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corice Pizza (리코리쉬 피자) OST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팬들이 의외로 많다. <부기 나이트>, <매그놀리아>, <펀치 드렁크 러브>, <마스터>, <데어 윌 비 블러드> 등등 헐리웃 시스템 안에서 자신의 고유한 스타일을 유지하며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흔치 않은 감독 중에 하나다. Licorice Pizza OST 소개.

그런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이 <리코리쉬 피자>라는 작품으로 돌아왔다. 2021년에 개봉한 영화로 배경은 1970년대 사랑에 빠진 소년과 불안한 20대 처자의 청춘이야기 정도 되겠다. <매그놀리아>처럼 여러 인물들과 여러 스토리라인이 펼쳐지는 이야기로 정확하게는 헐리우드 유명 프로듀서인 게리 고츠먼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영화가 만들어졌다. 영화를 보고 난 뒤 굳이 비유하자면 <응답하라 시리즈>의 미국식 영화버전처럼 느껴졌다.

우선 제목이 특이했다. 리코리쉬 피자 먹어본 적도 듣기도 처음이다. 찾아보니 ‘리코리쉬 피자’는 1970년대 캘리포니아 남부 지역에서 인기 있었던 레코드숍 체인의 이름이란다. 리코리쉬 피자가 생긴 모양이 검은 레이블과 피자의 동그란 모양 때문에 레코드판, LP판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런 레코드숍 체인점이 생겨났다.

아마 미국인이라면 이 이름만 들어도 레코드판을 떠올리게 되는 단어고 7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그런 요소라서 이런 제목을 지은듯한데, 그 외 지역의 사람들이라면 제목을 보면 피자관련 영화로 밖에는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지극히 미국적인 그들의 감수성에 기댄 제목이라고 할까? 그런데 극중 ‘리코리쉬 피자’라는 곳이 한번은 등장할 법한데, 이 레코드숍이 영화에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흔한 소품인 레코드판도 안나온다.

<응답하라 1988>의 쌍문동이란 특정 장소가 등장하듯이 이 영화는 1973년 캘리포니아 샌 페르난도 밸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감독이 실제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부기 나이트>,<매그놀리아> 등 전작들에서도 샌 페르나도 밸리의 다양한 모습을 담아왔듯 자신의 유년시절의 모습을 최대한 따스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남자주인공 소년은 어린 나이에 아역배우로서 이미 잘 나갔지만 배우로 미래가 불안한 상태다. 또, 당돌하게 어느 정도 사업수완까지 겸비하고 있어 무모한 사업을 덜컥 벌이고 도전도 서슴지 않는 애어른 같다. 여자주인공은 20대 중반이지만 직업도 불안정하고 집안에서도 큰 인정을 못 받는 불안한 위치의 어른아이 같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데 묘하게 어울리는 이 둘의 좌충우돌 어설픈 청춘 로맨스 성장기 영화라 하겠다.

여자주인공은 요즘 인기 있는 자매밴드 ‘하임’의 알라나 하임이 맡았는데, 폴 토마스 앤더슨과는 뮤직비디오를 연출해 줄 정도로 친분이 돈독하다. 또, 실제 하임의 가족이 총출동해 똑같은 극중 가족으로 출연했다. 남자주인공은 폴 토마스 앤더스 감독의 페르소나로 불렸던 이미 고인이 된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아들 쿠퍼 호프만이 연기했는데 어리지만 신인배우답지 않은 모습으로 연기를 정말 잘했다. 이 외에도 숀펜과 브래들리 쿠퍼가 카메오로 출연 진상 연기를 제대로 보여준다.

