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izona Dream(아리조나 드림) OST

영화의 흥행성공이 반드시 영화사운드트랙 OST의 성공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영화는 좋은데 OST가 아쉬운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허다하다. 영화 주제곡은 너무 좋지만 영화의 완성도나 흥행도 늘 비례하지 않는다. 또, 영화와 음악은 여러 매체를 통해 유명한데 실제로 이 영화를 본 사람은 거의 없는 경우도 있다. 이번에 소개할 영화가 바로 이런 케이스다. Arizona Dream OST 이야기다.

국내에서는 포스터와 음악이 더 유명했던 영화, 하지만 정작 국내에는 개봉되지 않았던 영화 <아리조나 드림>이었다. 아리조나의 사막 위, 선인장 옆을 날아가는 가자미의 모습이 인상적인 영화의 포스터는 상당한 인기를 끌었고, 특히 Iggy Pop – In The Death Car는 국내 드라마에 심심치 않게 삽입되어 수많은 문의 전화를 받은 노래지만, 영화는 개봉조차 못했고 OST 또한 구하기 쉽지 않았던 영화가 바로 <아리조나 드림>이었다.

90년대 중반 FM 라디오에서 매우 이국적인 느낌의 Iggy Pop – In The Death Car를 처음 들었고 마치 홀린 듯 반해 버린 곡이었다. 라디오를 듣고 당시 레코드점을 다 뒤졌지만 영화 OST는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었다. 국내엔 수입조차 되지 않았고 아는 선배가 일본에서 이 음반을 CD로 구입해 왔고 난 그걸 테이프에 녹음해서 한동안 들었었다. 당시 Mercury 라는 레이블에서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었고 우리나라에 수입 또는 라이센스로 발매되길 간절히 원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실제로 Mercury는 성음이란 유통사에서 담당하고 있어 성음에 전화까지 걸어서 음반 발매 유무를 알아봤는데, 모르겠다는 답변만 들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은 흘러 2000년 초반 후배가 유럽 여행 중에 이 음반을 정말 어렵게 구했다고 연락이 왔다. 기쁜 마음에 음반을 받아 들었는데 마치 조악한 해적음반을 연상케 하는 쟈켓 인쇄상태며 촌스럽다 못해 어설픈 프린트 상태는 영락없는 짝퉁 CD였다. 심지어는 영화포스터 선인장을 사이에 두고 날던 가자미는 포스터랑 반대 방향으로 날고 있었다. ‘아~ 해적판 CD를 샀군, 그래도 구하기 힘든 음반인데 이게 어디야?’ 라며 한동안 애지중지 귀한음반이라 위안 삼았다.

그리고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은 짝퉁 CD같았던 그 음반은 감독이 옛 유고슬라비아 출신이라 실제로 유고슬라비아에서 발매된 정품 CD였다. 지금이야 발칸반도에서 유고슬라비아는 사라졌고, 이미 갈기갈기 찢어져 6개인지 7개로 각자 독립된 나라로 존재해 있는 우리는 이곳을 유럽의 화약고라고 부르고 있다. 바로 옛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감독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1993년 작품이 바로 <아리조나 드림>이다.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이 우리에게 처음 알려진 것은 1985년 아이의 시선으로 유고 내전을 얘기한 <아빠는 출장 중>이란 영화였다. 당시 칸 영화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국내에서도 1988년 개봉해서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었고 감독이었다. 이후 1989년에는 그의 대표작 <집시의 시간>으로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며 또 한 번 이름을 전 세계 영화계에 알리게 된다.

그리하여 1993년에 미국과 프랑스 자본과 손잡고 미국을 배경으로 만든 작품이 바로 <아리조나 드림>이었다. 조니 뎁, 제리 루이스, 페이 더너웨이 등 헐리우드 배우들이 주연진으로 출연하며 화제가 됐었다. 하지만 영화 평가는 좋았지만, 흥행 성적은 그다지 훌륭하지 않았다. 그나마 유튜브 시대가 되어서 이 영화의 주제곡을 찾아서 듣다보니 영화장면을 이용한 뮤직비디오 클립이 있어 살펴봤는데 영화의 내용이나 상황이 도저히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아메리카 드림’의 종말을 고하는 또 다른 꿈의 세계를 구축해 낸다는 얘기들이 있는데 도대체 에스키모와 가자미, 하늘을 날고 싶은 여인의 꿈과 조니뎁이 등장하는데 어느 하나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고 상징과 초현실적인 장면들로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막상 영화가 나온다고 해도 선뜻 손이 가지 않을 것 같은 작품이다. 과연 이 영화를 끝까지 지켜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솔직히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은 1990년대 예술 영화 흥행 아이콘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집시의 시간>,<언더그라운드>,<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등 자신이 나고 자란 유고슬라비아 발칸반도를 배경으로 유고내전, 유고슬라비아 전쟁, 집시 문화와 사라져가는 그들의 고유한 정서를 주제로 한 소동극을 환타지스럽게 그려낸 감독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전통적인 요소들을 환타지로 연출하는 감독이다.

그리고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과 환상의 짝꿍을 이루는 영화음악가가 있다. ‘고란 브레고비치’다. 발칸반도의 슬라브어를 구사하는 국가에서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현대의 음악가이자 작곡가이며 발칸반도에 있는 집시음악을 가장 잘 이해하는 작곡가로 ‘집시 음악의 마에스트로’ 불리고 있다.

이런 스타일은 그의 영화 OST에 그대로 녹아있다. 어떻게 들으면 뽕짝 뽕짝하며 코믹하고 정신 사납지만 황량하고 구슬프게 들리는 묘한 느낌이다. 결혼식 음악인지 장례식 음악인지 헷갈린다. 집시 음악을 기반으로 관현악과 민속악, 전자음악과 록을 아우른 영화음악 작곡자이자 월드뮤직계의 거장이다. 거기에 펑크록커 이기팝의 만남은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이국적이고 낯선 음악이 탄생했다.

Iggy Pop – In The Death Car는 그래서 더욱 특별하고 이국적이며 정상과 비정상, 이상과 현실이 넘나드는 장면들과 더 잘 어울린다. 참고로 이기팝이 부른 주제곡 In The Death Car는 샹송가수 앙리코 마시아스의 Solenzara를 듣고 영감을 받은 곡이다.

또 한 곡, 이 영화 OST에 수록된 연주곡 Old Home Movie는 황량함 속에 따뜻함이 묻어나는 곡으로 처량하지만 아름답기까지 한데 이 곡은 [정은임의 영화음악]이란 라디오 프로그램의 시그널뮤직으로 쓰여서 귀에 익은 음악일 것이다. 심야 영화음악 프로그램을 귀 기울였던 수많은 영화음악 청취자들에게는 더 없이 반가운 트랙일 것이다. 이 연주곡은 버전이 하나 더 있는데 죠니뎁의 내레이션을 들을 수 있는 American Dreamers는 보너스다.

영화와 OST, 포스터는 마치 전설처럼 회자되었지만 정작 영화는 보지 못했던 <Arizona Dream> 그 속에는 이국적인 색채의 환타지한 집시음악이 있었고, 시네마키드와 정은임의 영화음악도 있었다. 어떤 음악은 잊고 있던 소중한 추억을 소환한다. 어쩌면 영화보다 음악이 더 존재감을 드러낼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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