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즈 아르디(Françoise Hardy) Story

1990년대 초반, 엘칸토 구두 광고음악 하나가 귀를 사로잡았다. 프랑스 샹송이었고 광고 배경음악으로 누가 선곡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화면과 너무 잘 어울리는 선곡이었다. 이곡으로 샹송이라는 프랑스음악에 급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당시 고등학교 시절 제2외국어가 불어였는데 불어 시간이 즐거워지는 계기가 된 노래이자 개인적으로 샹송 입문 곡이었다. 물론 에디뜨 피아프의 “장밋빛 인생”과 이브 몽땅의 “고엽”은 알고 있었지만, 그 당시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 광고 음악은 “Comment Te Dire Adieu?” “어떻게 안녕이라고 말할까?” 였고 부른 가수는 프랑수아즈 아르디(Françoise Hardy)였다. 2024년 6월 11일 향년 80세의 나이에 별세했다. 그녀는 자신이 부른 “Star”처럼 하늘이 별이 됐고, 어떻게 안녕이라고 말해야할까? Comment Te Dire Adieu? 아듀 프랑수아즈 아르디(Françoise Hardy) Story.

1944년 프랑스 태생의 지성파 싱어송라이터, 영화배우, 패션 아이콘 프랑수아즈 아르디(Françoise Hardy)는 20세기 프랑스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 중 한 명이다. 1960년대 초에 데뷔해 2021년 건강 문제로 은퇴할 때까지 꾸준히 활동을 이어왔고 거의 60년 정도의 경력동안 30개가 넘는 스튜디오 앨범을 발매했다. 그리고 가수뿐만 아니라 172cm의 훨칠한 키와 지적이며 세련된 외모, 약간은 중성적인 이미지를 살려 모델로도 활동했었다. 음악들은 전체적으로 우울하고 감상적인 발라드를 불렀다. 그리고 1960년대 초 예예(Yé-yé) 팝 운동의 선구자로 명성을 쌓았다.

1960년대 초 예예(Yé-yé) 유럽에서 등장한 팝음악 스타일이 있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에서 생겨난 팝 뮤직의 하위 장르로 비틀즈(Beatles)와 같은 영국 록큰롤밴드에 의해 대중화된 영어 “Yaah! Yeah!”에서 파생된 단어로 프랑스에서는 실비 바르땅(Sylvie Vartan),프랑스 걀(France Gall), 세르쥬 갱스부르(Serge Gainsbourg), 프랑수아즈 아르디(Françoise Hardy)의 성공으로 프랑스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확대된 음악스타일이다. 시부야케이와 일본 아이돌 음악의 기원으로 통한다.

파리에서 태어난 그녀는 불행하고 불안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집안 형편도 넉넉하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보낸 가톨릭 학교에서 사회적 출신의 격차로 수치심에 시달려야 했고 이런 굴욕은 그녀를 평생 쫓아다. 또, 부모의 이혼과 양육권 분쟁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럼에도 돌파구는 문학과 음악이었고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같은 여러 로큰롤 스타들을 접하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 16살의 어린 나이에 바칼로레아를 통과하면서 소르본 대학에 입학하고 아버지로부터 기타를 선물 받으며 작사 작곡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켰다. 학업과 음악 양쪽에서 조숙한 천재성을 발휘했던 시기다. 

이후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파리 이곳저곳을 돌며 오디션을 봤고, 1961년 디스크 보구(Disques Vougue)와 계약을 맺고 1962년 데뷔 싱글 “Tous Les Garçons Et Le Filles”를 발매하며 유럽 전역에서 200만 장 이상 판매되는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며 프랑수아즈 아르디를 본격적으로 프랑스 내에서 인기 스타로 만들어준 곡이 됐다.

