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 하는 사람들에게 적어도 김광석이란 이름은 애증이다. 노찾사 활동과 동물원 활동 때만 해도 개성 있는 목소리로 대중들에게 알려졌고, 본격적으로 솔로활동하던 시절만 해도 폭발적인 인기보다는 먹물이 화선지에 스미듯 많은 사람을 위로해 줬었던 것 같다.
음악은 때가 있다.
그때 난 솔직히 안치환이 더 좋았고, 강산에가 더 좋았다. 김광석 목소리는 왠지 연약했고 조금만 들어도 질리는 스타일이라 느껴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이유 중에는 라이브카페 노래하는 형님들의 단골레퍼토리가 김광석이었던 이유도 있었다. 다운타운, 언더그라운드 포크 음악 하는 분들 중에 김광석 노래를 안 부른 사람이 과연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이들 불렀다. 물론 손님(대중)이 그만큼 김광석 노래를 신청을 많이 했고, 그의 노래를 좋아했겠지만…그렇지 않은가? 좋은 것도 하루 이틀이지 너무 많이 들으면 질리기 마련이다.
주변에 통기타 들고 음악 하던 선후배들이 많았는데 이들조차 김광석 아니였으면 통기타 가수들 굶어 죽었겠다는 우스갯소리를 했으니 말다하지 않았겠는가? 그리고 예전에는 내 귀는 우리나라 포크음악의 진가를 알지 못했다. 탐 러쉬(Tom Rush), 닉 드레이크(Nick Drake), 미키 뉴베리(Mickey Newbury), 밥 딜런(Bob Dylan), 도노반(Donovan) 이 최고인 시절이었다. 이런 편협함으로 김광석 음반은 굴러다녀도 쳐다보지 않았다.
김광석 다시듣기
음악사에서 일하며 김광석 음반을 많이 듣고 많이 팔았고 많이 선물도 했지만, 정작 내가 가진 김광석 앨범은 그때 동물원1, 2, 노찾사1, 김광석 2집이 다였다. 심지어 ‘다시부르기’ 시리즈가 나왔을 때는 짜증까지 냈다. 사골도 아니고 너무 우려먹었다. 듣기도 정말 많이 들었지만 그만큼 흔한 음악이었고 싫증까지 냈으니 단지 그런 모습이 싫었다. 자연스럽게 시간이 흘러 팝과 재즈, 클래식을 탐닉하던 시기를 돌고 돌아 다시 김광석을 듣게 됐는데, 정말 좋았다.
음악도 Just In Time 딱 그 시간, 그 시기가 있듯이 10대, 20대에 느끼지 못한 감정을 나이가 들면서 먹물이 스며들 듯 김광석의 음악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그땐 알지 못했던 맛이 느껴지고, 그땐 안 들리던 소리가 들리고, 그때 몰랐던 감동이 거기에 있었다.
그래서 음반을 다시 모으자니 초반들은 넘사벽이 된 상태였다. 물론 리이슈 판들이 최근에 모두 발매되긴 했지만 예전과 비교를 하자니 덜컥 구매하기가 망설여졌다. 고민과 고민을 거듭하다 중복음반들 정리하고 4집을 어렵게 구했다. 배송된 음반 딱 한 번 들었다. 감동은 없었다. 언제 하루 술 한 잔 걸치고 들어야겠다. 역시 김광석 음악은 맨정신보다 취중에 들어야 한다. 알코올이 필요한 음악이 있다.
김광석은 누구?
대구에 가면 김광석 거리가 있을 정도로 김광석은 대구 중구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입학 전에 서울로 상경해 명지대 82학번이다. 대학연합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민중가요를 부르고 소극장공연을 시작했다. 1984년 김민기의 음반에 참여하면서 데뷔했다. 이후 노찾사 1집에 참여했고 동물원의 보컬로 활동하며 이름을 알렸다.
동물원 음반은 친구들과 재미로 녹음하던 음악이 세상에 나온 것이었다. 멤버들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음반이었지만, 예상과는 달리 매우 잘 팔렸고 이런 동물원의 성공은 노찾사에서 나와 보다 대중적인 공간으로 나올 수 있는 계기였다. 동물원 멤버들은 프로와 아마추어의 중간지점에 놓여있었고, 이미 전업으로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멤버도 있었지만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다른 길을 선택해야 하는 멤버들도 있었다. 김광석은 직업으로 음악을 하기로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김광석 앨범들
동물원 2집까지 활동하고 친구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며 1989년 솔로 1집을 발매하게 된다. 1집은 가능성을 보여준 앨범이었고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른 것은 김광석 2집 앨범이었다. 한동준이 작사-작곡해준 “사랑했지만”, 작곡가 김형석이 1집 “너에게”에 이어 2집에서는 “사랑이라는 이유로”를, 동물원시절 친구 김창기의 “그날들”등이 사라을 받은 노래들이었다. 이 앨범으로 김광석은 더욱 대중적인 가수로 인식됐다.
김광석 3집은 1992년에 발표됐는데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나의 노래”가 담긴 이 앨범은 김광석의 정체성을 확고히 한 앨범이었다. 1,2집의 대중지향적인 면에서 본인이 민중가요를 불렀던 가수로 재조명 받은 건 3집부터였다. 1993년에는 김민기의 학전소극장에서 한 달간의 장기 공연을 열고 [다시 부르기 1집]을 발표한다. “거리에서”,“광야에서”등이 수록된 이 앨범은 과거의 명곡들을 다시 소환하며 리메이크 선풍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1994년 지금껏 김광석 LP음반 중에 가장 비싼 4집 앨범이 발표된다. “일어나”,“바람이 불어오는 곳”,“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서른 즈음에”,“혼자 남은 밤” 등이 수록되어 전 앨범이 골고루 사랑받으며 확고한 대중가수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다음해 1995년 김민기, 김의철, 김목경, 양병집 등의 포크 1세대로부터 이어온 한국 포크 음악의 계보를 잇는 [다시 부르기 2]를 발표하며 한국 모던 포크의 진정한 계승자로 자리매김하게 해준 명반으로 평가받는다.
김광석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소극장 공연이다. 워낙 많은 공연을 했고 학전 소극장에서만 1000회가 넘는 공연을 했다. 가수라는 직업에 대한 성실함이 무엇보다 돋보인다. 가객이라고 불린 이유를 알 것 같다.
“자기 직업에 충실해서 직장 다니시고 드러듯이 저도 제 가수라는 직업에 충실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공연 열심히 하다 보니까, 1,000회가 되데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연을 하면, 내 스스로의 존재가 확인도 되고, 가수로서 보람도 가장 크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