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음악 : OPM, P-Pop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필리핀 가수는 단언컨대 프레디 아길라(Freddie Aguilar)다. 한국 사람이 필리핀에 가서 가장 많이 신청하는 노래라면 당연히 프레디 아길라의 “Anak”이라고 한다. 필리핀 사람들도 궁금해 할 것이다. 도대체 왜 외국인들은 프레디 아길라(Freddie Aguilar)만 신청할까? 그가 필리핀의 국민가수는 맞지만, 다른 가수들도 많은데 왜 프레디 아길라(Freddi Aguilar)일까? 필리핀 음악 OPM, P-Pop에 대해 알아보자.

1978년에 부른 “Anak”이 세계 56개국에서 27개의 다른 언어로 번안돼 수 백 만장 이상의 앨범이 판매된 아시아 최고의 가수였다. 1979년 제2회 서울 국제가요제에 참석했고 그의 노래를 많은 한국 가수가 번안해서 불렀었다. 대표적으로 이용복의 번안곡이 유명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필리핀에서는 민중가요를 부르는 의식 있는 가수로 여겨진다. 평생 영어 노래는 부르질 않았고 필리핀의 모국어 타갈로그어로만 불렀다.

필리핀의 민주화를 위해 마르코스 독재에 항거하던 시위의 중심에 프레디 아길라(Freddie Aguilar)의 노래가 있었다. 필리핀 내에서는 당연히 마르코스가 대통령에서 내려오기 전까지 그의 노래들은 금지곡이었다. 그런데 필리핀에 프레디 아길라(Freddie Aguilar)만 있는 것도 아니고 “Anak”만 있는 것도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노래 중에 “Ina”를 더 좋아했다.

필리핀에서 쓰이는 언어로 영어와 필리핀어를 꼽을 수 있다. 필리핀어는 필리핀 북부에서 널리 쓰이는 언어인 타갈로그어를 표준화한 형태다.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필리핀에서 인기를 얻었던 음악은 영어로 불러 진 팝 음악들이었다. 국내에서도 인기 있었던 호세 마리 찬(Jose Mari Chan)의 “Beautiful Girl”같은 노래들이었다. 적당히 팝과 재즈를 섞어 놓은 곡들이 이전 시대에 유행했던 노래들이었다.

그런데 필리핀어로 부른 노래들이 라디오방송과 각종 뮤직페스티벌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필리핀어로 부른 노래를 OPM이라고 부른다. OPM은 Original Pilipino Music의 약자로 타갈로그어로 부른 노래를 통칭해서 이렇게 부른다. 이 용어가 쓰인 것은 1970년대부터였고 필리핀인이 필리핀인을 위해 만든 음악을 OPM이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필리핀 전 세대가 골고루 인기를 얻으며 필리핀 정체성을 확인하는 음악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 시절에 프레디 아길라(Freddie Aguilar)도 있었고 수많은 OPM 가수가 있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이때가 필리핀 음악(OPM)의 황금시대였다고 한다. 필리핀어 타갈로그어로 부른 음악이 이 시절에 창의성과 생산성이 최고조에 이르렀고 잇달아 히트작들이 쏟아져 나온 시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메트로 팝 뮤직 페스티벌(Metro Pop Music Festival)이 있었고 여기에 출연했다 하면 무조건 스타가 되는 세상이었다. 여기에 소개된 노래들은 라디오방송을 타기 시작했고, OPM음악들이 히트하기 시작했다. 그 시대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팝 음악들에 젖어 있었고 방송에서도 팝송이 주류를 이뤘는데 갑자기 라디오방송에서 필리핀어 타갈로그어로 필리핀 고유 언어로 부른 노래들이 히트하기 시작하면서 삽시간에 유행하기 시작하고 상업적인 측면에서도 음반 판매량이 증가하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하다. 외국의 팝스타들을 능가하는 슈퍼스타 가수와 밴드가 이 시기에 탄생하기 시작했다. 

이 당시 발표된 노래들이며 활동했던 가수들은 필리핀 내에서 가장 확실한 슈퍼스타의 자리에 올라있다. 노농 페데로(Nonong Pedero), 죠지 칸세코(Geroge Canseco), 바실 발데즈(Basil Valdez), 리코 푸노(Rico Puno), 미치 발데즈(Mitch Valdes), 준 폴리스티코(Jun Polistico), 안토니 카스텔로(Anthony Castelo)등이 있다. OPM 타갈로그어로 불려진 필리핀 노래의 황금기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레아 나바로(Leah Navarro)가 있었다. 

