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e Birkin – Je t’aime moi non plus

에르메스 버킨 백의 뮤즈, 제인 버킨 Jane Birkin 별세

프랑스인들이 가장 사랑한 영국인 ‘제인 버킨’이 향년 76세로 별세했다. 영국 출신 가수 겸 배우이고 1970년대 한 시대의 패션 아이콘이었던 프렌치 시크라고 불렸던 그녀지만 나이와 건강문제로 공연이 취소되더니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Reposez En Paix !

제인 버킨 Jane Birkin 누구?

영국 여배우 엄마와 영군 해군 중령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전형적인 영국인이다. 특히 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 영국 첩보원이었다. 제인 버킨이 국제적 명성을 얻었던 건, 프랑스에서 경력을 쌓기 시작하면서다. 1968년 세르쥬 갱스부르(Serge Gainsbourg)와 연인이 돼 10년 간 음악적 동반자이자 뮤즈로 함께 하면서부터였다. 18살이란 나이 차이가 있었지만 둘 사이에는 딸이 하나 있는데 현재 프랑스 최고의 여배우로 손꼽히는 샤를로뜨 갱스부르(Charlotte Gainsbourg)다. 

세르쥬 갱스부르의 음악적 뮤즈 제인 버킨

1969년에 세르쥬 갱스부르와 아주 충격적인 노래 하나를 발표한다. <Je T’aime Moi Non Plus>라는 곡인데, 연인의 속삭임과 불평 섞인 사랑의 밀어를 그대로 가사로 썼고 논란이 된 부분은 노래 후반부의 신음소리였다. 실제 성관계를 연상시킬 정도로 성적으로 굉장히 노골적이었고 유럽의 대부분 국가에서 방송금지곡이었다. 특히 교황이 극대노했다고 한다. 당연히 우리나라에서도 금지곡이었다.

90년대 초반 음반에서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완전히 충격적인 노래였다. ‘세상에 이런 노래가 있을 수 있어? 이런 노래를 만들어도 되나? 그런데 69년에 어떻게 이런 노래가?’ 였다. 어린 마음에 흠칫 놀랐고 심장이 벌렁거리고 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를 정도로 후끈거렸다. 당연히 누가 들을까 음악 볼륨을 줄이거나 헤드폰을 끼고 들어야 할 정도였다. 그리고 든 생각은 프랑스는 역시 자유로운 국가고, 성과 사랑 표현에 대해 거침없는 곳임을 새삼 느끼게 해줬다. 하지만, 알고 보니 이런 프랑스에서 조차 논란이 어마무시 했다고 한다. 한번 들어보시라.

그런데 이 노래는 세르쥬 갱스부르의 여자친구 브리짓 바르도를 위해 1967년에 이미 작곡과 녹음까지 해 놓은 상태였다. 녹음엔지니어가 아주 무거운 애무가 녹음됐다는 말을 언론에 흘렸고 그 기사를 본 브릿지 바르도와 그녀의 남편이 싱글 철회를 요구해 음반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1968년 영화 세트장에서 만난 영국 배우 제인 버킨과 연인 관계로 발전하며 이 노래를 다시 녹음해서 듀엣곡으로 발표하기에 이른다. 어찌됐건 이 노래는 발매 당시 유럽 전역에서 300만 장을 팔아 상업적 성공까지 거머쥐며 단순한 노래 차원을 넘어 음악과 예술에서 성적 표현에 관대한 프랑스조차 기존 체계를 뒤흔든 화두가 됐다.

이 노래는 도나 썸머(Donna Summer)와 프로듀서 조르지오 모로도(Giorgio Moroder)에게도 영향을 줬는데 1975년 디스코넘버 <Love To Love You Baby>도 후반부 신음소리가 압권이다. 

제인 버킨의 창법과 음악스타일

제인 버킨의 창법은 어찌됐던 공기 반 소리 반 목소리다. 세르쥬 갱스부르의 프로듀싱 스타일이기도 했겠지만, 처음에는 어색한 불어발음 뉘앙스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약간은 허스키하면서 섹시하기도 가녀리기도 했다. 소녀같은 순수함이 보이는 동시에 육감적이며 관능적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이미지가 공존했다. 보통 녹음된 음원을 들어보면 거의 모든 곡들이 숨소리까지 녹음되어 바로 옆에서 속삭이는 듯 들리고 진성보다는 떨리는 가성으로 노래하는 창법이 제인 버킨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오래 듣다보면 귓속이 간질간질 하다.

