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다큐 영화 “Wham!”을 챙겨봤다. “친구따라 강남가서 대박 난 조지 마이클” 이야기였다.
왬(Wham) 참 좋아했었는데 예전 생각도 나고, 그들의 초기 이야기도 궁금해서 나름 챙겨봤는데 다큐멘터리 영화로서는 밋밋할 정도로 인터뷰 위주의 나열식 진행이었고 뭔가 드라마틱한 부분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왬(Wham)의 결성초기와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는데 어느 정도 해소된 느낌이었다.
왬(Wham)을 처음 들었을 때는?
중1때 TV 화장품 광고로 기억하는데 왬의 “Last Christmas”가 쓰인 광고가 있었다. 처음 들었을 때 그 노래에 반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멜로디며 크리스마스 노래로는 지금도 최고가 아닐까 싶다. 언제 들어도 크리스마스의 설레임이 그대로 묻어나는 노래다.
이 노래를 중1때 우리반 반장이 장기자랑 시간에 나와 팝송을 부르는데 그 당시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딱 범생이 스타일의 조용조용한 반장이 교단에 나와서 팝송을 한 곡 부르는데 그 유창한 영어발음으로 노래를 하는데 같은 나이 같은 또래가 아닌 것 같았다. 그때 나는 소방차, 박남정, 김승진, 김완선, 이지연 노래를 듣고 있던걸 생각하면 반장이 불렀던 노래는 외국물 좀 먹고 온 부잣집 도련님의 느낌이었다. ‘역시 공부 잘 하는 친구들은 팝송을 듣는구나…’ 라는 무의식적인 선입견을 심어준 계기가 됐다. 그 반장 덕분에 영어공부 핑계로 워크맨도 사고 팝송을 열심히 찾아 들었던 계기가 아니었을까?
Wham과 Geroge Michael
이때 구입한 왬 테이프들은 이들이 그룹을 해체한 뒤에 구입한 음반들이었다. 왬을 듣기 시작할 무렵 조지 마이클(George Michael)의 솔로앨범이 바로 나온걸 보면, 왬과 조지 마이클을 거의 같은 시기에 들었다고 봐야겠다. 왬 음반은 크게 두 장 2집, 3집을 제일 많이 들었다. 1집은 이름 정도를 알리는 앨범이었고, 1984년에 발표된 2집 [Make It Big]이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Wake Me Up Before You Go Go’,‘Careless Whisper’,‘Everything She Wants’ 3곡이 빌보드 핫 100 1위를 ‘Freedom’은 탑텐에 들었다.
이때 인기가 얼마나 높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 예가 영미권 팝 그룹으로는 처음으로 10일간의 중국 방문과 공연을 할 정도였다. 이 사건은 중국과 서방의 우호 관계를 강화하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되기도 했었다.
왬 시절 최고의 나날이었고 바로 이어 1986년 3집이 마지막 앨범인데 여기에 ‘Last Christmas’가 수록되어 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Wham!
이 듀오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앤드류 리즐리(Andrew Ridgeley)의 역할이었다. 노래는 조지 마이클(George Michael)이 거의 모든 노래 작사-작곡에 다 부르는데 앤드류 리즐리는 뭘 한 거지? 얼굴 마담인가? 포지션은 리듬 기타 치는 역할밖에 없는데 해체의 수순은 예견된 일이었다고 생각했었다. 왬의 무게 중심이 조지 마이클 쪽으로 너무 기울어져 있어 어쩌면 솔로로 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고 생각했다. 물론 결성 초반에는 패션 스타일이며 아이돌스러운 모습은 앤드류 리즐리였지만 결국 핵심은 음악 아닌가? 라고 확신했었다.
하지만 이 다큐에서는 앤드류 리즐리에 이런 평가는 잘못된 것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왬 결성이전부터 해산까지의 전 과정을 다양한 인터뷰와 영상으로 담고 있는데, 우리의 편견을 깨는 뜻밖의 이야기들이 나온다. 초기에 조지 마이클의 재능을 일깨우고 팀의 구심점을 끌고 가는 것은 단연 앤드류 리즐리였다.
왬 결성 이야기
학창시절 앤드류의 학교에 그리스계 학생이 하나 전학 오게 되는데 이름도 어려운 ‘예오르요스 키리아코스 파나요트’ 줄여서 앤드류는 ‘YOG 요기, 욕’이라고 불렀고 왬 결성 후에는 활동하기 쉬운 예명 조지 마이클로 바꾼다. 학창시절 누가 봐도 앤드류는 인싸, 요기는 아웃사이더였다. 이 둘은 금새 단짝친구가 되어 공통관심사였던 음악에 꽂혀 아마추어 록밴드까지 결성하기 이른다. 이때 만든 데모곡으로 음반사 문을 두드려 첫 싱글 ‘Wham! Rap’을 발표한다. 당시 10대 들의 댄스음악에 관심을 두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조금씩 유행을 타고 있던 랩을 접목시킨 곡이었다.
두 번째 싱글 ‘Club Tropicana’ 이 초기만 하더라도 왬에서 앤드류 리즐리는 작사-작곡도 함께 하면서 팀을 주도했는데. 2집 앨범부터 조지 마이클이 모든 것을 주도하는 관계로 발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Careless Whisper” 이 곡을 작업하면서 완벽주의 성향과 프로듀서로의 역량과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실제로 도입부에 나오는 섹소폰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수없이 녹음을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스튜디오도 미국에 건너가 녹음까지 끝마쳤지만, 모든 걸 뒤집고 영국에 돌아와 다시 작업 하는 집요함을 보였다.
역사에서 가정은 없지만, 만약에 조지 마이클이 앤드류 리즐리를 만나지 못했다면 아마도 우리는 왬과 조지 마이클을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내성적인 친구 조지 마이클을 이끌고 음악을 시작한 것도, 왬을 결성한 것도 앤드류 리즐리 덕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지 마이클이 창작력이 폭발하고 왬의 모든 노래들을 주도하기 시작하면서 그 어떤 시기와 질투 없이 그를 전적으로 믿고 앨범을 만들 수 있었던 것도 앤드류 리즐리 덕분이었다.
대부분의 듀오나 그룹의 멤버 갈등의 원인은 결국 시기질투로 인한 갈등이었는데 적어도 왬은 이런 갈등은 없었다. 앤드류 리즐리가 자기 그릇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왬의 마지막 콘서트를 통해 깔끔한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고 조지 마이클은 솔로로 기지개를 펼 수 있었다.
“사람들은 앤드류가 조지에게 무임승차했다고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였다. 앤드류가 왬이었고 조지 마이클은 어릴 때부터 앤드류를 따라했다.” 실제로 마지막 콘서트와 관련된 인터뷰 중에 “너 없이는 못했다”는 조지 마이클의 고백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한줄 감상평은 “친구따라 강남 간, 조지 마이클의 대박 난 그때 그 시절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