레아 로페즈 나바로(Leah Lopez Navarro)는 1970~80년대 필리핀의 주요 팝스타 중 한 명이다. 10대 후반인 1977년 필리핀 문화센터에서 열린 록 뮤지컬의 공연예술가로 데뷔했다. 레아 나바로(Leah Navarro)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어머니는 필리핀의 유명 재즈 가수 넬다 로페즈 나바로(Nelda Lopez Navarro)로 TV프로그램 [The Nelda Navarro Show]를 진행했던 가수였다. 레아 나바로(Leah Navarro)는 전문적인 음악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재능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은 확실한 것이 어머니를 보는 것만으로 충분한 영감을 얻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녀의 인터뷰에서는 어머니에게 영감을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녀가 필리핀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1980년 마닐라 팝뮤직페스티벌에 출연하면서 필리핀 내 팝스타로 떠올랐다. 당시 불렀던 노래가 노농 페데로(Noong Pedero)의 “Isang Mundo, Isang Awit”을 부르면서였는데 이 노래에는 전 세계의 다양한 언어가 한 소절씩 등장하는 노래였고 영어, 중국어, 일본어, 불어, 독일어, 스페인어 등 다양한 언어가 한 소절씩 나온다. 한국어로 “사랑합니다~”라는 가사도 등장한다.

이 메트로 마닐라 대중음악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당시 대통령 딸이자 음악 애호가인 이미 마르코스와 아이린 마르코스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기에 이른다. 

1980년 전 세계는 디스코 트랜드였다. 레아 나바로는 특히 디스코 음악으로 필리핀 내에서도 인기가 상당히 많았고 디스코 트렌드에 편승한 디스코풍의 음악부터 흑인음악을 기반으로 한 음악들을 모아서 한 장의 앨범을 발표한다. 바로 <Leah At Pag-ibig>앨범인데 이 앨범에는 “Patingin-tings Lamang”, “Lagi Na Lang”같은 곡들이 귀에 쏙 들어온다.

필리핀 내에서는 “Ang Pag-ibig Kong Ito”로 굉장한 인기를 얻었다. “Ligaw Tingin”은 디스코풍의 재미있는 노래였다. 현재는 가수보다는 현실정치에 입바른 소리하는 정치 활동가로 더 유명하다. 

OPM은 필리핀의 대중적인 현대음악의 1970-80년대 황금기를 맞이하며 고른 인기를 얻었고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OPM 본궤도에 올라온 시기이다. 요즘은 Pinoy Pop(파이팝) 필리핀 팝(Philippine Pop, Pilipino Pop)이라고 부르는데, J-Pop, K-Pop처럼, P-Pop이라고 더 많이 쓴다. P-pop (Pinoy Popular Music)의 약자로 필리핀 사람이 작곡하거나 연주하는 모든 음악을 P-pop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당연히 OPM의 연장선상에 이뤄진 작명이지만 P-Pop이 OPM의 하위 장르는 적어도 아니다. P-Pop이 필리핀인이 작곡하거나 연주하는 모든 음악이라면 OPM은 필리핀인이 작곡한 오리지널 필리핀 음악이다. 모든 OPM은 P-Pop이라고 부를 수 있지만 OPM으로 간주되려면 반드시 필리핀 사람이 작곡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2010년부터 2020년까지 필리핀 팝 음악 또는 P-pop은 품질, 예산, 투자 및 다양성이 크게 변하여 국가의 급속한 경제 성장과 함께 아시아 정체성의 사회적, 문화적 부활에 걸맞게 큰 변화를 겪었다. 이는 K-pop과 J-pop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아시아 스타일 발라드, 아이돌 그룹, EDM 음악의 성장과 서양 장르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 필리핀 MZ세대와 주류 사이에서 한류와 유사한 일본의 인기를 반영한 것이다. 

이 현재 주류 장르의 성장을 정의한 유명한 P-pop 음악 아티스트로는 Sarah Geronimo, SB19, XLR8, Morissette Amon, KZ Tandingan, Erik Santos, Yeng Constantino, MNL48, Regine Velasquez, BINI, BGYO 및 P-Pop Generation이 있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