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러쉬(Tom Rush) Story

‘맹인모상’이란 말이 있다. 앞이 안 보이는 사람들이 코끼리를 만져 봤는데 저마다 다른 부분을 만지고서는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코끼리라고 우기는 상황을 이야기한다. 음악도 마찬가지인 경우가 있다. 한 아티스트의 전체를 들어보지 못하고 앨범 한 장 또는 좋아하는 한 곡 듣고 이 아티스트 뮤지션은 이런 음악을 하는 가수라고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 때가 있다. 오랜 활동 시기를 놓고 보면 그 한 곡은 극히 이례적인 경우거나 특별한 시기의 노래일 뿐인데 그걸 간과하고 자기가 아는 노래가 그 가수의 전부인 양 느끼는 경우가 있다. 고등학교 때 미국 포크 음악 한 곡에 푹 빠진 적이 있다. 톰 러쉬(Tom Rush)의 “Old Man’s Song”이란 곡이었다. Tom Rush Story.

10대 후반에 노인의 노래라니 지금 생각해 보면 애늙은이처럼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그 허무함과 포크의 분위기가 너무 좋아 애청했던 곡이었다. 그리고 이런 비슷한 포크 음악을 찾아 듣기 시작했었다. 처음 이 곡을 발견한 앨범은 <Hidden Pop-숨겨진 팝명곡>이라는 컴필레이션 앨범이었고, 그 앨범에 있는 거의 모든 노래가 다 좋았다. 그 앨범에 수록되어 있던 오리지널 음반들을 어떻게든 구해서 구비 하기까지 했으니 굉장히 만족도 높은 모음집 앨범이었다.

톰 러쉬(Tom Rush) 1960년대 싱어송라이터 시대를 연 공로를 인정받은 초기 포크 음악 부흥의 주역이자 미국 포크 및 포크록, 블루스, 컨츄리, 컨츄리 블루스 작곡가다. 풍부하고 따뜻한 목소리와 재능 있는 작곡가들로부터 새로운 소재와 좋은 곡을 찾아내는 재주 덕분에 당시 많은 존경과 영향을 미친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하다. 60년대부터 포크 클럽과 페스티벌에 자주 등장했고 또한, 재능 있는 곡 제작자이기도 했다. 그의 대표적인 노래 “No Regrets”는 그의 시그니처송으로 해리 벨라폰테(Harry Belafonte), 웨일론 제닝스(Waylon Jennings), 에밀루 해리스(Emmylou Harris) 및 워커 브라더스(Walker Brothers)가 리메이크하기도 했는데 당시 미국 포크 음악의 스탠다드 정도 된다. 포크 음악계에 중요한 인물 중에 하나로, 많은 다른 아티스트들에게 영감을 주고 협업해 왔다.

1941년 뉴햄프셔 포츠머스에서 태어난 톰 러쉬(Tom Rush)는 1961년 하버드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면서 공연 경력을 시작한다. 그의 초기 활동은 남부 포크음악과 애팔래치아 포크 음악이나 옛날 컨츄리 음악들이었고, 우디 거스리(Woody Guthrie)의 음악들을 주로 연주하고 노래했다. 어쿠스틱 포크 블루스도 단골 레퍼토리였다. 하버드 대학시절 존 바에즈(Joan Baez), 밥 딜런(Bob Dylan)이 초기 활동 경력을 쌓았던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커피하우스인 클럽 47(Club 47), 보스턴의 유니콘(Unicorn), 펜실베니아 메인 포인츠(Main Point)같은 곳에서 정기적으로 공연하면서 초기 경력을 쌓는다.

1965년 당시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포크 레이블 일렉트라 레코드(Elektra Records)와 계약을 맺고 정식 데뷔앨범을 발표한다. 사실 이때까지 그의 레퍼토리는 옛날 포크 음악과 블루스 스탠다드 음악들로 구성됐었다. 이때 특이하게도 무디 워터스(Muddy Waters), 척 베리(Chuck Berry), 버디 홀리(Buddy Holly), 보 디들리(Bo Diddley) 같은 초기 로큰롤 스타들의 블루스 음악들을 자기 스타일로 녹음했다.

그런데 1968년 그의 초기 경력에 정점을 찍은 가장 영향력 있는 앨범 <The Circle Game>을 발매한다. 1968년 <The Circle Game>에는 당시 완전 신인이었던 조니 미첼(Joni Mitchell), 잭슨 브라운(Jackson Browne), 제임스 테일러(James Taylor)의 작품을 세상에 소개했다. 이들이 스타덤에 오르기 전의 초기 노래들이었고, 톰 러쉬 자신의 최고의 노래로 평가받는 “No Regrets”가 포함되어 있었다.

톰 러쉬(Tom Rush)가 미국 포크 음악계에 미친 영향은 생각보다 넓었는데 60년대 포크 부흥과 70년대 포크 음악이 퍼져가는데 일조했다. 그의 음악은 여러 세대의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남겼는데 제임스 테일러(James Taylor)는 롤링 스톤(Rolling Stone)과의 인터뷰에서 “톰 러쉬는 나의 초기 영웅 중 한 명일 뿐만 아니라 나의 주요 영향 중 하나였습니다.”라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컨트리 음악스타 갈스 부룩스(Garth Brooks)는 그의 음악적 영향력을 상위 5위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1970년에 톰러쉬는 일렉트라(Elektra) 레코드를 떠나 콜롬비아(Columbia) 레코드로 이적해서 4장의 앨범을 발표한다. 1970년 <Tom Rush>와 <Wrong End of the Rainbow>, 1972년 <Merrimack County>을 통해 전통 포크 음악이 아닌 포크록 쪽으로 더 나아가게 된다. 심지어 콜롬비아(Columbia) 레코드에서 1974년에 발표된 마지막 앨범 <Ladies Love Outlaws>는 컨트리록 스타일의 앨범이었다.

