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관우 이야기. 강원도 화천은 늘 추웠다. 화천군 상서면 7사단, 군 생활했던 곳이다. 친구들보다 늦게 입대했는데, 친구들이 거의 다 전역한 이후 꾸역꾸역 막차를 타고 입대했었다. 10월 군번이었고 화천의 칼바람은 아무리 껴입어도 추웠고 군번이 꼬였는지 철책 근무로 군 생활 반 이상을 철책 소초에서 보내야 했고 그중에 반은 AOP라는 해발 800m에 있었다. 하늘에서 쏟아진 흰 똥 덩어리, 눈 때문에 눈 쓸고 눈 치우고 입대 후 일병 달 때까지 제설 작업했던 기억만 유독 많이 남는다.
남자들은 공감하겠지만, 입대 후 훈련소에서 들을 수 있는 음악이라고는 군가밖에 없었다. 정신과 육체의 개조가 6주 만에 일어나는 놀라운 장소 느슨해진 나사가 바짝 조여지고 기름칠 되는 곳, 빠진 정신 삽자루를 다잡을 수 있는 곳. 군 훈련소에서의 생활이 즐거운 이가 얼마나 있겠는가? 하루하루 고되고 정신없는 훈련소 생활의 연속이었고, 마치 높은 파도에 휩쓸려가듯 떠맡겨진 채 떠밀려 다녔다.
훈련 3주 차 정도 됐을까? 평소와 같이 빡센 훈련을 마치고 석식 시간 식판에 찐 밥에 반찬 이것저것 배식을 받아 게 눈 감추듯 먹고는 설거지를 위해 투덜투덜 짬 버리는 가는 길에 조리실 쪽에서 노래 한 곡이 흘러나왔다. 취사병들이 틀어놓은 테이프에서 흘러나온 그 노래, 유독 겨울 초입의 시린 그 시간에 가던 길을 잠시 멈춰 서게 만든 노래는 바로 조관우의 <꽃밭에서>였다.
조관우의 2집 앨범 Memory는 당시 비공식으로 230만 장이 팔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판매량이 엄청났다. 입대 전 아르바이트로 일했던 레코드숍에서도 이 앨범 테이프며 CD를 열심히 팔았던 기억이 스치며 근 한 달 만에 군가가 아닌 대중음악을 접한 곡이 바로 조관우의 <꽃밭에서>였다.
공교롭게 흘러나온 가사는 “이렇게 좋은 날엔~ 이렇게 좋은 날엔 그 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우우~~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름다운 꽃송이~~“
이 노래가 이렇게 아름다웠나? 그나저나 이렇게 좋은 날에 난 여기에서 뭐하고 있지? 가사처럼 그 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멍하니 그 노래를 듣고 있는데 그만 눈물이 주룩 흘러내렸다. 한겨울 훈련에 찌든 심신과 먹다 남은 짬과 식판을 설거지하러 가는 그 발걸음과 조관우의 팔세토 창법은 언밸런스를 넘어 굉장한 괴리감을 안겨줬었다. 조관우는 노래로 흐느끼고 있었고 난 그 자리를 한동안 뜰 수 없었다.
1997년 초겨울 어느 날 훈련소에서 들었던 <꽃밭에서>는 그렇게 내 마음속 깊이 새겨졌다. 남자들이 꾸는 악몽 중에는 전역 후에도 꿈속에서 훈련소나 다시 입대하는 꿈을 꾼다고 한다. 실제로 전역 후 이런 꿈을 몇 차례 꿨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깰 정도는 아니었지만, 흠칫 놀라 잠을 깼었고, 꿈이었음을 알았을 때 깊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럼에도 강원도 화천과 조관우의 꽃밭에서는 지금까지 아련하다.
노래의 힘은 대단하다. 그 노래를 듣던 그 시절 그곳으로 스르륵 데려가 준다.
그때 만난 이들과 그곳 온도와 냄새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