이 곡으로 1960년대 초 예예(Yé-yé) 팝 스타일의 선구자로 만들어줬으며, 매력적이고 세련된 페르소나와 멜로디컬한 팝송으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이 장르의 선도적인 목소리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이 예예 팝스타일 여성 가수들은 아이돌적인 측면이 강했다. 프랑수아즈 아르디는 차별화되는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이루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샤를 트르네, 쟈크 브렐 등의 기존 샹송에서도 상당한 영향을 받았지만 영미쪽 팝음악 클리프 리차드(Cliff Richard)나 에벌리 브라더스(Everly Brothers) 등 정말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에도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고, 다양한 음악적 취향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1968년에 발표된 “Comment Te Dire Adieu?” 이 노래로 프랑수아즈 아르디(Françoise Hardy)는 예예 아티스트들과 차별화하면서 확실한 스타로 자리매김한다. 원래 이 노래는 영국 가수 마거릿 화이팅(Margaret Whiting)이 부른 1950년대 풍의 발라드곡 “It Hurts To Say Goodbye”를 아르디가 듣자마자 반하면서 이곡을 프랑스어로 번안해서 부른 것이다. 베라 린(Vera Lynn)도 이 노래를 취입했다.

원곡의 느낌은 아예 빼버리고 조금 더 밝고 통통 튀는 스타일로 편곡하고 가사는 세르쥬 갱스부르(Serge Gainsbroug)에게 부탁해서 불어 가사를 붙여준 것으로 유명하다. 세르쥬는 아르디를 위해 처음으로 본인이 만들지 않은 곡에 프랑스어 가사를 붙여줬다.

노래는 전파를 타자마자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이 노래는 프랑수아즈 아르디의 가장 대표곡이자 시대를 초월한 명곡으로 회자되는 곡이다. 발매 직후 프랑스에서 인기도 상당했고, 디올(Dior)의 TV광고에 쓰이면서 전세계적으로도 크게 히트했다. 90년대 초반 국내에서도 이 노래를 광고음악으로 쓰면서 큰 화제가 됐었다. 

후에 프랑수아즈 아르디는 방송에서 세르쥬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세르쥬의 연인인 제인 버킨(Jane Birkin)과 이 곡을 함께 부르기도 했고, 후에 제인 버킨은 자기 스타일로 리메이크해서 앨범까지 발표했다. 슬픈 가사와는 대조적으로 한번 들으면 잘 잊히지 않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멜로디를 가졌다. 

이 시기 발표된 노래들은 몽환적이고 우울한 발라드와 부드럽고 매혹적인 보컬은 그녀를 다른 예예 아티스트들과 차별화시켜 프랑스 팝계에 깊이와 섬세함을 더해줬다. 대표적으로 “Comment Te Dire Adieu”, “Mon Amie La Rose”, “La Question”과 같은 노래는 상징적인 프랑스 팝 음악의 표준이 됐다. 그리고 당시 몇 안 되는 여성 싱어송라이터 중 한 명으로 자신의 노래를 많이 작곡하거나 공동 작곡했으며, 사랑과 관계에 대한 개인적이고 성찰적인 가사를 자신의 음악에 불어넣었다. 이는 프랑스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미래 세대를 위한 길을 열어준 계기가 됐다. 

이런 음악적 영향은 우울하면서도 우아한 사운드에서 영감을 얻은 Coralie Clément, La Femme, Juliette Armanet, Carla Bruni와 같은 프랑스어권 가수의 작품에서 들을 수 있게 됐다. 또한 스테레오랩(Stereolab)과 같은 영국 아방가르드팝 그룹과 Broadcast 및 Goldfrapp과 같은 얼터너티브 활동에 영향을 미쳤다. 

심지어 스타일리시하고 절제된 뮤즈로서의 그녀의 패션 감각과 이미지는 이브 생 로랑, 파코 라반과 같은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줬고, 그녀는 음악을 넘어 프랑스 대중문화에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됐다. 

– 1960년대: 예예 팝의 시작

1960년대 초 프랑스 팝과 영국 록 밴드의 영향을 혼합한 “Tous Les Garçons Et Les Filles”와 같은 히트곡으로 예예 팝 스타일의 선구자로 명성을 얻었다. 그녀의 초기 노래는 드문드문 악기 사용으로 몽환적이고 우울한 느낌을 가졌으며, 이는 버블검 사운드로 대표되는 예예 동료들과 차별화됐다. 

 – 1960년대 후반: 사이키델릭과 브라질의 영향

1960년대 후반 사이키델릭한 브라질 보사노바 사운드를 실험하기 시작했으며 브라질 가수 Tuca를 초대하여 1971년 앨범 <La Question>을 공동 작업했다. “Viens”와 같은 노래는 공격적인 베이스라인과 함께 급진적이고 불안한 톤을 유지하면서 초기 로맨틱 발라드와는 차이를 뒀다. 보사노바, 챔버 포크적인 면을 더하며 음악 스타일에 큰 전환점을 가져왔다. 

