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의 ‘워크맨(Walkman)’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는 음악 청취습관을 혁신적으로 바꿔버린 기기였다. 당시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은 누구나 원하는 물건이었고 초등학교 시절 너무나 갖고 싶었던 제품이었지만 소니 워크맨은 꿈의 기계였다. 대신 삼성전자의 ‘마이마이’, 금성의 ‘아하’, 대우전자의 ‘요요’가 소니 ‘워크맨’을 대신했다. 이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 광고는 TV와 라디오 황금시간대를 점령하며 청소년을 유혹했다. 그리하여 부모님을 조르고 졸라서 구입한 제품은 대우전자의 ‘요요’였다. 요요를 사면 데모테이프가 하나 따라왔는데 거기에 들어있던 노래는 거의 환상적이었다. 그중에 F.R. David “Words”는 단연 최고였다.
대우전자 요요 데모테이프에서 들었던 Words
대우전자 ‘요요’를 사면 따라오는 일명 데모테이프, 데몬스트레이션 테이프 또는 프로모션 테이프로 불렀는데 한 면에는 자사 홍보와 가요와 연주곡이 수록되어 있었고 또 다른 면에는 팝송이 들어 있었다. 이 A면 팝송들이 너무 달콤한 나머지 지금도 곡 순서가 또렷하게 기억된다.
첫 번째 노래는 가제보(Gazebo) “I Like Chopin”, 이어서 F.R David “Words”, 루이스 터커(Louis Turker) “Midnight Blue”, 에어 서플라이(Air Supply)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이었다. 정말 이 테이프가 늘어날 때까지 무한반복해서 들었고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곡은 F.R David “Words”였다. 첫 멜로디만 들어도 그 시절로 타임 슬립하게 만드는 환상적인 멜로디와 F.R David 미성은 지금 들어도 너무 좋다.
사랑한다는 말을 연인에게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워 노래로 불렀다는 내용으로 부드럽고 서정미 넘치는 보컬과 신디사이저 선율이 멋진 앙상블을 이룬 명곡이었다. 8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이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노래로 추억속의 명곡이다.
F.R. David 누구?
F.R. David는 1947년생으로 튀니지계 프랑스인 싱어송라이터겸 팝가수다. 본명이 엘리 로버트 피투시(Elli Robert Fitoussi)로 튀니지 유대인가정에서 태어났고 튀니지는 프랑스령이었다. 프랑스 파리로 음악경력을 시작하기 위해 옮겨왔을 때 로버트 피투시(Robert Fitoussi) 이름의 이니셜을 예명으로 채택한다. F.는 성인 피투시(Fitoussi)고 R.은 이름인 로버트(Robert) 이니셜로 F.R.이 만들어졌고 데이빗(David)은 다윗과 골리앗의 그 다윗의 이름을 의미한다.
원래 꿈은 록커였다. 프랑스 개러지 밴드 레 부츠(Les Boots)로 EP앨범도 발표했지만 상업적으로 실패하고 F.R. David 이름으로 솔로앨범을 발표하는데 나름 소폭의 히트를 쳤지만 인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리고 여러 밴드를 결성해서 기타리스트로 음악활동을 이어갔지만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몇몇 밴드의 해체와 결성을 반복했었다.
그러다 1970년대 초반 그리스의 대표 록밴드 아프로디테스 차일드(Aphrodite’s Child)의 건반주자인 반젤리스(Vangelis)가 솔로활동을 시작하면서 자신의 서포트 팀을 만들어 공연을 다녔는데 이때 F.R. David가 기타리스트로 팀에 합류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반젤리스(Vangelis) 몇몇 앨범에서 기타 외에도 보컬리스트로도 앨범에 참여하게 된다. 1974년 싱글 “Who”, “Odyssey”에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실제로 당시 반젤리스(Vangelis)가 선호한 목소리는 미성의 신비하고 깨끗한 목소리였는데 F.R. David의 목소리가 표현하기에 적합했다.
