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출신의 기타리스트가 한 명 있다. 이름은 프란시스 고야(Francis Goya) 1975년부터 솔로 활동을 시작해 50장이 넘는 앨범을 녹음했고 다수의 골드와 플래티넘 앨범을 가진 클래식 기타리스트다. 음악 좀 한다는 분들은 코찔찔이 시절부터 두각을 드러내다 자신의 그룹을 조직하고 서서히 지방밴드에서 이름을 알리다 눈에 띄어 메이저에 데뷔하는 코스를 밟았는데 프란시스 고야는 스튜디오 세션맨으로 오히려 두각을 드러냈다.
남미 음악에 꽂힌 프란시스 고야 (Francis Goya)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곡은 1975년 발표한 첫 번째 앨범 [Nostalgia]부터였다. 아마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본 기타 연주곡이다.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러시아 등 전 세계를 순회공연을 돌며 틈틈이 새 앨범도 녹음하며 지낸다. 이런 양반들이 참 부지런도 하지만 오지랖도 엄청 넓다. 늘 동경했던 남미쪽 음악을 해보기로 마음먹고 작업에 들어간다.
기타연주도 좋지만 뭔가 보컬도 넣고 싶고 남미의 정취를 제대로 내고 싶은데 벨기에에서 남미 음악을 하는 세션을 구하기조차 쉽지 않은데 가수 찾기가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이왕이면 여자 가수였으면 좋은데 하면서 여러모로 수소문을 했는데 글쎄 딱 한 명이 있었다. 아니 그 시점 그 타이밍에 있었다고? 그것도 벨기에 브뤼셀의 한 클럽에서 연주 활동하는 볼리비아 가수를 찾았다. 그게 바로 카르미나 카브레라(Carmina Cabrera)였다.
볼리비아 출신 카르미나 카브레라(Carmina Cabrera)
카르미나 카브레라는 볼리비아 산타크루즈에서 태어나 역시 어린 나이부터 기타를 쳤다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영어공부를 위해 영국 런던에서 생활하다. 몇 년을 그렇게 유럽을 돌고 돌다 벨기에 브뤼셀의 한 클럽에서 기타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프란시스 고야로부터 음반제작 참여 제안을 받는다. 카르미나는 앨범 녹음이 처음인 신인이나 다름없었고 이 앨범이 데뷔앨범이다.
이렇게 발표된 앨범이 [Bahia Lady] 앨범이다. 바이아는 브라질의 지역 이름으로 브라질이 포르투갈 식민지 시대 수도가 있던 지역이고 아프리카-브라질 문화의 중심지로 브라질의 역사가 시작된 지역이라고 보면 된다. 1990년에 이 앨범이 발표되는데 유럽 내에서 굉장히 좋은 반응을 얻으며 뜻하지 않게 네덜란드에서 권위 있는 에디슨 레코드의 올해의 음반상까지 받게 된다.
특이한 것은 전 세계에서 단 두 나라 네덜란드와 대한민국에서만 LP로 발매됐다. 나머지 국가 유럽에서는 CD로만 발매된 상태였다. 우리나라에서 LP 발매는 아마도 박상원이 출연한 영에이지 광고 음악으로 Bahia Lady가 쓰이면서 LP발매로까지 이어진 것이었다.
Goya & Carmina – Bahia Lady
사실 이 노래 때문에 이 LP를 구입했고 당시에는 CD로 국내에서는 발매된 안 된 상태였고 선택지가 LP밖에는 없었다. 전반적으로 라틴고전넘버들부터 잘 알려진 대중적인 곡들이 선곡되어 있고 국내에서는 무엇보다 광고음악덕분에 “Bahia Lady”가 가장 히트한 트랙이 됐다. 당시 라디오에서도 자주 선곡되어 들려줬던 노래였다.
그리고 이 앨범은 다른 트랙들도 다 듣기 편한 보사노바 트랙들이 주를 이룬다. 카를로스 조빔의 “How Insenssitive”, 영화 흑인 오르페의 주제곡 “Manha De Carnaval” 바덴파웰의 “Porque Te Vas” 특히 Chabade-Mas Que Nade – Aqua De Beber- Voce Abusou 같은 곡은 라틴메들리로 꾸며놨다.
사실 이 앨범의 최고의 미덕은 난해하지 않고 전세계 어디서나 누구든 부담없이 즐길수 있는 앨범이란 점이다. 프란시스 고야는 철저히 대중적인 음악으로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음악을 지향하는 기타리스트다. 음악이 클래식이나 재즈에 기반을 두더라도 난해하거나 어려운 스타일이 아닌 누구나 공감할만한 쉬운 음악으로 쉽게 다가오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그래서 선곡도 라틴음악, 브라질 음악의 대중적인 히트곡과 명곡들만 선곡해서 앨범에 채워놓았다.
프란시스 고야의 화려한 기타플레이와 육감적인 카미나 카브레나의 음색이 멋진 조화를 이룬앨범으로 가장 단순한 기타연주와 보컬의 조화가 얼마나 원초적이고도 순수한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전해줄 수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Goya & Carmina 다른 앨범과 이후 행보
프란시스 고야의 라틴사랑은 [Bahia Lady]의 고무적인 성공에 탄력을 받으며 다음해 1991년 카르미나와 [Noche Latina], 1992년 [Festival Latino]까지 앨범 발매로까지 이어졌다.
Goya & Carmina는 이렇게 3장의 앨범을 내면서 막을 내린다. 이후 까르미나 카브레나(Carmina Cabrera)는 1995년 첫 번째 솔로앨범을 발표한다. Goya & Carmina 활동보다는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라틴 재즈 보컬리스트로 유럽 각지에서 공연을 이어갔다.
그렇다면 프란시스 고야는 어떻게 됐을까? 부지런한데 오지랖까지 넓은 이 양반은 라틴 앨범 3장이면 족하다고 생각했는지 관심사를 이번에는 뉴에이지 쪽과 러시아에 레이다를 세우는데 특히 리차드 클레이더만과의 듀엣 앨범까지 발매하고 아예 러시아쪽 동유럽을 상대로 투어를 돌기 시작한다.
덕분에 동유럽과 서유럽에서 스타가 될 수 있었고 2001년부터 에스토니아를 시작으로 러시아, 폴란드, 중국, 발트해 국가 그랜드 투어 등등 월드투어를 작년까지 돌았고 2023년에도 간간이 투어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그의 나이 77살이다. 사실 프란시스 고야 이 양반은 부지런하고 오지랖도 넓은데 좋은 일도 굉장히 많이 하고 있다. 전 세계빈곤 아동을 위한 각종 자선 캠페인에 빠지지 않고 참여하고 있고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까지 설립해 문제 지역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고 음악적 재능을 개발하도록 돕고 있고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