 – 1970년대: 지속적인 실험적인 음악 탐구

1970년대에도 프랑수아즈 아르디는 포크, 록, 심지어 디스코 요소를 자신의 음악에 통합하면서 계속해서 새로운 스타일을 실험 탐구했다. 당시 혁신적인 작곡가인 미쉘 베르제(Michel Berger)와 함께 작업하여 그녀의 경력에 활력을 불어넣는 보다 개인적이고 창의적인 사운드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줬다. 

– 1980년대~2000년대: 예술적 성숙

1980년대 이후 후기 앨범은 성찰적인 가사와 세련된 편곡으로 그녀의 예술적 성숙함으로 대변됐다. 블러(Blur)의 데이먼 알반(Damon Albarn), 말콤 맥라렌(Malcolm McLaren)과 같은 현대 예술가들과 협력하여 지속적인 영향력을 보여줬다. 

– 2010년대: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

마지막 수십 년 동안 그녀의 음악은 죽음, 기억, 로맨스라는 주제를 묵상하면서 더욱 친밀하고 반성적인 음색을 띈 편이었다. 2018년 앨범 ‘Personne D’ autre’는 감정적 깊이로 호평을 받았으며 그녀의 평생 예술 여정의 정점을 찍었다. 

거의 60년의 경력 동안 프랑수아즈 아르디(Françoise Hardy)는 좀 더 내성적이고 장르를 혼합한 스타일로 발전시키면서 자신의 사운드를 지속적으로 재창조해냈다.

아티스트로서의 커리어를 쌓는 동안 그녀는 동료 뮤지션이자 배우인 자크 뒤트롱(Jacques Dutronc)과 오랜 연인관계였다. 1973년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토마스 뒤트롱(Thomas Dutronc) 역시 프랑스 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재즈기타리스트이자 뮤지션이다.

프랑수아즈 아르디(Françoise Hardy)와 자크 뒤트롱과 오랫동안 동거 관계를 유지하다가 1981년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1988년 자크 뒤트롱의 알코올 중독 문제와 불륜 문제로 인해 별거에 들어간다.

하지만 이혼하지는 않고 법적으로는 결혼 상태를 끝까지 유지했다. 둘이 함께 부른 노래가 몇 곡 있는데 그중에서 한 곡이다. 

음악은 다양한 장르를 포괄했지만 프랑수아즈 아르디(Françoise Hardy)만의 시그니처 목소리와 사운드를 유지했는데 공기반 소리반의 숨 쉬는 알토 보컬과 우울함이 한가득한 노래로 정의된다. 프랑스의 어떤 평론가는 그녀를 ‘우울의 여왕’이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프랑수아즈 아르디는 스스로 자기 스타일을 느리고 슬픈 멜로디를 좋아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아름다운 가사, 아름다운 멜로디를 특히 선호했다. 재밌게도 프랑수아즈 아르디 노래의 주제는 꽤 명확하게 반복되는데 슬픔, 고통, 상심, 일방적인 사랑, 외로움, 지루함 같은 주제가 계속 이어진다. 

개인적으로 구입했던 프랑수아즈 아르디 마지막 앨범(CD)은 2010년에 발표된 <La Pluie Sans Parapluie>였다. 이 앨범에서는 “Noir Sur Blanc”을 특히 좋아했는데 기존스타일보다 살짝 더 밝아진 사운드가 이색적이다. 일부 노래에는 피아노나 현악기가 아닌 드럼과 베이스의 전형적인 리듬 트랙들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그녀의 특징 중에 반쯤 노래하고 반쯤은 말하는 보컬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메시지 전달에 최적화된 느낌이랄까? 그리고 말하는 나레이션톤의 목소리에서는 체념적이고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아내려했다. 

2018년에 발매된 그녀의 마지막 앨범 <Personne D’Autre>은 암이라는 건강상의 위기에서 살아남은 그녀의 노년기와 자신의 죽음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어두운 서정의 공존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질병으로 인한 삶과 죽음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들과 눈물이 녹아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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