후에 반젤리스(Vangelis)는 예스(Yes)의 보컬 존 앤더슨(Jon Anderson)과 함께 여러 장의 앨범을 발표하는데 존앤반젤리스(Jon & Vangelis)의 앨범의 느낌을 이미 이때 실험하지 않았을까? F.R. David과 존 앤더슨(Jon Anderson)의 목소리 톤과 분위기는 사뭇 비슷한 면이 조금 있다.
F.R. Daivd는 반젤리스(Vangelis)와 활동을 병행해서 동시에 계속 솔로 음반을 발표하기도 하고, 프랑스의 하드록 밴드 바리에시션(Les Variations)에 몸담고 “Cafe De Paris”음반을 발표하기도 한다. 이렇게 경력은 쌓은 F.R. David는 미국진출 호기를 기다렸다 세계 팝 음악의 중심지 미국으로 건너간다. 미국에 도착한 F.R. David은 토토(Toto), 두비브라더스(Doobie Brothers), 오제이스(O’Jays)등의 음반에 참여하며 거의 5년 동안 미국아티스트들과 협업하며 커리어를 쌓아간다. 하지만 이마저도 아메리칸 드림은 쉽지 않았고,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살 정도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한다.
F.R. David – Words 탄생
F.R. David가 미국에서의 음악활동을 하는 동안 어느덧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가 됐고, 돌파구는 보이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다시 프랑스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이때 미국에서 쌓은 커리어로 솔로앨범을 제작하게 되는데 앞서 해왔던 록 음악의 비중을 살짝 줄이고 보다 대중적인 멜로딕한 곡을 써보자는 매니저의 제안으로 사람들이 춤을 출수 있을 정도의 팝음악으로 전향하게 된다.
그래서 예전에 써 놨던 곡 중에 분위기가 살짝 어두웠던 노래 한 곡을 꺼내들고 새롭게 편곡하게 이른다. 편곡하러간 스튜디오에 분신같은 기타를 놓고 와버렸다. 그래서 어쩔 수없이 일렉기타를 대신해 신디사이저로 전주를 만들게 되는데 이게 생각보다 너무 괜찮았고 그제서야 F.R. David에게 길이 열리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노래가 바로 “Words”였고 신디사이저반주로 시작된 이 노래는 신의 한수였고 이후 그의 음악을 열어준 계기가 된다.
먼저 발표한 싱글 “Words”가 유럽 전역에서 히트를 시작하게 된다. 1981년에 프랑스에서 1위를 차지하더니 1982년 말 유럽전역에서 정상을 밟게 된다. 심지어 영국 BBC에서 송출된 이후 영국에서도 1983년 2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미국에서의 차트성적은 62위까지 오르긴 한다. 이 노래는 미국을 제외한 전 유럽을 휩쓸며 당시 전 세계에서 최소 800만장 ~ 1200만장 정도의 판매고를 올렸으며, 1983년 우리나라에서도 ‘예음’에서 정식 발매되며 국내에서도 10만장이 팔려나갔다.
당시 국내 시장규모와 팝이라는 장르로 봤을 때 이 판매량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심지어 이 노래는 국내여가수 이화가 “이젠 늦었어요”라는 번안곡으로도 발표됐다. 아쉽게도 이 번안곡은 최악의 번안이었다. 원곡을 아주 확실하게 망쳐놓았고 지금 듣기에도 민망한 사운드와 반주 편곡이 얼마나 힘든지를 여실히 드러낸 경우였다.
검은색 선글라스와 하얀색 팬더 스트라토캐스터 일렉기타는 F.R. David 트레이드마크였다.
적당한 미디엄템포의 미성의 목소리는 그룹 예스(Yes)의 존 앤더슨(Jon Anderson)이 연상될 만큼 깔끔하고 굉장히 팝적이며 깨끗한 느낌이다.
“Words”가 터지자 다른 히트곡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Pick Up The Phone”, “I Need You”, “Girl”, “Don’t Go”, “Music”, “Sahara Night” 도 유럽전역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주로 기타보다는 신디사이저를 앞세운 부담없이 듣기 좋고 신나는 노래들이었다.
