어찌됐건 이 드라마상의 빌런의 악랄함은 잘 실려 있지만, 아산백호가 왜 이런 캐릭터가 됐는지의 서사가 빠진 것은 살짝 아쉬운 대목이다. 

부여여상의 꽃으로 불리는 선화는 부여의 모든 남학생들을 설레게 한다. 마음속에 선화가 있지만 오직 부여의 짱만이 선화의 옆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불여시라는 별명도 달고 다니다보니 첫눈에 반한 병태를 들었다 놨다 하며 그의 혼은 쏙 빼놓는다. 병태의 알 수 없는 엉성한 매력에 빠져들던 중 진짜 아산백호의 등장은 갈대 같은 선화의 마음에 반향을 일으킨다.

역시 신인이다. 걸그룹 아이즈원 출신으로 빼어난 미모를 가지고 있다. 드라마 상에서 진짜집인 굿당으로 들어가는 강선화의 속사정이 안 밝혀져 왜 이런 캐릭터가 됐는지의 서사가 빠진 것이 역시 아쉬운데 시즌2에서는 밝혀질 것인지 궁금하다. 

부여농고 5인방 양철홍, 쟈니윤, 오함마, 완쓰강, 쌥쌥이, 불량학생 짱돌, 빠글이 모든 캐릭터들이 그 당시 흔히 볼 수 있는 별명과 존재감을 드러냈다. 정말 거의 모든 동네에 이런 형들이나 친구들이 있었던 걸로 기억된다. 또, 이와 대비되는 부여농고 찌질이 5인방 중 특히 호떡 조호석이 있는데 이들 중에 가장 씬스틸러를 뽑으라면 단연 병태의 단짝 호떡이 조호석 캐릭터가 가장 눈에 띈다.

학창시절 거의 모든 학급에 이런 캐릭터는 다 있었던 것 같은데 그만큼 정이가고 현실감 넘치는 생활연기와 찌질함과 우정을 과시한다. 볼 때 마다 학창시절 누가 생각이 날 것 같은 살아있는 캐릭터다. 병태가 전학 오기 전 병태의 진짜 모습을 유일하게 목격한 부여농고의 대표 찌질이다. 아산 백호인 척하는 병태가 아니꼽지만 동류는 통하는 법, 어느새 단짝이 되어있다. 

1980년대 중후반이 고등학교 시절은 보낸 이들에게 진한 추억을 선사한다. 특정 지역 충청도가 배경이지만, 그 시절 지방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모든 이들은 다들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 실제로 학교폭력이 난무한 무법지대와 같았던 모습과 삥을 뜯는 동네 양아치형들은 어디에나 존재했었고, 직간접적으로 당했거나 들어봤을 것이다. 지금은 우수갯소리 같지만 “10원에 한 대씩이야”라는 말은 종종 회자되는 말이다.

실제로 이명우 감독은 학상시절 자신이 맞고 다니지는 않았다며 쎈 척하던 경험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한다. 또한 감독의 학창시절 유행했던 일본 학원물들이 연상되기도 한다. 해적판 만화로 열심히 챙겨봤던 <캠퍼스 블루스>,<엔젤전설> 같은 과거 유명했던 일본 만화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들도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소년시대”는 10대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긴 하지만 다소 폭력적이다. TV에서 방영됐다면 100% 심의에 걸려 방영자체가 안 될 정도로 불가능했을 것이다. OTT드라마라서 가능했고,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이라 가능한 연출이 많다. 잦은 욕설과 흡연이나 음주 묘사가 적나라하게 들어가 있고, 코믹액션이라고는 하지만 그 시절을 세세하게 다루다 보니 폭력과 일탈이 난무하는 드라마가 됐다. 보기에 눈살이 찌푸려지는 학교폭력은 너무 과한 측면이 분명 있다. 이점은 감독이 확실한 타깃층을 설정해 놓고 청불등급에 상관없이 성인 시청자를 대상으로 만들었다는 점을 확실히 했다는 점이다. 다루는 주제와 메시지가 청소년이 본다면 잘못 이해할 소지가 다분하다. 폭력을 미화하지 않은 점은 메시지 전달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소년시대는 그 시절, 그 나이대의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은 공감할 만한 이야기들이다. 남학생들의 로망이 슬쩍슬쩍 비춰진다. 어디가서 맞지 않기 위해 태권도, 쿵푸학원을 다녔던 친구들도 있고 때로는 동네 못된 형들을 뒷골목에서 만나 삥을 뜯기기도 했고, 어쩌면 극중 임시완이 맡았던 병태의 모습이 실제 내 모습일지도 모를 일이다. 찌질했던 모습에서 오해로 힘과 권력을 얻었을 때 그 거짓말이 계속 유지되길 바라는 병태모습까지도 이해가 된다. 이 드라마의 주제는 사실 명확하다. 운 좋게 얻은 힘으로 꿈을 이루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결국 모든 갈등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진짜 자기 힘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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