콜롬비아 레코드 시절 가장 좋아한 앨범은 당연히 1970년에 발표된 <Tom Rush> 앨범이었다. 무엇보다 “Old Man’s Song”은 90년대 들었던 포크 음악 중에 최고의 애청곡이었다. 이때 포크 음악에 심취해 미국 포크 음반들을 참 많이 찾아들었다.

이 앨범은 1970년에 포크에서 포크록으로 선회한 선구적인 포크 록 앨범이었다. 앞선 앨범<The Circle Games>에서 그랬던 것처럼 당시 잘 알려지지 않았던 후배 동료 싱어송라이터들의 노래들을 발굴해서 녹음한다. 뛰어난 작품으로는 데이브 위펜(David Wiffen)의 “Driving Wheel”, 잭슨 브라운(Jackson Browne) “Colors Of The Sun”, 머레이 맥라클란(Murray McLauchlan) “Old Man’s Song”과 “Child’s Song”, 제임스 테일러(James Taylor) “Rainy Day Man” 같은 노래를 수록했다.

이런 앨범 활동으로 롤링스톤지에서 싱어송라이터 시대를 연 공로를 인정하기도 했고, 이런 싱어송라이터들이 경력 초기에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것이었다. 이 앨범에는 머레이 맥라클란(Murray McLauchlan)의 노래가 두 곡이 수록되어 있다. “Old Man’s Song”과 “Child’s Song” 두 곡 다 좋아해서 원곡자의 앨범을 LP로 따로 구매했다.

70년대 초반 콜롬비아 레코드 시절, 포크는 포크록으로 바뀌었고, 적응력이 뛰어난 톰 러쉬(Tom Rush)는 자신의 음악에서 더 많은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여지를 발견하고 당시 컬럼비아 레코드에서 녹음했던 5인조 밴드와 함께 쉬지 않고 전국을 순회하며 콘서트를 열었다. 끝없는 판촉 투어, 인터뷰, TV 출연, 녹음 세션을 거쳐 매우 성공적이었지만 지친 5년을 보냈다. 그리고 콜롬비아(Columbia) 레코드와 헤어졌고 긴 휴식의 시간을 갖는다.

1982년 그의 독립레이블 나이트 라이트(Night Light)를 설립하고 보스턴 심포니 홀에서 녹음된 라이브 세트인 <New Year>를 발행할 때까지 다른 앨범은 발표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팬들이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모두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60년대 후반 자신의 대학 시절 활동했던 클럽 공연을 컨셉으로 기존 예술가와 신인이 함께 무대에 서는 콘서트를 열기 시작했다. 이 쇼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연례행사가 됐고, 보니 레이트(Bonnie Raitt) 또는 에밀루 해리스(Emmylou Harris)와 같은 예전 유명 아티스트와 앨리슨 클라우스(Alison Krauss) 또는 마크 오코너(Mark O’ Connor)와 같은 당시 무명 아티스트를 결합한 콘서트를 제작해서 공연을 선보였다. 80년대부터 현재까지 클럽 47(Club 47) 공연 이벤트는 미국 최고의 홀을 가득 메워 호평을 받았으며 PBS나 NPR 같은 방송사에서 전국 특집으로 방송됐다.

그런데 2007년 3월 톰 러쉬(Tom Rush)가 라이브 무대에서 “The Remember Song” 이란 곡을 연주하고 노래하는 영상 하나가 유튜브에 게시됐다. 이 클립은 입소문이 났고 결국 2024년 기준 77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으며 톰 러쉬(Tom Rush)에게 새로운 팬들이 생겨났다.

톰 러쉬(Tom Rush)는 자신의 웹사이트에 이렇게 썼다.

“나는 하룻밤 사이에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를 45년 동안 기다려왔는데, 마침내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The Remember Song” 공연 영상이 ‘입소문’을 일으켰습니다. 처음에는 에볼라 바이러스 같은 음악적 존재라는 비난을 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이것이 좋은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의 경력은 2007년 이 노래 한 곡으로 유튜브 시대에 새로운 힘을 얻었다. 이 노래는 거의 코믹송에 가까운 재밌는 노래였다. 나이 들어 기억이 가물가물한 건망증 또는 치매증상이 있는 주인공이 자신의 기억 때문에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노래로 표현한 코믹송에 가까운 노래였다.

어찌됐든 2009년 <What I Know>, 2018년 <Voices>, 2024년 <Gardens Old, Flowers New> 같은 후기 앨범을 계속 발표하고 있다. 새로운 세대의 팬들에게 톰 러쉬(Tom Rush)를 소개하면서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얻고 2024년에도 공연 스케줄이 가득 짜여있다.

2024년 투어가 없을 때 매사추세츠에 살고 있다. 톰 러쉬(Tom Rush)의 목소리는 더욱 풍부해지고 선율이 좋아졌으며, 그의 음악은 고급와인처럼 전통과 현대의 영향이 혼합되면서 성숙해지고 무르익었다. 나이는 어느덧 80대 중반이지만 나이와 상관없이 많은 새로운 노래를 썼고 연주 연습과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늘 열정적이고 다정하게 작곡과 연주를 하며 음악적 전통과 재능을 계속 엮어 가고 있는 싱어송라이터다. 오래오래 건강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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