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처음이란? 아하 이야기. 처음은 정말 많은 의미가 포함되어있다.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나, 첫돌, 첫걸음을 떼었을 때, 초등학교 입학식이나 첫사랑, 첫 키스, 초심, 처음으로 독립했을 때, 첫 직장 등 온갖 의미를 붙일 수 있는 것이 이 처음이란 단어다.
인생 첫 음반 : 아하
처음 용돈을 모으고 모아서 내 의지로 샀던 물건은 어떤가? 초등학교 학용품이나 문제지, 가방이나 옷이나 이런 것들이 아닌 그 시절 나만의 소유물은 뭐가 있을까? 그게 바로 음악 테이프였다. 취미란에 가장 많이 적어 넣었던 영화 감상, 음악 감상의 바로 그 음악 감상용 음악 테이프였다. 음악도 장르가 다양했겠지만, 당시 라디오를 즐겨 들었는데 그 라디오에서 나왔던 음악이 바로 나에게는 팝송이었다. 지금이야 팝 전문 라디오 프로그램 찾기가 더 힘들지만, 당시 만해도 팝송 위주의 라디오 채널들이 많았다.
딱 중1 봄 소풍 때로 기억한다. 엄마가 싸준 김밥에 사이다, 거기에 혹시 필요하면 쓰라고 넣어준 약간의 용돈이 있었다. 그 용돈을 들고 소풍 끝나고 바로 동네 음악사로 달려가 내 인생 첫 음악 테이프를 구입했다. 아마도 처음으로 구입한 테이프라 더 기억나고 아름다웠던 추억으로 남아있는 듯하다. 라디오에 나오는 노래를 녹음한 테이프나 길거리 리어커에서 팔던 테이프는 몇 개 사 봤지만, 그래도 제대로 된 정품 카세트 테이프를 구입한 적은 처음이었다.
그리하여, 처음 구매한 정품 카세트 테이프는 바로 A-ha 1집 앨범이었다. ‘팝송대백과사전’을 옆구리에 끼고 그때 A부터 Z까지 좋아하는 가수들의 팝송 테이프를 하나하나 알파벳 순으로 구매할 거대한 구상을 했었다. 그 첫 번째 주자가 바로 A-Ha였다. 물론 ABC라는 팀도 있었고 Abba도 있었고, 알파벳 A로 시작하는 수많은 그룹과 가수가 있었지만, 그나마 라디오에서 듣고 알고 있던 팀이 Air-Supply, A-Ha 다. 둘 중에 심각하게 갈등 했는데 최종 선택은 A-ha였다. 당연히 두 번째 테이프는 Air-Supply를 구매했다.
<Take On Me>가 수록되어 있던 앨범 <Hunting High And Low> 정말 테이프가 늘어날 때까지 많이 들었다. 수업 끝나고 집에 들어와 잠들 때까지 그 테이프를 돌려 들었다. 그래서 지금도 <Take On Me> 이 곡을 들으면 중학교 1학년 그때의 냄새와 추억들이 떠오른다. 그때 친구들 모습과 살던 동네 골목 골목이 아련하다. 그리고 이 노래는 지금 들어도 심장이 뛰며 설렌다. 마치 첫사랑을 다시 만난 것 같은 느낌이다.
<Take On Me>의 뮤직비디오는 충격 그 자체였다.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조화는 ‘저걸 어떻게 만들었는지?’ 보다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이었다. 80년대 최고의 뮤직비디오를 뽑으라면 주저 없이 A-ha의 이 뮤직비디오를 뽑을 거다.
그 어떤 영화보다 세련됐고, 멤버 3명의 모습은 순정 만화를 찢고 막 튀어나온 것 같은 모습이었다. 거기에 입혀진 멜로디와 모튼 하켓(Morten Harket)의 미성은 지상 최대의 팝송이었다.
이후 김광한 아저씨가 “쇼 비디오 쟈키”에서 소개해준 아하의 뮤직비디오들은 꼭꼭 챙겨봤고 그렇게 2집, 3집, 4집까지 차례로 테이프로 구매 했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입학 선물로 받은 전축에는 턴테이블이 있었고 들을 만큼 들어서 늘어난 테이프를 LP판으로 대체했다. 또 시간이 지나 오아시스 발매 했던 라이센스 판들은 수입 원반으로 하나하나 교체해 나갔다.
첫 사랑 같은 음악 나에게는 A-ha의 <Take On Me>가 그런 존재다.
아하라는 팀을 조금 소개하자면, 데뷔 당시는 전 세계를 휩쓴 아이돌 그룹이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저평가된 팀이었다. 소녀 취향의 아이돌 그룹 취급이 너무나 싫었던 밴드 멤버들은 늘 이런 이미지에서 탈피하고 싶어서 고민했었다고 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아-하:테이크온미]를 보면 너무나 잘 나와 있다. 오해의 대상이었고 알면 알수록 창의적인 밴드였고 팝의 지난 시절 가장 알려지지 않은 천재들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콜드플레이의 크리스마틴이나 위켄드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많은 동료 후배 뮤지션들에게 영감을 제공했다. 심지어 장르도 전혀 다른 레너드 코헨이나 그래함 내쉬도 아하를 극찬했었다.