<Quoi>,<La Decadanse>,<Yesterday Yes A Day>,<Jane B>,<Ex-Fan Des Sixties>,<Di Doo Dah>등 수많은 히트곡들이 있지만 한동안 제일 열심히 들었던 노래는 <Lost Song>이었다. 클래식 작곡가 그리그의 페그귄트 조곡 중에 너무 유명한 <솔베지의 노래>의 멜로디를 따 온 이 노래는 제인 버킨의 목소리가 입혀졌을 때 전혀 다른 끈적이는 노래가 됐다. 마치 해무 낀 새벽녘에 실연당한 여인이 청승맞고 처량하게 부르는 노래같다.

세르쥬 갱스부르와 결별

딸 샤를로뜨 갱스부르가 있었지만 둘 사이의 관계는 순탄하지 않았다. 세르쥬 갱스부르의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을 참지 못하고 1980년 둘은 결별한다. 거기에 그의 바람기와 가정폭력 문제까지 더해졌다. 하지만 음악에서 만큼은 세르쥬 갱스부르를 떠나지 못했다. 1983년에 발표된 <Baby Alone In Babylone>에서 다시 만났고 이후에도 발매되는 앨범에서 세르쥬 갱스부르의 영향력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그의 뮤즈였다.

세르쥬 갱스부르가 프랑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보다 굉장히 높다. 프랑스 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고 작곡가이자 가수였고 시인이었으며, 영화감독이며 배우이며 시대의 기인으로 그를 평가하고 있다. 제인 버킨이 음악적 독립을 이뤄낸 건 1991년 세르쥬 갱스부르가 세상을 떠나고도 한참이 지난 1998년에 발표된 앨범에서였다. 그의 곡이 한 곡도 없었고 당시 프랑스의 대표 프로듀서들이 대거 앨범에 참여해 제인 버킨을 위한 맞춤형 곡 들을 선사하며 변신을 시도했다.


Jane Birkin – Comment Te Dire Adieu?
편곡은 발칸 반도 짚시음악의 대가 고란 브레고비치가 참여했다.

제인 버킨에게는 딸이 셋이 있다. 007 주제곡을 만든 존 베리와 첫 번째 결혼에서 케이트 배리를 얻었고, 세르쥬 갱스부르와의 사이에는 샤를로뜨 갱스부르가 있었고, 1982년에 자크 두아이옹 감독과의 관계에서 셋째 딸 루 두아이옹을 낳았다. 

에르메스 버킨백의 뮤즈

1983년 당시 에르메스 CEO 장 루이 뒤마를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나 옆자리에 앉게 됐는데, 이때 마음에 드는 아이 용품이 많이 들어가는 여행용 가죽 위캔드백을 찾기가 어려웠다고 얘기하면서 뒤마가 제인 버킨을 위해 검은색의 유연한 가죽 가방을 하나를 만들어 준다. 과거 에르메스에서 생산한 가방을 바탕으로 새로운 디자인을 떠올렸는데 그게 바로 버킨 백이다. 단점이 가방에 물건이 너무 많이 들어가 무거워 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버킨 백은 누구나 갖고 싶어하는 명품백이 됐다.

기본 모델의 매장가가 1,5000만원대에 시작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 가격이 의미 없는게 일반 고객에게는 버킨백을 판매하지 않고, 특정 에르메스 매장에서 한 셀러에게 어느 정도 다른 제품을 구입해서 구매이력을 채워야 구입할 수 있다는 이런 말도 안 되는 명품가방이다. 심지어 리스트에 이름을 어찌 어찌 올려도 몇 개월에서 몇 년을 기다려야 하는 것으로 유명한 가방이란다. 참고로 버킨 백이 처음 출시된 가격은 2,000달러였다. 

“시대를 초월한 프랑스어권의 아이콘을 잃었다, 프랑스적인 영국인이며 한 번도 유행을 타지 않은 모든 세대의 상징이었다. 부드러운 목소리와 열정적인 행동주의가 어우러진 완벽한 예술가, 우리 언어 중 가장 아름다운 단어들로 노래한 프랑스의 아이콘으로 절대 잊히지 않을 것이다.”

Adieu, Jane Birkin et Merci beauc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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