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자동차 광고 음악을 듣다 불현듯 잊고 있던 드라마와 예전에 즐겨 듣던 밴드가 생각났다. 드라마는 임시완이 맡았던 캐릭터 장그래가 생각나는 [미생]이다. 드라마 미생 이 가진 수많은 장점 중에 나는 음악을 꼽고 싶다. 이 드라마 주제곡 이승열의 <날아>라는 곡인데, 이승열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예전에 그가 몸담았던 밴드 유앤미블루(U&Me Blue)가 같이 떠올랐다.
너무 앞선 밴드 ‘유앤미블루’
유앤미블루 시절부터 이승열의 목소리를 좋아했었다. 유앤미블루가 만들어 낸 음악은 솔직히 그 시대에서는 조금 앞선 느낌이었다. 이들이 보여준 당시 모던록은 국내 음반 시장에서는 생소한 음악이었고 일부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열광했지만, 대중적인 성공으로 이어가진 못했었다. 1994년 1집, 1996년 2집 두 장을 발매했지만, 1997년 밴드는 자연스럽게 해체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해체된 후 음반들이 재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대를 잘못 타고난 밴드’, ‘저주받은 걸작’ 이런 수식어들이 붙기 시작했고, 밴드 해체 10년이 지난 2007년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이 두 장이 당당히 23위, 41위로 올라가는 일이 생겼다.
드라마 미생 작곡가, 영화음악가 방준석
밴드를 해체한 뒤에도 방준석은 영화 음악가로 이승열은 솔로 앨범을 내며 각자의 길을 걷고 있었다. 방준석은 40 여 편 가까운 영화 음악을 담당했던 영화 음악 작곡가로 성공을 거둔다. 1999년 템미썸씽을 시작으로 달콤한 인생, 라디오스타, 공동경비구역 JSA, 베테랑, 럭키, 신과 함께, 2021년 모가디슈 까지 작업했던 영화 음악 작곡가다. 수많은 영화 스코어들이 그의 손을 거쳤고, 특히 박중훈이 라디오스타에서 불렀던 <비와 당신>도 방준석이 작사-작곡했다. 안타깝게 왕성하게 활동 중인 2022년 향년 51세 위암으로 별세한다.
아는 사람만 아는 가수 이승열
기타 실력도 그렇지만 자기만의 음악 세계가 확실한 가수가 바로 이승열이다. 모던록의 뿌리를 두고 있지만,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며 실험적인 곡이 많은 편이다. 음악 작업에 있어서 완벽주의 성향이 강한 편이라 앨범 발매 주기는 조금 긴 편인데, 혼자서 모든 악기를 직접 연주하고 믹싱하고 프로듀싱하고 마음에 들때까지 음원 소스 다시 만들고 이런 작업을 계속 반복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한땀 한땀 음악 깎는 장인이라 부른 이도 있었다. 지금까지 총 6장의 솔로 앨범을 발표했는데 유앤미블루 때처럼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작품은 없다. 솔로 앨범들이 전체적으로 평단의 좋은 평가를 받아왔지만 다소 실험적이며 우울하고 난해한 면이 다분하며 대중들에게 크게 어필하는 음반은 아니었다. 자기 색깔이 확실한, 자신만의 스타일로 앨범을 발표하는 천상 뮤지션의 느낌이다.
다양한 활동과 알려진 트랙들
1995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OST에 유앤미블루의 노래 <그대 영혼에>라는 곡이 수록되며 영화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깊은 울림을 주는 곡으로 기억됐다. 이후 2003년 쫄딱 말아먹은 애니메이션 [원더풀 데이즈]의 주제곡인 <비상>을 불러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이 애니메이션에서 유일하게 훌륭한 건 이승열이 부른 주제곡밖에 없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클래지콰이, 러브홀릭과 같은 레이블 플럭서스에 소속되어 다양한 콜라보앨범 참여와 TV드라마, 영화음악 작업에도 함께 했다. 이승열이 참여한 곡 중에 아마도 제일 유명한 노래는 영화 [국가대표] OST로 유명한 러브홀릭스의 <Butterfly>이다. 이승열이 부르는 부분을 특히 좋아한다.
그리고 여기 재미있는 트랙이 하나 있다. MBC에서 야심차게 준비했던 스튜디오 라이브음악프로그램 <음악여행 라라라> 첫 방송에서 이승열이 출연해 원더걸스의 ‘Nobody’를 본인 스타일로 재해석했는데 우연히 본 그 방송에서 그 노래를 너무 좋아했었다. 원곡의 댄스곡을 완전히 다른 곡으로 만들어버렸다. 한번 꼭 들어보시라.
드라마 미생의 주제곡 ‘날아’
드라마를 볼 때 주제곡이 흘러나오면 그가 전하는 가사에 묘한 위로를 받았었다. 대한민국 수많은 직장인의 마음 한편, 서랍 속 깊숙이 놓여있다는 사직서를 생각했다. 각종 스트레스와 무게감에 짓눌려 있다 ‘내가 도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지?’를 되뇌다 들린 가사가 ‘거기서 멈춰있지마~ 그곳은 네 자리가 아냐! 그대로 일어나 멀리 날아가기를~’ 이 대목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모든 것이 무너져있고
발 디딜 곳 하나 보이질 않아
까맣게 드리운 공기가 널 덮어
눈을 뜰 수 조차 없게 한대도
거기서 멈춰있지마 그곳은 네 자리가 아냐
그대로 일어나 멀리 날아가기를
얼마나 오래 지날지 시간은 알 수 없지만
견딜 수 있어 날개를 펴고 날아
결국 멀리 떠나버렸고
서로 숨어 모두 보이질 않아
차갑게 내뱉는 한숨이 널 덮어
숨을 쉴 수 조차 없게 한대도
거기서 멈춰있지마 그곳은 네 자리가 아냐
그대로 일어나 멀리 날아가기를
얼마나 오래 지날지 시간은 알 수 없지만
견딜 수 있어 날개를 펴고 날아
내 자리도 아닌 곳에서 난 도대체 뭘 하는 걸까? 그런데 더 슬픈 건 가사처럼 날아가고 싶어도 그러지 못한다는 거다. 엉거주춤 일어서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털썩 주저앉지도 못하고 있는 똥 싼 자리에 주저앉은 상태다.
‘비온 뒤 도로에 쫙 달라붙어 있는 낙엽처럼 빗자루로 쓸어내도 떨어지지 않게 붙어있어‘라고 한 선배는 회사생활을 독려를 해줬지만, 알량한 자존심에 순간순간 욱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어떤 대안조차 없다. 시간과 공간에 눌려 주저앉아있는 건 아닌지? 또 다른 선배가 한 말이 생각난다. ‘가만히 멈춰있으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지만, 한발만 떼어내고 딛고 나면 그만큼 기회가 생기는데, 그 한 발을 옮기기 쉽지 않다고… 하지만 무조건 반 발자국이라도 딛고 나가야 한다고, 한발을 떼면 한발만큼, 두 발을 떼면 두 발만큼 기회는 찾아온다.’
그 말을 들은 것이 20년 전이고 이승열의 ‘날아’를 처음 듣고 눈물 찔끔 거리던 것도 벌써 8년이 지났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이제는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힌다. 그사이 난 불평 불만 가득한 꼰대가 됐고, 아직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몇 번을 박차고 나가고 싶었지만, 오래 버티는 놈이 결국 이기는 거라는 자기 위안을 하며, 오늘도 무거운 몸을 일으켜 출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