1970년대 당시 미국의 정치상황과 대중문화의 변화가 은근슬쩍 비춰지며, 그 역할은 사운드트랙이 한축을 담당하고 있다. 이런 <응답하라 시리즈>와 같은 영화는 그때 그 시절에 흘러나왔던 음악을 멋진 소품으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영화의 사운드트랙에 사용된 노래들을 듣는 재미가 더해져 장면을 연상할 때마다 거기에 삽입된 노래들이 떠오르게 만든다. 미국인들에게는 그 시절에 들었던 노래들이 흘러나오며 좋았던 그 시절의 회상에 잠기는 매개 역할을 톡톡하게 한다.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도노반(Donovan), 니나 시몬(Nina Simone), 폴 매카트니와 윙스(Paul McCartney And Wings), 소니와 셰어(Sonny & Cher), 고든 라이트푸트(Gordon Lightfood)와 같은 당시의 대중음악인들의 노래가 영화의 이야기 전개에 깔맞춤으로 흘러나온다. 여기에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의 대중음악들이 극 중 등장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분위기를 대변하듯 쓰이고 있다.

과거로의 시간여행에 안성맞춤인 음악 설정, 사운드트랙 자체로 복고레트로 뮤직 시대에 더 없이 잘 어울리며, 당시의 헤어스타일과 소품, 의상과 패션까지 추억이라는 향수를 머금고 그 자체로 빛나는 트랙들로 가득하다.

인상적인 장면과 음악을 몇 곡 짚어보면, 우선 니나 시몬(Nina Simone)의 <July Tree>가 영화의 도입부 졸업앨범에 들어갈 사진을 찍는 날, 여주인공에게 계속 치근대는 남자주인공의 긴 대화 장면에 등장한다. 재즈 싱어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니나 시몬의 1965년에 발표된 노래로 ‘참사랑은 가을에 씨를 심고, 4월에 진정한 사랑의 봉오리를 맺으며 세상 다 볼 수 있게 7월의 나무 위에 만개한다’는 가사가 인상적으로 극의 장면 전개에 딱 어울리게 깔리고 마치 앞으로의 전개를 복선처럼 이 노래가 대변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던 노래 스모키(Smokie)의 리드보컬 크리스 노먼(Chris Norman)과 여성록커 수지 콰트로(Suzi Quartro)의 듀엣곡 <Stumblin’ In>이 나오는데 남녀주인공이 비행기에서 기내식을 먹는 장면에서 이어폰을 끼고 이 노래를 듣고 있는데 두 남녀의 마음을 대변한 것 같지만, 실제로 흔들릴 수 있는 사랑의 속성을 가사로 쓴 노래로 사운드트랙에서 가장 잘 알려진 노래다.

영화 예고편에도 인상적으로 쓰인 노래가 한 곡 있는데,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의 <Life In Mars>인데 석유파동 위기가 시작될 때 주인공들이 거리를 뛰어 내려가는 장면에 쓰였다. 가사는 초현실적이며 실제 당시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격분한 미디어의 광란을 이야기하는 내용의 노래다. 폴 매카트니와 윙스(Paul McCartney & Wings)는 숀펜이 등장하는 씬에서 쓰인 노래로 요란하면서도 매혹적인 사운드를 통해 두 남녀 주인공의 재회에 딱 어울리는 선곡이다.

도노반(Donovan)의 <Barabajagal>은 주인공이 핀볼 가게에서 흘러나왔던 노래로 그 시대의 경향을 함유한 노래라 하겠다. 그리고 두 남녀 주인공이 일본식 식당을 방문한 후 차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한 곡 있는데 두 주인공이 서로의 마음을 궁금해 하는 씬에서 흘렀나왔던 노래라 하겠다.

캐나다 출신의 포크싱어송라이터 고든 라이트푸드(Gordeon Lightfood)의 <If You Could Read My Mind>가 쓰였는데 실제로 고든 라이트푸드 자신이 이혼에 대해 생각할 때 심정을 담아서 발표한 곡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사운드트랙에는 수록되지 않은 40곡 정도의 노래들이 2시간이 넘는 런닝타임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다.

과거로의 시간여행에 걸맞은 음악 설정, 앤더슨 감독의 향수 어린 시각을 강조하는 동시에 적어도 미국인들에게는 영화를 보고나면 그 음악들이 귓가에 맴돌 것이다.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에 교량 역할을 하는 사운드트랙들은 그 안에서 가장 빛났고, 조금은 생소한 우리들에게는 1970년대 미국의 분위기와 그 흔적을 이 영화를 통해 엿볼 수 있는 묘한 매력이 넘치는 뮤직플레이리스트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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