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죽음, 정체 모를 선산의 상속, 그리고 연달아 벌어지는 불길한 사건들, 얽히고 설킨 뿌리처럼 풀어낸 수 없는 악연에 휩싸인 상속인과 이복형제의 등장 그리고 이 둘을 추적하는 형사의 등장이 기본플롯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선산에 대한 평가가 다양하다. ‘몰입감 있다 재밌다’는 평부터 ‘가장 한국적인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얘기도 있고 그럼에도 실망이다 아쉽다는 평들이 SNS에 올라왔다.
넷플릭스 드라마 선산 스포 당하고 봤더니
그중에 어디선가 “살인의 추억+곡성+가족=선산” 이런 평을 봤는데 없던 기대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살인의 추억과 곡성이라니 두 편을 너무 재미있게 봤던 터라 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기대감을 높였던 이유 중에는 연산호 감독의 웹툰을 기반으로 했는데 연산호 감독은 사실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부산행, 반도, 지옥 등을 연출한 뒤에 직접 메가폰을 잡은 것이 아니고 기획과 각본을 맡았다. 감독은 민홍남이 맡았다.
넷플릭스 드라마 <선산> 6회를 한방에 몰아서 봤다. 큰 줄기를 이루는 이야기의 몰입감이 상당하다. 그리고 각각의 인물들의 사연도 하나하나 다 살아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스포를 당한 상태에서 드라마를 봤는데 짜증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단지 이 드라마 평가가 궁금해서 네이버에 드라마 <선산>을 검색했더니 기본정보 밑에 트위터처럼 실시간으로 뭔가가 올라오는 내용을 훑어봤는데 거기에 이 드라마의 핵심 스포가 있었고 그걸 읽어버리고 말았다. 사실은 그게 스포인지도 모르고 드라마1편부터 보는데 1편인지 2편 후반부인지 그것이 스포였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이런 젠장 몰입감이 높았는데 맥이 탁 풀렸다. 그럼에도 궁금해서 끝까지 스포한 놈을 욕하면서 봤는데, 스포를 모르고 봤더라면 훨씬 더 재밌었을 것 같다.
선산은 기본적으로 가족에 대한 이야기고, 가족의 양면성을 다룬다. 드라마 속에는 여러 형태의 가족이 등장하는데 하나같이 다 불행하고 비극적인 사연들이 있다. 드라마 ‘선산’에는 사랑으로 가득 찬 가족은 없다. 현실에 꼭 있을 것 같은 가족들이 나오는데 바람난 남편, 아버지의 말로 상처받은 청소년, 어릴 때 사라진 아버지의 부재 등 다양한 가족들이 나오는데 설득력 있다. 결국 이 드라마가 던진 질문은 “가족이란 무엇인가?”이다.
연상호는 이렇게 전체를 기획하고 총괄하는 크리에이터로서 더 빛을 발한다. 살짝 아쉬운 것은 오컬트 색깔이 좀 더 짙어도 좋았을 것 같지만 그 부분이 미진하다. 예고편에서 한껏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것은 곡성분위기의 오컬트적인 요소와 무속신앙이 등장한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인물들 간의 갈등과 복잡한 욕망, 분노와 살인으로 이어지고 오컬트와 무속신앙은 무늬만 띄고 있고 그 안에는 인간의 욕망이 자리잡고 있었다. 외딴 시골의 그로테스크환 분위기는 무속신앙과 함께 초반 극을 끌고 가고 대놓고 범인처럼 보이는 김영호 캐릭터는 너무 과한 느낌으로 중후반까지 극을 휘젓고 다닌다. 결국 후반부에 남는 것은 오컬트를 뒤집어쓴 범죄 스릴러였다.
스포일러 있음, 스포 당하지 않기 위해선 뒤로
선산의 결말은 충격적이고 파격적인 반전이다. 범인은 김영호의 엄마이자 윤서하의 고모였다. 김영호는 윤서하의 아버지가 여동생과의 근친상간을 통해 태어난 아들이었다. 김영호는 이처럼 통념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는 상황에서 태어난 존재이다. 주인공 윤서하는 이복동생 김영호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사실 이런 근친상간코드는 미국의 오컬트 영화나 B급 영화 어디선가 본적 있는 호러 스릴러의 소재이기도 하다. 언청이 누이와 불륜으로 애를 낳고, 이 언청이 엄마가 동굴서 선무당질하며 아들 위해서 연쇄살인을 벌인다. 그나저나 연상호 감독의 머릿속에는 무엇이 있길래 이런 장르의 영화를 만들 수 있는지 의문이다. 예측할 수 없는 스토리전개와 인간의 탐욕과 피에 대한 집착이 있다. 실제 귀신보다 더 무서운 인간의 사악함이 드라마에 있을 뿐이다. 귀신 나오는 영화보다 더 음산한 분위기를 잘 유지하고 그 끝에는 반전을 잘 숨겨놓았다.
김현주, 박희순, 류경수, 박병은 연기 모두 좋다. 연기 합도 좋고, 캐릭터도 살아있고 나름 설득력 있게 잘 그려냈다. 단지 류경수가 연기한 김영호는 범인 냄새만 잔뜩 풍기고 바람잡이역할을 잘 했지만 좀 과한 느낌이고, 실제 범인인 김영호의 엄마이자 윤서하의 고모역을 맡은 캐릭터가 아들을 위한 행동이라고 치기에는 설득력이 살짝 부족하고 산탄총을 쏘고 시체를 옮기고 극중 나이가 무색할 정도의 괴력을 보여주는 부분은 현실감이 떨어진다. 무슨 할머니가 힘이 이리도 좋은가? 실제로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았다는 설정치고 결정적인 순간에 그 자리에 있다는 설정도 아쉽다.
그럼에도 넷플릭스 드라마 선산은 짜임새도 있고 가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만한 드라마다. 스포만 피할 수 있다면 한 번 볼만한 드라마다. 물론 아쉬움이 남지만 최근에 본 드라마중에 볼만한 드라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