F.R. David 노래로 모던토킹(Modern Talking) 결성계기
F.R. David는 본의 아니게 유로댄스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뮤지션이 되기도 했다. F.R. David 의 “Pick Up The Phone”의 인기가 높아지자 1983년 독일에서 독일어로 이 곡을 번안해서 부르기 위해 프로듀서 디터 볼렌이 가수를 물색하게 되는데 이때 눈에 띈 보컬이 바로 토마스 앤더슨이었다.
1970년대 스타 작곡가로 독일에서 유명세를 얻은 티터 볼렌은 자신도 가수로 데뷔해 세계 진출을 꿈꿨지만 노래를 못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부족한 보컬을 채워줄 가수를 찾고 있었다. 이 와중에 F.R. Daivd의 히트곡 “Pick Up The Phone”의 독일어 버전을 기획하고 있었고, 1980년에 데뷔한 신인가수 베른트 바이둥(Bernd Weidung)을 섭외해 독일어 리메이크 버전 “Was Macht Das Schön”을 제작하게 된다.
이 곡을 녹음하면서 베른트 바이둥의 목소리를 마음에 들어한 디터 볼렌은 몇 곡을 더 작업하게 되는데 이 노래들이 인기를 얻자 팀 이름을 모던 토킹(Modern Talking)으로 정하고 신인가수 베른트 바이둥도 영어식이름인 토마스 앤더슨(Thomas Anderson)으로 개명하게 된다.
F.R David 이후
80년대의 인기를 멀리하고 긴 공백이 이어졌고 여러 음악인들을 발굴, 제작자로 역할을 했지만 별 인기는 얻지 못했다. 1996년 10CC 노래 “I’m Not In Love” 싱글을 발표하기도 했고, 과거 자신의 최고의 히트곡 “Words”를 새롭게 리믹스한 “Words-‘99 Version”을 발표하며 컴백하게 된다.
2003년 12월에는 내한공연을 갖기도 했다. 당시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초대권을 청취자 선물을 주기도 했었는데 서울 올림픽홀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2003년 내한공연 현장에 있었는데 전성기 시절보다 다소 나이가 든 F.R. David의 모습이기는 했지만 깔끔한 사운드와 그의 거의 모든 히트곡들을 다 들을수 있는 무대였다. 목소리는 전성기 시절의 그 미성과 신비한 목소리는 예전같지 않지만 오랜 연륜이 묻어나는 무대였다.
2017년 아카데미 각색상을 수상한 영화이자 티모시 살라메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Call Me By Your Name>에 이 노래가 흘러나오며 또 한 번 주목을 받게 된다. 영화의 배경이 1983년 이탈리아였고 주인공 티모시 살라메가 라디오에서 이 노래를 듣는 장면이 등장한다. 당연히 영화 사운드트랙에도 이 노래가 수록되어 있다.
이 영화에서는 이 노래를 굉장히 현명하게 사용하게 된다. 한 소년의 동성애와 첫사랑을 다룬 내용이었는데 “Words”의 가사 ‘사랑한다는 말을 꺼내기 어렵다’는 대목은 주인공의 심경을 대변하는 수단으로 쓰이게 된다. 당연히 이 영화의 세계적인 호평과 흥행성공으로 자연스럽게 F.R. David 역시 저작권료가 많이 들어왔다고 한다.
F.R. David는 깨끗하고 여린 미성과 신디사이저가 이끄는 중독성 강한 노래들을 발표하며 유럽과 아시아권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1967년 20대 초반에 데뷔해 록커를 꿈꾸던 기타리스트였고 수많은 밴드와 미국에서도 활동을 이어갔지만 정작 자신의 장점을 발견하고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던 건 유럽무대였고 이마저도 30대 중반을 훌쩍 넘긴 나이였다. 서정적인 발라드와 유로댄스와 록 장르를 성공적으로 결합한 노래들을 발표하며 추억의 멜로디를 선사한 F.R. David, “Word”를 들을 때면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에 헤드폰을 끼고 듣던 풋풋한 유년시절을 만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