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uella (크루엘라) OST

솔직히 크루엘라 Cruella 가 누군지 몰랐다. 단지 엠마스톤 이름하나만 보고 고른 영화로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영화를 보다 달마시안들이 나오는 대목과 낯익은 흑백의 반반 헤어스타일을 보고 <101마리 달마시안>의 그 악녀 이름이 크루엘라인걸 알았다. 디즈니에서 만든 빌런 크루엘라의 악역 서사를 구축해 나가는 이야기였다. 이제는 영화에서 밑도 끝도 없는 사악함과 이유 없는 악행은 관객들을 설득하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빌런의 뒷이야기, 왜 이런 빌런이 됐는지 그 탄생 비화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악행의 이유와 일말의 연민과 공감을 이끌어 영화적인 힘과 캐릭터를 구축해 나간다. 솔직히 조커나 할리퀸 같은 경우 너무나 매력적인 캐릭터들 아닌가? 이렇게 해서 악역의 당위와 개연성을 부여받게 되고 캐릭터 간 갈등을 증폭시킨다. 아주 영특한 발상이다.

<크루엘라> 음악 얘기를 하자면 이 영화는 2시간 10분의 긴 러닝타임 동안 한순간도 끊임없이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 영화가 디즈니 작품임을 상기해보자 디즈니 영화 중에 음악이 별로였던 영화가 있었던가? 영화를 보는 내내 음악을 적재적소에 꽂아 넣어 잘 활용하는 디즈니의 저력을 실감할 수 있다. 실제로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2천여 곡을 들었고 그중에서 50곡 정도를 추려내 영화에 담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냥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음악이 한순간도 쉬지 않고 흘러나온다. 그것도 1960~70년대 영미권의 대중음악들이 쓰였는데 그 선곡 플레이리스트가 범상치 않다.

1970년대 런던이 영화의 배경이고 주인공은 패션과 관련된 일을 꿈꾼다. 감각적인 선곡은 필수고 영국에서 유행했던 음악들이 어떤 곡들이었는지를 그 시대를 관통하는 음악들을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올드팝’은 거의 없다. 굳이 찾자면 익숙한 곡들이 나오지만 한마디로 말랑말랑한 곡들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아마 국내 광고 음악으로 쓰였던 반가운 트랙 몇 곡 정도 만날 수 있지만, 주를 이루는 음악들은 리듬 위주의 음악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드럼과 베이스가 넘실거리며 그루브감을 만들거나 그냥 쭉 달리는 펑크(Punk)가 영화를 끌고 나간다.

정말 눈과 귀를 잡아끄는 장면들은 펑크(Punk)와 훵키(Funky) 디스코 음악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흐르고 있다. (펑크(Punk)와 훵크(Funk)는 엄연히 다른 장르의 음악이다.) 크루엘라의 음악 선곡은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 로큰롤과 훵크, 포크와 컨트리, 알앨비와 소울음악, 하드록과 글램록, 디스코와 뉴웨이브 장르가 잘 버무려진 양념게장처럼 섞여 있다. 아니 양념게장 보다는 물회돈가스같다. 뭔가 안 어울리지만, 막상 먹어보면 나쁘지 않고 신선한 그런 느낌이다.

OST에 쓰인 노래들을 훑어보면 대부분 60~70년대 인기 있던 가수나 그룹들이 등장하지만 의외로 선곡들은 생소한 경우가 많다.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도 좀처럼 듣기 힘든 음악들도 수두룩하다. 공식 OST에 수록된 아티스트들을 나열해 보자면 Supertramp, Bee Gees, The Doors, Nina Simone, Ohio Players, Ike & Tina Turner, E.L.O, Queen, Blondie, The Clash 같이 왕년에 한가락 하던 이름을 만날 수 있다.

‘에이 다들 아는 가수들이구만’ 하겠지만 과연 그럴까? 대표적인 히트곡보다는 히든 트랙들이 쓰였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공식 OST에 수록된 곡 중에 아는 곡은 Nina Simone – Feeling Good, E.L.O – Livin’ Thing, Blondie – One Way Or Another 정도고 Ike & Tina Turner가 리메이크해 부른 비틀즈 Come Together, 레드제플린의 Whole Lotta Love 정도가 아는 곡 들이었다. 나머지 곡들은 유명한 아티스트지만 노래 자체는 생소 했고 처음 듣는 곡 들인데 영화의 장면과 찰떡궁합에 굉장히 좋다는 점이다. 이 영화 덕분에 꼭꼭 숨어 있던 보물을 건진 느낌이다. Supertramp, Bee Gees, The Doors, Queen 노래 중에 이런 곡들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공식 OST에 수록되지 않았지만, 영화에 흐른 곡들도 대단하다. Zombies – Time Of The Season, Deep Purple – Hush, Rolling Stones – The Sympathy For The Devil, Doris Day – Perhaps Perhaps Perhaps, Judy Garland – Smile 이 잘 알려진 트랙들이다. 특히 Judy Garland – Smile은 영화 <조커>에서도 쓰였고 이 곡을 작곡한 사람이 바로 챨리채플린이다. 자신의 영화 <모던타임즈>(1936)에 메인테마곡이기도 했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영화음악의 정점을 찍은 건 주제곡 Florence + The Machine – Call Me Cruella다. 크루엘라의 정체성과 영화의 주제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곡이다.

사실 이런 영화는 처음이었다. <크루엘라>는 한국의 아침 막장 드라마 뺨을 후려치고도 남을 법한 스토리다. 막장 드라마 속 단골 소재 출생의 비밀과 악행의 실타래와 음모는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화려한 연출과 긴 러닝타임이 전혀 지겹지 않은 음악이 큰 몫을 하고 있다. 엔딩크래딧에 영화에 쓰인 곡까지 다 확인했는데 놓친 노래들이 너무 많아서 다시 보고 싶게 만드는 영화가 바로 <크루엘라>다.

<크루엘라>는 음악에 의한, 음악을 위한 영화로 음악이 영화 전체를 끌고 나간다. 기민한 점은 뻔한 선곡이 아닌 음악을 극 중 또 하나의 캐릭터로 잘 활용했다는 점이다. 앨범에서 히트한 곡보다는 그 앨범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너무나 좋아했던 나만의 히든 트랙을 만나는 그런 느낌의 영화음악이 크루엘라의 매력이다. 영화 속에서 숨겨진 음악보물창고를 찾고 싶다면 크루엘라에 주목하라. 최고의 플레이리스트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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