노르웨이 출신의 뉴웨이브 그룹이며 당시 아하의 라이벌은 누가 뭐래도 ‘듀란 듀란’이었다. 노르웨이어로는 이름이 조금씩 다르게 불리지만, 모튼 하켓, 폴 왁타, 마그네 프루홀멘이라고 잘 알려진 3명은 81년 돈을 탈탈 털어 영국으로 건너가 악착같이 돈을 벌며 데모 테이프를 만들어 여기저기 뿌린다. 그렇게 얻어 걸린 메이저 제작사가 바로 워너 브라더스였고, 계약까지 하게 된다.
동네 형동생이었던 폴 왁타와 마그네 프루홀멘은 10대 시절 스쿨밴드에서는 그룹 ‘Doors’느낌의 사이키델릭록 음악을 지향했던 팀이었다. 팀 명은 브리지스(Bridges)였고, 여기에 이미 만들어 놓았던 노래 중에 <Take On Me>의 원형이 있었다. <Miss Eerie>라는 제목의 곡으로 느낌이 무슨 상큼한 과일 느낌이라 부제가 <Juicyfruit Song>이라고 알려져 있다. 물론 이 싱글은 발매됐지만 망했고 이후 전설이 된다. 이 노래로 당시 동네에서 잘 나가던 보컬 모튼 하켓을 꼬드겨 팀에 합류시키는 계기가 됐다. 모튼 하켓에게 이 곡을 들려줬는데 바로 꽂혀 팀에 합류해서 영국까지 쫓아갔다.
당연히 워너브라더스에게 들려준 데모곡도 이 노래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관계자들이 듣자마자 단박에 반했고 리드 보컬 모튼 하켓을 보자마자 얘네는 무조건 뜬다는 감으로 계약까지 성사 시켰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처음부터 <Take On Me>가 세계적인 히트를 터트리지 못했다. 정말 뜰 때까지 지속적으로 이 노래를 밀어준 케이스였다. 어찌어찌 워너 브라더스랑 계약을 했지만, 1984년도에 발표한 노래는 처참할 정도로 피드백도 인기도 없었다. 처음에는 당시 유행하던 뉴웨이브 스타일로 편곡해서 한번 발표했지만 폭망, 무대에서 공연하는 것 같은 뮤직비디오를 찍고 약간 손을 보고 다시 한 번 발매 했지만 역시 차트에서 광탈했다. 연이은 두 번의 싱글 발매에 반응이 없자 멤버들은 멘탈이 나갔었다고 회고한다.
아무리 멜로디가 기가 막혔지만 당시 80년대는 팝의 최전성기로 좋은 곡들이 쏟아져 나오던 시기였다. 얘네 무조건 뜬다고 믿었던 워너 브라더스도 난감했다. 그동안 해오던대로 기획하고 프로모션해서는 답이 없다고 느낀 워너 측에서 특단의 대책을 내놓는다. 이 노래 하나를 띄우기 위해 업계 최고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한다. 당장 프로듀서부터 교체하고 곡을 다시 녹음하고 새롭게 편곡해서 앨범을 뒤집어엎었다. 또한 뮤직비디오에 돈을 쏟아 붓는데 이전까지 그 어디에서 보지 못한 뮤직비디오를 제작한다. 만화와 실사를 삽입해 굉장히 감각적으로 만들었는데 만화가가 3천 장이 넘는 스틸을 직접 그렸다고 한다.
이렇게 손 본 버전이 우리가 아는 3번째 <Take On Me>다. 뮤직비디오 전문채널 MTV를 사로잡기 시작했다. 통통 튀는 키보드를 강조해 좀 더 대중적인 신스팝 스타일로 완전개조 했고, 뮤직비디오 스토리며 영상은 한마디로 대박 돌풍을 일으켰다. 여기에 모튼 하켓의 꽃 미남 외모는 인기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지금 봐도 이 뮤직비디오는 역대급으로 잘 만든 팝 음악의 최전성기에 이뤄낸 성과처럼 보인다. 물론 이후 앨범들에서도 탄탄한 스토리와 멋진 뮤직비디오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하의 음악도 음악이지만, 끝내주는 뮤직비디오라는 공식을 만들어냈다.
아하(a-ha)는 현재도 앨범을 내며 활동 중인 현재진행형 밴드다. 노르웨이 국왕이름으로 작위가 수여 됐고 훈장이 주어졌다. 아이돌 그룹으로 출발했지만 본인들 만의 정체성을 유지한 채 현재까지도 앨범과 투어활동을 이어가는 밴드, 수많은 음악인 들에게 영감을 주며 누군가에게 강한 영향을 끼치는 밴드가 바로 아하다. a-h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