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zz Vocal Tania Maria Story. 귀가 얇은 팔랑 귀를 가진 사람들은 남의 말에 잘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어떤 제품, 어떤 예술작품, 어떤 현상까지 세상 모든 가치를 부여하는 말들에 솔깃하게 넘어가는 경우다. 내가 딱 팔랑 귀였다. 지금이야 나이가 들어 세월의 풍파를 겪으며 아닌 건 아니고 어느 정도 확고한 취향이라는 것이 생겨 홀딱 넘어가는 경우는 드물지만 10대나 20대 시절에는 누가 뭐가 좋다더라 하면 아무 의심 없이 구매부터 하는 경우가 많았다.
Jazz Vocal 타니아 마리아(Tania Maria) 처음 들었을 때
사실 음반도 그랬다. 관심사가 생기고 세상의 많은 음악을 누구보다 많이 알고 싶고 잘난 척하고 싶은 욕망들이 똘똘 뭉쳐 듣고 싶은 욕심과 남들보다 더 많은 음반을 가져야 한다는 수집욕이 생기기 시작할 때였다. 딱 1990년 고등학교 1학년 때 레코드점 사장님은 뜬금없이 음악도 편식하지 말고 열심히 들어야 한다며 음반 한 장을 추천해줬다. 정말 생판 처음 보는 앨범이었고, 더군다나 재즈 음반이란다. 재즈를 들어본 적도 없는 고등학생에게 추천을 해주다니 그럼에도 ‘재즈정도는 들어줘야지 편견 없이 듣자’는 마음으로 음반을 선뜻 받아들었다. 당시 LP가격이 5000원 정도였는데 수입음반이라 9000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샀던 기억이 난다.
가수이름은 타니아 마리아(Tania Maria)였고 <Come With Me>라는 앨범이었다. 몇 곡을 들었는데 고1학생의 귀에는 스탠다드 재즈 넘버 “Embraceable You”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솔직히 그때 속마음은 ‘뭐야, 들을 노래 한 곡 밖에 없네’였다. 속으로 후회하고 있었다.
시간은 흘러흘러 20대 중반쯤 예전 구입해서 안 듣던 음반들을 무작위로 듣는데 타니아 마리아 앨범전체를 턴테이블에 걸고 듣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곡이 귀를 휘어잡았다. 제목을 확인해 보니 앨범타이틀 곡인 “Come With Me”와 이렇게 그루브 넘치고 스캣이 끝내줬나? 예전에는 몰랐던 펑키한 스캣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래 음악을 듣는 귀는 계속 변하는거야!” 그동안 몰랐던 매력을 재발견하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타니아 마리아 (Tania Maria) 누구?
브라질 출신의 가수, 작곡가, 밴드 리더이자 피아니스트다. 브라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 연주를 시작했는데 기타리스트이자 가수인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13살 때부터 아버지가 결성한 밴드에서 피아니스트로 참여하며 재능을 다졌다. 지역 음악 경영 대회에 나갔다 하면 상을 받아올 정도로 두각을 드러냈고 브라질답게 삼바, 보사노바, 재즈, 팝 음악 등 다양한 리듬과 멜로디를 흡수했다. 잠시 대학에 들어가 법학 학위를 받고 일찍 결혼해 출산까지 하면서 평범한 길을 걷나 싶었지만 결국 재능과 열정은 그녀를 전문 음악가의 길로 들어서게 한다.
Jean-Baptiste Poulain/Courtesy of the artist
브라질에서 두 장의 앨범을 발매하는데 이때까지는 팝과 브라질 대중음악 MPB 스타일의 음악들을 선보였다. 당연히 포르투갈어로 발표된 노래였고 브라질 내에서는 그녀의 이름을 알리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1974년 프랑스 파리로 활동영역을 옮기면서 타니아 마리아(Tania Maria)는 음악적으로 커리어적으로도 확장의 시기를 맞이한다. 국제적인 무대로 옮기며 음악은 브라질 음악에서 재즈까지 아우르게 됐고 피아니스트로 밴드 리더로 음악적 정확성과 자유분방함이 폭발하던 시기였다. 당연히 음반회사 관계자들의 눈에 띄기 마련이었고 미국의 재즈기타리스트 찰리 버드(Charlie Byrd)의 관심을 끌었고 찰리 버드는 재즈레이블 콩코드 레코드 사장에게 그녀를 추천하게 된다.
Tania Maria – Come With Me
콩코드 레코드에서 발매된 1983년작 <Come With Me>는 그녀를 더욱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어 준다. 타이틀곡 “Come With Me”는 정말 멋진 곡이다. 통통 튀는 리듬과 멋진 화성 거기에 타니아 마리아(Tania Maria)의 정확하지만 자유분방한 스캣을 제대로 들을 수 있는 곡이다.
80년대 재즈씬에 새롭게 떠오른 여성보컬리스트이자 피아니스트 밴드리더로 그녀는 자리매김한다. 이때 재즈음악은 GRP로 대표되는 퓨전재즈음악들이 쏟아져 나오던 시기였고, 아프로 라틴, 팝과 재즈가 서로 융합하던 퓨전재즈의 시대였는데 딱 브라질 출신의 여성 피아니스트이자 Jazz Vocal 타니아 마리아(Tania Maria)는 그 상황에 딱 부합하는 아티스트였다.
1984년 <Love Explosion> 앨범에서는 “Deep Cove View”가 사랑을 받았고 1985년 <Made In New York>은 세계적으로 그녀의 인기를 더욱 높여준 앨범이었다. 이 시기 세계에서 열리는 거의 모든 재즈페스티벌에 초대되어 연주했고 세계의 수많은 TV와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1985년 그래미상 “최고의 재즈보컬 퍼포먼스” 후보에 올랐다. 아쉽게 수상은 불발됐다. 그녀는 총 25개 이상의 앨범을 녹음했으며 2012년 앨범이 마지막이다.
그녀의 최고의 장점은 어릴 때부터 연주한 힘이 넘치는 피아노 연주에 있다. 어떤 곡에서의 피아노 연주는 마치 브라질 삼바리듬이 연상되는 격렬한 타악기처럼 들리기까지 한다. 타니아 마리아(Tania Maria)의 피아노는 멜로디의 윤곽이 확실하다. 그리고 이 피아노 연주와 조화를 이루는 자신의 목소리를 또 다른 악기처럼 사용하는 스캣(Scat)을 선보이며 조화를 이룬다. Jazz Vocal 타니아 마리아(Tania Maria)의 트레이드마크는 바로 피아노 연주와 스캣이다. 기술적으로도 복잡한 스캣 즉흥연주를 아무렇지 않게 선보인다.
타니아 마리아(Tania Maria)가 다루는 음악은 팝 멜로디부터 재즈, 펑크, 소울, 삼바의 복잡한 하모니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다양한 음악적 토양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세계에서 음악 잘하는 리듬 잘 다루고 잘 타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곳은 아마도 브라질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